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밑줄만 옮겨둠.

페이지수는 구판을 따름.


버지니아 울프는<자기만의 방>에서 "셰익스피어의 누이였던 죽은 시인"을 소생시키기 위해서 문학적 여성은 "밀턴의 악령을 넘어 바라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도 그 전망을 막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라고 선언하고 있다. ... 전망을 막아버림으로써 밀턴의 악령은 여성들을 가능성의 광활함, 즉 울프가 <자기만의 방> 전체를 통해서 묘사하고 있는 남성적 성취의 풍경에서 차단해 버린다. (345)

밀턴의 악령은 누구인가? ... 그것은 밀턴 자신, 실제의 가부장적인 유령, 여성 시인들의 전망을 막아 버리는 "수호천사" 를 언급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밀턴의 기원의 신화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여성 혐오적인 전통을 요약하고 있으며 이러한 여성 혐오적 관념을 많은 여성 작가들에게 분명하게 암시하였다. (346)


많은 여성들은 밀턴의 서사시가 표현하고 있는 제도화된, 그리고 자주 정교하게 은유화된 여성 혐오와 타협하기 위해 그들 나름대로 신화와 은유를 수정하였다. ...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의 예를 들면, <프랑켄슈타인>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실낙원>에 절망적으로 순종하는 "오독"이다. ... 이와 대조적으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밀턴을 과격하게 교정하고 있는 오독이다. ... 마찬가지로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의 "추방의 드라마", 샬롯 브론테의 <셜리> 그리고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도깨비 시장>은 모두 <실낙원>을 수정하는 비판을 포함하거나 암시하고 있다.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는 특히 밀턴과 그 딸들의 불길한 관계를 말하기 위해서 "친절한 대천사" 캐서본에 대한 도로시아의 숭배를 완용하고 있다. ... (347)


이 모든 여자들에게 밀턴의 여성 혐오 문제는 결코 학문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 반대로 여성 작가들이 "그들의 기원과 그들의 역사"를 배운 것은 (다시 말하자면, 여성 혐오적인 신학이 규정했던 대로 자신들을 규정하도록 배운 것은) 가부장적 시를 통해서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 작가들은 밀턴을 고통스럽게 열중해서 읽었다. (348)


(울프의 일기 중) 

밀턴의 시는 숭고한 초연함과 감정의 냉정함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 밀턴은 최초의 남성우월주의자였지만, 그의 비난은 그 자신의 불운에서 나온 것이고, 심지어 자신의 가정불화에서 비롯된 악의에 찬 마지막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얼마나 매끄럽고, 강렬하며, 정교한가! 얼마나 훌륭한 시인가! ... 이것이야말로 정수이며, 다른 대다수의 시는 다만 그것을 희석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거기에는 남자가 생각하고 있는 우주에서의 우리(여성)의 위치, 신과 종교에 대한 우리의 의무가 요약되어 있다. (348-349)


"최초의 남성우월주의자"인 밀턴이 여성들에게 전하는 명백한 이야기는 물론 여성의 부차성과 타자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어떻게 그 타자성이 가차없이 여성을 악마적인 분노, 죄, 타락으로 몰고 가며, 또한 신의 정원 (여성에게는 또한 시의 정원)에서 여성을 배제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따라서 여성에게 밀턴은 굉장히 중요하고 또한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해럴드 블룸이 "위대한 억압자, 요람에 있는 강력한 상상력조차 목 졸라 죽이는 스핑크스" 라고 불렀던 것과 같은 존재다. 블룸은 여성에게 훨씬 더 적절한 글귀 중에서 "밀턴 이래 영시의 모토는 키츠가 진술했던, '그에게는 생명인 것이 나에게는 죽음이다' 라고 덧붙이고 있다. ... 울프는 자신의 문학가로서의 생애를 통해서 밀턴을 ... 무서운 '억압자'로 분명하게 규정하였다. (352-353)





울프는 고도로 세련된 문학 비평가였기 때문에 밀턴적인 문화의 신화를 의식적으로, 동시에 아주 불안해하면서 상속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의 여성 작가들 중에서 밀턴의 위협적인 특징을, 특히 그가 여성의 운명에 미친 영향이 해로운 인플루엔자로 간주될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것을 가장 잘 인식하고 있었던 사람은 브론테였다. <셜리>에서 브론테는 특히 밀턴의 우주론을 공격했다. 브론테는 여성에게 해로운 이 우주론 안에서 자신의 여주인공들이 남성 지배적 사회에 의해서 아프거나, 고아가 되거나 굶어죽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353)


