그러고보니 너희들에게 쓰는 첫 편지구나.
나도 참 무심하기도 하지...
올해는 담임도 아니고... 비교적 한가롭게 살고 있는데 한 학기가 다 지나도록 귀여운 네놈들에게 편지 한 통 못 쓰고 뭘 하며 살았누...

처음 동아리를 만들고 너희들 반짝이는 눈빛을 맞닥드렸을 때의 그 느낌이 살아오는구나.
독서동아리 함께 하겠다고 너희가 찾아왔을 땐 솔직히 나도 산마루도 낯설고 뻘쭘했었다. 너희도 마찬가지? ㅋㅋ 너희는 우리의 무얼 믿고 찾아왔던 것이냐? ㅋㅋㅋ 학교운영위원회실에서 가졌던 첫 모임 때, 아직 얼굴을 못 익혀 미안스러워했던 기억도 있군. 그땐 우리가 그랬구나. 그치만 시간이 흐르면서 수업에 들어가서도 누가 누군지 알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참~ 왠지 모르게 든든하더라. 다른 아이들에겐 쪼~끔 미안하지만 우리만의 교감이랄까 공감이랄까 뭐 그런게 느껴져서. 너희들도 그랬냐?

안 쓰던 편지를 이렇게 쓰게 된 건, 음~ 조금 심각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요즘 우리들의 모습에 대한 반성일 수도 있고, '우리가 하려는 것이 과연 무얼까'하는 동아리활동에 관한 뒤늦은 성찰일 수도 있어.

산마루나 내가 처음 동아리를 꾸려나가려 마음 먹은 시점부터 이야기해야할까?
통 책읽을 시간이 없는 너희들,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책을 함께 읽고 느낌을 나누고싶다'는 것이 산마루와 나의 소박한 첫 번째 목적이었다. 마침 교육청에서 주어지는 예산도 있으니 너희에게 몇 권의 책은 사줄 수도 있겠다 생각했고. 사실 너희들 책 사볼 용돈, 궁하잖아. 우리 학교 도서실에도 좋은 책이 진짜 많지만 '내 책'이 주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니까. 그건 소유욕을 떠난.. 뭐랄까 친밀감? 무엇이든.

그리고 너희랑 하고 싶은 활동도 많단다. 이미 몇 가지는 치러냈지. 솔직히 생각보다 참여하는 숫자가 적어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너희가 학교공부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과, 영화와, 역사와 문화를 숨 쉴 수 있을거라 생각했단다. 은빛 물고기처럼 생기있게 파닥거리는 너희들 모습을 상상했지.

내신도 신경써야하고 내년이면 고3이니 슬슬 수능 걱정도 될거고... 학교 공부에 대한 이런 저런 부담도 만만치 않지? 하지만 애들아~ '공부'란게 과연 무얼까? 학교나 학원에서, 수업시간에, 책상머리에 붙어앉아서 하는 '공부'만이 '공부'의 전부일까? 평소 수업시간에도 가끔 이야기했지만 '진짜 공부'란 그렇게 바로바로 효과가 드러나는, 수치로 환산되어 성적이 나오고 등수가 매겨지는 그런 부분보다 훨씬 넓고 깊은 것이 아닐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겨 나가는 것, 나라는 사람을, 또 나의 생각을 남에게 자신있게 표현하고,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또는 설득 당하고 옳다고 배운 것을 과감하게 실천하는, 공부란 그런 것이며 그런 것이라야하는 것 아니겠니? 교과서는 그 내용 중 아주 좁은 부분일뿐이라 생각해.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걸까? 그것도 그렇게 열심히 해야하는 걸까? 성적을 조금이라도 더 올려 남들이 애기하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좀 더 안정된 직장을 얻기 위해서? 남들보다 좀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해서? 오직 그런 목적만으로? 대학, 직장, 임금, 지위 그런 것들도 무시할 수 없는, 삶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이것들만 충족되면 내 삶이 따뜻하고 행복할까?  가치있는 삶이란 어떠해야할까?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해. 식상한 말이 되겠지만 행복이란 남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부와 지위만으로 이룰 수는 없는 것 같아. 그리고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늘 오늘과 현재를 희생하라는 말... 기만스러워. 지금 행복할 수 없다면, 지금 당장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도대체 미래 어느 시점에 행복할 수 있을까? 내 행복의 정체에 물질과 지위 이외에 또 다른 무엇도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말이야. 

그래, 다시 생각해보니 산마루나 나는 너희들과 함께 행복해지고 싶었나보다. 오늘, 당장, 학교라는 공간 또는 그 밖에서 함께 행복을 느끼고 싶었나보다. 그것도 중요한 공부방법, 공부목적의 하나라고 믿었고, 그 과정에서 조금 힘들수도 있지만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러면서 우리들의 몸과 마음도 부쩍 자랄 거라고. '활동하는 건 조금 힘들지만 요즘 나, 무지 재미있고 무지 즐거워~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고 함께하는 친구들도 모두 다르지만 소중한 존재야~ 이런 것이 행복이구나~ 이런 것이 살아가는 것이구나' 뭐 이런 감탄 말이야.

