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1 (반양장) ㅣ 신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크헉 완결도 아니고.. 그런데 프린트 된 사인본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없어요 사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흐르는 강물처럼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을 때 나의 모습은, 이틀 동안 감지 안은 머리를 돌돌 말아놓고 나도 모르게 올라가는 손가락으로 박박 긁고 있을 때였다. 그때 '작가는 항상 안경을 걸치고, 절대 머리를 빗는 법이 없다.' 라는 문장과 마주쳤다. 어머니가 작가가 되겠다는 저자를 타이르자 저자가 작가에 대해 조사한 바를 나열한 첫 문장이었다.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해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고 말았지만, 1960년대 초에 작가에 대해 조사한 내용은 진지하면서도 우스웠다. 파울로 코엘료의 첫 산문집이라고 해서 약간 긴장하고 펼쳤는데, 프롤로그를 읽고 마음을 느긋하게 놔버렸다. 

 

  파울료 코엘료가 국내에 바람을 일으키기 전인 2002년 말에 <연금술사>를 읽었다. 나름 감명을 받아 다음 작품도 읽어보려 기억하고 있던 작가였다. 그러던 중 <연금술사>는 붐을 일으켰고,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저자에 관한 나의 관심은 깊은 심연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언제 바람이 잦아지나를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그의 작품이 출간될 때마다 싸그리 무시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선물 받았다. 선물 받지 못했다면, 여전히 구경만 하고 있을 작가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연이 있는 작가의 책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은 나름대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편견을 섞지 않고 읽을 자신이 없었고, 작가와의 재회에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냥 책을 읽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물음을 던질 수 있겠지만, 소소한 추억으로 간직해 오던 작가가 주목 받게 되면 나같은 소심한 독자는 혼란에 빠지게 마련이다.

 

  이런 사연이 있었으니,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 앞에서 얼마나 수선을 떨었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프롤로그에서 그동안 쌓아온 시샘과 편견이 간단히 무너져 버렸으니 허무했다. 소설이 아닌 산문이었기에 더 편안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르지만, 이 책으로 인해 저자와 나름 성공적인 재회를 일궈냈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저자가 겪은 일화,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일화와 전 세계 신문과 잡지에 게재된 것들이라고 했다. 독자들의 요청으로 책으로 묶이게 되었다고. 이 책의 탄생 배경만 살펴보더라도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질지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저자의 책을 한 권 밖에 읽지 않은 상태였고, 공백기도 6년이나 되어서 그의 글이 어떻게 다가올지 무척 궁금했다. 조심스레 넘기는 종잇장들 사이로 펼쳐지는 저자의 내면. 타인의 이야기든, 들은 이야기든 저자를 거쳐 왔기에 그 모든 이야기는 저자를 통해 재조명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작가라면, 독자들은 그의 소소한 일상을 무척 궁금해 한다. 그의 일상을 느끼며 함께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에 커다란 감회를 느끼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 독자들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파울로 코엘료는 자신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출발했다. 자신의 삶은 서로 다른 세 악장으로 이루어진 교향곡 같다던 저자는 <아무도 없이> 혼자일 때의 일상으로 이끌었다. 일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을 만끽할 때와, 인터넷으로 세상과 연결된 자신을 비교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저자. 잠시나마 그의 일상을 들여다 봄으로써 평안함을 느꼈다. 어떠한 글이 펼쳐지던지간에 책의 제목처럼 흘러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초반에 이 책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감지해서인지 모든 것이 순탄했다. 글을 써내려간 저자의 행위가 과거의 일이 되어 독자에게 전해지는 것도, 글을 읽고 또 다른 세계를 만끽하는 독자도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랐다. 그러나 그 세계는 너무나 광활해서 마음속에 일렁이는 파도를 잠재우지 못할 때도 있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저자의 이동 경로, 일상에서 내면의 깊은 곳까지 아우르는 저자의 항해 때문이었다. 저자는 배 한 척을 가지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 배는 가끔 필요에 따라 목적지에 정박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흐름에 맡겨졌다.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었고, 곳곳에서 들려오는 수 많은 이야기를 뱃전에 차곡차곡 실었다. 뱃전에는 많은 이야기로 넘쳐났다. 신비로운 이야기,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 감동과 기쁨이 밀려오는 이야기, 모호함을 던져주는 이야기 들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공통된 무엇을 찾는다기 보다는 다양한 삶의 잔상들로 인해 일순간 나이를 먹은 느낌이었다. 내가 살아온 삶의 구석구석에 박혀 있는 추억들을 모두 꺼내놓은 것 같았다. 그 추억들로 인해 나는 회한의 깊은 주름을 간직한 노인이 되어 갔다.