브론테와 셜리가 제시하고 있는 밀턴의 '하찮은 이브' 에 대한 대안은 좀더 진지하며, <실낙원>의 망상적인 여성 혐오를 훨씬 더 심하게 비판하고 있다. ... 셜리의 이브는 프로메테우스 같은 사람을 낳았을 뿐 아니라, 그녀 자신이 전능의 신과 싸우며 속박에 반항하는 프로메테우스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밀턴의 이브는 잘못된 목소리에 귀 기울여 재앙을 불러오게 된 반항의 한순간을 제외하고는 명백히 순종적인 반면, 셜리의 이브는 강하고, 자기주장에 세며, 생기가 넘친다. ... 밀턴의 이브가 일종의 신의 부족(supplementary)이자 아담의 "여분의" 갈비뼈에서 만들어진 거의 불필요한, 물질적인 존재라면, 셜리의 이브는 정신적이고 1차적이며, "하늘에서 태어난" 존재다. 무엇보다도 밀턴의 이브는 일반적으로 신의 시야에서 배제되고, 에덴에서의 중요한 역사적 순간에 신이 의도한 잠에 취해 침묵당하지만, 셜리의 이브는 "얼굴을 마주하고" 신과 이야기한다. 셜리의 이브는 노예적이고 파괴적인 유령으로 대체되어 버렸지만, (울프가 "주디스 셰익스피어"라고 불렀던, 그리고 밀턴의 악령에 의해서 죽어야만 했던) 죽은 시인의 최초의 화신이다. (354-356)


프로메테우스적인 이브로 변형된 밀턴의 사탄은 처음에는 믿기 어려운 문학적인 발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낙원>을 잠깐만 살펴보아도, 이브가 외견상으로는 수동적이고 가정적으로 보인다 할 지라도, 밀턴이 고의적으로 그녀와 사탄 사이의 유사점을 서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부주의한 독자의 경우 이 둘의 죄를 구분하기는 때때로 어렵다. (357) 


사탄이 그 쓴 열매에 대한 욕망 때문에 비천한 노예로 전락하였듯이, 이브도 한 개인으로서의 아담뿐만 아니라, 원형적 남자라 할 수 있는 아담의 노예가 됨으로써, 남편에게뿐만 아니라, 보부아르가 설명했듯이, 인간 종의 비천한 노예가 된다. (358-359)


잘 알려진 밀턴의 여성 혐오나 그것이 뿌리박고 있는 고도로 발달된 철학적인 전통에도, 사탄, 이브, 그리고 씬 사이의 연결, 병치, 그리고 겹쳐짐은 신중하고 명백한 진술로 설명되기보다는 <실낙원>의 텍스트에 새겨져 있는 어렴풋한 메시지로 전달된다. 그럼에도 "남성우월적"이고 교부적이며, 네오-마니교적인 교회의 품 안에서 성장한 예민한 여성 독자에게는, <실낙원> 같은 강력한 작품의 내용은 그 내용이 숨어 있건 겉으로 명백히 드러나 있건 간에 상처를 줄 정도로 생생한 것이다. 그런 여성들에게 신, 예수, 그리고 아담이라는 성스러운 삼위일체는 18세기, 19세기조차도 여성적 원칙을 역사적으로 박탈하고 격하시켰다는 사실을 예증해 주는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362)


적어도 결혼 제도에 대해서는 입바른 소리를 하고 있는 밀턴은 광적인 독신주의자인 에세네파처럼 그렇게 강력하게 여성 혐오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좀 더 숨겨져 있기는 하지만, 유사한 여성 혐오는 아담으로 하여금 이브와 사탄에 의해서 제시된 세속적인 거짓을 초월하는 수단으로 올바른 이성 Right Reason 을 옹호하게 하였다. (363-364)





현재의 위계질서에 대한 반항이 사탄에게 필요한 것처럼 <실낙원>에서 그러한 반항이 필요한 유일한 인물이 이브라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 사탄과 이브가 어떤 의미에서 소외되어 있고 반항적이며, 따라서 바이런적인 인물이라면, 하나의 계급으로서 여성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오빠들("신의 아들들")에 의해서 박탈당한 채, 순종하도록 교육받고 침묵을 강요당하는 여성 작가는, 현실에서는 아닐지라도 환상 속에서는 바이런적인 영웅들처럼, 사탄처럼, 프로메테우스처럼, "기쁨없는 백일몽 속에서 홀로 활보했던" 경우가 허다했을 것이다. 여성 작가도 자신에게 기대되는 천사와 자신이 알고 있는 실제의 자기 모습인 분노한 악마 사이의 간극을 예리하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사탄과 맨프레드(바이런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 둘 다를 괴롭혔던 똑같은 역설적인 이중의식(죄의식과 위대함에 대한 인식)을 경험했음에 틀림없다. (367-368)


사탄과 이브는 둘 다 <실낙원>의 진정한 몽상가들이고 그들은 낭만주의적인 의미에서 유혹적인 생각과 다른 삶에 대한 통제할 수 없는 상상에 사로잡혀 있다. .... 사탄의 (또는 이브의) 열망과 지위 사이의 지옥 같은 간극에 대한 이 고통스러운 인식조차도 낭만주의 시인과 그로부터 영감을 받은 페미니스트에게는 미학적 고귀함의 모델이다. ... 블레이크와 울스턴크래프트가 보았던것처럼, 더 '숭고한' 다른 삶에 대한 상상은 통찰력 있는 시인 사탄이, 귀족적인 바이런의 반항아 사탄처럼, 여성과 낭만주의자의 특성으로 규정했던 혁명적 열정을 강화하고 있다. (369-370)


