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뭘 써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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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 라고, 그대로 ‘덩어리째‘ 쓱 기억해버립니다.
그런 이른바 맥락 없는기억이 내 머릿속 서랍에는 상당히 많이 수집되어 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는 ‘상상력imagination이란 기억이다‘라고 실로간결하게 정의했습니다.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임스조이스, 완전 정답입니다.
상상력이란 그야말로 맥락 없는 단편적인 기억의 조합combination을 말합니다. 단어의 의미상으로는 좀 모순된 표현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유효하게 조합된 맥락없는 기억‘은 그 자체의 직관을 갖고 예견성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스토리의 올바른 동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의 머릿속에는 - 이라고 할까. 최소한 내 머릿속에는 -그런 큼직한 캐비닛 설비가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의 서랍에는 다양한 기억이 정보로서 채워져 있습니다. 큰 서랍도 있고 작은 서랍도 있습니다. 개중에는 감춰진 포켓이 달린 서랍도있습니다.
나는 소설을 쓰면서 필요에 따라 이거다 싶은 서랍을 열고 그 안의 소재를 꺼내 스토리의 일부로 사용합니다. 캐비닛에는 방대한 수의 서랍이 있지만, 소설 쓰기에 의식이 집중하기 시작하면 어디의 어떤 서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머릿속에 서랍의 이미지가 자동적으로 떠올라 한순간에 무의식적으로그소재를 찾아냅니다. 평소에는 잊고 있었던 기억이 저절로 술술되살아납니다.
머리가 그런 융통무애의 상태가 되면 그건 상당히 기분 좋은 일입니다.
말을 바꾸면, 상상력이 내 의지를 벗어나 입체적으로 자유자재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소설가인 나에게 그 뇌 내 캐비닛에 담긴 정보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하기 어려운 풍성한 자산입니다. - P125
[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 - 장편소설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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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작품이 간행되고 그것이 설령 혹독한 생각도 못할 만큼 혹독한 비판을 받는다고 해도 ‘뭐 어쩔 수 없지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할 만큼은 했다.‘는 실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전 작업에도 양생에도 진득하게시간을 들였고, 망치질에도 충분히 시간을 들였다는 그래서 아무리 혹독한 비판을 받아도 그것 때문에 위축되거나 자신감을잃는 일은 일단 없습니다. 물론 약간 불쾌해지는 정도의 일은 가끔 있지만,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시간에 의해 쟁취해낸 것은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면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만일 그러한 확신이 내 안에 없었다면 아무리 배짱 좋고 태평한 나라도 어쩌면 침울해 졌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똑 부러지게 했다‘는 확실한 실감만 있으면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습니다. 그다음은 시간의 손에 맡기면 됩니다. 시간을 소중하게, 신중하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은 곧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합니다. - P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