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의 섬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이 처음 나왔던 10년 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솔직히 무슨 얘긴지 잘 모르고 읽었던 것 같다. 도대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경선에 관련된 무슨 비밀을 찾다가 난파된 것 같은데... 하는 게 전부였으니.

그러다가 얼마 전에 다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는 놀라고 말았다. 아니,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그때는 왜 그렇게 반도 이해하지 못했을까 하고 말이다. 역시, 나이를 들어 가면서 얻게 되는 이해의 폭이 필요한 책들이 있는 모양이라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줄기가 되는 내용은 대충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그 기억은 앙상한 뼈대만 남은 것이어서 실제의 책과는 별 상관이 없는, 희미하고도 창백한 그림자에 불과했다. 소설은 주인공 로베르토의 경선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한여행과 그가 어린 시절 겪었던 까살레의 포위전이 오버랩되면서 다양한 각도의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다. 현대의 첩보전을 연상케 하는 17세기 유럽 열강들의 경선을 정확히 측정코자 하는 갖가지 비밀스런 노력들과 그 와중에 휘말리게 된 로베르또의 모험담이 흥미진진하게 얽혀드는 한편으로 그가 탔던 배 '아마릴리스'가 난파되면서 오르게 된 '다프네'에서 만나게 된 카스파르 신부의 기발한 발명품들, 그리고 신학적 논쟁들이 풍부하게 전개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를 끈는 존재는 '유령 페란테'이다. 로베르토가 머리속에서 만들어낸 이 사생아 동생은 마치 도플갱어처럼 똑같은 모습으로 여기저기에 출몰하면서 로베르토의 운명을 꼬이게 만든다(혹은 그렇다고 상상된다). 심리학적으로도 얘기할 것이 많은 로베르토의 이 '나쁜 반쪽'은 그래서 로베르토의 소설 속에서뿐 아니라 이 소설 전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인 것이다.

난파된 배 위에서 경도 0의 지점을 지나간다고 생각되는 섬을 바라보면서 로베르토는 시간과 공간의 파라독스들을 잔뜩 풀어 놓는다. 카스파르 신부의 묘사로 촉발된 그의 불비둘기에 대한 환상은 결국 그 섬을 모든 것이 가능한 곳, 일종의 유토피아로 만든다. 그러나 섬과 배 사이에는 바다가 있다. 이 물을 건너려는 모든 시도들은 하나씩 실패로 끝나고(잠수종이란 기발하지만 위험한 장치를 만들었던 신부는 그 종과 함께 가라앉아 버리고) 결국 그 '전날의 섬'은 거기 존재하지만 갈 수 없는 섬으로 남는다.

물론 로베르토는 그 섬으로 가기 위한 최후의 시도를 하지만 그가 성공했는지 어쩐지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섬은 우리들에게도 영원히 갈 수 없는, 하나의 유토피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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