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알렉상드라 라피에르 지음, 함정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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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그녀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피렌체의 팔라초 피티에서였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유디트의 그림, 크지는 않으나 팔라초 피티의 걸작들 틈에서도 눈에 띄는 무언가를 가진 그림이었다. 이 주제를 다룬 많은 그림들이 있으나, 그녀의 그림이 특별해 보인 것은 바로 유디트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녀의 유디트는 튼실한 팔과(능히 무거운 칼을 다룰 수 있을 듯 하다) 아름답고 강인해보이는 얼굴을 한 여인이다. 적장의 목이 든 바구니를 옆구리에 낀 하녀를 거느린 그녀는 승리자의 모습이 아니라, 어서 적지를 무사히 빠져 나갈 생각에 가득한 얼굴이다. 당당하나 자신의 상황에 대한 불안감에 가득 차 있다.

이 그림의 화가인 아르테미시아의 일생을 읽고 나면, 그 그림이 그녀 자신의 투영임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화가인 오라치오의 딸로 태어나 천부적인 재능으로 생전에 대가의 반열에 올랐으나 언제나 아버지로부터 인정 받고 싶은 마음과 아버지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양가감정에 시달린 이 화가의 심리적 상태가 그림에도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거친 시기였던 17세기의 거친 화가 사회의 면면들, 그들의 고용주들인 군주들의 스파이 노릇을 하기도 하고, 주문을 따내려는 치열한 암투 등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으며, 여성의 종속적 지위를 벗어나기 위해 투쟁하는 아르테미시아의 노력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그림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적은 편이며 번역 부분에서 이탈리아 어 발음이 잘못 표기된 부분 등은 아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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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니의 자서전 1 - 찬란한 예술 험난한 인생
벤베누토 첼리니 지음, 최승규 옮김 / 한명출판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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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지만 이 시대(16세기) 예술가들의 경우엔 특히 그런 것 같다. 친퀘첸토와 세이첸토 사이에 정말 많은 '천재'들이 나타났었고, 첼리니는 그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아니지만 이 자서전으로 인해 가장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시대 미술가들은 오늘날 우리가 '예술가'의 이미지로 떠올리는 인간형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시대적 분위기가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이들은 때때로 놀랍도록 폭력적이고 질투심에 가득차 있으며 범죄사건에 휘말리기도 하지만 또 최고 권력자들과 맞닿은 삶을 살기도 한다. 피렌체의 금세공사이자 조각가인 첼리니 역시 그런 인물들 중 하나였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들은 벤베누토가 어떻게 자기 자랑을 늘어 놓고 어떻게 자기 경쟁자를 깎아내리는가(아주 근거가 없는 이야기들은 아니지만) 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또한 예술의 소비자인 권력가들이 얼마나 인색하게 예술가들을 대우했는가 하는 것도 알 수 있다.

이 흥미로운 책에 별을 세 개밖에 주지 않은 것은 번역 때문이다. 솔직히 읽기 괴로운 수준이었음을 밝혀야 겠다. 이탈리아 어 원본이 아닌 영어 번역본의 중역인데, 그나마 우리 말로 제대로 옮기지 못해 읽으면서 의미를 유추해야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주까지도 그냥 영어본에서 옮겨 놓은 역자의 무성의에는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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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여왕 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자작나무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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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동화책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그 이야기들 속에서 수많은 왕과 왕비, 왕자와 공주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내가 왕족에 대해 갖게 된 막연한 이미지는 이런 것이었다. 화려한 성에 살고 온 나라가 그들의 것이며, 적어도 그들 나라 안에서는 무소 불위의 권력을 지닌 사람들. 그리고 그 권력의 기반이 되는 모든 것은 그들이 왕족이란 사실, 바로 혈통에 있는 것이었다. 권력이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며 혈통은 권력의 기반은 될 수 있을지언정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 오직 실제적인 힘이 뒷받침 될 때에만 권력은 제대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 후로도 많은 책들을 더 읽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 어린 시절의 나처럼 왕의 권리는 신성 불가침이라고 믿는 한 여왕이 있다. 그녀는 은수저를 입에 문 정도가 아니라 왕관을 머리에 쓰고 태어났으며 이미 10대에 두 개의 왕관-스코틀랜드 여왕과 프랑스 왕비라는-을 갖게 되는 운명이었으니 그런 믿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 아름답고 불행한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비극이 시작된다. 때로는 선물과 은총처럼 보이는 것이 결국은 저주로 드러나고, 자신의 열정이 결국은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는, 그리스의 운명 비극을 연상시킬 정도의 삶의 드라마가 펼쳐 지는 것이다.