 

  저자가 들려주는 얘기를 들으면서 내 마음에는 어떤 소리들이 났을까. 저자가 운행하는 배에 올라타기 전에 갖었던 온갖 잡생각들은 모두 사라지고, 어느새 내 눈에 보이지 않은 것들 까지 바라볼 수 있는 심연의 눈을 가지게 되었다. 갈수록 염세주의적이 되어간다던 저자의 신에 대한 경외심이 그런 세계로 이끌었던 것 같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다른 신을 존중해 주려는 모습, 생각을 거듭해도 뜻을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로 통해 나의 눈은 깊어져 갔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더라도 저자가 펼쳐놓은 광활한 세계를 두루두루 살펴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자신이 경험한 것, 타인에게 들은 얘기들을 통해 저자는 여전히 삶을 향해 도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익숙한 단란함을 떨치고 도전에 응하도록 우리를 충동질하는 힘때문에 삶의 의미를 좇게 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지상에서의 삶이 덧없다 할지라도 삶의 의미를 좇고 독자들에게도 일깨워주는 저자. 아주 오랜만에 만난 저자의 세계에 푹 빠진 느낌이었다. 저자와 나 사이에 긴 공백기가 있었지만, 그 세계는 여전히 <연금술사>처럼 신비로웠다고 말하고 싶다. 현실적인 이야기, 삶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이 더 많았지만, 그 가운데서 신비로움을 좇아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나의 욕망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 지음, 송연석 옮김 / 갤리온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나에게 어떤 이슈 거리가 있거나 심경의 변화가 생겼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말하기 보다 개인 블로그에 토로하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행하던 행동이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변화에 자연히 적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일들을 토로할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장에 끄적이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해서 그 행위가 무가치 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자신을 드러내려고 맘 먹으면 얼마든지 드러낼 공간이 생겼다는 말이다. 나 또한 그러한 공간을 만나서(블로그)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나눌 수 있었다. 가끔 컴퓨터를 끄고 혼자 생각에 빠질 때면 온라인 세상과 오프라인 세상을 어떻게 생각해 봐야 할지 난감해 지기도 한다. <웹 진화론 2> 라는 책을 통해 두 공간 모두 무시할 수 없는 세상을 살게 될거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지만, 웹 공간 뿐만이 아닌 새로운 사회의 들끓음을 어떻게 감지하고 인식해야 할까.

 

  2006년 6월, 뉴욕 주 코로나에 살던 16세 소녀는 경찰에 체포된다. 우연히 택시 안에서 주운 휴대폰 한 대 때문이었다. 휴대폰을 주웠다고 경찰에 체포까지 되다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휴대폰을 잃어 버린 여성은 중요한 고객의 명단이 저장되어 있는 고가의 휴대폰을 찾기 위해 돌려주면 사례를 하겠다는 메세지를 남겼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새 휴대폰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자신이 잃어버린 휴대폰을 주운 사람이 사진을 찍어 메일로 보내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메일 주소를 알게 되어 사정을 말하고 휴대폰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돌려 받을 자격이 없다는 인종차별적인 욕설이 답으로 돌아왔다. 그런 실랑이가 며칠 간 계속 되자 휴대폰 주인은 간단한 웹 페이지를 만들어 '도난당한 사이드킥(휴대폰 상품명)'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리고 그 웹 페이지를 친구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취지는 간단했다. '분실물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에티켓'을 시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일은 생각보다 훨씬 크게 퍼져 나갔다.

 

  그 웹페이지는 퍼지고 퍼져서 수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었다. 휴대폰 주인은 자신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소녀가 보낸 협박을 업데이트 했고, 많은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뻗쳐 왔다. 순식간에 이슈가 된 이 사건에 결국 경찰까지 개입을 하게 되었고, 분실이 아닌 도난으로 처리되어 그 소녀는 체포된 것이다. 순식간에 군중이 몰려들었고, 공감을 했으며, 휴대폰을 찾게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저자는 5년 전만 해도 이 사건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그때는 그녀가 사용한 웹이라는 도구가 없었을 뿐더러,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사회구조 또한 갖춰져 있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휴대폰을 주운 소녀는 자신의 행위는 제쳐두고라도, 그 휴대폰 뒤에 몰려 있는 수백만명을 예측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해야 했을까?

