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 -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 101인의 가상유언장
도종환.황금찬 외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다른 사람들, 게다가 문인들은 유언장을 과연 어떻게 쓸지 무척 궁금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딱 한번 써 본 유언장을 고쳐 보리라 다짐을 했건만 다시 쓸 용기조차 나지 않는다.

 

왜 이렇게 짜증이 솟구치는 것일까....

죽음은 내게 아직 멀었다는 데서 오는 막연함일까?(어리석게도? 죽음에 과연 순서가 있었던가?) 아니면 나의 생각과 전혀 다른 데서 오는 유언장들의 모습을 보아서일까...

101명의 문인들은 '가상 유언장'을 하나의 문학으로 표현하려는 노력, 그리고 가족자랑, 자신의 돌아봄, 혹은 장례절차 등등(재산 분배에 관한 것은 거의 없었다. 하나 같이 나는 물려 줄 재산이 없다고 말한다.) 까칠해진 나의 시선으로는 이렇게 까지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너무 극단적인가? 라는 생각이 수없이 들 정도로 유언장들을 읽어 나가면서 인상을 찌뿌리고 있었다.

틀에 박힌 유언장들만 생각했던 나의 모습 속에 이런 유언장들이 이해하기 힘들었고 '가상 유언장'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음에도 나는 너그럽지 못했다. 유언장이라는 생각보다 문학적 시도가 더 엿보였던게 아마 이런 생각을 하게 한 것 같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쓴 문인들도 있었지만 죽음과는 거리가 멀게 남에게 죽음을 보이기 위해 쓴 글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101명의 유언장을 봐야 한다니...  이건 책 읽기가 아니라 곤역이라는 아득함이 밀려 왔다. 그러나 마음 저 밑바닥에서 한가지 생각이 꾸물 꾸물 올라왔다. 분명 너를 이런 편견속에 가둬버린채 책은 끝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래서 읽기를 멈출수가 없었다. 나의 이런 짜증스런 반응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이상한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정말 믿기지 않게도 그런 생각은 명중하고 말았다.

 

책을 절반쯤 읽었을 때쯤,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짜증이 말끔히 사라진 건 아니였지만 평안해지는 느낌, 그 느낌이 밀려왔다.

평안이라는 느낌을 가져 봤다면 내가 느꼈을 이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리라. 평안은 내가 느끼는 감정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게 아니라 어떤 깨달음이 스며 들어와 중화를 시켜 준다는 느낌이라는 것을.

내게 들어온 깨달음은 책을 읽는 내내 잊고 있었던 나의 죽음을 떠올리면서 부터였다.

'내가 죽는다면?'

아주 당연한 생각이(다른 사람들의 유언장이니 그런 생각은 당연히 들 터였다.) 머리가 아닌 가슴을 통과해 버렸기 때문이다.

대부분 결혼을 하고 자녀를 두고 자녀를 두고 혹은 배우자를 먼저 보내버린 문인들이였고 그들에겐 한결같이 무형의 사랑 문학이 있었다. 유언장에 자기가 사랑한 것들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그득한데 나는 그것들을 문학적인 시각, 가족사랑, 자화자찬으로 보고 있었다. 지금 내가 죽음을 앞두고 아니, 가상 유언장이라는 전제하에 유언장을 쓰게 된다면?

 

그들처럼 간단하게 쓸 자신도 사랑을 담뿍 담아 가족이든 문학이든 예찬하며 쓸 자신이 없었다. 처음 내가 썼던 유언장을 기억한다.

번호를 매겨 내가 가진것들의 처분이 주류였고 무언가 글을 남겨야 겠는데 도저히 눈물이 앞을 가려 간단하게 밖에 쓰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제서야 내가 문인들의 입장이 되어 보니 그들보다 세상에 대한 미련이 할말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남길만한건 너무나 초라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데....) 과연 내 자신이 아닌 누구 이름을 부르며 유언장을 쓸 것인가. 또한 누구에겐들 글을 남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인가.

 

'그래, 이런 유언장이 오히려 더 홀가분하고 차라리 멋지구나.'

라는 생각이 든 것이 그때였다.

여전히 내가 이 책에 가지었던 처음의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아무것도 남길 것이 없는 내 자신 앞에서 그런 깨달음 하나를 던져준 계기였다는 것을 높이 사려한다.

다른 사람의 유언장보다 죽음을 가까이 생각하고 쓴 내 유언장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과 늘 죽음을 염두하고 열심히 살라는 말 밖에 무엇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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