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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 1 - 르네상스의 거장
세르주 브람리 지음, 염명순 옮김 / 한길아트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나는 전기나 자서전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실존하는(혹은 실존했던) 인물에 관한 이런 책들에 대한 나의 편견은 어릴 적 읽었던 몇몇 '위인전' 류에서 비롯되었음을 모르지 않는다. 어린 나에게도 그렇게 속속들이 훌륭한 사람들이 현실에서 존재했으리란 것이 믿어지지 않았고 이런 책들의 진실성에 대한 불신이 자라났던 것이다.
레오나르도 같은 인물에 대해 신화화된 전기를 쓰기는 얼마나 쉬운가. 500여년이란 긴 세월이 그와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으며 그토록이나 신비로운 인물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세르주 브람리는 그런 식의 글쓰기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철저히 알려진 사실들만을 토대로 이 천재의 일생을 꼼꼼히 재구성해 나가며, 추측에는 반드시 추측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힌다.
피런체 근방의 빈치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이 공증인의 사생아는 이후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를 능가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전인(Uomo Universale)이 된다. 우리는 모나리자를 비롯한 유명한 그림들, 그리고 그가 남긴 수첩들에서 비롯하는 수많은 발명품들, 과학적 연구들을 보면서 그의 천재성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만이 레오나르도의 모습일까? 위대한 화가이자 전방위적인 호기심으로 왕성한 연구를 한 학자 - 이런 것만이 그의 인생의 전부일까? 이런 의문을 갖는 사람들에게 이 전기는 꼼꼼한 해답을 준다. 저자는 그 당시의 여러 문헌들과 말할 나위 없이 레오나르도 자신의 수첩들, 이후 나온 그에 관한 저작들을 연구하여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전기를 내놓았다. 여기서 우리는 이 인물의 새로운 면들, 즉 인정받지 못한 사생아라는 신분이 야기한 괴로움, 적은 수만이 남겨져 전해지는 그림들에서 알 수 있듯 어떤 일을 제대로 끝마치는 일이 드문 그의 약점,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의 재능을 써 줄 후원자를 찾아 돌아다녀야 했던 그의 고단한 인생 등에 대해 알게 된다. 물론 500년 전의 인물이니만큼 우리가 아무리 연구한다고 해도 알 수 없는 빈 공간들이 여기저기 남아있게 마련이다. 브람리는 그런 공간을 억측으로 메우거나 신화적 허구로 짜 넣으려고 하지 않는다. 빈 곳은 그대로 남겨 두되 가능한 추측들을 제시할 따름이다.
그래서 어떤 확실성을 원하는 독자들에겐 이 책은 다소 모호하며 불완전한 설명만을 주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점이야말로 이 책의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모호함과 불완전함이야말로 천재 이전에 역시 결점 또한 많은 인간이었던 레오나르도를 더 잘 이해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두 권으로 나뉘어 출판되어 있는데 내가 읽은 것은 한 권짜리 하드커버로 된 구판본이다. 번역이나 책의 만듦새 모두 무난하지만 주가 각 장의 뒤에 모아져 있어서 주를 찾아 가며 읽기가 다소 불편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편집작업이 복잡한 것은 이해가 가지만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주를 각 페이지 하단에 넣었으면 하는 바램인데, 새로운 판본에서는 그렇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