 

  이런 사례는 수없이 많았다. 저자는 다양한 사회의 변화를 예를 들어가며 어떠한 시대를 맞고 있는지 드러냈다. 거기에는 소비자라는 집단, 순식간에 만들어진 대중앞에 무릎을 꿇은 기업, 정부의 사례도 있었다. 대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시대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런 세력은 순식간에 사람들을 모았다가 해체시키며, 뜻을 함께 했을 때의 위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 두명의 사람들이 뭉쳤을 때는 무시하던 단체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을 때 내는 목소리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전에 알고 있던 사람들이며, 같은 뜻을 품은 사람들이었을까? '도난당한 사이트킥'의 여성처럼 도구를 통해 낯선 사람들을 불러 보아 한 목소리를 낸 것 뿐이었다. 그런 도구는 웹, 휴대폰, 메일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도구의 씌임에 따라 사회도 변하고 있었고, 대중의 움직임 또한 달라졌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뿐만이 아닌, 지식을 드러내는 공간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네티즌들은 웹 2.0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정보를 모아 보여주기만 하는 웹 1.0에 비해 웹2.0은 사용자가 직접 데이터를 다룰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정보를 더 쉽게 공유하고 서비스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블로그(Blog), 위키피디아(Wikipedia), 딜리셔스(del.icio.us) 등이 이에 속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는 유저가 편집할 수 있는 웹사이트다. 어떠한 정보를 올려 놓으면 그것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다. 간단하지만 백과사전을 능가하는 정보를 창출해 내는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엉터리 글을 도배시키는데 더 어려움이 따르는 구조였다. 거기다 책으로 만들어진 백과사전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으니, 이제 사람들은 무언가를 알고자 할 때, 무거운 백과사전을 펼치기 보다는 컴퓨터 앞에서 검색을 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기존 사회와 비교 하자면 엄청난 변화인데,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진화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진화의 뒤에는 새로운 대중의 역할도 있었으리라. 저자는 유저 한명이 생길 때마다 소비자이자 생산자인 사람이 한명씩 늘어나는 셈이라고 했다. 1대 1로, 또는 다수 대 다수로 협력할 수 있는 독자의 등장은 새로운 미디어의 주체, 즉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대중의 탄생을 의미하는 거라고 말이다.

 

   사회의 변화, 대중의 변화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진 것일까. 휩쓸려 가다보니 어느새 내가 이러이러한 위치에 있었다고 맹목적으로 대답하는 현대인에게, 저자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변화의 법칙을 일깨워 주기도 했다. 네트워크 법칙, 20대 80의 법칙을 통한 오픈소스의 효용을 경험할 수 있었다. 어쩌면 생소한 용어와 새로운 접근이 낯설어 어렵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지부진한 이론들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풍부한 예시가 있고, 그런 예시를 통해 저자가 전해주고자 하는 것들보다 더한 가치를 일궈내기도 했다. 한 권의 책을 읽었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책의 느낌을 정리하고자 하는 내가 일부분만 들춰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생각들은 당연한 사실이다. 통찰력 있게 이 책의 요점을 끌어낼 수 없을 뿐더러, 내가 느끼는 것 또한 무한하기에 나의 얕은 지식으로 모두 다 드러낼 수 없다. 그러나 저자가 말했던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의 저변에는 웹이라는 공간이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터넷 소사이어티 이사였던 스콧 브래드너는 "인터넷에서는 뭔가를 시도해 보기 앞서, 자신의 시도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남들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 라고 피력했다. 그런 공간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었기에 자연스러운 변화에 따라가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런 공간 속에서 내가 어떠한 사회의 일원이 되고 대중이 되는 가는 각자의 인성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재능까지 발휘된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우정의 재발견 - 원숙한 삶을 위한 친구의 심리학
가와이 하야오 지음, 박지현 옮김 / 동아시아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기분이 꿀꿀할 때면 책 사냥을 한다. 말 그대로 나의 기분에 따라서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읽는 것이다. 내 책장에 안읽은 책이 400권이니, 쌓아둔 책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주로 읽기가 오래 걸리지 않은 책들을 고르는데, 그렇다보니 얇은 책들과 흡인력 빠른 책들을 읽게 된다. 그렇게 내 손에 잡힌 책이 <우정의 재발견>이다. 제본이 잘못 된 책을 메일로 문의했더니 새 책과 함께 보내준 책이었다. 이 책이 내게 오게 된 배경을 알고 책을 읽게 되면 책사냥의 재미가 배가 된다고나 할까. 내 방에서 펼쳐지는 책으로의 여행은 그래서 놓치기 싫고, 책 속의 향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책 제목을 보니 조금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우정을 재발견 하다니. 거기다 부제목은 '원숙한 삶을 위한 친구의 심리학'이었다. 심리학자가 우정에 대해, 친구에 대해 쓴 책이었다. 심리학자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주관적인 생각을 펼칠 수 밖에 없을 터인데, 어떻게 원숙한 삶을 위해 친구를 삽입한다는 걸까. 미셸 투르니에의 <짧은 글 긴 친묵>에는 우정과 사랑에 대해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는 부분이 나온다. 우정은 주고 받는 것이고, 존중하는 마음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과 우정의 비교가 모순 같이 들리는 설명 속에서 나 또한 어리둥절 했지만, <우정의 재발견>도 결국은 같은 내용이었다.

