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몸의 역사
자크 르 고프 외 엮음, 장석훈 옮김 / 지호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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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언뜻 보면 의학 역사서 같지만 전적으로 그러한 내용은 아니다.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역사적으로 인간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질병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의학이 어떠한 경로로 발전해 왔는가, 그리고 질병과 몸을 대하는 태도들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모두 다루고 있다. 각기 다른 저자들이 한 장씩을 맡아서 서술하고 있는 형식은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형식의 장점은 마치 단편소설 읽듯이 부담없이 한 장씩 읽을 수 있다는 것이고(호흡이 짧은 독자라면 선호하는 형식일지도...) 단점은 한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염병에 속수 무책으로 사람들이 쓰러져가고, 열악한 치료 환경을 감내할 수 밖에 없는 시기를 거쳐, 점차 물질적 풍요와 안정된 생활로 그러한 질병들이 하나씩 정복되어가는 것을 본다. 향상된 위생수준과 양호한 영양 섭취가 일등공신임은 말 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오늘날 우리가 질병으로부터 안전한가 하면 결코 그렇지 못하다. 한때 질병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한 영양섭취는 이제 영양과잉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질병들을 불러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혈과 관장'을 만병통치로 알고 있던 옛 의사들을 비웃듯이, 무절제한 생활로 우리 몸을 망치는 현대인들이 이후 어떻게 비춰질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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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심재관 옮김 / 엔북(nbook)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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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실 지금에 와서 '타임 머신'의 아이디어는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들-'백 투 더 퓨쳐'나 '터미네이터 시리즈'등-에서 시간여행은 너무나 자주 다뤄지는 소재이기 때문에 이 고전 '타임 머신'을 읽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이다. 그러나 일단 책을 펼쳐 들면 이 책이 왜 고전의 반열에 들었는지를 알게 된다. 단지 아이디어 뿐 아니라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도 만만치 않다.

타임머신의 이론적 가능성을 설명하는 도입부로부터 시작해 짧은 미래 여행을 하고 돌아온 시간여행자의 보고로 이어지는 중심부분, 그리고 다시 여행을 떠난 시간여행자를 기다리는 화자의 에필로그 부분까지 묘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다. 여기서 보여지는 80만년 후의 세계는 낙원 같은 외양 뒤에 지옥같은 현실을 숨기고 있는 세계이다. 웰즈가 미래를 이렇게 그린 데에는 산업 혁명 이후의 영국이라는 그의 세계의 영향이 컸던 것 같으며, 이러한 비전이 우리에게도 충격을 던지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현재 또한 경제적 차이에 의한 소외와 억압의 상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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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돌 1 - 제1부 뉴턴의 대포 환상문학전집 9
그레고리 키스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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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사실 전혀 사전 지식 없이 읽었다. 벤저민 크랭클린과 루이 14세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꽤 흥미로웠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다지 좋은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쉽게 읽히고 스토리를 따라가는 재미가 아주 없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이다. 어쩌면 시리즈의 첫 편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만일 다음 권을 읽겠느냐고 묻는다면 긍정적인 대답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이성의 시대를 여는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 그 제목을 '비이성의 시대(원제)'로 붙임으로써 소설의 분위기를 암시한다. 그리하여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화학보다는 연금술에 더 가까우며 우리가 가짜 과학이라고 부른 이론들에 따라 작동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일종의 대량살상 무기인 '뉴턴의 대포'인데, 이 무기의 등장으로 이 '비이성의 세계'라는 제목의 의미는 또다른 지평을 얻는다. 즉, 과학이 대량학살무기의 제조에 쓰이는 현대 사회에 대한 풍자이다.

