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반과 마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 읽었던 중세독일에서 일어난 마녀사냥이 케플러의 어머니의 경우를 실례로 들어 상세히 기술되어있다.
《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에는 화자의 어머니가 있었다. 이 어머니는 약초 의사로, 정령을 소환하여 아들이 달로 항해하는 일을 돕는다. 케플러의 어머니 또한 실제로 약초 의사였다.
케플러의 서술에 따르면, 《꿈》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주워들은 마을의 이발사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카타리나 케플러를 마녀로 몰기로 했다. 마침맞게도 이발사의 남매인 우르줄라가 절교한 친구였던 케플러 부인과 서로 담판을 지을 일이 있었다. 우르줄라 라인홀트Ursula Reinhold는 카타리나 케플러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았다. 또 우르줄라는 이 노년의 미망인에게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별생각 없이 경솔한 마음으로 카타리나는 이 남부끄러운 고백을 요하네스 케플러의 남동생에게 이야기했고, 그 역시 별생각 없이 그 사실을 이 작은 마을에 퍼트리고 다녔다. 추문을 가라앉히기 위해 우르줄라는 낙태해야 했다. 아직 의학적으로 조악한 수준이었던 낙태 시술을 받은 우르줄라는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고, 이를 감추기 위해 자신이 마법 때문에 병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카타리나 케플러가 자신에게 요술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닌 것이다. 얼마 후 우르줄라는 스물네 명의 귀 얇은 마을 사람들을 꼬드겨 이 노파가 마법을 부렸다는 이야기를 하도록 만들었다. 한 이웃은 카타리나가 거리에서 딸아이와 팔을 스친 뒤 딸의 팔이 마비되었다고 주장했다. 푸줏간 주인의 아내는 카타리나가 근처를 지나가자 남편의 허벅지에 맹렬한 통증이 엄습했다고 맹세까지 하면서 말했다. 절름발이인 학교 교사는 10년 전 어느 날 밤 카타리나의 집에서 케플러가 보낸 편지를 읽어줄 때 양철 컵에 따라준 무언가를 마신 후 다리를 절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카타리나는 마법을 써서 닫힌 문을 통과하고 갓난아기와 동물들을 죽게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카타리나 케플러 본인도 사건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걸핏하면 사람들과 다투곤 하는 성마른 성미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중상모략으로 우르줄라를 고소하려 했다. 현대 미국에서 먹힐 법한 인상적인 대응이었지만, 중세 독일에서는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셈이었다. 발이 넓은 우르줄라의 가족이 지역 유지들과 끈을 댔기 때문이다. 그다음 카타리나는 하급 판사에게 은 술잔을 뇌물로 주면서 자신의 재판을 기각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부탁은 즉시 죄를 인정하는 행위로 해석되었고 그 결과 민사 사건으로 끝났을 일이 마녀 행각에 대한 형사 재판으로 격상되었다.
케플러가 어머니의 혐의를 벗기기 위해 편지를 쓴 노력은 전부 허사로 돌아갔다. 이 시련이 시작되고 5년째가 된 해에 카타리나를 체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8월의 어느 깜깜한 밤 무장한 경관이 카타리나 딸의 집으로 들이닥쳐 그곳에서 카타리나를 체포했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은 카타리나는 나무로 된 이불 상자 안에 숨었다. 이 무더운 계절에는 흔히 그렇듯 발가벗은 채였다. 어떤 기록에 따르면 끌려가기 전에 옷을 걸치는 것이 허락되었다고 한다. 다른 기록에 따르면 사람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옷을 입지 않은 채 상자째 들려나가 심문을 받기 위해 감옥에 갇혔다고 한다. 증거를 재구성하려 했던 케플러의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되었다. 이런 모욕을 겪으면서도 카타리나가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카타리나에게 불리한 증거가 되었다. 체포와 심문을 겪으면서 카타리나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노파가 뉘우치지 않고 악마와 계속 연락을 하고 있다는 증거로 언급되었다.
카타리나는 마녀 행위를 인정하지 않으면 바퀴에 큰대자로 매달리게 될 것이라는 위협을 받고 있었다. 바퀴에 매다는 형벌은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해 흔히 사용된 잔혹한 방법이었다. 그 시대의 기대 수명을 이미 수십 년 넘긴 이 노파는 체포된 이후 열네 달 동안 어두운 감옥에 갇혀 무거운 쇠사슬이 달린 족쇄를 찬 채 돌바닥에서 잠을 자면서도 내내 침착함을 잃지 않으며 위협을 견뎌냈고 그 어떤 혐의도 자백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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