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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베컴 - 마이 사이드
데이비드 베컴.톰 왓트 지음, 임정재 옮김 / 물푸레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사실 자서전이나 전기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전기는 한 사람의 삶에 대해 다른 사람이 과연 어느만큼이나 알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고 자서전은 과연 자기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만을 말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이러한 고약한 회의주의적 태도 때문에 나는 언제나 실제의 삶을 다룬 작품들의 수상쩍은 진실성보다는 허구적 삶의 진실성에 더 깊이 몰입하곤 했던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자서전보다 특별히 진실에 더 가까우리라는 보장이 전혀 없는 이 스물 여덟 살 짜리의 자서전을 집어 든 것은 순전히 그가 축구선수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당신이 데이비드 베컴의 팬이라면 아마 이 책은 꽤 흥미로울 것이다. 하지만 베컴의 팬이긴 하지만 유럽 축구를 그다지 많이 보는 사람은 아니라면 그 흥미는 반감될지도 모른다. 내게 있어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들은 바로 축구 경기 그 자체를 다룬 내용들이었다. 특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경기를 그 안에서 실제로 뛰었던 선수의 증언을 통해 다시 보는 재미 말이다. 그것은 마치 피치 안과 밖에서 동시에 경기를 지켜보는 것 같은 독특한 경험이었다.
경기에 몰입하고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 보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경기장의 분위기만으로도 그들의 심리적 상태까지 추측할 수 있다. 내가 밖에서 느꼈던 그러한 상황들을 내부자의 고백을 통해 확인하는 재미와 '아, 그때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깨달음이 교차되는 것이 이 책이 내게 가져다 준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베컴의 팬도 아니고 축구도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 책은 아마 별 재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내 빅토리아와의 연애담이 등장하고 가족을 최우선시하는 베컴의 또다른 면을 볼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스포츠지의 가십란에서 보던 얘기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니까 별로 특별할 것은 없다. 그러나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그 유명한 퇴장 사건을 비롯하여 유로 2000에서의 실망스런 경기들, 맨유의 트리플 달성, 2002 월드컵 예선 통과의 우여곡절, 퍼거슨 감독과의 부트게이트 사건 등을 기억하는 축구팬이라면 아마 이 책에서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꽤 즐거운 경험일 듯 하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해 한 마디 하자면 김용수 해설위원의 감수를 거친 덕분인지 선수 이름이나 구단명 등에서는 비교적 적은 실수만 보였다. 하지만 피에를루이지 콜리나 심판의 이름을 '피엘위기'로 쓴 것은 실소를 자아냈으며 전체적으로도 그다지 매끄러운 번역은 아닌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