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떠들자'에 '울 엄마의 나에 대한 편견'을 쓰면서 싫어하는 음식에 대한 얘기를 잠깐 했었다. 그러고 나서 곰곰 생각해보니 이상할 정도로 미묘하게 싫어하는 음식이 많다. 남들이 보면 '쟤 도대체 왜 저래' 할 정도로..

우선 첫번째로 김치.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김치는 단 한번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되어본 적이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 종류로 담근 김치는 아예 입에도 안 댔고 배추김치도 속대는 안 먹고 야들한 이파리 부분과 양념으로 들어간 무채 정도만 집어먹었다. 근데 김치 별로 안 좋아하는 건 집안 내력인 듯. 우리 식구들은 밥상에 김치가 안 올라와도 전혀 아무렇지 않고, 심지어 김치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채 한끼 식사를 뚝딱 해치우곤 한다. (근데 김치냉장고에 김치는 온갖 종류별로 다 있다)

김치 중에서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요소는 '김치국물'! 김치가 익으면서 절여진 채소에서 흘러나온 즙과 고춧가루 양념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그 시뻘건 국물이 난 너무너무 싫다. ㅠㅠ 동치미나 나박김치, 물김치 등 국물을 먹기 위해 만들어진 김치들은 그래도 숟가락을 몇 번 넣는 척이라도 할 수 있지만 시뻘건 김치국물은 으윽.. 나이가 좀 들어 설렁탕집 같은 데 가서 남자들이 설렁탕 국물에 깍두기 국물 푹 퍼넣어 벌겋게 만들어 먹는 걸 보고는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_-; 아, 그러고 보니 칼국수 같은 데 다대기 넣어서 빨갛게 만들어 먹는 것도 싫구나..

내 친구 중에 김치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애가 있는데 얘가 밥 먹을 때 숟가락으로 김치 국물 퍼먹는 거 보고는 기함을 해버렸다. 내 주위에 그렇게 먹는 사람이 없어 문화적 충격(?)이 컸던 것. 그 이후에 얘는 떡볶이 국물을 떠먹어 또 한번 날 놀래켰고(나도 떡볶이 국물에 튀김 찍어 먹는 건 잘하면서 이상한 차별이다. -_-), 지금도 얘 이름을 들으면 김치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런 나도 좋아하는 김치가 딱 두 가지 있는데 바로 파김치랑 부추김치. 우선 나는 향채류를 좋아하고 또 얘네들은 익어도 국물이 거의 안 생긴다(최소한 우리 집에서 먹는 파김치랑 부추김치는..). 원래는 이 김치들도 안 좋아했는데 고3 입맛 없던 봄(내게도 입맛이 없던 계절이 있었다니, 새삼 놀랍다) 엄마가 담가주신 부추김치에 홀딱 반해 입맛을 되찾은 후 꾸준히 잘 먹고 있다.

음, 원체 못 싫어하는 데다가 '한국인이 김치를 싫어하다니, 당장 이민이나 가버렷!'이란 말을 어렸을 때부터 하도 들어서 김치 사설이 길어졌다.

그리고 또 싫어하는 음식은 땅콩. 다른 넛츠 종류들은 다~ 좋아하는데 유독 땅콩은 싫다.
그리고 마른 오징어, 쥐치포 같은 애들도 싫어해 대표적인 맥주 마른안주들은 죄 내 수비범위 밖이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랑 동생이 오징어, 쥐치 같은 걸 구워 먹느라 온 집안에 냄새를 피우면 아예 집 밖으로 도망가 버리곤 했다. 그런 거 먹으면 턱도 아픈데 왜 그렇게들 잘 먹는지..

물에 빠뜨린 생선 싫어한단 얘기는 전에도 했는데, 사실 똑같이 물에 빠뜨린 거라도 복어랑 굴은 먹는다(복지리나 굴샤브샤브, 냄비요리 같은 거). 엄마가 비싼 것만 골라 먹는다고 구박한다. ㅠㅠ 하지만 복어랑 굴로 만든 건 뭐든 다 맛있는 걸. 냠냠.

