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ㅣ 이산의 책 10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주원준 옮김 / 이산 / 1999년 8월
평점 :
로마의 예수회 교회들에서는 자신들의 전 세계에 걸친 전교 활동이 성공적이었음을 찬양하는 천정화들을 볼 수 있다. 그것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바다를 건넌 예수회의 전교사들에 대한 화려한 기념비이기도 하다.
마테오 리치는 아마도 그런 전교 신부들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이름일 것이다. 이 책은 리치의 활동을 통해, 그 시대의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충돌하는 모습을 그려내 보이는데, 그 구성이 또한 특이하다. 먼저 리치가 중국인들의 호기심과 존경을 끌어내기 위해 사용한 기억의 방법을 소개한다. 그리고는 그 기억법에 따라 네 개의 이미지와 네 개의 그림을 이용하여, 큰 주제로 나누어서 리치의 삶과, 그 배경이 되는 시대의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다.
16세기는 유럽의 역사에서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의 시기였으며, 도시 국가의 규모에서 벗어나 절대주의 국가가 등장하는 시기였고, 지리상의 대발견을 통해 유럽 이외의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해가던 시기였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결코 동양을 앞서 있었다고는 볼 수 없었던 유럽이, 결정적으로 동양(특히 중국)문명을 앞지르기 시작하는 시대인 것 같다.
이 책에는 다양한 문명사적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그러한 역전 관계를 설명해 주는 것 중 하나는 아마도 도전 정신의 차이일 것이다. 리치가 중국까지 가는 항해 여행을 묘사한 부분에서 자세히 나오지만, 그 시대의 항해라는 것은 극도로 불편하고 위험한 것이었다. 난파나 갖가지 질병으로 죽을 위험은 물론, 목적지까지 과연 도달할 수 있을 것인지, 갔다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위험도 유럽인들의 항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도달한 새로운 땅에서 왕성한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것들을 관찰하고, 배워 갔다. 그에 비해 중국은 이미 매우 발달한 문명 국가였으나, 항해를 두려워했다. 그들은 대양으로 나가지 않고 기껏해야 강을 타고 오르내릴 뿐이었다. 그리고 '중화'의 자부심이 너무 강해서였을까, 그들은 유럽인들에게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거의 무관심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의 차이는 결국 19세기에 와서 극단적인 결과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이 매력적인 주제의 책에서 맛본 뜻밖의 씁쓸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