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에 상처 받았니? - 말은 기술이 아니다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개정판 ㅣ … 상처 받았니? 시리즈 1
상생화용연구소 엮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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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말로 주변 친구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굉장히 많았다.

무심코 던진 말에 친구는 상처 받고 울고 나를 상대해 주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나의 입은 가벼워져 비밀을 알고 있으면 입이 간지러워서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한 과정을 겪다보니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말을 꺼낼 때 세번 생각하고 하기, 누군가 내게 비밀을 말해주면 못 들은 척 하기 등 부던히도 내 입을 단속했다.

지금도 여전히 말이 많긴 하지만 학창시절의 그러한 기억 덕분에 나를 감추는 말을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친분의 정도를 상대방을 깍아내리는 것으로 측정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잠깐 언급되었던 것처럼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향해 '너 아직도 안죽었냐' 라고 말하는 것처럼 친해지기 위해 또는 친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상대방에게 거칠게 나간다.

그건 나만의 친근감 표시이긴 하나 상대방은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요즘에는 일부러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곤 한다.

바로 소통의 원활함이 되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같은 문화권 속에서 낳고 자라 온 나의 주변인들과의 소통이 이러할진대 나와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낯선 곳에서의 대화는 어떠할 것인가. 갑자기 답답함이 몰려 오지만 우선 내가 얽혀있는 삶의 한 가운데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지켜보자.

이  책은 총 네가지의 말하기의 예를 들려주며 일상 속 우리의 대화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무심코 말하기, 배려하며 말하기, 상황 바꾸어 말하기, 한국인의 말하기를 통해 간단한 대화를 설정해 놓고 말 한마디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예시를 던져준다.

그 예시는 적절한 것도 있고 부적절한 것도 있지만 최상의 답변은 아니다. 그 답변을 보기 전에 그 상황에서 나의 말을 먼저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그러나 그 답변을 보기 전에 책에서 주어진 예시속에 늘 나의 대답이 있는게 문제였다.

 

책에서 나온 답변이 꼭 정석이 아니라 이렇게 말하는게 좋을 것이다라고 제시해주고 있지만 나의 대답은 이미 나와 있기에 그 대답이 나오기 힘든게 사실이였고 나는 정말 무뚝뚝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말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씩 책에서 제시한 답변을 흘려 듣기 시작했다.

어떠한 상황에서의 대화, 답변의 예시는 식상했고 설명 또한 마찬가지였다. 분명 답변 하나 하나에 설명을 해주며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며 말을 해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오픈 마인드를 잃어 버린 것일 수도 있고 이런 예시로 나의 언어가 고쳐지지 않을 거라고 포기해 버린 것일 수도 있으나 이러한 것들이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은 것은 언어와 내 마음가짐을 따로 놓고 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내 마음을 자극하고 열어주지 못하는 좀 더 적극적인 면이 없어 아쉬웠다.

마치 주입식에 익숙해져 있다가 막상 실전에서는 활용을 하지 못하는 응용력 부족이 되어 버린 것처럼.

 

말이라는 것에는 정서가 들어있고 삶의 배경이 묻어 나며 그 사람의 인격이 나타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향한 마음일 것이다.

상대방에게 어떠한 마음으로 말을 건네냐에 따라서 우리의 언어는 달라지며 받아들이는 것도 다르다. 나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내 마음이 왜곡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연습을 하고 다짐을 한다고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로 나의 모습인 것이다.

나의 모습을 가꾸기가 힘이든 것처럼 나의 언어와 마음의 일치는 더더욱 힘들 것이다. 나의 겉과 속을 조금씩 같게 만들어가는 과정이야말로 언어의 드러남과 인품을 더욱 더 담백하게 할 것이다. 그 마음을 온전히 따스함으로 채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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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 -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 101인의 가상유언장
도종환.황금찬 외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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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 게다가 문인들은 유언장을 과연 어떻게 쓸지 무척 궁금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딱 한번 써 본 유언장을 고쳐 보리라 다짐을 했건만 다시 쓸 용기조차 나지 않는다.

 

왜 이렇게 짜증이 솟구치는 것일까....

죽음은 내게 아직 멀었다는 데서 오는 막연함일까?(어리석게도? 죽음에 과연 순서가 있었던가?) 아니면 나의 생각과 전혀 다른 데서 오는 유언장들의 모습을 보아서일까...

