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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제국사 1469-1716
존 H. 엘리엇 지음, 김원중 옮김 / 까치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스페인은 우리에게 '투우와 정열의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는 별로 이렇다하게 소개되어 있는 것이 없는 나라다. 다른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보면 특히 그러한데, 그것은 이 나라가 피레네 산맥이라는 자연의 장벽에 가로막혀 지리적으로 '유럽의 변방'일 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가까운 탓에 오랫동안 이슬람교도의 지배를 받아 문화적으로도 변방에 머물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스페인이 내내 변방에 머무른 것은 아니다. 분명, 이 나라는 세계사의 한 시기에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 책은 바로 그 시기를 다루고 있다.
우리는 역사를 읽을 때, 어떤 나라를 과거에도 지금과 같은 영토와 문화를 가진 '하나의' 국가였을 것으로 쉽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역사를 살펴보면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에 속하고 스페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금도 스페인은 지역색이 강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책이 시작하는 15세기에는 그 지역들이 각각 독립된 국가들인, 느슨한 국가적 연합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소국가 연합이 어떻게 해서 하나의 국가인 '에스파냐'로, 더 나아가 유럽과 아메리카를 아우르는 '스페인 제국'으로 확대되어 나갔는가, 그리고 다시 어떻게 제국의 해체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제국 시대의 스페인과 뗄 수 없는 합스부르크가의 역사와 함께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스페인 제국과 로마 제국을 비교할 수밖에 없었는데, 로마가 그토록 광대한 제국을 상당히 오랫동안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던 데 반해, 스페인 제국이 불과 서너 세대 만에 해체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 첫번째 이유는 로마가 광대하기는 했으나 그 영토가 연속성이 있었던 데 반해, 스페인은 결혼에 의해 물려받은 영토들로 이루어진, 각각 따로 떨어진 영토로 이루어진 제국이라는 데서 오는 통치상의 어려움에서 찾을 수 있겠다.
두번째는 스페인이 변화의 한복판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변화의 물결을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는데, 사실 개혁은 혁명보다도 어렵다. 기득권층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사회 전체의 부정이나 잘못된 관행들을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힘과 비용이 필요하고,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지만, 스페인은 그것이 가능했을 때는 개혁의 필요성에 눈을 감았고, 필요성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힘이 빠져버렸다. 결국 영광스러웠던 스페인 합스부르크가는 왕위를 부르봉가에 넘겨 주었고, 제국은 다시 각각의 나라들로 쪼개지고 말았던 것이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항상 현재를 비추어보는 작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느끼게 하는 바가 많았으며, 앞으로도 이런 좋은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