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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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에 처음 만났던 <모모>는 동화와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와 아름다운 내용으로 인해 내가 두고 두고 여러 번에 걸쳐 읽은 책이다. 그리고, 읽으면 읽을수록 그 뒤에 포함된 의미들, 인생의 의미, 시간의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다.

로마 원형 극장의 폐허 속에 사는 모모라는 소녀, 그리고 그의 친구들인 청년 지지와 늙은 도로청소부 베포의 시간 도둑에 맞선 싸움 이야기인 이 소설에서, 우리는 산업화에 의해 얻은 물질적 풍요 대신에 우리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 된다. 인간은 기계의 리듬에 맞춘 삶을 강요당하게 되었으며, 우리가 아무리 절약하려고 애쓰더라도 항상 시간은 모자라기 마련이고,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는 가운데 어느 날 우리는 그 모든 시간들을 잃어버린 채 죽음을 맞게 되리라는 것(그런 의미에서, 시간 도둑 중 한 명이 이발소 주인을 상대로 행하는 엉터리 계산은 일말의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

이 소설에는 시간의 메타포가 풍부하게 많이 나오는데, 세 주인공인 모모, 지지, 베포는 각각 인간의 '세 시기'를 대표하며, 모모가 사는 원형 극장의 폐허는 시간의 지배에서 벗어난 공간이다(실제로, 모모 자신도 나중에 카시오페이아를 통해 시간에서 벗어나는 존재가 된다). 호라티우스 박사는 시간 그 자체임을 이름을 통해 알려준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 있는 존재는 회색 인간들이라 할 수 있는데, 나는 그들이 말 그대로 '죽은 시간'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 없이 보내는 모든 시간들, 일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소외된 채 행하게 되는 노동의 시간들, 공허한 오락의 시간들이 모두 죽은 시간에 다름이 아니며, 회색 인간들이 그토록 많이 불어난다는 것을 통해 현대 사회가 어떻게 인간을 비인간으로 몰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우리에게 우리의 삶이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라고 경고한다. 왜 우리에게 시간이 없는지, 이 모든 인간적인 가치를 희생해서 얻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우리에게 혼자만의 시간,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필요하다. 당신이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있거나 TV와 함께 있다면 그런 시간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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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도시 이야기 - 상 - 베네치아공화국 1천년의 메시지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시오노 나나미 지음, 정도영 옮김 / 한길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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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탈리아 여행 준비를 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사실 그 당시 피렌체에 빠져 있던 내게 베네치아는 그다지 매력적인 도시가 아니었다. 여행 일정에도 넣을까 말까 망설일 정도였으니. 그러나 어쨌든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다르겠지, 라는 생각에 책을 읽었고 나나미의 필력이 워낙 대단하다보니 흥미로운 독서가 되었다.

실제로 본 베네치아는 이 도시의 역사를 알든 모르든 자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모든 사람들을 한눈에 휘어잡을만큼 아름다웠고, 나는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물론 나나미의 책이 아니더라도 그 아름다움을 즐기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지만 그토록 힘든 과정을 겪고서 건설된 이 도시, 그 후에도 생존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 했던 이 도시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베네치아는 원래 육지도 아니었다. 이탈리아인들이 '라구나'라고 부르는 석호의 갯벌 위에 수많은 나무 말뚝을 박아 토대를 만들고 그 위에 돌로 기반을 쌓고 세운 건물들로 이루어진 도시이다. 훈족의 침략을 받은 베네치아인들이 최후의 피난처로 택한 것이 바로 갯벌이었던 것이다. 나나미는 어차피 영토 없이 시작한 국가가 살아나갈 방법은 교역을 통한 부의 축적과 해상 세력의 확대였다는 것을 설명하고, 어려움을 오히려 장점으로 살린 베네치아인들의 수완에 대해 이야기한다.

도시의 탄생과 흥망성쇠를 아우르는 이 작품을 쭉 읽다보면, 결국 이 책은 베네치아라는 매우 특별한 도시의 전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토록 낭만적인 도시에 그토록이나 냉정하고 계산에 밝은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진흙땅을 '진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 책은 잘 보여준다.