 

  사람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차이를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말로 표현되어서 더 아름다워지는 감정이 있는가 하면, 더 악화시키는 것도 있다. 내가 볼땐 이 책은 더 악화시키고 있었다. <짧은 글 긴 침묵>에서 선생님이 설명했던 사랑과 우정의 편협한 비교가 <우정의 재발견>에서 느껴졌다.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한다는 젊은층의 고민에서 시작되는 우정에 대한 견해는 지극히 개인적이었다. 메마른 감정으로 써 내려간 듯한 글 속에서 우정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볼 틈이 없었다. 이 책은  '진정한 우정을 위해 알아야 할 것들','우정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들','경계를 초월한 우정의 아름다움' 의 소제목을 달고 3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지만 거창한 부제목에 부응하는 주제를 던져주지 못하고 있었고, 해답 또한 모호했다. 특정 집단이나 인물의 문제를 화두로 삼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안고 있는 깊은 감정의 얽힘을 겉핥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뻔한 질문 속에 따라오는 뻔한 대답들이 식상했다.

 

  그의 질문과 의문들은 한번쯤은 생각해 봤던 것들이었다. 친구와 선물의 관계, 남녀 사이에 우정이 존재하는가의 여부, 친구의 출세를 기뻐할 수 있을까란 질문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고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질문에 반해 돌아오는 해답들은 시원찮다. 오가는게 있어야 친구 사이도 유지되고, 성적인 관계를 '졸업'해야 우정으로 지낼 수 있다면서 엉뚱한 예시들을 늘어 놓는다. 물론 현실을 직시하는 직설적인 대답이 될 수도 있다. 이성적인 생각으로 써가다 감정에 치우쳐 마무리 짓는 모습이 맘에 안들었을 수도 있다. 혹은 우정이라는 감정을 미화시키지 못한데서 오는 불만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논리 중심도 아닌, 감정 중심도 아닌 애매모호한 글 속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인간은 고독을 견뎌내므로써 위대해 질 수 있다고 한다. 동지가 있어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이 역설을 얼마나 제대로 인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이 말을 저자는 지금껏 애둘러 말해 온 것이 아닐까.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나에게 우정은 어떠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저자처럼 무미건조한 대답이 들려오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많은 교수들은 퇴임할 때 <마지막 강의>를 한다고 한다. 랜디 포시는 퇴임이 아닌 삶과의 이별을 하기 위해서 40대 후반의 나이에 <마지막 강의>를 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세 아이가 있었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너무나 즐겁게 살고 있었다. 어떠한 순간에도 즐거움을 잃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그는 강의에 임하면서도 농담을 쉴새없이 던질 정도로, 자신의 아픈 몸을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건강하다면서 팔굽혀 펴기를 하며 좌중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다. 췌장암에 걸린 것,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스스럼 없이 말하면서도 오늘 강의의 중점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당신의 어릴적 꿈을 진짜로 이루기>. 그는 자신과 함께 할 수 있는 부인의 마지막 생일 날, 강의를 위해 피츠버그로 날아갔다. 어느 누구도 랜디를 막을 수 없었다. 부인 재이의 만류에도 이 강의는 아이들에게 남기는 강의라고 하자 허락했으니, 그에게도 삶의 마무리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책을 읽어 나가면 나갈수록, 도대체 <마지막 강의>에 대한 내용은 언제 나오는 걸까 하고 답답해 했다. 그러나 강의 내용을 이미 읽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강의에서는 없었던 내용들이 책에서 채워져 있었으므로, 그 사실을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동영상 CD를 보고 책을 읽었더라면 그 부분이 이해가 갔을지 몰라도, 책을 읽고 동영상 CD를 보았기에 만들어진 결과였다. 그래서 책과 동영상을 같이 얽혀서 이야기 하려 한다. 책만 읽었거나, 동영상만 보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들이 참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딱딱한 문체와 강의 내용임을 인식하지 못한데서 오는 무지함으로 감동을 받지 못했다. 그가 <마지막 강의>를 준비하는 모습, 마지막 강의 내용에 살을 덧붙이는 모습을 보고 평범한 한 남자의 일생을 보는 거라 생각했다. 삶의 끝자락에서 혼신을 다해 타인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려 하는 그의 모습을 알아채지 못한 채 말이다. 거기다 그가 다른 사람의 꿈이 어떻게 이뤄 갔는지 예를 들어 주는 부분에서는 질투를 하고 말았다. 직업이 교수이다 보니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사례가 많이 나왔는데, 자신이 속한 대학, 학생들을 너무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너무 젠체하는게 아니냐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부끄러워 졌다. 이미 고인이 된 그에게, 이 책이 어떠한 의미로 남겨짐을 알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미안해졌다. 자신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자신의 발자취를 드러냈던 것이고, 자신이 지켜본 학생들의 변화를 지켜봤기에 사례로 드러냈을 뿐이었다. 요점이 무엇인지 못하고 다른 사람 눈에 들어간 티끌만 찾고 있었으니 제대로 감동을 받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른 후, 동영상을 보지 않으면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노트북을 열어 그의 강의를 들었다.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영상으로 흐러나오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책으로는 느낄 수 없었던 그의 유머와 열정적인 눈빛, 아픈 사람 같지 않은 기쁨이 가득한 표정만으로도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강의는 무척 빠르게 흘러갔다. 그가 보여줄 것은 제한된 시간안에 한정되 있었으므로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 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그의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한 행동은 울음보다 웃음이었다. 책을 읽었기에 그가 하는 농담을 수긍할 수 있었고, 천부적으로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의 강의를 듣는 것 만으로도 즐거웠다. 강의를 마친 후 아내와 포옹하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지만.

