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스트럼 샌디 1 대산세계문학총서 1
로렌스 스턴 지음, 홍경숙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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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트럼 샌디>-영문학 서적을 읽다 보면 반드시 마주치게 되지만 실제 작품으로는 만나기 불가능한(원어로라면 모를까) 작품들이 꽤 있다. 이 소설도 그런 작품 중 하나였다. 명성을 자주 듣다 보면 실제로는 어떨까 궁금해지게 마련이고 그래서 이 책이 번역되었다는 걸 알고는 반가운 마음에 찾아 읽게 되었다.

<트리스트럼 샌디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원제를 보면 아, 이 책은 샌디란 사람의 일생을 서술한 책이겠구나, 생각하며 책을 읽게 되지만 그런 기대는 책을 읽다 보면 여지 없이 무너진다. 주인공이 태어나는 것은 소설의 반이 지나서이며 그러고 나서도 트리스트럼의 활동은 매우 미미하다. 오히려 우리는 그의 주변 인물들-아버지, 삼촌, 그의 하인, 어머니 등-에 대해서만 얘기를 듣게 된다.

그런 것 뿐 아니라, 이 소설에선 줄거리라는 것을 따라간다는 것이 무의미하다. 소설 초장에 저자는 이 이야기를 자기 방식으로 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그는 순서 무시, 형식 무시의 방법으로 각 장들을 채워나간다. 말하자면 모더니즘 작가들의 '의식의 흐름'기법을 백 년 정도 앞서간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소설적 재미'와는 거리가 먼 이 작품이 당시의 독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는 것이 꽤 의외였는데, 그것은 아마도 영국 작가들 특유의 풍자적 말솜씨와, 여러 에피소드에 풍부한 성적 농담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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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이산의 책 10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주원준 옮김 / 이산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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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예수회 교회들에서는 자신들의 전 세계에 걸친 전교 활동이 성공적이었음을 찬양하는 천정화들을 볼 수 있다. 그것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바다를 건넌 예수회의 전교사들에 대한 화려한 기념비이기도 하다.

마테오 리치는 아마도 그런 전교 신부들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이름일 것이다. 이 책은 리치의 활동을 통해, 그 시대의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충돌하는 모습을 그려내 보이는데, 그 구성이 또한 특이하다. 먼저 리치가 중국인들의 호기심과 존경을 끌어내기 위해 사용한 기억의 방법을 소개한다. 그리고는 그 기억법에 따라 네 개의 이미지와 네 개의 그림을 이용하여, 큰 주제로 나누어서 리치의 삶과, 그 배경이 되는 시대의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다.

16세기는 유럽의 역사에서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의 시기였으며, 도시 국가의 규모에서 벗어나 절대주의 국가가 등장하는 시기였고, 지리상의 대발견을 통해 유럽 이외의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해가던 시기였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결코 동양을 앞서 있었다고는 볼 수 없었던 유럽이, 결정적으로 동양(특히 중국)문명을 앞지르기 시작하는 시대인 것 같다.

이 책에는 다양한 문명사적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그러한 역전 관계를 설명해 주는 것 중 하나는 아마도 도전 정신의 차이일 것이다. 리치가 중국까지 가는 항해 여행을 묘사한 부분에서 자세히 나오지만, 그 시대의 항해라는 것은 극도로 불편하고 위험한 것이었다. 난파나 갖가지 질병으로 죽을 위험은 물론, 목적지까지 과연 도달할 수 있을 것인지, 갔다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위험도 유럽인들의 항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도달한 새로운 땅에서 왕성한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것들을 관찰하고, 배워 갔다. 그에 비해 중국은 이미 매우 발달한 문명 국가였으나, 항해를 두려워했다. 그들은 대양으로 나가지 않고 기껏해야 강을 타고 오르내릴 뿐이었다. 그리고 '중화'의 자부심이 너무 강해서였을까, 그들은 유럽인들에게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거의 무관심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의 차이는 결국 19세기에 와서 극단적인 결과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이 매력적인 주제의 책에서 맛본 뜻밖의 씁쓸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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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제국사 1469-1716
존 H. 엘리엇 지음, 김원중 옮김 / 까치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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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우리에게 '투우와 정열의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는 별로 이렇다하게 소개되어 있는 것이 없는 나라다. 다른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보면 특히 그러한데, 그것은 이 나라가 피레네 산맥이라는 자연의 장벽에 가로막혀 지리적으로 '유럽의 변방'일 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가까운 탓에 오랫동안 이슬람교도의 지배를 받아 문화적으로도 변방에 머물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스페인이 내내 변방에 머무른 것은 아니다. 분명, 이 나라는 세계사의 한 시기에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 책은 바로 그 시기를 다루고 있다.

우리는 역사를 읽을 때, 어떤 나라를 과거에도 지금과 같은 영토와 문화를 가진 '하나의' 국가였을 것으로 쉽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역사를 살펴보면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에 속하고 스페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금도 스페인은 지역색이 강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책이 시작하는 15세기에는 그 지역들이 각각 독립된 국가들인, 느슨한 국가적 연합체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소국가 연합이 어떻게 해서 하나의 국가인 '에스파냐'로, 더 나아가 유럽과 아메리카를 아우르는 '스페인 제국'으로 확대되어 나갔는가, 그리고 다시 어떻게 제국의 해체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제국 시대의 스페인과 뗄 수 없는 합스부르크가의 역사와 함께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스페인 제국과 로마 제국을 비교할 수밖에 없었는데, 로마가 그토록 광대한 제국을 상당히 오랫동안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던 데 반해, 스페인 제국이 불과 서너 세대 만에 해체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 첫번째 이유는 로마가 광대하기는 했으나 그 영토가 연속성이 있었던 데 반해, 스페인은 결혼에 의해 물려받은 영토들로 이루어진, 각각 따로 떨어진 영토로 이루어진 제국이라는 데서 오는 통치상의 어려움에서 찾을 수 있겠다.

