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 신화와 전설 세계 신화 시리즈 1
라이너 테츠너 지음, 성금숙 옮김 / 범우사 / 200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서 만큼은 아니어도 북유럽-게르만 신화 또한 서구 정신세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은 북유럽 신화를 다룬 전반부와 영웅들의 전설을 다룬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 고대부터 문명화된 지역에서 발생한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세련된 맛은 덜하지만 이 지역의 신화도 나름의 매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 등장하는 신들은 전능하지도 않고 불멸의 존재도 아니라는 점에서 신이라기 보다는 초인에 가까운 존재로 보이며 그만큼 인간과 닮은, 친근한 모습을 보여 준다. 선악 개념 또한 매우 유동적이다. 최고신 오딘마저 때로는 매우 교활하고도 종잡을 수 없는 모습을 보이며 많은 신들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존재로서 나타난다.

영웅들의 전설에서는 니벨룽엔의 노래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베른의 디트리히 등 다른 영웅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크프리트라는 영웅과 그의 보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음모와 배신, 피비린내나는 복수의 이야기인 니벨룽엔의 노래는 특히 <반지의 제왕>의 독자들에게는 그 유명한 소설의 원형이 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한편, 아시아에서 일어나 중부 유럽까지 위협했던 훈족의 왕 아틸라가 이 전설에서는 광폭한 야만인으로서가 아니라 온화한 군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 볼 만하다.

베른의 디트리히 전설은 민족 대이동 시기에 활약한 프랑크족 왕들을 모델로 한 전설이라고 알려지는데 이 중세 태동기의 혼란한 유럽을 배경으로 한 전설은 역사적 사실들과의 중첩으로 인해서 흥미로웠다. 저자의 후기에서 그런 사실들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유럽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부연 설명이 좀 더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시아 인형 대산세계문학총서 1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안영옥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내가 비오이 까사레스의 이름을 처음 본 것은 보르헤스의 소설들을 통해서였다. 사실과 허구를 교묘히 섞어낸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이 작가는 동료들의 실명을 자주 자신의 이야기 속에 등장시켰고-까사레스의 부인 실비나 오캄포도 등장한다- 더우기 까사레스는 같이 작업을 하기도 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 작가의 작품을 국내에선 찾아 볼 수 없었는데, 마침 최근에 이 작품집이 나온 것을 보고 별 주저 없이 선택했다.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용어와 함께 남미의 작가들은 우리에게 친숙해졌다. 비오이 까사레스의 작품들 역시 그런 표현이 어울리지만 가르시아 마르께스와도, 또 보르헤스와도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이 작품집을 통해 느껴졌다. 그것은 어떤 신화적 공간이 아닌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면서도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을 낯설게 만드는 작가의 솜씨에 의해 얻어지는 환상성이다.

표제작 '러시아 인형'은 불운과 행운의 아이러니에 관한 작품이고 '로취에서의 만남'은 예기치 않은 신의 현현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들의 여행(일기)'는 남녀간 의식구조 차이에 의한 오해들을 유머러스하게 다루고 있다. '물 아래에서'는 생물학적 SF같은 작품으로 결말을 예상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흥미롭다.

축구팬으로서, '우리들의 여행'에 나오는 축구장 에피소드를 특히 즐겁게 읽었는데, 그 부분의 번역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주인공이 파리 생 제르맹 팀과 '라임스'팀과의 경기를 보러 갔다고 하는 부분인데, 내가 아는 유럽 팀 중 '라임스'란 팀은 없다(물론 생 제르맹은 실재하는 클럽이다). 무대가 프랑스이므로 르 샹피오나 팀일 텐데... 그렇게 유추하다 보니 이것은 아마 'Reims', 즉 랑스 팀을 잘못 읽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나같은 축구팬을 위해 개정판에선 고쳐졌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메리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
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헨리 제임스는 미국 출신이나 유럽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결국은 영국으로 귀화한 인물이다. 그의 그러한 이력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제임스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단편집을 읽은 이후로는 이 책이 처음인데, 19 세기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틀림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만한 매력을 갖추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신세계 미국과 유럽을 대비시키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그것이 한 남자가 사랑에 빠지고, 구혼하고 배반당하는 멜로드라마의 형식에 녹아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성공한 사업가인 주인공이 새로움을 찾아 유럽에 여행 와서 겪게 되는 사건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결혼이라는 인생의 대사를 사이에 두고 대서양 양쪽의 사람들이 어떠한 가치관의 차이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하며 노력의 결과로서의 성공을 믿는 미국인 뉴먼과 그가 결혼하려는 프랑스 구귀족 가문의 신분관념은 너무나 다를 수밖에 없다. 뉴먼은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재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것만으로 굴복시키기엔 구세계의 관념들은 너무나 복잡하다.

