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보르헤스 전집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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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르헤스가 노벨 문학상을 타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이 상의 권위를 의심하게 된다. 보르헤스야말로 그의 문학 작품들을 통하여 20세기를 만들어낸 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소설들이 바로 이 책, <픽션들> 안에 들어있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 실존 인물과 가상인물, 실재하는 것과 가상의 것이 한데 뒤섞여 있는 그의 '픽션들'의 자유 분방한 상상력은 기존의 소설 질서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에게는 혼돈스럽고 어처구니 없어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학작품에서 재미, 술술 읽히는 것만 찾지 않는다면, 자기 앞에 놓인 텍스트와 대화하고, 그 뒤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수고를 기꺼워하는 독자라면 이토록 매력적인 책을 찾기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만일 움베르토 에코의 팬이라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의 그림자가 <푸코의 진자>에 나타나고, <장미의 이름>은 그대로 <바벨의 도서관>의 장편 버전인 것처럼 생각될 정도이기 때문이다(에코는 부정할지도 모르나, 책 내용을 제외하고도 <장미의 이름>의 요르게 수사는 보르헤스와 너무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이름이 같고-Jorge- 말년에 시력을 잃은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장을 지낸 점 등). 그러니 과연, 보르헤스는 존재했던 모든 이야기뿐 아니라 앞으로 쓰여질 이야기 또한 해 줄 수 있는 작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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