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시대 한길그레이트북스 12
에릭 홉스봄 지음, 정도영.차명수 옮김 / 한길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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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홉스봄의 근대사 삼부작 중 첫번째 권인 이 '혁명의 시대'는 1789~1848년까지의 60년간을 다룬다. 이 시대가 특별한 이유는 이중혁명-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장기적 중세를 끝내고 근현대로 진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5세기경에 중세가 끝나고 근세로 접어들었다고는 하지만 그 시대들의 차이는 18세기말, 19세기를 거치면서 변화된 현 사회와의 차이에 비하면 매우 적은 것이며 단절보다는 연속성이 더 큰 것이었다. 즉 완만한 인구증가, 대부분의 인구가 농업에 의존하는 산업구조, 봉건적 관계망으로 얽혀진 인간관계(중세 이후에도 그러한 인간관계는 끈질기게 남아 있었다) 등.
그러한 사회가 어떤 과정을 통하여 근본부터 심대한 변화를 겪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인가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살펴본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저자는 방대한 분야의 통계자료를 인용하면서 사건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 격변의 시기를 세밀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도와준다. 서유럽이 결정적으로 세계의 다른 부분을 앞지르게 된 경위와 신대륙에서의 미국의 등장, 그러한 경제적 헤게모니를 바탕으로 한 나머지 세계의 제3세계화 등은 우리의 근대사와도 무관한 부분이 아니다. 산업사회로의 진입은 자본의 집중화를 통해 노동빈민을 양산했으며 전통사회에서의 안전망을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이 굴러떨어지게 된 빈곤의 상황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해결된 문제가 아니기에 더 심각하게 다가왔다. 출생에 의해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를 타파하기 위하여 혁명을 일으켰고 평등을 쟁취한 것으로 믿어 왔지만 이제는 물질의 권력에 의해 계서화되는 사회가 나타나고 드러나지 않게 구획지어진 계층간의 벽은 구체제 시대보다도 더 교묘하며 넘나들기 힘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과거와 단절된 현재의 세계가 어떻게 태동하고 발전되어 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과연 그것이 '발전'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구심이 들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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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세 문명 현대의 지성 65
자크 르 고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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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었던 마르크 블로크의 '봉건 사회'가 서양 중세의 독특한 계급 구조였던 봉건제를 중심으로 그 시대를 복원해서 보여 주고 있다면 자크 르 고프의 이 책은 제목처럼 문명사적 관점에서 중세를 보여준다.

책의 앞부분은 중세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즉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중세로 볼 것인가)하는 문제와 이어 정치사를 중심으로 한 그 시대의 역사를 간략히 훑어 본다. 뒷부분의 문명사 부분은 각 소주제별로 중세의 사회를 보여주는데, 각 계급들, 물질문명과 정신 문명 전반에 걸쳐 장황하지 않으면서도 흥미로운 예화와 동시대인들의 증언들을 적절히 인용해 멀리 떨어진 과거의 세계상을 보여 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망탈리테, 감수성, 태도'를 다룬 장인데, 이전 장들에서 중세인들의 물질적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 것이고 그들에게 천국과 지옥의 이미지는 얼마나 생생한 것이었던가를 설명한 부분을 거쳐 오지 않았다면 너무나 이상해 보였을 정신적 삶에 대한 것이다. 기적과 성자들의 시대였던 중세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현세의 물질적 생활에서 기대할 만할 것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에 기적이 그들에겐 너무나 필요했고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자주 병에 시달렸던 그들의 비참한 육체는 환상을 볼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시대의 감수성에는 그 시대의 사회적 상황, 문화, 물질적 토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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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구조인류학 한길그레이트북스 8
에드먼드 리치 지음 / 한길사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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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인류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잘 몰랐던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성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기독교와 유태교, 이슬람교 등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반 이상이 믿고 있는 종교들의 공통적 뿌리인 구약과 기독교 경전인 신약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신의 말씀'이라는 의미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스나 아집트의 옛 경전들이 지금에와서는 '신화'란 이름의 옛 이야기 쯤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러나 종교가 없는 내게는, 성서는 읽으면 읽으수록, 역사와 계시의 혼합물이라기 보다는 신화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어 왔는데, 에드먼드 리치의 이 책이 갖고 있는 시각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리치는 표면적인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밝히기 위해 구조인류학의 해석 방법을 이용한다. 그것은 이야기의 시간적 순서나 역사적 사건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구성하는 각 요소들을 개별적으로 고찰하고 그것들이 어떠한 구조로 배열되어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모세에게 왜 누이가 있었는가'라는 장에서는 모세에 관한 이야기와 예수의 이야기, 그리고 같은 중근동 지방 신화인 이집트의 이시스 신화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 여인들이 모두 같은 의미를 가지며 신화에서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신화는(성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표면에 나타나는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의와 연결된 이면의 의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리치는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 구약의 여러 이야기들이 시간적 관계의 선후를 뛰어 넘는 의미를 보여준다. 인류의 공통적 심성이 신화라는 표현 양식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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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민담 전집 09 - 이탈리아 편 황금가지 세계민담전집 9
이기철 엮음 / 황금가지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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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문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야기들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면서, 또 많은 사람들 사이를 떠돌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보편성이 주는 매력 말이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누구나 갖는 부와 권력, 그리고 사랑에 대한 욕망과, 미지의 세계가 주는 공포, 그리고 죄를 지으면 벌을 받으리라는 두려움 등이 골고루 섞여 있다.

