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와 농민'이라는 제목만으로는 이 책이 중세의 신분 사회를 다룬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은 부제에서 밝히고 있듯이 7세기에서 12세기까지의 기간 동안 중세 유럽의 경제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중세에 덮어 씌워져 있는 '암흑기'라는 막연한 혐의는 경제사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 기간 동안 경제가 후퇴한 것으로 생각되어져 왔다. 그러나 조르주 뒤비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을 하면서 최근의 연구들- 그것도 역사학 뿐 아니라 문헌학, 기후학, 식물학의 연구들까지-을 인용하여 그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로마의 체제가 붕괴된 후 서유럽에서 일종의 공백기가 생긴 것은 사실이나 그 공백은 곧 샤를마뉴 대제의 제국으로 메워지고 이후 봉건제로 들어가기까지 경제 면에서도 느리지만 착실한 성장이 있었다는 것을, 저자는 농업 발전과 화폐 사용의 증가, 그리고 상업의 발달에 이르는 단계들로 설명해 주고 있다.역사를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아날 학파의 대표적인 사학자인 뒤비의 이 책에서 인간의 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즉, 드라마틱한 일화나 영웅의 모험 같은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1000년 전 세계의 물질적 측면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그 물질에 대한 인간들의 정신적 태도 역시 기록되어 있다. 중세를 환상과 모험의 세계로서가 아니라, 물질적 현실로 보게 해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