시오노 나나미의 다른 책들처럼, 이 책은 분명히 저자에게 엄청난 사료 준비와 수없는 답사, 참고문헌 연구 등의 수고를 필요로 했을테지만, 읽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쉽게 다가온다는 보기드문 미덕을 갖고 있다. 지금은 베니스 영화제의 도시, 곤돌라를 타고 돌아다니는 관광객들의 이미지로만 남아있는 이 도시의 과거를, 훌륭한 안내자의 인도로 답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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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 보르헤스 전집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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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르헤스가 노벨 문학상을 타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이 상의 권위를 의심하게 된다. 보르헤스야말로 그의 문학 작품들을 통하여 20세기를 만들어낸 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소설들이 바로 이 책, <픽션들> 안에 들어있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 실존 인물과 가상인물, 실재하는 것과 가상의 것이 한데 뒤섞여 있는 그의 '픽션들'의 자유 분방한 상상력은 기존의 소설 질서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에게는 혼돈스럽고 어처구니 없어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학작품에서 재미, 술술 읽히는 것만 찾지 않는다면, 자기 앞에 놓인 텍스트와 대화하고, 그 뒤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수고를 기꺼워하는 독자라면 이토록 매력적인 책을 찾기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만일 움베르토 에코의 팬이라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의 그림자가 <푸코의 진자>에 나타나고, <장미의 이름>은 그대로 <바벨의 도서관>의 장편 버전인 것처럼 생각될 정도이기 때문이다(에코는 부정할지도 모르나, 책 내용을 제외하고도 <장미의 이름>의 요르게 수사는 보르헤스와 너무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이름이 같고-Jorge- 말년에 시력을 잃은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장을 지낸 점 등). 그러니 과연, 보르헤스는 존재했던 모든 이야기뿐 아니라 앞으로 쓰여질 이야기 또한 해 줄 수 있는 작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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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실 - 제5복음서의 숨겨진 비밀 반덴베르크 역사스페셜 3
필리프 반덴베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한길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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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을 이루는 네 개의 복음서는 모두 예수 사후 최소 50년이 지난 후에 쓰여졌다. 결국 그때까지 전해내려오던 이야기를 정리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렇다면 그 네 복음서의 토대가 되는, 이제까지는 알려지지 않은 '원복음서'의 존재를 가정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이러한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리고 물론, 그 알려지지 않은 복음서는 엄청난 비밀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각자 다른 이유로 먼저 이 문서를 차지하려는 집단들간의 암투가 벌어진다. 교황청, 오르페우스 기사단, 그리고 회교도들.

이 소설은 고문서학자들과 콥트 문서, 지식을 추구하는 기사단 등의 등장으로 지적인 포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철저한 대중 소설이다.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물론 책이 가져야 할 미덕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하고 이 책을 집어들었다면 약간 실망하며 책을 내려놓게 될 것이다. 더우기 번역본 제목의 '레오나르도'에 유혹되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더욱 그러할텐데, 이 작가의 전작에서 미켈란젤로가 직접 등장하진 않아도 중요한 인물, 내재적인 주인공 역할을 하는데 비해, 이 책에서 레오나르도의 역할은 보잘것 없기 때문이다.

책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만약 이런 결말에 흥미가 있다면 사라마구의 <예수 그리스도의 제2복음>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재미는 덜할지 모르지만 주제의식은 훨씬 묵직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도 많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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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현대지성신서 1
G.F. 영 지음, 이길상 옮김 / 현대지성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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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는 '꽃의 도시'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이 도시가 아름답기때문만이 아니라, 바로 '르네상스의 꽃'이라는 의미에서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이 도시를 위대한 시대의 '꽃'이게 한 주인공들은 바로 수많은 천재들이었다. 기베르티, 브루넬레스키,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갈릴레이, 단테, 그리고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이르기까지.

유서깊은 피렌체는 걸어서 다녀도 끝에서 끝까지 3,40분이면 족한 아주 작은 지역이다. 이 좁은 도시에, 그것도 1,2백년 사이에 등장한 이 모든 천재들이라니.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 가지 원인은, 그들이 훌륭한 정원사, 메디치 가문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 은행가 가문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여 나중에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대공이 되고, 두 명의 교황을 배출하고, 유럽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문가가 된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성공보다도 더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훌륭한 안목을 가지고 수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는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메디치 가문의 집무실로 쓰이다가 지금은 미술관이 된 팔라초 우피치에 가 보면, 원래 한 가문의 콜렉션이었던 작품들이 그 질에 있어서나 규모에 있어서 유럽 어느 나라의 박물관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이 책은 이 위대한 가문의 이야기를 가계별로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 시작부터 최후의 한 사람의 생애에 이르기까지 풀어놓고 있다. 그리고 각 시기의 유럽의 정세, 그들이 후원했던 미술가들, 그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굴곡 많은 피렌체의 역사를 함께 언급하고 있어 역사와 미술사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독서 경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피렌체를 방문할 분들에게도 더없이 좋은 가이드가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돈 많은 사람들에게도 훌륭한 참고서가 될 듯 한데, 바로 돈 쓰는 일의 정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로렌초 일 마니피코가 예술가들과 학자들을 지원하고 도서관 장서를 채우는 일에 돈을 아낌없이 쓰는 것을 볼 때, 과연 부자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좋은 책이지만 가끔씩 번역이 어색한 부분이 있는 점, 그리고 참고 문헌이나 색인이 되어 있지 않고, 저자 소개도 없는 점 등은 출판사의 무성의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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