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 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 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 나희덕 시인의 깊고 그윽한 작품입니다.

 

* 산에 대해 이런 시가 있네. 높이 올라 넓은 풍경을 보는 것만 생각했는데... '산을 깊이 들어간다'라...

출처 : 작은것이 아름답다 '나도 글메김꾼' 게시판에서 http://www.jag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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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 2005-08-01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녕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의미일까요? 정말 산에 오르고 싶은 맘이 드는 멋찐 시네요 ^^

릴케 현상 2005-08-0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희덕 시 괜찮다고 하면 분개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옛날 생각 나네요

낯선바람 2005-08-03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사연인지 궁금하네요... 나희덕 시인을 잘 몰라서리^^; 해몽이 한 수 위네요, 스노드롭님. 멋쪄요! 오늘부터 더 깊이 들어가는 삶에 대해 생각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