두번째는 스페인이 변화의 한복판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변화의 물결을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는데, 사실 개혁은 혁명보다도 어렵다. 기득권층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사회 전체의 부정이나 잘못된 관행들을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힘과 비용이 필요하고,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지만, 스페인은 그것이 가능했을 때는 개혁의 필요성에 눈을 감았고, 필요성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힘이 빠져버렸다. 결국 영광스러웠던 스페인 합스부르크가는 왕위를 부르봉가에 넘겨 주었고, 제국은 다시 각각의 나라들로 쪼개지고 말았던 것이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항상 현재를 비추어보는 작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느끼게 하는 바가 많았으며, 앞으로도 이런 좋은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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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디오와 팔라디아니즘 시공아트 13
로버트 태버너 지음, 임석재 옮김 / 시공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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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건축이라는 예술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후부터일 것이다. 그 전까지 나의 관심은 언제나 회화였으나, 이탈리아의 수많은 고전 건축들은 회화에 대한 나의 애정을 그들과 나누기를 요구하였다.

안드레아 팔라디오는 16세기의 가장 위대한 건축가 중의 한 사람이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전기적 사실들로부터 시작하여 그가 지은 대표적인 건축물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그가 그의 건축들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한 요소들을 어디에서 가져왔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엄격하고 이상적인 그의 고전주의가 어떻게 17세기의 바로크를 극복하려 애쓰던 영국의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 더 나아가 신세계를 건설하던 미국의 건축가들의 전범이 되었는지까지를 일목요연하게 펼쳐 보인다.

특히 흥미 있는 것은 처음의 설계가 어떻게 현실적인 문제들과 부딪히며 변해가는가 하는 과정을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건축가들이 늘 다른 형태의 건물을 짓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본에는 이 책에서 '어휘'라고 부르는 어떤 공통된 형식들이 있어서 그것들의 조합과 조화를 통하여 하나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좋은 내용과 충실한 번역에도 불구하고 한 두 가지 아쉬웠던 점은 나처럼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좀 부족하다는 점과(전문용어들에 대한 각주가 아쉬웠다) 그만한 두께의 책으로는 결코 싸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컬러 도판이 단 한 점도 없다는 점이었다. 예술 서적은, 물론 읽기 위한 것이지만 또한 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더욱 그랬다.

이 책과 내가 다녀 본 이탈리아의 도시들을 생각하다가 우리의 도시들을 보면 암담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미 우리의 전통적인 주거 문화는 다 파괴되어 버렸고, 그 자리에 들어 선 건물들은 그 안에서 살 인간도, 환경도, 또 그 건물들을 바라 볼 사람들의 시선도 무시한, 그런 건물들이다. 앞으로도 이런 일반인들을 위한 건축서가 많이 발간되어 건축과 공간에 대한 안목을 높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보다 수준 높은 건축 문화로 발전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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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 하
스티븐 킹 지음, 최수민 옮김 / 문학세계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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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들을 계속 읽다가, 머리를 식히고 싶어서 집어든 것이 바로 스티븐 킹의 책이었다. 그리고 그는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 책은 일단 잡으면 도저히 '천천히'읽을 수 없는 그의 소설의 특징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데다가, 이제는 단순한 공포소설 작가로는 볼 수 없는, 본격소설가로서의 면모까지도 과시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의 주인공은 60년대의 미국과 월남전, 그리고 <파리 대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작가가 '아틀란티스'라고 부르는, 순진성과 진실성이 살아있던 시대는 추악한 전쟁을 거치며 사라져가고, 그 현실의 타락은 <파리 대왕>에서의 소년들의 타락과 오버랩된다.
스티븐 킹의 탁월함은 바로 인간 존재의 어둠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노란 코트를 입은 사나이들>이 우리를 막연한 공포에 시달리게 하는 것은 그들이 귀신이나 도깨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무언지 모를 어떤 것이라는 바로 그 사실, 그리고 기실 그 '어떤 것'은 우리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아주 평범하고 또 어떻게 보면 '모범 시민'이라고 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 어떤 계기에 의해서든지 도저히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짓들을 저지를 때 느끼는 공포,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의 서늘한 공포가 우리를 엄습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콘라드의 <어둠의 속>이나 골딩의<파리 대왕>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간의 문명, 인간성이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우리는 그 밑바닥의 어둠을 분명히 가두어 놓았다고 믿지만 사실 그것이 얼마나 빈약한 장막으로 가려 놓은 것인지를 이런 소설들을 통해 깨닫고, 경악하는 것이다.

아마 그것은 전쟁의 탓일 것이다 - 그러나 과연 누가 그 전쟁들을 일으켰는가. 어른들이 소년들을 구하지만 - 그 어른들은 누가 구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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