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눈>이라고 써놓으면 '용의 눈? 용의 눈물이겠지..'라고 말할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 같다. 아니다. <용의 눈>이 맞다. 그리고 이건 스티븐 킹의 소설 제목이다.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내 주변에도 이 책을 읽은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으니까. 시험 삼아 인터넷 서점들을 다 뒤져보았으나 아무 데서도 검색이 안 된다. (마태우스님한테 혼날 각오를 하고 교봉이며 그래스물넷 아침일년 등도 다 뒤졌지만 마찬가지다) 다행히 아마존에서는 검색이 된다. 원제는 <The Eyes of the Dragon>.
어제 자다가 갑자기 이 책이 떠올라 한동안 뇌리를 맴돌았다. (요새는 자면서 생각을 많이 한다. 잠을 깊이 못 자고 얖은 잠만 계속 자서 그런지..)
공포물이라면 질색팔색을 하는 나지만 한때 스티븐 킹을 열심히 읽은 적이 있다. 요새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다양한 현대 외국 작가의 책이 번역되지 않아 선택의 폭이 상대적으로 좁았던 관계로, 스토리 텔링이 강한 스티븐 킹의 흡인력은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던 거다. 그래서 <미저리>며 <잇>이며 <캐리> 등을 이를 악물고 읽었다. 이를 악문 이유? 너무 무서워서 참을 수가 없으니까..;;
공포물에 약한 사람들은 다 알 거다. 너무 무서워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지만 안 보고 그대로 책장을 덮는 건 더 무서워서(덮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그 공포감!) 어쩔 수 없이 끝까지 보고야 마는 처절한 마음을.. 그렇게 참고 참으면서 스티븐 킹을 읽어나갔지만 결국 나를 넉다운시킨 책이 있었으니 <공포 미스테리 초특급>이라는 뻘쭘한 제목의 2권짜리 작품집이었다.
1권 안에 2편씩, 총 4편의 중편소설이 실려 있었는데, 이 책을 읽은 후 스티븐 킹과의 작별을 선언했다. 완전히 질려버린 거다. 읽는 게 지겨운 게 아니라, 숨통을 막아버릴 것 같은 끔찍한 그 공포감에 완전히 질려서 더 이상 그의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스티븐 킹을 잊고 그의 소설들에 대한 끔찍한 기억을 지우려고 노력하면서 몇 년이 지난 후 우연히 도서관에서 <용의 눈>이라는 판타지 소설스러운 제목의 빛바랜 책을 발견했다. 당시 한창 판타지 소설에 빠져 있을 때라 반가이 집어들었는데 작가가 끄악, 스티븐 킹이었다. -_- 이걸 봐야 되나 말아야 되나 두근두근 책장을 넘겨보는데 어라, 이건 동화 아냐? 그렇다. 말 그대로 동화책이었다. 왕자가 나오고 공주가 나오고 기사가 나오고 마법사가 등장하는 스티븐 킹 표 동화.
물론 스티븐 킹은 어느 장르에서나 스티븐 킹이기에 전체적으로 깔린 음습한 분위기나 끔찍한 묘사 등도 가끔 등장했지만 나같은 사람도 그럭저럭 참고 읽어줄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너.무.재.미.있.었.다!!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를 공포 버전화 한 듯한 분위기에 얘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는 순환적 구조, 그리고 섬세한 묘사력까지 빛을 발하는 정말 매력적인 책이다.
안타까운 건 내가 그 책을 발견했을 때 이미 절판된 상태였다는 것. 1988년도에 발간된 책인데 초판 나오고 바로 절판됐는지 헌책방에서도 구하기 힘들었다(헌책 사는 걸 싫어하지만 그래도 시도해보려고 했었는데..).
요새 스티븐 킹 걸작선이 다시 발간되고 있는 걸로 안다. <유혹하는 글쓰기>는 재미있게 읽었어도 그의 소설은 다시 볼 생각이 없지만, <용의 눈>만은 꼬옥 사고 싶기에 황금가지사의 걸작선에 기대를 걸고 있는 중이다. 어이, <용의 눈>, 다시 나올 준비 하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