101명의 문인들은 '가상 유언장'을 하나의 문학으로 표현하려는 노력, 그리고 가족자랑, 자신의 돌아봄, 혹은 장례절차 등등(재산 분배에 관한 것은 거의 없었다. 하나 같이 나는 물려 줄 재산이 없다고 말한다.) 까칠해진 나의 시선으로는 이렇게 까지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너무 극단적인가? 라는 생각이 수없이 들 정도로 유언장들을 읽어 나가면서 인상을 찌뿌리고 있었다.

틀에 박힌 유언장들만 생각했던 나의 모습 속에 이런 유언장들이 이해하기 힘들었고 '가상 유언장'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음에도 나는 너그럽지 못했다. 유언장이라는 생각보다 문학적 시도가 더 엿보였던게 아마 이런 생각을 하게 한 것 같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쓴 문인들도 있었지만 죽음과는 거리가 멀게 남에게 죽음을 보이기 위해 쓴 글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101명의 유언장을 봐야 한다니...  이건 책 읽기가 아니라 곤역이라는 아득함이 밀려 왔다. 그러나 마음 저 밑바닥에서 한가지 생각이 꾸물 꾸물 올라왔다. 분명 너를 이런 편견속에 가둬버린채 책은 끝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래서 읽기를 멈출수가 없었다. 나의 이런 짜증스런 반응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이상한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정말 믿기지 않게도 그런 생각은 명중하고 말았다.

 

책을 절반쯤 읽었을 때쯤,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짜증이 말끔히 사라진 건 아니였지만 평안해지는 느낌, 그 느낌이 밀려왔다.

평안이라는 느낌을 가져 봤다면 내가 느꼈을 이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리라. 평안은 내가 느끼는 감정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게 아니라 어떤 깨달음이 스며 들어와 중화를 시켜 준다는 느낌이라는 것을.

내게 들어온 깨달음은 책을 읽는 내내 잊고 있었던 나의 죽음을 떠올리면서 부터였다.

'내가 죽는다면?'

아주 당연한 생각이(다른 사람들의 유언장이니 그런 생각은 당연히 들 터였다.) 머리가 아닌 가슴을 통과해 버렸기 때문이다.

대부분 결혼을 하고 자녀를 두고 자녀를 두고 혹은 배우자를 먼저 보내버린 문인들이였고 그들에겐 한결같이 무형의 사랑 문학이 있었다. 유언장에 자기가 사랑한 것들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그득한데 나는 그것들을 문학적인 시각, 가족사랑, 자화자찬으로 보고 있었다. 지금 내가 죽음을 앞두고 아니, 가상 유언장이라는 전제하에 유언장을 쓰게 된다면?

 

그들처럼 간단하게 쓸 자신도 사랑을 담뿍 담아 가족이든 문학이든 예찬하며 쓸 자신이 없었다. 처음 내가 썼던 유언장을 기억한다.

번호를 매겨 내가 가진것들의 처분이 주류였고 무언가 글을 남겨야 겠는데 도저히 눈물이 앞을 가려 간단하게 밖에 쓰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제서야 내가 문인들의 입장이 되어 보니 그들보다 세상에 대한 미련이 할말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남길만한건 너무나 초라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데....) 과연 내 자신이 아닌 누구 이름을 부르며 유언장을 쓸 것인가. 또한 누구에겐들 글을 남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인가.

 

'그래, 이런 유언장이 오히려 더 홀가분하고 차라리 멋지구나.'

라는 생각이 든 것이 그때였다.

여전히 내가 이 책에 가지었던 처음의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아무것도 남길 것이 없는 내 자신 앞에서 그런 깨달음 하나를 던져준 계기였다는 것을 높이 사려한다.

다른 사람의 유언장보다 죽음을 가까이 생각하고 쓴 내 유언장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과 늘 죽음을 염두하고 열심히 살라는 말 밖에 무엇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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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광 이야기 ㅣ 범우문고 192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이민정 옮김 / 범우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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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아진다.

책 그 자체에 대한 얘기. 그리고 책 내용에 대한 얘기. 책의 겉모습과 책 내용이 이렇듯 대립하는 경우를 만난 것이 언제이던가.

우선은 책 속으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

 

요즘 책들을 보면 책에 관한 책이 참 많다. 요즘에만 그런 책이 많이 나오는 거라 생각했는데 책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그런 책이 늘 공존해 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런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제목만 봐도 끌리지 않을 수 없다.