이 이탈리아 민담에도 그러한 감정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으며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어려움을 헤치고 사랑을 이루거나 부를 쟁취하여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여러 나라에 매우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이 많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독일 황제들이 자주 넘보곤 했던 땅이기 때문인지 그림 형제가 모은 독일 지역의 이야기들과 비슷한 것들이 무척 많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보통의 동화들처럼 이 이야기들도 대부분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로 끝나곤 하지만 그 뒤를 잇는 마지막 한 줄, '하지만 우리에겐 먹을 것 하나 없다'의 후렴구들이, 묘한 감상을 남긴다. 그 한 줄로 인해 보잘것 없는 스프가 올려진 화덕가에 모여 앉아 먼 옛날, 먼 세계의 아름답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몰입하여 고단한 현실을 잠시 잊다가 이야기가 끝나고 다시 가난하고 힘든 생활로 돌아와야 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이야기 속에 그토록 과도하게 넘치는 금과 은, 산해진미의 향연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현실을 거꾸로 비춘 음화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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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베컴 - 마이 사이드
데이비드 베컴.톰 왓트 지음, 임정재 옮김 / 물푸레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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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자서전이나 전기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전기는 한 사람의 삶에 대해 다른 사람이 과연 어느만큼이나 알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고 자서전은 과연 자기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만을 말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이러한 고약한 회의주의적 태도 때문에 나는 언제나 실제의 삶을 다룬 작품들의 수상쩍은 진실성보다는 허구적 삶의 진실성에 더 깊이 몰입하곤 했던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자서전보다 특별히 진실에 더 가까우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는 이 스물 여덟 살 짜리의 자서전을 집어 든 것은 순전히 그가 축구선수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당신이 데이비드 베컴의 팬이라면 아마 이 책은 꽤 흥미로울 것이다. 하지만 베컴의 팬이긴 하지만 유럽 축구를 그다지 많이 보는 사람은 아니라면 그 흥미는 반감될지도 모른다. 내게 있어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들은 바로 축구 경기 그 자체를 다룬 내용들이었다. 특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경기를 그 안에서 실제로 뛰었던 선수의 증언을 통해 다시 보는 재미 말이다. 그것은 마치 피치 안과 밖에서 동시에 경기를 지켜보는 것 같은 독특한 경험이었다.

경기에 몰입하고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 보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경기장의 분위기만으로도 그들의 심리적 상태까지 추측할 수 있다. 내가 밖에서 느꼈던 그러한 상황들을 내부자의 고백을 통해 확인하는 재미와 '아, 그때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깨달음이 교차되는 것이 이 책이 내게 가져다 준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베컴의 팬도 아니고 축구도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 책은 아마 별 재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내 빅토리아와의 연애담이 등장하고 가족을 최우선시하는 베컴의 또다른 면을 볼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스포츠지의 가십란에서 보던 얘기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니까 별로 특별할 것은 없다. 그러나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그 유명한 퇴장 사건을 비롯하여 유로 2000에서의 실망스런 경기들, 맨유의 트리플 달성, 2002 월드컵 예선 통과의 우여곡절, 퍼거슨 감독과의 부트게이트 사건 등을 기억하는 축구팬이라면 아마 이 책에서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꽤 즐거운 경험일 듯 하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해 한 마디 하자면 김용수 해설위원의 감수를 거친 덕분인지 선수 이름이나 구단명 등에서는 비교적 적은 실수만 보였다. 하지만 피에를루이지 콜리나 심판의 이름을 '피엘위기'로 쓴 것은 실소를 자아냈으며 전체적으로도 그다지 매끄러운 번역은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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