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 반쯤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갔다 '는 말은 '출근'은 아니었음을 뜻한다. 그렇다 오늘부로 나는 더이상 ㅇㅇ고등학교의 교사는 아닌 것이다.

자리에 앉아 열쇠로 서랍을 열고 노트북을 꺼내어 문집 편지를 인쇄하고 소청심사청구서를 손보고... 12시 즈음하여 계단이 왁자지껄 하더니 아이들이 하나둘 빼꼼 교무실로 머리를 내민다. "교실에 가 있거라" 민주가 우리반 -10반 열쇠를 가지고 오더니 11반 꼬리표가 붙은 열쇠로 바꿔간다. 흠.. 우리 교실은 이젠 11반 교실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20명 이상 오면 샘한테 문자 넣어라~ 해놓고 일을 마무리했다. 승연이와 수진이에게 한 상자씩 문집을 들려 교실로 향했다.

결석 : 수정, 현진, 혜진, 은영, 다혜, 아름, 희영, 다원, 현영, 유빈
모두 10명의 아이들이 안왔다. 그 중 늦게라도 내게 직접 연락한 녀석은 은영이와 유빈이 두 명. 우이씨 나쁜 놈들... 끝까지 이런단 말이지. 자장면 42그릇 주문한 건 어쩌누?

세상에 한 권뿐인 나만의 문집! 나눠주기 전에 문집 제목 당첨된 사람 5,000원 상품권 시상식을 가졌다. [우리들이 있었다] 자~ 소라! 상품권 받아라! 아이들의 시기 질투하는 소리.. 아, 샘... 제가 지은 게 훨씬 좋은데요... 앞자리에서 소라 궁시렁거리길.. "사실 이거 만화책 제목인데..." --;; "마지막까지 나는 소라한데 말린다.. -.,- 그거 알았으면 탈락시키는 건데." 알았어도 이 제목으로 낙점했을 거다. 이게 제일 마음에 든다. 이건 내맘대로다!! ㅋ

아이들에게 한 권씩 나눠주고, 백일장, 학교폭력글짓기, 환경의 날 4컷 만화 등등 함께 제본할 수 없었던 자료도 나눠주며 "버리지 말고 문집 사이에 꼭 끼워두거라. 나중에 보면 정말 재미있고 좋다." 그러나 나의 말을 듣는 녀석은 없었다.

자장면이 오려면 30분 정도의 시간이 있다. 그동안 이벤트를 하면 되겠구만. 양말도 네 켤레를 사왔으니.
"지금부터 10분쯤 뒤에 문집 내용으로 문제를 낼꺼거덩. 열심히 읽고 문제 맞추면 자~ 양말, 보이제? 이거 한 켤레씩 준다"

1번문제 : 개인문집 뒤에 개인 자료가 가장 많은 사람? 자... 경매 들어갑니다. 단비 16장... 또 없습니까.. 16장16장... 아 손든 예령이 21장.. 21장.. 많네... 예령이 보다 개인문집자료 더 많은 사람??? ... 민정이 응 26장.. 우와~ 민정이 보다 많은 사람???? 없네.. 자 민정이 양말!!

2번문제 : 선생님이 1년 동안 부모님께 쓴 편지는 모두 몇 통일까요? 응, 젤 먼저 손 든 소라.. 8통.. 맞습니다.

3번문제 : 선생님 앙케이트에 참여한 선생님은 누구누구? 앗! 예령... 땡!, 다음, 보비... 땡!, 다음 혜명... 땡! 그래 단비.... 노현정샘, 최현옥샘, 정한철샘, 문지숙샘, 조은영샘, 우정신샘, 이동림샘, 조영수샘, 류말순샘!! 딩동댕~ 자, 양말

마지막 4번문제 : 이건 함께 문집을 봐야해. 135쪽 펴봐. 이벤트 내가 누구게? 있제? 그거 번호순으로 나온 거 아니거든. 그렇다고 정답을 맞추는 문제도 아니야. 읽어보면 누구든지 알거덩. 샘이 내는 문제는 이거 정답이 문집 중 어디에 있나~~ 하는 거야. 자, 어디에 있을까나? 이게 마지막 문제. 자 다들 그럼 문집 디벼봐라~~ 말이 끝나자마자 민주가 "어... 혹시 표지 아니예용?" --; 이거 10분은 넘게 걸릴 거라 예상했는데... 에잉 자쓱. 담박에 맞춰버리다니. 여기 양말.

친한 아이들끼리 어울려 문집을 살펴보며 웃고 떠들고. 다같이 떠들어댄다. 역시 감당이 잘 안된다. 앞에서 내가 뭐라해도 즈들끼리 떠들기 바빠 잘 듣지도 않는다.

10명이나 펑크를 냈기에 자장면이 그만큼 남아버렸다. 부탁부탁해서 남은 것까지 다 먹도록 하고. 15분만에 다 먹어버렸다. 챙겨넣고 자리도 정리정돈하고.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몇마디 말 하고 마지막 인사를 보비가 했다. 잘가~ 다들 열심히 하고!

은주가 나와서 한 번 안아달란다. 그래, 이놈. 응.. 근데 니... 왜 등짝을 내미노? 가슴은??? ㅋㅋ 은주 맞장구치기를 샘, 우리 둘이 안으니까 서로 가슴이 안느껴지네요..ㅋㅋ 다들 비웃고.

그렇게 아이들은 다 돌아갔다. 눈물은 안났다. 우린 정말 cooooooooooool하게 헤어졌다. 교무실로 돌아와 부모님들께 마지막 문자를 넣었다. "아이들학급문집들고갑니다.함께재미나게읽어주세요^^감사했습니다행복하세요"그리고 부모님들의 답문이 지금껏 드문드문 들어온다.

내일, 새학교로 출근할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있다. 첫 시간은 어찌하나? 아직 컴터 배분도 안되었다는데... 또다른 아이들을 만날 준비를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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