 

  그렇다면 책과 동영상에서 그가 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당신의 어릴적 꿈을 진짜로 이루기 라는 건 알지만, 그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했는지,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는 몽땅 빼 먹고 있다. 그는 먼저 자신의 어릴적 꿈을 나열해서 보여주었다. 그가 나열한 6가지의 꿈이 무슨 말인지 피부에 와닿지 않았을 뿐더러, 실현 가능성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가 그 꿈을 모두 이뤄가는 모습을 보고(두 가지는 책이 씌여진 이후에 이루었다고 한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중력상태에서 있어 보기, 디즈니의 이매지니어 되기, [세계백과사전]에 내가 쓴 항목 기재하기가 가능해 보이는가? 그는 자신이 교수가 되었기 때문에 쉽게 이룰 수 있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교수가 되라고 했지만 모두 알 것이다. 그 자신도 '장벽은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절실하게 원하는지 깨달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음을. 기회가 왔을 때 잡아 챘음을 말이다.

 

  그 다음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달라는 말을 전하고 있었다. 자신이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받았던 도움을 떠올리며, 그런 도움이 널리 퍼지길 원했다. 컴퓨터공학 교수로써의 도움을 주기 위해 유용한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하며, 좀 더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자신의 소망이었다. 그의 노력으로 정착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은 삶을 내려놓게 되었으니 아쉬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이야기를 한 뒤, 랜디 포시는 질문한다. "당신의 헤드 페이크는 찾았습니까" 라고. 헤드 페이크란, 배우는 사람이 다른 흥미로운 것을 배우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놓고 실제로는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것처럼, 이 강의를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헤드 페이크를 찾았냐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것이다. 랜디 포시는 <마지막 강의>를 마치면서 오늘의 강의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는 것에 관해서였다고 말했다.


"이 강의는 어떻게 당신의 꿈을 달성하느냐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이 강의는 어떻게 당신의 인생을 이끌어갈 것이냐에 관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인생을 올바른 방식으로 이끌어간다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운명이 해결해줄 것이고 꿈이 당신을 찾아갈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교수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삶'에 관해서만 이야기 했다. 너무나 유쾌하게, 즐겁게 강의를 하는 저 사람은 생명이 꺼져가면서도 꿈을 이뤄보라고 용기를 주고 있었다. 2008년 7월 25일,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강의는 자신의 아이들에게만 남겨진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젠 나의 헤드 페이크를 찾을 차례인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8-11-05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고 싶은데~~ 아직 안 샀어요. 밀린 책이 많아서요~~~

안녕반짝 2008-11-05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에 계기가 되어서 보게 되었어요. 꼭 동영상 씨디 있는 책을 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