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시장 근처다. 시장 초입에 들어서면 옷가게, 신발가게가 몇 있고 분식집 서넛이 입구를 마주하고 있다. 내가 가는 단골집 맞은편에 올초에 규모가 큰(?) 분식점이 하나 생기더니 두 집이 서로 경쟁하는 기색이 완연하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그 아래쪽에 더 큰 동종업체가 들어섰으니...
내가 가는 분식점이 그 중 제일 오래되었다. 다른 건 잘 모르겠는데 그 집 찐빵 맛은 정말 시장 안에서 최고다. 퉁퉁하신 주인아저씨께서 아끼지 않고 팥앙꼬(표준어 팥소)를 듬뿍 넣는데다가 밀가루 반죽도 얄팍하고 부드럽게... 정말 솜씨가 좋으시다. 입안에 살살 녹는다. 작년까지만해도 딸내미만 나와서 일을 돕더니 올해부터인지 아들내미도 앞치마를 입고 거들고 있다. 참 보기 좋다.
재작년 담임할 때, 자주 아이들에게 그 찐빵을 맛보였었다. 만원이면 40개. 소풍 때, 시험볼 때, 아이들에게 하나씩 물리면 가벼운 씀씀이로 모두가 즐거울 수 있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새벽요가를 매일 하게되면서 아직 문도 열기 전인 5시 45분쯤에 가게 앞을 지나가게 되었고 나름대로 먹거리를 가리게 되면서 거의 사먹지 않았다.
담임을 맡은 올해, 초부터 꼭 한 번은 저 찐빵을 아이들에게 맛보여주리라 작정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날씨가 쌀쌀할 때가 더 맛있을 것이니 겨울까지 기다려야했다. 기말고사 때는 아이들이 거의 아침을 거르고 올 것이니 딱 적당한 시기! 이런 저런 속셈을 거쳐 드디어 지난 수요일 찐빵 60개를 예약해 두었다. 금요일 아침 7:30분에 찾아갈게요~ 그러다가 어제 20개를 추가로 주문. 이왕 하는 거 샘들께도 맛보여드리고 싶어서. 우리 학교 샘들, 대부분 너무 좋으시다.
찐빵 80개+써비스 10개+ 덤으로 주신 꽈배기가 또 여남은 개.찐빵은 10개씩 비닐 봉지에 담고 행여 뭉개질까 과일 상자에 9봉지로 싼 찐빵을 다시 조심스레 옮겨 담았다. 무지 무겁다. 버스타고 가다가는 팔이 빠진다. 기분 좋게 시작한 마음이 다 엉겨버리기 때문에 과감하게 택시를 탔다.
정문에서 내리는 것 보다 학교 옆문이 우리 교실에서 가깝다. 택시에서 막 내려 거대한 짐 때문에 난감해하고 있는데 저어기서 우리반 조뚱이 걸어온다. 이것 좀 들어다우~ 아이고 마 내가 드는 게 낫겠다. 니는 이거나 들어라. 꽈배기 봉지를 내밀었다. 아! 친구랑 꽈배기빵 하나씩 꺼내 먹어도 된데이~ 하나씩만!! 8시즈음 교실에 들어섰더니 윤정, 민주, 신비, 단비. 조뚱까지 합해도 달랑 다섯 명이다. 따끈하게 먹일려고 서둘렀는데 아이들이 있어야 말이지. --; 암튼 나는 늘 뭐 한가지를 놓친다. 시험기간이니 샘들도 아이들도 다 8시 반은 되어야 슬슬 나타나는데...
녀석들 숫자에 맞춰 찐빵을 담아 교탁안에 모셔놓고 학년실, 행정실, 정보부실까지 다 나눠주고 교무실 우리 부서 탁자 위에 남은 20개 정도를 올려두었다. 정신적 지주, 우리 부장님부터 하나 챙겨드리고 교감샘, 교부부장샘... 출근하는 샘들께 권하고. 먹는 걸로 사람 가리면 안된다는 것을 김현숙샘께 배웠다. 먹을 것이 생기면 샘은 늘 넉넉하게 주변에 나눠주신다. 정말 커다란 장점이다.
다시 교실로 갔더니 아직도 녀석들이 다 안왔다. 9시가 다 되어서야 소희, 현정이를 뺀 녀석들을 제자리에 앉힐 수 있었다. ㅠㅠ 찐빵배부. 어 인사 하는 놈이 하나도 없네! 다시 걷어라! 잘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끔 이거 내가 지나치게 오바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차도 없는 주제에 며칠전부터, 또 오늘은 식전부터 그 무거운 걸 낑낑대며 나누고나누고나누고... 무슨 짓이란 말인가. 저 놈들은 저 찐빵에 얽힌 역사를 알기나 할까... =33 찐빵 하나 때문에 며칠동안 설레발이치며 돌아다닌 내 꼴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비웃을지도 모른다. 정말 돈 안 는 짓만 골라한다고. 그리고 어쩌면 이건 아이들을 '돌고래'로 만드는 일이 될수도 있겠고. 사실이 그렇다. 우리반 녀석들 툭하면 내게 한 턱내라고 한다. 양심 분실한 놈들.
하지만... 이런 거 저런 거 생각하고 따지다가 아무 것도 못하고 시간만 갈라. 그냥 대충 이렇게 맘 가는 대로 살자. 애들이 정말 애들도 아니고 뭐 찐빵 하나에 돌고래가 되랴.. 다른 사람들이 우찌 생각하던 난 모르겠다. 어차피 기력이 딸려 이 짓할 수 있는 것도 그나마 몇 년 남지 않은 듯한데...
아무튼 찐빵... 맛있다. 내가 두 개 하고도 반개나 더 먹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