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나는 30호봉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일곱 살배기 내 아들은 고등학생이 돼 있을 테고, 지금 우리 반 아이들 중에 몇몇은 엄마 아빠가 돼 있을 것이다. 중년의 고빗길에 선 나는 부쩍 높아진 혈당을 다스리기 위해 저녁마다 체육공원 트랙을 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쯤이면 나도 전교조 밀양지회의 ‘올드보이’가 되어 지금 선배 선생님들이 그러하듯이 지회 사무실에서 분회로 보낼 우편물에 주소 스티커를 붙이며 훌훌 짜장면을 먹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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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소고기 수입까지 약속하며 미국이 요구하는 것 모두를 내어준 한미 FTA는 원천무효라며 국민들은 반대하고 있다./안옥수 기자 |
여기까지 써놓고, 잠시 천장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해본다. 이 모든 것은 가능한 일일까. 10년 뒤에도 나는 지금처럼 선생 노릇을 하고, 아이들은 지금처럼 제 부모들의 살뜰한 보살핌 속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을까….
며칠 전 분신한 허세욱 씨가 남긴 글이 떠오른다. 2007년 현실을 향해 토해 낸 허세욱 씨의 외침은 아마도 2017년을 향한 예언이 될 것이다. 그 분은 화염처럼 뜨겁게 꾹꾹 눌러 적었다. “(내가 죽더라도) 나를 위해 모금하지 마라. 전·부 비·정·규·직·인·데….”
머리가 굵어진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수업 시간 중에 내게 한미 FTA에 대해 묻는다. 그동안 주워섬긴 자료와 수치를 들이대며 가로세로 떠들다 문득 녀석들의 무구한 얼굴을 바라보노라면 기가 막힌다.
이 녀석들 중에 10년 뒤 정규직으로 남아 있을 아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내가 옳다, 딴소리 마라’고 온 국민을 향해 윽박지르는 노머시기는 자신이 있나보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가장 큰 병통은 모두가 저같을 거라 믿어버리는 데 있다.
내 인생의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반, 우리 학교, 이곳 밀양, 이 한정된 영토 속에서 부대끼며 늙어가는 것이다. 가당찮은 바람인지 모르지 않지만, 내 자식도 내가 만나는 저 아이들도 할 수만 있다면 대처에서 방황하지 않고 이곳에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우리들 모두는 한미 FTA를 기점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영구동력기관’ 속으로 남김없이 밀어 넣어졌다. 이 땅은 이제 미친년 널뛰기하듯 펄렁대는 글로벌 경제의 소용돌이 속으로 풍덩 빠져버리고 말았다. “경쟁력” 없으면 조용히 찌그러져야 한다.
한미 FTA에서 무엇이 가장 견딜 수 없는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농업의 숨통이 완전히 끊어져버린 것을 이야기하겠다.
저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대처에서 힘겹게 부대끼다가, 식민지 조국의 3등 국민, 다른 말로 비정규직으로 살다가, 문득 제 부모가 부치다 묵혀두었던 농토를 생각해내고, 한없이 낮고 가난해진 마음으로 고향의 언덕을 그릴 때, 그때 그들을 품어줄 농업의 숨통이 이제 완전히 끊어져버림으로 인하여, 그들이 되돌아올 근거지를 박탈해버린 작금의 현실이, 그것이 견딜 수 없이 괴롭다 .
기업이 국가를 법정으로 불러내 헌법을 무릎꿇릴 수도 있는 이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나라에서, 옷을 더 팔기 위해 광우병 쇠고기를 들여오는 이 믿을 수 없는 통상관료들의 나라에서, 몸이 아프면 이제는 ‘능력껏 앓아야’ 하는 나라에서, 결국 살아남기 위해 영혼을 팔아야하는 나라에서, 이제는 어떤 것이 ‘사람다운 삶’인지를 물을 수 없는, 인간의 품위가 사라져버린 것이 괴롭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규직’으로 살아남아, 미국산 자동차 굴리면서 미국산 스테이크 먹으면서 미국계 펀드 회사가 불려준 배당금으로 방학 때마다 여행 다닐 것을 꿈꾸는, 그야말로 순진한 ‘정규직 교사’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 참 아득하기만 하다. 10년 뒤, 우리는 지금처럼 선생 노릇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