비단 나뿐만이 아닌 나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니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온통 책에 미쳐버린 사람들. 희귀한 책을 구하지 못해 목숨까지 잃고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애서광들의 이야기. 분명 시대만 다를 뿐 현대 사회에서도 그런 애서광들이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나는 범접할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런 영향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긴장감 그리고 섬뜩함(나와 너무 비슷해서 느껴지는....)이 덜 느껴지는 탓도 있겠지만 그들은 오로지 책에 올인한 사람들이였다.

많은 것을 즐기면서 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나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책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것도 감수할 수 있는게 애서광 그들이였다.

책을 차지하기 위해 말도 안되는 결혼을 하고 세상에 단 한권의 책이 존재하게 하기 위해 다른 책을 없애버리고 그 책을 구할 수 없음에 절망하며 목숨을 놓아버리는 등.

그들의 삶의 목적은 책 그 자체였다.

 

읽기의 책 보다 수집의 경항이 더 짙었지만 책에 관한 광적인 집착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나름대로 나도 책을 참 좋아한다고 생각 했었는데 그래서 모든걸 책으로 보고 책으로 생각하고 책 읽는 시간을 뺏기기 싫어 안절 부절 하지 못한 나였는데 그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책에 집착하는건 그나마 낫다는 위로도 소용 없을 정도로 그들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애서광 이야기가 무척 얇고 작아서 금방 읽어 버릴거라 생각했다. 한시간도 안되어서 후딱 읽어 버리고 독후감 쓰자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책을 집어 들어 보니 결코 나의 생각처럼 움직여 주지 않은게 이 작은 책이였다.

일반책의 반페이지 밖에 안되는 한 면을 읽을때도 다른 책과 똑같이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100페이지가 넘는 양을 '다른책의 절반쯤이다'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냥 100페이가 넘는 책이라는 생각으로 읽었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이야기가 '애서광 이야기'라는  한 개의 이야기였으면 참 짧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는 플로베르 외에 여러이야기가 실려 있었고 그 이야기의 안에서 또 이야기가 쪼개지는 것들도 있었다.

아주 짧은 이야기 임에도 왠만한 단편집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건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이였을 것이다.

 

여튼 소책자 였음에도 이런 다양한 기분과 느낌을 가질 수 있어서 이 책에 대한 매력에 제대로 빠졌던 것 같다.

이런 형태다 보니 아껴 읽고자 책을 자주 끊어서 읽었고 그래서 흡인력은 조금 부족했지만 다양한 애서광들을 만나고 고서적을 들추는 듯한 느낌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케케묵은 냄새가 내 코를 간질이는 것 같았지만 점점 그들처럼 애서광이 되어가고 있는 나를 언젠가 발견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괜히 나의 책 꽃이를 기웃거리며 익숙한 책 냄새를 맡아본다.

썩지 말아달라고, 좀 벌레에 정신을 놓아버리지 말라는 부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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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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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 식스 센스가 연상 되는 소설이였다.

식견을 넓히지 못해 작은 예시들로 이 두 작품을 연상해 냈지만 너무 짧은 시간에 읽어버린 탓인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틀이 이 정도 밖에 안되는가 보다. 그러나 400페이지를 순식간에 읽게 만드는 마력은 분명 있었다.

책의 제목과 겉모습과는 달리 그리고 줄리에트와 샘의 만남에서는 전혀 이런 결론과 과정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그런 반전과 예상할 수 없는 스토리의 전개가 있었기에 그리고 글 속에 빠져들게 만드는 작가의 문체도 한 몫해서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그러나 저자가 바란 대로 책을 덮고 나서 나는 큰 행복에 휩싸이지 않았다. 내가 경험한 책과 영화가 바로 연상이 될 만큼 어느정도 결과가 예측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미세한 헛점에 정신을 팔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줄리에트의 어머니의 이야기는 왜 이어지지 않았을까...

최소한 가족에게 생존해 있고 어떻게 된 연유인지 뒷 이야기로나마(알고 있겠지만..) 나타났어야 할텐데.. 그리고 조디의 구출과정과 조금은 허무하게 사라진 마약상인들의 모습이 아쉬웠다.(정말 자질구레한한 것들인가...) 그러나 이렇게 옆길로 한정 없이 새면 안된다. 나의 말처럼 미세한 것들을 들추고 있다가는 본질을 잃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레이스가 왜 샘과 줄리에트의 사이에서 방황하는지 그리고 줄리에트를 왜 하늘나라로 데려가야 하는지 조금은 쌩뚱맞았다. 불쑥 튀어나온 무언가가 자꾸 걸리는 듯한 느낌.

