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1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6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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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참 전이지만 이 작가의 '칼'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 작품도 재미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무언지 개운치 않고 불만스러운 느낌이 책을 덮고 나서의 감상이었다. 등장 인물들이 많고 그들 간의 연결고리가 필연적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좀 느슨하다는 것만으로 이 불만감을 설명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보다는 이 책의 주제의식이 좀 애매하다는 점에서 이 불만감의 정체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책의 주인공인 연쇄살인범을 통해 작가는 이 시대 자체의 괴물성과 점점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인간들로 넘쳐 나는 이 사회를 그려보고자 한 것 같다. 그러나 이미 이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와 속물성에는 너무나 익숙해진 탓인지 별로 충격을 받지 못했다. 차라리 주인공의 전생 부분은 빼 버리는 게 어땠을까? 연쇄살인범의 정신상태를 양산해내는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서라면 전생의 복수라는 것은 사족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 사회의 정신 병리를 개인의 복수로 축소시켜버리는 느낌도 들고 말이다.

많은 에피소드들은 그 하나하나로는 흥미로웠지만 역시 전체적으로 산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중간중간 끼어드는 백과사전적 지식들도 몰입을 방해했다. 소설을 통해서만 지식을 얻으려는 독자에겐 유용할지 모르겠으나 이야기의 분위기를 깨는 역할을 자주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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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브라운 신부 전집 3
G. K. 체스터튼 지음, 장유미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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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신부 시리즈 중 이 책은 특히 불가사의한 사건, 그리고 초자연적으로 보이는 사건들이 많이 등장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X-파일을 연상할 필요는 없다.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 범인은 언제나 인간일 뿐이란 것을 브라운 신부는 역설하고 있으니 말이다.

초자연적인 사건들의 외관 때문에 이 작품들에는 브라운 신부의 종교적, 철학적인 면모가 많이 드러난다.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다너웨이 가의 운명'은 고딕소설을 연상시키는 작품이었다. 여기엔 폐가에 가까운 고택과 한 가문에 흐르는 저주 등 고딕 소설의 단골 소재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체스터튼은 그런 요소들을 괴기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사용한 것이 아니라 미신과 운명론에 빠지기 쉬운 인간의 약한 마음을 비춰 주는 거울로 사용하기 위해 등장시키고 있다.

'문크레센트의 기적'은 탐정소설의 주요 수수께끼 중 하나인 밀실 살인을 다루고 있으나 범죄의 수수께끼보다 인상적인 것은 범죄자와 희생자 간의 미묘한 심리적 사실들이다. 은인과 배은의 문제가 우리가 생각하는 표면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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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가 무슨 말을 필립 K. 딕의 SF걸작선 2
필립 K. 딕 지음, 유영일 옮김 / 집사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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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기 전에 다른 분들의 서평도 읽어 보았다. 많은 독자들이 번역의 서투름을 지적하고 있었고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첫 작품 '아무도 못말리는 M'은 번역만 잘 되었더라면 꽤 흥미로웠을 거란 생각이고 심히 지루했던 표제작도 번역이 지루함에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역시 SF팬이라면 '두번째 변종'만으로도 이 책을 놓치고 싶진 않을 것이다. 디스토피아적 SF 중에서도 여기에 등장하는 세계는 꿈에서도 만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하다. 물론 기계가 인간을 공격한다는 아이디어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아이덴티티의 혼돈은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최악의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 간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작품은 '매혹적인 시장'이다. 시간을 넘나드는 장사꾼과 그의 탐욕이 가져다주는 절망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쩌면 이것은 미래를 담보로 하여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음화인지도 모르겠다.

과학의 시대에 읽는 이러한 음울한 미래는 확실히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지나치게 똑똑해지는 기계들에 때때로 무섬증을 일으키는 나 같은 사람에겐 더우기나 그렇다. 미리 아는 것이 별 효과를 가져 오지 못하는 소설 속의 이야기들처럼, 되돌릴 수 없이 발전하는 기술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 갈 것인지, 이런 소설들을 읽다 보면 미래가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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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백 브라운 신부 전집 1
G. K. 체스터튼 지음, 홍희정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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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브라운 신부를 처음 만난 것은 문고판 추리전집 중 한 권을 통해서였다. 이 전혀 탐정 같지 않은 탐정의 활약상은 우리가 흔히 아는 탐정의 이미지를 보기 좋게 무너뜨리면서 무척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하여 이번에 체스터튼의 이 시리즈가 전집으로 발간된다는 소식에 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다시 읽은 브라운 신부는 역시 평범한 외모와 날카로운 심리적 통찰력을 가진 인상적인 캐릭터로서 다가왔다. 어쩌면 추리 소설 특유의 스릴이나 서스펜스를 원하는 독자에겐 이 작품들이 너무 심심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품의 초점을 '범인찾기'가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 복잡성과 악의 문제로 놓고 본다면 매우 흥미로운 부분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 중 하나는 보르헤스의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논고'에 영향을 준 듯한(작가가 작품 첫머리에서 밝히고 있듯이) <부러진 검의 의미>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아는 사실과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 간의 괴리를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어떻게 한 인물이 비열한이자 동시에 영웅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 준다. 인생의 이러한 어두운 단면들에 대한 브라운 신부의 연민 어린 시선이 이 작품에 흐르는 중요한 정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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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 시공아트 6
앨러스테어 덩컨 지음, 고영란 옮김 / 시공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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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르누보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은 가우디의 유기적 건축물과 오브리 비어즐리의 인상적인 흑백 삽화들 정도가 전부였다. 그리하여 이 미술 운동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이 책을 선택하였다.

세기말과 세기초, 소위 '벨 에포크'라 불리던 시기에 등장한 이 미술 운동은 '새로운 예술'이라는 이름이 주창하듯이 그전까지 반성 없이 되풀이되던 옛 형태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운동이었다는 것이 이 책의 설명이다. 이렇게 큰 개념으로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이후 미술의 각 분야, 즉 건축, 회화, 가구, 공예 분야에서 이 운동의 파노라마가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나 이 각론 부분이 솔직히 좀 지루했는데, 그 이유는 여기서 어떤 흐름을 보여 준다기 보다는 수많은 미술가, 공예가의 이름을 나열하고 말았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하나의 운동 전체를 충실히 조망한다는 의도였겠으나 그 많은 사람들을 잘 알지 못하는 내게는 별 의미 없이 지나가는 이름들이 되고 말았다.

또한 이 시리즈(시공 아트)의 책들에 대한 공통적 불만이기도 한 것이 흑백 도판의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본문에선 색채에 대한 언급이 계속되는데 흑백 그림만을 보아야 한다는 것은 책읽기의 흥미를 떨어뜨리고 맥빠지게 한다. 책의 가격이 좀 높아지더라도 이 부분은 개선해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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