또 우유도 싫어한다. 난 아마 우유분해효소가 엄청 적은 부류에 속하나 보다. 근데 내 동생들은 우유를 엄청시리 좋아하고 잘 마셔서 키가 나보다 훨씬 크다. 열받는다. 나도 쪼꼬우유는 잘 먹는데.. 허쉬초콜릿드링크 같은 거..
흰 우유도 싫어하지만 그래도 달디단 빵과자랑 함께라면 코 막고 조금은 먹을 수 있는데, 특히특히 싫은 건 딸기맛 우유와 바나나맛 우유. 어렸을 때 한번 먹어보곤 그 코를 찌르는 인공향료 냄새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맛에 다 뱉어버렸었다(근데 아직도 그 메슥거리는 맛의 기억이 남아 있다. 우웨). 냄새도 맡기 싫고 옆에서 누가 먹는 거 보는 것도 싫다. 요새는 천연과즙을 사용한 척하는 딸기우유, 바나나우유도 나왔던데 걔네들도 별로 시음해보고픈 맘은 없다.
근데 이상한 거, 밀크티는 잘 마신다. 이것도 못 마셔야 정상 아닌가? -__- (진짜 인간이 뒤죽박죽, 엉망진창이군)

엄머나, 맘마 먹을 시간이다. 밥 먹고 나중에 이어서 써야겠다. 오늘 저녁엔 뭘 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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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4-05-22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나 세상에나... 김치 못 먹는 사람이 또 있네요. 난 마태우스님이 라면 먹을 때 빼고는 김치 안 먹는다는 말에 무진장 충격먹고 정말 특이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전요,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는 사람이거든요.
어쩌다 피자나 햄버거가 먹고 싶어도 꼭 포장해서 집에서 먹습니다.
김치없이 피자나 햄버거를 먹을 수 없기 때문이죠. ^^;;

starrysky 2004-05-23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마태우스님이 그러시대요? 마태우스님과 저의 식성은 왜 이리도 비슷하단 말입니까. 곧 여자 마태우스라 불리게 되지 않을까 사뭇 두렵..은 아니고 영광이지요. ^-^
저도 요새는 맛나고 건강에도 좋은 김치를 사랑하려고 노력중이랍니다. 나이가 드니까 우리 것이 좋더라구요. 호호.

marine 2004-07-27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김치나 젓갈류, 우유 등등 아주 좋아하는데...
그래도 설렁탕에 깍두기 풀어 먹는 건 싫어요
전 매실주, 야쿠르트, 보신탕, 오리 고기 등등은 때려 죽여도 못 먹어요
요거트는 잘 먹는데 매실 음료나 야쿠르트는 모양만 봐도 구토 증세가 나요

starrysky 2004-07-27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안녕하세요, 나나님~~~ 반갑습니다!!! ^-^
까마득히 잊혀져 먼지만 폭폭 쌓였던 페이퍼에 댓글 달아주셔서 너무너무 기뻐욧! >_< (전 사실 먹는 얘기 하는 걸 느무느무 좋아하거든요. ^^)
설렁탕 뽀얀 국물에 깍두기가 들어가면서 국물색깔이 @#%@하게 변하는 그 모습은 정말이지.. 엄.. 왠지 표현하고 싶지도 않군요. ㅠㅠ 할튼 싫어요. 그냥 국물은 뽀얀 상태 그대로, 깍두기는 깍두기 본연의 모습대로 먹어줬으면 하는 바람이여요.
오, 매실음료나 야구르트를 싫어하시는 것 보니까 약간 시큼한 맛, 또는 구연산(이게 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만) 맛을 싫어하시나 봐요.. 전 그런 간 잘 먹는데.. 하지만 보신탕과 오리고기는 저로서도 되도록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아이들입니다. 일단 냄새도 싫고, 그 자체로도 거부감이 있고, 안 먹고도 잘 살 수 있으니까요. ^^
이 여름, 어떤 음식으로 더위를 이기고 계세요? 전 죽으나사나 아이스크림이여요. ^^ 사실 겨울에 먹는 아이스크림도 맛나지만, 그 계절에 먹는 아이스크림은 좀 외롭기도 하죠.
나나님, 맛난 음식과 함께 건강한 하루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