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막연히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는데, 왜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알 것 같다. 축약된 것을 그냥 자유롭게 느끼지 못하고 작가의 의도, 표현의 기원을 이해하고 싶기 때문에 어려운 것. 그러고보면 과학에서 자주 밝혀내고자 하는 origin, provenance 이런 것도 상당히 남성적인 개념인 것 같다. 



나는 시에 관심이 없었지만, 주변에서 시를 사랑하는 여성을 많이 보았기에 (내가 꽤 커서까지 어머니의 시 필사 노트가 남아있었다), 또 시에 관심있는 남성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었기에 막연히 시는 여성스러운 장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아주 잘못된 생각이었던 것 같다 ^^; 사실 여성 시인이 적다는 게 아니라 여성 시인을 안 '쳐준다'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장르적 특성도 있다고 하니.


이 챕터 덕분에 <자기만의 방> 중 주디스 셰익스피어의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을 예전보다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크리스티나 로세티나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은 물론, 키츠나 월트 휘트먼의 시도 모르다보니 '그런가보다' 하며 읽게 되는 장이었어서 ㅠㅠ 밑줄만 옮겨둔다.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도깨비 시장>을 사 두었는데 읽지 못해서 아쉽고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의 <오로라 리>는 왜 번역이 안되어 있는가... 궁금한데. 

원서로라도 읽어봐야 할까.. (언젠가) 












조지 엘리엇부터 에밀리 디킨슨까지 쫙 읽은 후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언젠가 재독해보고 싶다. 


(설마 그때쯤엔 다 까먹어서 앞쪽의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 등 다 다시 읽어야 하진 않겠지) 


울프가 말한 남성적인 관점에서 보면 서정시의 본질 자체가 여성성의 본질이나 특성과는 내재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랜섬과 코디) 둘 중 누구도 시 자체가 여자의 성취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둘 다 여성 시인의 예술은 어떤 의미에서 ‘낭만적인’ 감정으로부터, 즉 실제 로맨스에 대한 반응이나 잃어버린 로맨스에 대한 보상에서 생긴다고 가정하고 있다.

여성이 쓴 서정시에는 분명 여성의 성취 또는 여성의 광기에 대해 숙고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여성 소설가들은 미친 여자의 분신이나 다른 악마적인 분신을 사용해서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한 불안을 피하거나 쫓아내는 반면, 여성 시인은 문자 그대로 미친 여자가 되거나 악마적인 역할을 행해야 하며, 전통과 장르, 사회와 예술의 교차로에서 극적으로 죽어야 하는 것이다.

소설은 항상 상업적으로 가치 있는 것이었는데, 소설은 재미있고 기능적이며 공리적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시는 전통적으로 돈의 가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 소설 쓰기가 생계 수단이 되는 직업이었다는 것은 소설 쓰기를 시 쓰기보다 지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치가 낮은 직업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모든 가능한 문학적인 직업 중에서 19세기가 최고의 지위를 부여한 것은 시 쓰기였기 때문이다. … 시 쓰기는 전통적으로 성스러운 직업이었다. .. 낭만주의 사상가들이 미학의 영역에 신학적인 어취를 차용한 이후에 ‘그(시인)’은 유사 성직자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서구 문화에서 여자들은 성직자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인은 성직자인데) 여자가 시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울프가 보여주고 있듯이 소설 쓰기는 단지 ‘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학적이기보다는 상업적이며, 성스러운 일이라기보다는 실용적이기 때문에 여성의 직업으로 더 적절하다고 여겨졌다. 20세기까지 물질적 사회적 ‘리얼리티’를 추종하는 장르였던 소설은 귀족주의적 교육 대신에 있는 그대로 묘사할 것을 빈번하게 요구한다.
서정 시인은 미학적인 모델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어떤 의미에서 문학 형식에 걸맞는 심원한 언어를 말해야 한다. 그는 자연과 사회의 현상을 단순히 기록하거나 묘사해서는 안 된다. 시에서 자연은 전통을 통해서 (즉 옛 법칙의 교육을 통해서) 매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울프가 낙담하면서 배웠듯이, 그리스-로마의 전통 고전들은 ‘남성적 학문의 영역’ 이었다.

키츠가 자신의 소네트에서 시가 모든 곳에, 즉 자연의 모든 것에 있듯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건강과 기쁨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자신이 창조의 주인이라는 남성적 확신 때문이었음에 틀림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모드(로세티)는 분명 자신을 연약하고 허영심만 가득한 여자로 보았으며,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고통 받는 하인으로 보고 있다.

