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도시 이야기 - 상 - 베네치아공화국 1천년의 메시지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시오노 나나미 지음, 정도영 옮김 / 한길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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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탈리아 여행 준비를 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사실 그 당시 피렌체에 빠져 있던 내게 베네치아는 그다지 매력적인 도시가 아니었다. 여행 일정에도 넣을까 말까 망설일 정도였으니. 그러나 어쨌든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다르겠지, 라는 생각에 책을 읽었고 나나미의 필력이 워낙 대단하다보니 흥미로운 독서가 되었다.

실제로 본 베네치아는 이 도시의 역사를 알든 모르든 자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모든 사람들을 한눈에 휘어잡을만큼 아름다웠고, 나는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물론 나나미의 책이 아니더라도 그 아름다움을 즐기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지만 그토록 힘든 과정을 겪고서 건설된 이 도시, 그 후에도 생존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 했던 이 도시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베네치아는 원래 육지도 아니었다. 이탈리아인들이 '라구나'라고 부르는 석호의 갯벌 위에 수많은 나무 말뚝을 박아 토대를 만들고 그 위에 돌로 기반을 쌓고 세운 건물들로 이루어진 도시이다. 훈족의 침략을 받은 베네치아인들이 최후의 피난처로 택한 것이 바로 갯벌이었던 것이다. 나나미는 어차피 영토 없이 시작한 국가가 살아나갈 방법은 교역을 통한 부의 축적과 해상 세력의 확대였다는 것을 설명하고, 어려움을 오히려 장점으로 살린 베네치아인들의 수완에 대해 이야기한다.

도시의 탄생과 흥망성쇠를 아우르는 이 작품을 쭉 읽다보면, 결국 이 책은 베네치아라는 매우 특별한 도시의 전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토록 낭만적인 도시에 그토록이나 냉정하고 계산에 밝은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진흙땅을 '진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 책은 잘 보여준다.

시오노 나나미의 다른 책들처럼, 이 책은 분명히 저자에게 엄청난 사료 준비와 수없는 답사, 참고문헌 연구 등의 수고를 필요로 했을테지만, 읽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쉽게 다가온다는 보기드문 미덕을 갖고 있다. 지금은 베니스 영화제의 도시, 곤돌라를 타고 돌아다니는 관광객들의 이미지로만 남아있는 이 도시의 과거를, 훌륭한 안내자의 인도로 답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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