그레이스가 그랬다.

그래서 초반에 샘과 줄리에트의 사랑만으로 꾸려질거라는 상상을 뒤집어 주었지만 끝을 보기 전까지(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그레이스가 낯설었다. 10년전에 죽은 전직 형사였기에 자꾸 과거를 들출 수 밖에 없었고 샘도 아내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의 원인을 얘기 하자면 과거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레이스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온 영혼이였고 샘은 그런 그레이스를 죽인 사람이였다. 둘다 그 사실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기에 그들의 만남이 낯설고 엉뚱해 보였던 것이다.

샘은 죽은 아내 페데리카를 구하기 위해 마약 상인을 찾아갔고 그 마약상인을 검거하기 위해 그레이스는 변장을 해서 그 소굴로 들어간 것인데 샘은 마약상인을 죽여야 겠다고 판단한 순간 총을 발사했고 마약상인은 방패막이로 변장한 그레이스를 죽게 한 것이다.

그레이스는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죽었기에 자신의 죽음이 기억나지 않았고 샘의 행도에 대한 뒷처리를 친구 셰이크가 했기에 누구를 죽인지조차 모른 상태였다.

 

과거의 상처에 치유되지 못한채 희망 없이 살아가는 샘에게 줄리에트와의 만남은 희망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런 줄리에트를 그레이스가 데려가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줄리에트까지 잃어 버리면 더이상 살 수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빈민가에서의 힘들었던 유년시절. 그 과거를 뚫고 의사가 되었지만 사랑하는 페데리카는 끝내 구하지 못했다. 그 죄책감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죽인 형사가 가까스로 찾은 희망 줄리에트를 데려가려 한다니. 운며은 샘 앞에서 절대 호락 호락 하지 않았다.

그레이스도 자신이 줄리에트를 데려가야 한다는 신념은 있었지만 자신의 죽음을 알기까지 왜 줄리에트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레이스와 함께 하늘로 올라간 사람은 줄리에트가 아니였다. 그레이스를 사랑하고 있던 동료 형사 루텔리가 그레이스를 따라 갔다. 루텔리가 죽자 마약 중독자가 되어 버린 그레이스의 딸 조디를 자연스레 샘이 도와준다.

미국에서의 성공을 꿈 꾸며 프랑스에서 건너온 줄리에트는 프랑스로 떠나기 며칠 전에 만난 샘과 그렇게 뉴욕에서 살아갈 것이다.

 

과연 사랑에 운명이 있을 것인가.

지금의 진실한 사랑은 만나기까지 과정을 단순히 운명의 장난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흘러가는 책을 읽으며 그런 구성에 덤덤하면서도 늘 익숙한 그런 질문을 다시 한번 던져주고 있었다.

단숨에 읽어 버리는 마력이 숨겨 있는 책이였지만 함께 하게 된 샘과 줄리에트의 삶을 온전히 축복해 줄 수 많은 없었다.

거대한 도시 뉴욕이 안고 있는 삶의 본질하며 더 넓게 세계를 돌아 보고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기에 단순히 그 둘의 행복만으로 귀결될 수는 없었다.

삶의 앞에 나타나는 수많은 역경과 상처, 사랑, 죽음등 그것들을 내 자신이 뚫고 가지 않는 한 스스로 바뀌어 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삶에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 같은 만남은 분명 존재감을 덧 입혀 줄 것이다.

그런 만남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런 상대가 되어 주는 것을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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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 삶을 재발견하는 최고의 법칙
척 마틴 지음, 김명신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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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관심이란 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만 쏟아붓기 마련이고 그것 중에서도 편파적인 관심이 주류였고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러한 과심을 거둬 들일때는 순식간이였다.

지대하고 꾸준한 관심을 보였던게 무엇이던가. 장시간 생각해 보아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 한가지 사실 만으로도 이 책이 내게 필요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자기 계발서를 몇권 읽어 본 사람이라면 '관심' 이라는 책도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다른 책들과 너무 비슷해서 진부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이런류의 책을 읽어 오면서 나름대로 면역이 되어 있기에 늘 이런책을 읽고 느꼈던 마음을 지키는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무엇이든 말하는 믿음과 행하는 믿음이 다르듯이 나는 늘 지체하고 있는 행함이 안타까워 이런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으나 이젠 정말 실천해 보자고 간곡히 말하고 싶어진다.