요즘, 너희도 산마루나 나도 조금 느슨해졌지? 정기 모임에서도 얼굴을 볼수 없는 두빛나래가 점점 많아지고 준비한 활동들이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하지? 교육청 강연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홉산, 각종 다른 토론 행사 참여, 달빛산행 등등.. 책 읽어내기도 빠듯한데 자꾸 이런 저런 곳으로 나들이 가자니깐 짜증도 날거구.

흠... 고민을 많이 했단다. 그렇지만 역시 너희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너희에게 부담을 주는 동아리 활동이라면 무엇이 행복할 것이며, 무슨 공부가 될 것이며 우리 모두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무엇보다 너희 스스로가 행복하고 뿌듯하고 만족스러워야지. 그래야 함께하는 우리도 행복하지. 자기존중감, 행복감도 전염성이 있나봐.

그래서 더 이상 동아리 활동을 하기 힘든 사람은 빼주기로 했단다.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해.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이것이 탈퇴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다음부턴 빠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이야기지.

처음... 독서동아리 꾸릴 때, 그건 일년을 바라본 일종의 '약속'이었다. 산마루와 내가 욕심이 많아 이런 저런 외부 활동에 너희를 참여시키고 싶어했던 건 인정! 하지만 미리 나눠주었던 [활동 계획서]에 그런 내용들은 모두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그건 모두 선택 사항이었지. 산마루도 나도 너희에게 강요할 수는 없단다. 강요하고 억눌러 상대방의 숨통을 죄는 교육은 어떤 명분을 갖다대더라도 참교육이 아니라고 보거든. 

최소한의 활동- 매월 두 번 있는 독서토론 모임과 놀토마다 있는 교육청 강연-은 우리의 처음 약속처럼 나름대로 성실하게 해야한다고 생각해. 물론 몸이 아프거나 집안에 일이 있는 등 사정이 생기면 빠질 수도 있지. 그러나 최소한 산마루나 나에게 사전에 알려주었으면 하는 바람, 오버일까? 너희에게 무리한 요구일까?

독토동아리... 뒤늦게 찾아오는 바람에 탈락된 아이들이 여럿 있었단다. 우리들의 활동이 너희에게 이제는 부담스러운 무엇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건 다른아이들에게 돌아갈 혜택이 될 수도 있었을거야. 너희는 일종의 특혜를 누리는 것이고 너희 중 누군가가 그 혜택을 부담으로 느끼고 이제와서 빠지길 원한다면 그건 결과적으로 다른 아이가 누릴 수도 있었을 그 혜택을 빼앗는 짓이 되는 거야. 결과적으로.

이게 바른 선택인지 여전히 많이 고민스럽지만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하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중간에 빠질 수 있는 건 이번 한 번뿐이야. 그리고 빠지지 않더라도 앞으로는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활동하도록 하자. 최소한 우리들이 정한 책은 다 읽고 모임에 참가하도록 노력하고, 교육청 강연도 정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꼭 참여하는 것으로. 주어지는 미션은 부담스럽지 않은 것이 되도록 산마루와 나도 더 신경쓸게.

나름 성실하게 열심히 참여하는 너희들 모습, 너무 이쁘고 대견해. 지금은 너희가 다소 힘들더라도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 틈틈이 행복감을 느낀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고, 또 당장 도드라지게 표나지는 않더라도 우리들의 이 시간들이 언젠가 너희 삶에 빛나는 무엇이 되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구나.

두빛나래-기대에 들떠 이름 짓고 만나왔던 우리 독서동아리, 여전히 애정이 있고 함께 하고 싶다면 짧은 답장 써줄래? 문자도 좋고 찾아와서 귓속말로 속삭여도 좋고, 책상 위에 쪽지를 남겨도 좋아. 20일(수), 21일(목), 22일(금) 삼일 동안 기다릴게. 계속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지 않는 사람은 아쉽지만 이쯤에서 빠지는 걸로 생각할거고. 혹시 you가 빠졌다고 산마루나 내가 미워하지 않을까 걱정하지는 않겠지? 우린 그렇게 유치+치사하지 않단다. ㅋㅋ

우리가 끝까지 '함께'이기를 바랬다. 그치만 조금 변화가 생긴다고 해도 너희들 모두 여전히 소중하고 이쁠거야. 교사라는 직업의 원죄 중 하나는 아이들을 탓할 수 없다는 것! ^^ 어떤 상황에서도. 산마루나 내가 스스로도 모르게 너희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아픔을 주었다면 그  본심이 무엇이었든 우리들의 잘못일거야. 표현법이 세련되지 못했거나 너희 마음을 오해할 수도 있었겠지. 언제나 어른보다 더 너그러운 너희가 이해해주길 바래. 그리고 산마루와 나의 '본심'이 무엇이었을까... 한 번만 생각해주길 바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떠난다고 해도, 남는다고 해도 너희들 똑같이 다~ 이쁠거야. '모든 아이들을 똑같이 이뻐해야하는 것' 힘들지만 이것 또한 교사의 의무거든. ㅋㅋ

2007년 6월 19일 교무실에서 강낭콩과 산마루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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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8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음 고생이...
나무는 제 스스로 잎을 떨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