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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여왕 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자작나무 / 1997년 1월
평점 :
품절
어린 시절 동화책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그 이야기들 속에서 수많은 왕과 왕비, 왕자와 공주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내가 왕족에 대해 갖게 된 막연한 이미지는 이런 것이었다. 화려한 성에 살고 온 나라가 그들의 것이며, 적어도 그들 나라 안에서는 무소 불위의 권력을 지닌 사람들. 그리고 그 권력의 기반이 되는 모든 것은 그들이 왕족이란 사실, 바로 혈통에 있는 것이었다. 권력이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며 혈통은 권력의 기반은 될 수 있을지언정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 오직 실제적인 힘이 뒷받침 될 때에만 권력은 제대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 후로도 많은 책들을 더 읽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 어린 시절의 나처럼 왕의 권리는 신성 불가침이라고 믿는 한 여왕이 있다. 그녀는 은수저를 입에 문 정도가 아니라 왕관을 머리에 쓰고 태어났으며 이미 10대에 두 개의 왕관-스코틀랜드 여왕과 프랑스 왕비라는-을 갖게 되는 운명이었으니 그런 믿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 아름답고 불행한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비극이 시작된다. 때로는 선물과 은총처럼 보이는 것이 결국은 저주로 드러나고, 자신의 열정이 결국은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는, 그리스의 운명 비극을 연상시킬 정도의 삶의 드라마가 펼쳐 지는 것이다.
여기에는 16세기 유럽의 복잡한 헤게모니 다툼, 구교와 신교의 싸움, 그리고 프랑스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려 하는 절대 왕정과 영국에서 싹을 틔우는 입헌 군주제의 대립 등 복잡한 요소가 얽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헨리 7세의 자손인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와의 숙명의 대결이 펼쳐진다. 츠바이크는 운명에 휘둘리는 이 불행한 여왕의 삶을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동정심에 가득차 탄식하며, 또 때로는 그녀의 어리석음을 비난하며 들려준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의 이면에 숨어 있는 등장 인물들의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고찰이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