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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세 문명 ㅣ 현대의 지성 65
자크 르 고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얼마 전에 읽었던 마르크 블로크의 '봉건 사회'가 서양 중세의 독특한 계급 구조였던 봉건제를 중심으로 그 시대를 복원해서 보여 주고 있다면 자크 르 고프의 이 책은 제목처럼 문명사적 관점에서 중세를 보여준다.
책의 앞부분은 중세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즉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중세로 볼 것인가)하는 문제와 이어 정치사를 중심으로 한 그 시대의 역사를 간략히 훑어 본다. 뒷부분의 문명사 부분은 각 소주제별로 중세의 사회를 보여주는데, 각 계급들, 물질문명과 정신 문명 전반에 걸쳐 장황하지 않으면서도 흥미로운 예화와 동시대인들의 증언들을 적절히 인용해 멀리 떨어진 과거의 세계상을 보여 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망탈리테, 감수성, 태도'를 다룬 장인데, 이전 장들에서 중세인들의 물질적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 것이고 그들에게 천국과 지옥의 이미지는 얼마나 생생한 것이었던가를 설명한 부분을 거쳐 오지 않았다면 너무나 이상해 보였을 정신적 삶에 대한 것이다. 기적과 성자들의 시대였던 중세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현세의 물질적 생활에서 기대할 만할 것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에 기적이 그들에겐 너무나 필요했고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자주 병에 시달렸던 그들의 비참한 육체는 환상을 볼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시대의 감수성에는 그 시대의 사회적 상황, 문화, 물질적 토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