디킨슨이 유별나게 억압적인 환경에서 얼마나 빛나는 시를 썼는지를 생각한다면, 그녀가 만일 휘트먼의 자유와 ‘남성적인’ 확신을 가졌더라면 무엇을 했을 것인가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로세티가 자신의 예술적 자긍심을 사악한 ‘허영심’ 으로 규정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종류의 시를 썼을 것인지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디킨슨은 욕심 많고 분노에 차 있으며, 은밀하게 혹은 공개적으로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크리스티나 로세티와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은 그들의 예술에서 열정적인, 또는 차분한 빈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로세티는 대표적인 여성 시인 - 화자로서 쾌락을 찬양할 때 이기적으로 노래를 부르기보다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심 없이 노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믿고 있다.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의 시 가운데 가장 훌륭한 시는 우아하거나 혹은 열정적인 자기 희생과 화해함으로써 만들어졌다. 그러한 자기 희생은 19세기 여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최고 미덕이었다. 그러나 로세티의 기질과 환경이 양성했을 그 철저한 금욕주의를 바렛 브라우닝은 천성적으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 여자 특유의 고통의 미학을 매우 친숙한 빅토리아시대의 섬김의 미학으로 결국 대체했다. - 19세기에 제정신을 가진 세속적인 여성 시인이 성취할 수 있는 자기주장과 굴종 사이의 가장 합리적인 타협점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에밀리 디킨슨은 바렛 브라우닝이 제시한 타협안을 암암리에 거부했다. 이 사실은 의심할 바 없이 디킨슨의 암허스트의 ‘신화’가 얼마나 무모하고 비세속적이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바렛 브라우닝은 그 소녀의 자기 정당화에 페미니스트의 차원을 제공한다. 이 차원을 통해 롬니를 부정하는 오로라 리는 반항적인 자기 주장의 전통 안에 정확하게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남자건 여자건 간에 모든 피조물은, 책임 있는 행동과 생각에 있어서 독립된 존재다… 그리고 나 또한 나의 천직을 갖고 있다…. 가장 진지한 일이며, 가장 필요한 일" 이라고 주장한다.

오로라와 오로라의 작가는 빅토리아시대의 결혼이 요구하는 온순함과 시가 요구하는 에너지 사이에서 완벽한 타협을 달성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동시에 밀턴의 딸들에 대한 조지 엘리엇의 인유가, 겉으로는 여성의 종속에 대한 가부장적인 원칙을 말하는 가운데서도 내밀하게 반항하는 판타지를 암시하는 것처럼, 바렛 브라우닝이 타협한 봉사의 미학 역시 오로라 리의 혁명적 충동을 감추고 있다. 순화된 오로라가 롬니를 위해 일할 것을 맹세하지만, 바렛 브라우닝은 그녀가 상상한 것에 대해 사람들이 받을 충격을 누그러뜨리려는 양, 오로라가 아니라 롬니에게 오로라의 임무를 묘사하게 하고 있다. 브라우닝이 이러한 타협을 한 부분적인 이유는 빅토리아시대의 독자들은 남성 인물이 이야기하는 천년왕국의 신화를 더 쉽게 수용할 것이라는 능란한 인식 때문이다.

에밀리 디킨슨은 ‘그 외국 여자’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을 처음 읽었을 때 ‘정신의 개조’를 경험했다고 썼다. 디킨슨은 (오로라 리의 결론에서 나타나는) 자기를 포기하는 굴종의 베일 뒤에 감추어진 사회변화에 대한 낭만주의적 열망을 감지했음에 틀림없다. 그녀는 또한 이 시의 끝에서 해가 떠오를 때 오로라 리가 본 천상의 도시는 결국 오로라의 것이지, 눈먼 롬니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틀림없이 알아차렸을 것이다. 오로라 리의 ‘열기와 과격성’이 아무리 길들여졌다 해도 그 서광 같은 불길은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바렛 브라우닝이 사방으로 ‘여성 선배들’을 찾아다녔던 영국과 미국의 모든 현대 여성 시인들의 할머니가 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에밀리 디킨슨은 브라우닝의 타협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녀는 브라우닝의 ‘통찰적 비전’ 에 언제나 영감을 받았으며, 바로 그 비전을 통해 여성이 시를 쓸 때 여성 시인을 애태우는 ‘문제’를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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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01-10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결같이 시가 어려운 사람이라서요. 항상 시인들을 엄청난 존경심을 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로라 리는 표지가 참 강렬하고 좋아요. 저도 언젠가 읽고 싶은^^

건수하 2023-01-10 12:2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쓰기도 읽기도 어려운... :)

저는 원서도 한결같이 어렵습니다 ^^

독서괭 2023-01-10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마 그때쯤엔 다 까먹어서‘ ㅋㅋㅋㅋㅋㅋ 저도 그생각이 들지만 ㅋㅋㅋ 이렇게 기록해 두셨으니 괜찮겠죠?^^

건수하 2023-01-10 15:35   좋아요 0 | URL
설마... 설마... ㅋㅋㅋ
그래서 해가 바뀌었는데도 굳이 다시 기록하고 있습니다 ^^;

(사실 다른 쪽에서 하던 같이 읽기가 이제 끝나가고 있기도 하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