여기에는 16세기 유럽의 복잡한 헤게모니 다툼, 구교와 신교의 싸움, 그리고 프랑스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려 하는 절대 왕정과 영국에서 싹을 틔우는 입헌 군주제의 대립 등 복잡한 요소가 얽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헨리 7세의 자손인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와의 숙명의 대결이 펼쳐진다. 츠바이크는 운명에 휘둘리는 이 불행한 여왕의 삶을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동정심에 가득차 탄식하며, 또 때로는 그녀의 어리석음을 비난하며 들려준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의 이면에 숨어 있는 등장 인물들의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고찰이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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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와 농민 - 유럽 경제의 초기 성장 : 7-12세기 동문선 문예신서 134
조르주 뒤비 지음, 최생렬 옮김 / 동문선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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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와 농민'이라는 제목만으로는 이 책이 중세의 신분 사회를 다룬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은 부제에서 밝히고 있듯이 7세기에서 12세기까지의 기간 동안 중세 유럽의 경제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중세에 덮어 씌워져 있는 '암흑기'라는 막연한 혐의는 경제사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 기간 동안 경제가 후퇴한 것으로 생각되어져 왔다. 그러나 조르주 뒤비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을 하면서 최근의 연구들- 그것도 역사학 뿐 아니라 문헌학, 기후학, 식물학의 연구들까지-을 인용하여 그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로마의 체제가 붕괴된 후 서유럽에서 일종의 공백기가 생긴 것은 사실이나 그 공백은 곧 샤를마뉴 대제의 제국으로 메워지고 이후 봉건제로 들어가기까지 경제 면에서도 느리지만 착실한 성장이 있었다는 것을, 저자는 농업 발전과 화폐 사용의 증가, 그리고 상업의 발달에 이르는 단계들로 설명해 주고 있다.

역사를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아날 학파의 대표적인 사학자인 뒤비의 이 책에서 인간의 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즉, 드라마틱한 일화나 영웅의 모험 같은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1000년 전 세계의 물질적 측면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그 물질에 대한 인간들의 정신적 태도 역시 기록되어 있다. 중세를 환상과 모험의 세계로서가 아니라, 물질적 현실로 보게 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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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빛과 그림자 - 그림과 함께 떠나는 중세 여행
페르디난트 자입트 지음, 차용구 옮김 / 까치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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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들은 무엇일까? 중무장한 기사들과 마상시합, 개간되지 않은 방대한 숲, 수도원과 고딕 교회들, 그리고 마녀와 악마들의 회합...

흔히 중세는 '암흑 시대'라는 달갑잖은 이름으로 불려 왔다. 신들에 억압되어 인간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인간 본위를 되찾은 다음 시대가 '르네상스'란 이름으로 불려야 했을 정도로...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그 시대는 다만 '어둠'만이 있었던 것일까?

저자 자입트는 그러한 관점을 거부한다. 분명, 중세에도 인간이 살았으며 인간이 사는 어느 시대와 마찬가지로 그림자가 있는 만큼이나 빛 또한 존재했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것이다. 마치 고대의 문화가 중세를 건너 뛰어 바로 르네상스로 이어진 것처럼 보는 관점이 위험한 시각이란 사실을 일깨워 준다. 중세의 봉건 국가들은 다음 시대를 지배할 절대주의 민족 국가의 틀을 마련했으며 대학이 세워지던 시기도 이때였다. 성화의 전통은 시각 예술의 명맥을 이었으며 고딕 건축물은 건축 기술의 혁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책의 미덕은 중세를 정치사나 문화사 어느 한 쪽에 치우침 없이 돌아보게 해 준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풍부한 도판 자료들이(흑백이란 게 아쉽긴 하지만) 한 몫을 한다. 또한 왕들의 이야기 뿐 아니라 민중들의 이야기도 존재한다. 이 모든 것을 읽고 나면 1000년 전의 세계가 어렴풋이 눈 앞에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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