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 1 - 사람의 아들
발레리오 마시모 만프레디 지음, 이현경 옮김 / 들녘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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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영어 식으로 알렉산더로 알려진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의 일대기는 여러 면에서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밖에 없다. 짧은 시간 안에 대제국을 건설하고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젊은 왕... 이 책은 그런 비범한 인물의 짧은 생애를 소설 형식으로 풀어 썼다. 문장은 대체로 평이하며 시간 순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이야기를 따라 가기도 어렵지 않다. 워낙 드라마틱한 인물이다 보니 소설적 재미도 상당하여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을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은 그의 어린 시절을 채우는 친구들과의 우정,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밑에서 이뤄지는 제왕 교육을 시작으로 아버지 필리포스의 죽음에 이은 알렉산드로스의 계속되는 정복 전쟁, 그리고 그의 요절로 끝을 맺는다. 이 대단히 특이하고도 힘과 의지력을 갖춘 인물의 일생을 따라가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이 끝없는 원정의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소설 속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세상의 끝을 보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하지만, 그것이 그 모든 희생, 병사들의 희생 뿐 아니라 그 자신의 희생을 감내해야 할 만큼 가치있는 일인가라는 의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또한 그의 나라 사람들과 그의 병사들은 그를 영웅으로 여겼겠지만 결국 그가 일으킨 전쟁의 폭풍 속에 휘말려들어간 사람들에게도 그는 영웅이었을까 하는 의문도 함께.

알렉산드로스의 대제국은 채 다음 세대도 넘기지 못하고 분해되었다. 결국 그가 정복한 세계는 오직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모든 인생이 허무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알렉산드로스의 경우는 더한층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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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섬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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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처음 나왔던 10년 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솔직히 무슨 얘긴지 잘 모르고 읽었던 것 같다. 도대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경선에 관련된 무슨 비밀을 찾다가 난파된 것 같은데... 하는 게 전부였으니.

그러다가 얼마 전에 다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는 놀라고 말았다. 아니,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그때는 왜 그렇게 반도 이해하지 못했을까 하고 말이다. 역시, 나이를 들어 가면서 얻게 되는 이해의 폭이 필요한 책들이 있는 모양이라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줄기가 되는 내용은 대충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그 기억은 앙상한 뼈대만 남은 것이어서 실제의 책과는 별 상관이 없는, 희미하고도 창백한 그림자에 불과했다. 소설은 주인공 로베르토의 경선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한여행과 그가 어린 시절 겪었던 까살레의 포위전이 오버랩되면서 다양한 각도의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다. 현대의 첩보전을 연상케 하는 17세기 유럽 열강들의 경선을 정확히 측정코자 하는 갖가지 비밀스런 노력들과 그 와중에 휘말리게 된 로베르또의 모험담이 흥미진진하게 얽혀드는 한편으로 그가 탔던 배 '아마릴리스'가 난파되면서 오르게 된 '다프네'에서 만나게 된 카스파르 신부의 기발한 발명품들, 그리고 신학적 논쟁들이 풍부하게 전개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를 끈는 존재는 '유령 페란테'이다. 로베르토가 머리속에서 만들어낸 이 사생아 동생은 마치 도플갱어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여기저기에 출몰하면서 로베르토의 운명을 꼬이게 만든다(혹은 그렇다고 상상된다). 심리학적으로도 얘기할 것이 많은 로베르토의 이 '나쁜 반쪽'은 그래서 로베르토의 소설 속에서뿐 아니라 이 소설 전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인 것이다.

난파된 배 위에서 경도 0의 지점을 지나간다고 생각되는 섬을 바라보면서 로베르토는 시간과 공간의 파라독스들을 잔뜩 풀어 놓는다. 카스파르 신부의 묘사로 촉발된 그의 불비둘기에 대한 환상은 결국 그 섬을 모든 것이 가능한 곳, 일종의 유토피아로 만든다. 그러나 섬과 배 사이에는 바다가 있다. 이 물을 건너려는 모든 시도들은 하나씩 실패로 끝나고(잠수종이란 기발하지만 위험한 장치를 만들었던 신부는 그 종과 함께 가라앉아 버리고) 결국 그 '전날의 섬'은 거기 존재하지만 갈 수 없는 섬으로 남는다.

물론 로베르토는 그 섬으로 가기 위한 최후의 시도를 하지만 그가 성공했는지 어쩐지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섬은 우리들에게도 영원히 갈 수 없는, 하나의 유토피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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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서양건축사 - 스톤헨지에서 해체주의 건축까지 클릭 시리즈
캐롤 스트릭랜드 지음, 서민영.조난주.김마리.양상현 옮김 / 예경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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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반인들을 위한 건축사로서 쉽게 읽힌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인 듯 하다. 미술사적 측면이나 건축 구조의 측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 없이 서술한 것도 그렇고. 특히 건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가 될 만한 사항은 따로 박스 안에 정리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이탈리아를 제외한 라틴 문화권(에스파냐, 포르투갈,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까지) 건축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고 역자 서문에서 보듯이 현대로 넘어오면서 미국 건축을 많이, 그리고 매우 호의적으로 다룬다는 점 등이 그렇다. 그렇다고는 해도 건축사의 입문서로서는 그다지 나쁜 선택은 아닐 듯 하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국제주의 양식을 다루는 장 중에 한 박스는 제목이 '나쁜 건축의 해악'이었는데 거기에는 현재 우리나라의 아파트와 다를 게 없는 일단의 공동주택 단지 사진이 있고, 이같은 건축이 인간과 도시에 미치는 해악 때문에 1972년 폭파, 해체되었다는 설명이 있었다. 이런 '나쁜 건축'이 아직도 계속 지어지고 있고, 또 엄청난 값에 팔리는 우리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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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쇠망사 1
Edward Gibbon / 대광서림 / 199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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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사에 대한 책을 읽다 보면 언제든 마주치게 되는 이 대작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아마 책을 집어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11권에 이르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부담감을 느끼는 독자들이 많아서인지 축약본도 나와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원전에 대한 강박관념'이랄까, 그런 걸 갖고 있는 내게 다이제스트판은 영 맘에 드는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 겨울 이 책을 읽자고 결심하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이미 책이 쓰여진 지 300년이 넘게 지났기 때문에 그 시대 특유의 만연체, 그 시대 독자와 현재의 독자들의 차이점(물론 유럽인과 우리의 차이점이라는 것 외에도) 등 오늘날의 독자들에겐 다소 고리타분해보이는 구석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무척 충실한 편이다.

