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이 추모집이 헌정된 작가인 엘리스 피터스의 작품을 그다지 많이 읽지 않았다. 아마 한 두 권 정도, 그나마도 별로 많이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도 이 책에 손이 간 것은 단편 추리소설들이 주는 속도감을 좋아하고 현재가 아닌 역사적 과거들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 끌렸기 때문일 것이다.이 책에는 로마 시대의 고대로부터 19세기 말의 오스트리아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대가 등장한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도 인간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이유는 대동소이하다. 바로 그 점에서 우리는 이 시대의 사건들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추리소설이라는 면으로 보자면, 물론 각 편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치는'그러한 반전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을 듯하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독자들이라면 범인을 눈치 챌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 나는 오히려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보다 신인이라고 소개된 데이비드 하워드의 <위대한 브로고니>를 인상적으로 읽었다. 이 작품 역시 결말을 예상 가능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인간의 선과 악, 모르는 사람들에겐 호의를 베풀수 있어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겐 지옥 같은 적의를 품게 되는 그 아이러니가 절묘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번역상의 불만을 이야기하자면 그리스와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몇 작품의 인명들이 모조리 영어식으로 발음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오빌리오? 클로디어'의 경우 로마인인 주인공의 이름이 '클라우디아'가 되어야 함에도 제목부터 '클로디어'로 되어 있다. 역사적 시대를 배경으로 한 만큼 독자가 그 시대적 분위기에 빠질 수 있게끔 번역도 신경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