이 책에서는 늘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 위주로 멈춰서 생각하고 진단하고 변화하고 전달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오로지 그런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랴.

그다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 않는 나에게도 충분히 필요한 프로젝트였다. 분명 나는 내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 않다고 생각 했었다. 사무실에서의 업무가 그리 빡빡한 편이 아니였고 개인적인 시간도 여유가 있어서 일을 하는지 마는지 그런 상실감이 밀려올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나는 일을 효율적으로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첫 단계 멈춤에서 생각해 보니 이런 비효율성이 바로 드러났다. 사무실에서도 비효율적이였고 집에 돌아와서도 비효율적이였다.

 

집에 돌아오면 옷만 대충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서 바로 책을 펼쳐든다. 책에 대한 욕망 때문에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책을 빠르게 읽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 보니 늘 책 읽을 시간과 리뷰 쓸 시간이 부족했다.( 일과의 비유보다 나의 책에 대한 열정의 비유가 이 책하고 더 잘 들어 맞는 것 같다.)

사무실에서의 생활과 나의 독서 습관에 대해서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무실에서의 나는 좀 더 일에 열정을 쏟을 필요가 있었다. 오늘 꼭 처리해야 할 일과 내가 해야할 일을 명확히 구분해 내고 대충이 아닌 성의껏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고 난 후의 시간을 온라인 개인 홈피 관리나 짬짬히 하는 독서와 리뷰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집에서는 나의 개인적 욕망를 채우기 위해 무조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늘 내가 도와야 할 집안일은 무엇이며 꼭 읽어야 할 책이나 써야 할 리뷰를 따져보는 게획성이 필요했다.

이런식으로 정리해 나가다 보면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투정도 식구들과 집안일에 무관심하다는 무거운 마음도 사무실에서 나의 일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다는 상실감도 어느 정도 사라지리라 생각된다. 그 계획들을 추구해 나가며서 마지막 단게 전달하기가 내게 어떤 식으로 응용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우선 사무실에서와 집에서 달라진 나의 모습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조금 편해줄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그런 애정은 쉽게 전위 될 것이다. 그렇다고 독서와 리뷰를 소홀히 할 것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업무 과다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었을때 또는 효율성 있게 움직이도록 배려해 주었을때 어떠한 반응이 나타났던가. 능률이 더 올라갔다.

나의 소망은 하루 종일 책만 보는 날을 갖어 보는 것이지만 퇴근후에 집에 와서 잠들때까지 독서를 해 보아도 마음이 편치 않아 독서가 잘 안될때가 허다하다.

계획을 세워도 기분에 따라 이책 저책 보기가 일쑤이고 쌓인 책들에 대한 푸념도 나온다. 그런 시간들을 집안일을 돕거나 가족들에게 관심을 갖은 후에 하는 독서는 어떨까?

상상만 해도 훨씬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을거라는 느낌이 든다.

마음이 가벼워서 즐겁게 독서할 것이고 리뷰도 밀리지 않게 할 것이고 그런 생활에 익숙해 지다보면 오로지 책만 아닌 다른 것에도 관심을 쏟아 고립감이 들지 않도록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나의 변화된 모습을 만들어 가면 자연스레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바이러스처럼 개개인의 마음속에 깊이 침투한다면 좀 더 밝고 즐거운 삶이 되지 않을까?

나의 문제점과 변화의 과정, 그리고 결과를 유추해 보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벅찬데 실제 이러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떠할까...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흔히 읽어와서 분명 진부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얘기라고 치부해 버릴 수 있다.

나의 현실은 이렇듯 호락 호락 하지 않다고 푸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시도해 본적이 있는가.

줄줄이 읽어나가는 책 속의 인물들처럼 노력하고 생각하고 난관을 부딪혀 가며 목표를 잊지 않으려 한 적이 있는가.

드물 것이다.

나조차도 뒷통수를 강타할 충격적인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도 실천하기 보다 변화하기 보다 포기하는게 더 빠르고 안주하는게 더 쉽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이런 결과를 보면서도 이러한 책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인생은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복을 나누주고 싶었을 것이다.

나부터 진지하게 그런 나눔에 동참해 보려 한다.

약을 때로 약아 버린 나이지만 포기가 더 쉽다는 것을 아는 나이지만 이제는 나도 변화해 보려 한다.

말하는 믿음이 아닌 행하는 열정을 갖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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