이 낯선 세계에서의 좌절은 그에게 분명 무언가를 배우게 했을 테지만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그가 이 복잡한 사람들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멀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임스의 문장들이 쉽지 않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리고 이 책의 번역은 도저히 읽을 수 없었던 <여인의 초상>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때때로 얼른 의미가 파악되지 않는 문장들이 있어서 아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르네 그루쎄 / 사계절 / 199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꽤나 오래되었었다. 그런데도 얼른 이 책에 손이 가지 못한 것은 800쪽 가까운 두께가 주는 중압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디 왔다갔다 하면서 읽기엔 너무 두꺼운 하드커버 제본이 부담스러웠던 것도 같고... 그러나 일단 읽기 시작하자 예상보다는 빨리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유목제국의 역사라는 것이 끊임 없는 약탈과 침략, 그리고 민족의 흥망성쇠라는 드라마틱한 요소들을 풍부히 갖추고 있기 때문인 듯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 역사에도 등장하는, 그래서 낯설지 않은 여러 민족들을 만나게 된다. 여진, 거란, 몽골족 등등. 그러나 그들의 이름만 익숙할 뿐, 실제로 그 민족들이 어떤 존재들이었던가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 등장하는 그들은 야만적 오랑캐이자 변방에 출몰하여 우리 조상을 괴롭히는 존재들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역사가 있으며 이 책은 바로 그런 민족들이 유럽과 아시아라는 거대한 대륙의 초원을 어떻게 지배하였으며 그들과 정주민과의 관계는 어떠한 것이었던가에 대한 흥미로운 역사서이다.

중후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칭기즈칸 일족의 역사를 읽을 때에는 가계도를 그려 두며 읽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 가계도가 없다는 사실이 좀 아쉬웠다. 하지만 역자들이 번역으로 그치지 않고 충실한 역주들을 통하여 이 책이 쓰여질 당시와 현재의 연구결과 사이의 간극을 가능한 한 메꾸려고 노력했다는 점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살에의 초대 - 엘리스 피터스 추모소설
맥심 재커보우스키 엮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0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사실 이 추모집이 헌정된 작가인 엘리스 피터스의 작품을 그다지 많이 읽지 않았다. 아마 한 두 권 정도, 그나마도 별로 많이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도 이 책에 손이 간 것은 단편 추리소설들이 주는 속도감을 좋아하고 현재가 아닌 역사적 과거들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 끌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는 로마 시대의 고대로부터 19세기 말의 오스트리아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대가 등장한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도 인간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이유는 대동소이하다. 바로 그 점에서 우리는 이 시대의 사건들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추리소설이라는 면으로 보자면, 물론 각 편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치는'그러한 반전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듯하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독자들이라면 범인을 눈치 챌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

나는 오히려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보다 신인이라고 소개된 데이비드 하워드의 <위대한 브로고니>를 인상적으로 읽었다. 이 작품 역시 결말을 예상 가능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인간의 선과 악, 모르는 사람들에겐 호의를 베풀수 있어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겐 지옥 같은 적의를 품게 되는 그 아이러니가 절묘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번역상의 불만을 이야기하자면 그리스와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몇 작품의 인명들이 모조리 영어식으로 발음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오빌리오? 클로디어'의 경우 로마인인 주인공의 이름이 '클라우디아'가 되어야 함에도 제목부터 '클로디어'로 되어 있다. 역사적 시대를 배경으로 한 만큼 독자가 그 시대적 분위기에 빠질 수 있게끔 번역도 신경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