이 뉴턴의 대포는 핵무기를 연상시키며 그것이 가져오는 파장 또한 그러하다. 소설은 비밀무기를 개발하는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그 틈에 끼어든 미국 소년 프랭클린의 얘기로 진행되는데, 여러 장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시키는 소설들이 흔히 그렇듯이 잦은 장면전환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작가는 마치 일일연속극처럼, 한 사건의 클라이맥스에서 장면을 끝내고는 하는데, 분명 이것은 소설을 계속 읽어나가게 하는 데 효과가 있는 기법이긴 하지만 나로선 좀 짜증스러웠고 어려운 내용이 아님에도 상당히 혼란스럽게 만드는 원인이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세 명 이상의 인물이 등장하는 대화에선 말하는 게 누구인지 모호한 경우가 꽤 되었다.

환상문학 전집의 다른 책들, 호프만이나 월폴의 작품들을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던 나로서는 이런 소설보다는 고전 작품들이 더 많이 번역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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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아일랜드 - 역사와 문학 속의 아일랜드
박지향 지음 / 새물결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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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서 아일랜드라는 나라는 그저 IRA와 영국 간의 폭력 사태, 그리고 때때로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아일랜드계 갱들에 의해 간간이 들려오는 이름일 뿐이었다. 이 분쟁의 역사를 겪어 온 섬나라에 대해 보다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축구였다. 2002년 월드컵 예선에서 이 나라는 네덜란드, 포르투갈이 속해 있는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아 극동까지 오게 되었고, 16강의 성적을 거뒀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투지는 놀랄만한 것이었다. 이 녹색 옷의 전사들에게 받은 강렬한 인상으로 인해 아일랜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집어든 것이 이 책이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감상을 먼저 말하자면 내가 원한 만큼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아일랜드 역사에 정통하지 못한 만큼 나는 이 나라의 역사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서술을 원했지만 이 책의 내용은 아일랜드와 잉글랜드의 관계를 영국계 아일랜드인들의 경계적 위치를 통해 고찰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물론 아일랜드 민족주의를 둘러싼 같은 아일랜드인들 사이의 미묘한 입장 차이 등의 서술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우리로서는 차이를 말하기 힘든 두 나라간의 감정, 차이점 등의 설명 역시 그랬고 말이다. 문제는 와일드, 쇼, 예이츠가 서술의 중심이 되는 2부가 너무 동어반복이 많다는 점이다. 1부에서도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이 영국계 아일랜드 작가들의 이야기가 2부에서는 전적으로 그리고 반복되어 이야기된다.

물론 이 작가들이 영국에도, 아일랜드에도 속하지 못하는 일종의 경계에 선 존재로서 아일랜드의 문제를 잘 드러내준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지면이 이 세 작가의 이야기에 할애되었으며 아일랜드의 현재를 만든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 보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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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브라운 신부 전집 4
G. K. 체스터튼 지음, 김은정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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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브라운 신부 시리즈 중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단편들의 모음이라는 점은 같지만 '브라운 신부의 비밀'과 플랑보의 비밀'사이에 있는 단편들은 바로 브라운 신부의 탐정 활동의 비밀을 설명하는 도구로서 이야기된다는 점이다. 어떻게 범인을 알아냈느냐는 질문에 브라운 신부는 '그 살인들을 모두 내가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보르헤스 식으로 말하자면 '한 사람이 저지른 범죄는 모든 사람들이 저지른 범죄이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인간성의 보편적인 악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범죄의 뒤에 숨어 있는 동기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브라운 신부의 비밀은 범죄자의 동기와 범죄에 이르는 심리를 따라가는 놀라운 통찰력에 있다. 그러한 통찰력은 역시 '신부'라는 직업 덕분에 얻은 것은 아닐지... 다른 사람들의 죄의 고백을 들으면서 얻은 인간 심리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듯 하다. 그리고 범죄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결국 용서의 문제를 불러온다.

이 시리즈를 읽으며 종종 느끼는 것이지만 체스터튼의 동양 문화에 대한 반감과 몰이해는 이 책의 몇몇 단편들에도 나타난다. 제국주의 시대의 영국인이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모르지 않지만 이 정도 지성인에게도 뿌리깊은 편견이란 역시 없애버리기 힘든 것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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