여성들은 가장 반항적일 경우 사탄과, 가장 덜한 경우는 반항적인 이브와, 그리고 거의 항상 낭만주의 시인들과 동일시되고 있다. 따라서 이 여성들이 밀턴의 수정본이 초래한 묵시론적인 사회 변혁에 비슷하게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 권리의 옹호>는 대개 <실낙원>에 대한 분노에 찬 논평처럼 읽힌다. 그녀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블레이크적인 열정과 사탄의 숭고함에 대한 자신의 '전낭만주의적' 경외감, 그리고 밀턴의 여성 혐오에 대한 페미니스트적인 분노를 결합하였다. ... 페미니즘과 낭만주의적 급진주의는 이미 많은 여성 작가들의 마음속에서 의식적으로 연관되어 있었... 또한 여성 작가들은 성의 정치학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이런적으로 (그리고 사탄적으로) 반항적인 상상의 정치학을 빈번하게 사용하였다. (샬롯 브론테의 <셜리>, 엘리자베스 가스켈의 <메리 바튼>, 해리엇 비처 스토우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 버지니아 울프의 <3기니> 등) (370-371)


브론테 같은 작가들이 <실낙원>의 악한으로 육화되어 있는 충동에 대한 자신들의 편집증적인 관심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또 다른 이유... 이브가 사탄의 분신일 뿐 아니라 씬의 분신이기도 하다면, 사탄과 이브의 관계는 사탄과 씬의 관계와 같기 때문이다. 즉 사탄은 이브의 연인이자 아버지가 된다. ... 여자와 낭만주의 시인들이 사탄과 씬 각각과 맺고 있는 자신들의 관계가 사탄과 '씬'의 근친상간적인 관계와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했음에 틀림없다. ... 그러나 동시에 여성 작가들은 무력감을 느낀다. 그러한 무력감은 자신이 사탄이 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길은 그의 창조물, 그의 도구, 그의 오른팔에 앉아 있는 마녀 같은 딸/정부가 되는 것이라는 여성작가들의 확신에서 드러나고 있다. (373-374) 


따라서 사탄의 유아론적인 씬과의 결합의 열매가 죽음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마치 죽음이 ... 메리 셸리로부터 실비아 플라스에 이르는 여성 작가들이 상상해 왔던 모든 근친상간적인 신新사탄적 결합의 열매인 것과 같다. 근친상간 금기를 깨뜨리고자 하는 욕망이 자아 충족적이 되고자 하는 욕망인 한에서, 그것은 '신들처럼' 되고자 하는 소망, 그러나 신에 의하여 금지된 소망이다. 그것은 마치 맛을 본다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선악과에 대한 욕망과 같다. (377)


여성 작가는 자신을 이러한 비종교적인 예술가들의 "창조물"로 정의하면서 자신이 "잘못된 창조"의 "여성적인 유약함"의 일부분일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이 잘못된 창조자이며 유혹적인 "한 무리의 아름다운 여인들" 중의 한 명일 뿐이라는 두려움도 확인하게 될 것이다. (378)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산드라 길버트가 쓴 장들이 특히 어렵다), 그래서 맥락을 유지하며 요약하기가 힘들다. 그 결과 밑줄이 많아지고 있다. 


밀턴의 악령은 여성작가들에게 여성 혐오적 관념을 암시하였고, 나는 분명 부주의한 독자일 것이므로 밀턴의 <실낙원>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매끄럽고, 강렬하며, 정교하고, 훌륭한 시, 그리고 '정수' 에 대한 호기심을 버릴 수 없다. 이것은 내가 그동안 고전이나 남성 작가들의 작품을 읽거나 서양의 학문을 공부해왔던 마음과 연결될 것이다. 그것들에도 충분히 멋진 게 있기 때문이다. <셜리>를 읽고 싶지만 번역되어 있지 않고, <실낙원>은 피하고 싶지만 번역되어 있다. 



+ '네오-마니교적인 교회'라는 것은 뭔지 잘 모르겠으나... 마니교는 '지식'을 쌓을수록 그에 비례해서 인간의 타락을 막아주고 빛에 다가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밀턴이 <실낙원>을 쓴 목적에 마니교가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미들마치>에서 캐소본이 책을 쓰려고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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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11-10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얼마전까지 수하님이랑 진도 똑같았는데.... 어제부터 예습으로 넘어갑니다.
<실낙원> 네 쪽 읽었어요. 시도는 해 보았으나... 으윽....

건수하 2022-11-10 17:34   좋아요 0 | URL
제가 밑줄 정리가 늦었습니다 (11월 되고 올릴까도 싶었고...)
글 안쓰고 밑줄 정리만 해도 버거워요.
실낙원.. 마음이 복잡합니다... @_@

공쟝쟝 2022-11-13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낙원은 일단 패스 ㅋㅋㅋ 수하님 저는 진도 빼고 다시 찾아올게여 ㅋㅋㅋ 일단 오스틴 소설 하나만 더 읽고 2장 넘어가려 함 ㅋㅋㅋ

건수하 2022-11-18 09:04   좋아요 0 | URL
저도 진도가 안 나가서 멈춰있어요 (사실 이번주 책을 거의 못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