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짱꿀라 > 詩쓰기 관련자료 - 다산 정약용

[1] 시의 두 가지 어려움

 

시에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글자를 조탁하고 구절을 단련하는 것을 정밀하고 익숙하게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사물을 체득하고 정감을 그려내는 미묘함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다만 자연스러운 것이 첫 번째 어려움이고, 해맑으면서 여운이 있는 것이 두 번째 어려움이다.  -〈범재집서(泛齋集序)〉 6-61

 

詩有二難. 非琢字鍊句之精熟之難, 非體物寫情之微妙之難. 唯自然一難也, 瀏然其有餘韻二難也.

 

좋은 시는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지 않는다. 야무지고 찰진 것도 좋고,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지점을 붙들어 눈앞에 펼쳐내는 재주도 좋지만, 이것이 시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시 창작에서 정말 어려운 지점은 그저 무덤덤한 듯 평범하게 말하는 것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마음의 결을 따라 나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읽는 이의 마음을 환하게 하면서도 읽고 나면 길게 뒷맛이 남도록 쓰기가 가장 어렵다. 읽을 땐 그러려니 하다가 문득 가슴에 와닿는 순간 자세를 고쳐 앉게 만드는 것이 좋은 시다. 좋은 시는 작위하지 않는다. 누에가 뽕잎 먹고 실을 토해 고치를 만들 듯, 자연스레 뱉어내는 언어가 영롱한 보석으로 가서 박힌다. 그래서 부드러운 한 마디 말이 촌철살인의 비수가 된다.  

 

[2] 시의 마음

 

음악을 연주하는 자는 금속악기로 시작해서, 마칠 때는 소리를 올려 떨친다. 순수하게 나가다가, 끊어질 듯 이어지며, 마침내 화합을 이룬다. 이렇게 해서 악장이 이루어진다. 하늘은 1년을 한 악장으로 삼는다. 처음에는 싹트고 번성하며 곱고도 어여뻐 온갖 꽃이 향기롭다. 마칠 때가 되면 곱게 물들이고 단장한 듯 색칠하여 붉은 색과 노란 색, 자줏빛과 초록빛을 띤다. 너울너울 어지러운 빛이 사람의 눈에 환하게 비친다. 그리고 나서는 거둬들여 이를 간직한다. 그 능함을 드러내고 그 묘함을 빛내려는 까닭이다. 만약 가을바람이 한 차례 불어오자 쓸쓸해져서 다시 떨쳐 펴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텅 비어 떨어진다면, 그래도 이것을 악장을 이루었다고 말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산에 산 지 여러 해가 되었다. 매번 단풍철을 만나면 문득 술을 갖추고 시를 지으며 하루를 즐겼다. 진실로 또한 한 곡이 끝나는 연주에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 가을은 농사가 큰 흉년이라 놀러갈 마음이 없었다. 다만 다산의 주인과 함께 백련사에 가는 것으로 예전의 예를 보존하였다. 두 집안의 자질들이 따라왔다. 술이 몇 순배 돌자 각각 시를 한편씩 짓고 두루마리에다 썼다. 이때는 가경 14년(1809) 기사년 상강(霜降) 후 3일이다. -〈백련사에 노닐면서 단풍잎을 구경하고 지은 시의 서[游蓮社觀紅葉詩序]〉 6-95 

 

奏樂者始作金聲之, 及終上振之, 純如繹如翕如也. 於是乎章成. 天以一歲爲一章. 其始也, 妍豔, 百華芬郁. 及其終也, 染糚塗, 爲之朱黃紫綠, 洋洋之亂, 照耀人目而後, 收而藏之. 所以顯其能而光其妙也. 若使商一動, 蕭蕭然不復振發. 一朝廓然隕落, 其尙曰成章云乎哉. 余山居數年, 每遇紅樹之時, 輒具酒爲詩, 以歡一日. 誠亦有感於曲終之奏也. 今年秋, 農事大無, 無意游衍, 唯與茶山主人, 相携至白蓮之社, 以存舊例. 兩家子姪從焉, 酒旣行, 各爲詩一篇, 書諸卷. 時嘉慶十四年己巳霜降後三日.

 

한곡의 음악에도 시작이 있고, 절정이 있고, 대단원이 있다. 처음엔 느직이 해맑은 가락으로 시작해서, 중간에 호흡이 거칠어졌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여러 악기가 일제히 제 소리를 내며 밀고 당기는 드잡이질을 한다. 마침내 최고조에 달하여 듣는 숨이 가빠질 때면 슬며시 여운을 남기며 소리를 거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계절도 조물주가 내려준 4악장의 교향악이다. 꽁꽁 언 대지를 녹이며 꽃들이 피어난다. 세상은 경이로 가득차서 믿지 못할 눈앞의 기적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꽃 진 자리에 새잎이 나고, 연두색이 짙은 초록으로 변해가면서 사물이 자란다. 그 따가운 볕에 열매는 익어 고개를 숙인다. 단풍은 대지 위에 온통 알록달록한 비단을 펼쳐 놓았다. 어느 틈에 나무들은 두 팔을 높이 쳐들고 빈손으로 예배를 올린다. 다시 찬바람이 낙엽을 쓸어 간다. 정결한 대지 위엔 흰 눈이 덮여 편안한 안식의 자리를 마련한다. 시의 눈, 문학의 마음은 이런 대지의 노래, 조물주가 들려주는 악장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감사와 찬미의 눈길로 고마움에 화답하고 그것을 노래하여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3] 시를 잘 쓰려면

 

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다. 뜻이 본시 낮고 더럽고 보면 비록 억지로 맑고 높은 말을 하더라도 알맹이가 없게 된다. 뜻이 좁고 비루하면 비록 툭 터진 말을 한다고 해도 사정에 꼭 들어맞지 않는다. 시를 배우면서 그 뜻을 온축하지 않는 것은 거름흙에서 맑은 샘물을 긷고 고약한 가죽나무에서 기이한 향기를 구하려는 것과 다름없다. 죽을 때까지 하더라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하늘과 사람, 본성과 천명의 이치를 알고,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의 나뉨을 살펴 티끌과 찌꺼기를 깨끗이 닦아 그 맑고 참됨을 발현시키면 가능하다. -〈초의승 의순을 위해 준 말[爲草衣僧意洵贈言]〉 7-304

 

詩者言志也. 志本卑汚, 雖作淸高之言, 不成理致. 志本寡陋, 雖作曠達之言, 不切事情. 學詩而不稽其志, 猶瀝淸泉於糞壤, 求奇芬於臭樗, 畢世而不可得也. 然則奈何? 識天人性命之理,  察人心道心之分, 淨其塵滓, 發其淸眞, 斯可矣.

 

시론 책을 되풀이해 읽는다고 좋은 시를 쓸 수는 없다. 훌륭한 시를 줄줄 외워도 소용없다. 시는 배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그냥 가만 있으면 저절로 되는가? 턱도 없는 소리다. 뜻이 높아야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뜻이 넓어야 맞는 말을 할 수 있다. 뜻이 없으면 시도 없다. 시를 잘 쓰려면 뜻을 길러야 한다. 똥물을 걸러 샘물로 만들 수는 없다. 시가 안 써지거든 삶의 자리를 돌아보라. 마음에 덕지덕지 묻은 찌꺼기를 닦아내고 맑고 참된 지혜의 등불을 높이 내걸어라. 시는 그 다음의 일이다.    

 

 

- 다산 약용 어록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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