일단 이 책은 서로마가 기울기 시작한 3세기경부터, 동로마 제국이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끝나기까지, 1000년이 넘는 세월을 기술하고 있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만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법 제도, 종교, 문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로마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 이민족들의 역사에까지 서술하고 있어 총체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게 한다. 이미 오래 전에 쓰여진 책임에도 여전히 고전으로 읽히는 것은 역시 이처럼 웬만한 사람은 엄두를 내기 힘든 일을 해낸 기번의 업적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그토록 강대했던 로마 제국이 왜 멸망하였을까를 묻는다. 기번이 책을 쓴 동기도 아마 비슷한 의문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의 쇠망 원인도 다른 제국, 혹은 다른 민족의 쇠망과 그리 다르지 않다. 어쩌면 모든 생물이 살다 죽는 것처럼 한 문명이나 하나의 제국도 융성하다가 쇠퇴하여 사라지는 길을 걷는 것이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제국의 멸망에는 언제나 내부의 문제와 외부의 압력이 함께 한다. 기번은 그래서 이 제국의 긴 역사에서 종교와 야만의 승리를 본다. 고대의 다신교를 대체하고 유럽의 승리자로 등극한 기독교, 그리고 문명의 혜택을 모르는 광폭한 야만족의 충격은 강대했던 제국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봤는데 나온 지 십 년이 넘은 책이라 책의 만듦새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탈자도 많고... 개정판이 나왔다면 좀 나아졌으면 싶고, 그렇지 않다면 개정판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좋은 책이 모양새 때문에 독자들의 외면을 받는다면 불행할 일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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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 1 - 르네상스의 거장
세르주 브람리 지음, 염명순 옮김 / 한길아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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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기나 자서전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실존하는(혹은 실존했던) 인물에 관한 이런 책들에 대한 나의 편견은 어릴 적 읽었던 몇몇 '위인전' 류에서 비롯되었음을 모르지 않는다. 어린 나에게도 그렇게 속속들이 훌륭한 사람들이 현실에서 존재했으리란 것이 믿어지지 않았고 이런 책들의 진실성에 대한 불신이 자라났던 것이다.

레오나르도 같은 인물에 대해 신화화된 전기를 쓰기는 얼마나 쉬운가. 500여년이란 긴 세월이 그와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으며 그토록이나 신비로운 인물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세르주 브람리는 그런 식의 글쓰기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철저히 알려진 사실들만을 토대로 이 천재의 일생을 꼼꼼히 재구성해 나가며, 추측에는 반드시 추측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힌다.

피런체 근방의 빈치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이 공증인의 사생아는 이후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를 능가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전인(Uomo Universale)이 된다. 우리는 모나리자를 비롯한 유명한 그림들, 그리고 그가 남긴 수첩들에서 비롯하는 수많은 발명품들, 과학적 연구들을 보면서 그의 천재성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만이 레오나르도의 모습일까? 위대한 화가이자 전방위적인 호기심으로 왕성한 연구를 한 학자 - 이런 것만이 그의 인생의 전부일까? 이런 의문을 갖는 사람들에게 이 전기는 꼼꼼한 해답을 준다. 저자는 그 당시의 여러 문헌들과 말할 나위 없이 레오나르도 자신의 수첩들, 이후 나온 그에 관한 저작들을 연구하여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전기를 내놓았다. 여기서 우리는 이 인물의 새로운 면들, 즉 인정받지 못한 사생아라는 신분이 야기한 괴로움, 적은 수만이 남겨져 전해지는 그림들에서 알 수 있듯 어떤 일을 제대로 끝마치는 일이 드문 그의 약점,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의 재능을 써 줄 후원자를 찾아 돌아다녀야 했던 그의 고단한 인생 등에 대해 알게 된다. 물론 500년 전의 인물이니만큼 우리가 아무리 연구한다고 해도 알 수 없는 빈 공간들이 여기저기 남아있게 마련이다. 브람리는 그런 공간을 억측으로 메우거나 신화적 허구로 짜 넣으려고 하지 않는다. 빈 곳은 그대로 남겨 두되 가능한 추측들을 제시할 따름이다.  

그래서 어떤 확실성을 원하는 독자들에겐 이 책은 다소 모호하며 불완전한 설명만을 주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점이야말로 이 책의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모호함과 불완전함이야말로 천재 이전에 역시 결점 또한 많은 인간이었던 레오나르도를 더 잘 이해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두 권으로 나뉘어 출판되어 있는데 내가 읽은 것은 한 권짜리 하드커버로 된 구판본이다. 번역이나 책의 만듦새 모두 무난하지만 주가 각 장의 뒤에 모아져 있어서 주를 찾아 가며 읽기가 다소 불편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편집작업이 복잡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주를 각 페이지 하단에 넣었으면 하는 바램인데, 새로운 판본에서는 그렇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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