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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평점 :
이 책을 읽을 때 나의 모습은, 이틀 동안 감지 안은 머리를 돌돌 말아놓고 나도 모르게 올라가는 손가락으로 박박 긁고 있을 때였다. 그때 '작가는 항상 안경을 걸치고, 절대 머리를 빗는 법이 없다.' 라는 문장과 마주쳤다. 어머니가 작가가 되겠다는 저자를 타이르자 저자가 작가에 대해 조사한 바를 나열한 첫 문장이었다.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해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고 말았지만, 1960년대 초에 작가에 대해 조사한 내용은 진지하면서도 우스웠다. 파울로 코엘료의 첫 산문집이라고 해서 약간 긴장하고 펼쳤는데, 프롤로그를 읽고 마음을 느긋하게 놔버렸다.
파울료 코엘료가 국내에 바람을 일으키기 전인 2002년 말에 <연금술사>를 읽었다. 나름 감명을 받아 다음 작품도 읽어보려 기억하고 있던 작가였다. 그러던 중 <연금술사>는 붐을 일으켰고,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저자에 관한 나의 관심은 깊은 심연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언제 바람이 잦아지나를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그의 작품이 출간될 때마다 싸그리 무시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선물 받았다. 선물 받지 못했다면, 여전히 구경만 하고 있을 작가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연이 있는 작가의 책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은 나름대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편견을 섞지 않고 읽을 자신이 없었고, 작가와의 재회에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냥 책을 읽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물음을 던질 수 있겠지만, 소소한 추억으로 간직해 오던 작가가 주목 받게 되면 나같은 소심한 독자는 혼란에 빠지게 마련이다.
이런 사연이 있었으니,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 앞에서 얼마나 수선을 떨었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프롤로그에서 그동안 쌓아온 시샘과 편견이 간단히 무너져 버렸으니 허무했다. 소설이 아닌 산문이었기에 더 편안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르지만, 이 책으로 인해 저자와 나름 성공적인 재회를 일궈냈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저자가 겪은 일화,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일화와 전 세계 신문과 잡지에 게재된 것들이라고 했다. 독자들의 요청으로 책으로 묶이게 되었다고. 이 책의 탄생 배경만 살펴보더라도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질지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저자의 책을 한 권 밖에 읽지 않은 상태였고, 공백기도 6년이나 되어서 그의 글이 어떻게 다가올지 무척 궁금했다. 조심스레 넘기는 종잇장들 사이로 펼쳐지는 저자의 내면. 타인의 이야기든, 들은 이야기든 저자를 거쳐 왔기에 그 모든 이야기는 저자를 통해 재조명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작가라면, 독자들은 그의 소소한 일상을 무척 궁금해 한다. 그의 일상을 느끼며 함께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에 커다란 감회를 느끼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 독자들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파울로 코엘료는 자신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출발했다. 자신의 삶은 서로 다른 세 악장으로 이루어진 교향곡 같다던 저자는 <아무도 없이> 혼자일 때의 일상으로 이끌었다. 일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을 만끽할 때와, 인터넷으로 세상과 연결된 자신을 비교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저자. 잠시나마 그의 일상을 들여다 봄으로써 평안함을 느꼈다. 어떠한 글이 펼쳐지던지간에 책의 제목처럼 흘러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초반에 이 책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감지해서인지 모든 것이 순탄했다. 글을 써내려간 저자의 행위가 과거의 일이 되어 독자에게 전해지는 것도, 글을 읽고 또 다른 세계를 만끽하는 독자도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랐다. 그러나 그 세계는 너무나 광활해서 마음속에 일렁이는 파도를 잠재우지 못할 때도 있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저자의 이동 경로, 일상에서 내면의 깊은 곳까지 아우르는 저자의 항해 때문이었다. 저자는 배 한 척을 가지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 배는 가끔 필요에 따라 목적지에 정박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흐름에 맡겨졌다.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었고, 곳곳에서 들려오는 수 많은 이야기를 뱃전에 차곡차곡 실었다. 뱃전에는 많은 이야기로 넘쳐났다. 신비로운 이야기,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 감동과 기쁨이 밀려오는 이야기, 모호함을 던져주는 이야기 들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공통된 무엇을 찾는다기 보다는 다양한 삶의 잔상들로 인해 일순간 나이를 먹은 느낌이었다. 내가 살아온 삶의 구석구석에 박혀 있는 추억들을 모두 꺼내놓은 것 같았다. 그 추억들로 인해 나는 회한의 깊은 주름을 간직한 노인이 되어 갔다.
저자가 들려주는 얘기를 들으면서 내 마음에는 어떤 소리들이 났을까. 저자가 운행하는 배에 올라타기 전에 갖었던 온갖 잡생각들은 모두 사라지고, 어느새 내 눈에 보이지 않은 것들 까지 바라볼 수 있는 심연의 눈을 가지게 되었다. 갈수록 염세주의적이 되어간다던 저자의 신에 대한 경외심이 그런 세계로 이끌었던 것 같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다른 신을 존중해 주려는 모습, 생각을 거듭해도 뜻을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로 통해 나의 눈은 깊어져 갔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더라도 저자가 펼쳐놓은 광활한 세계를 두루두루 살펴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자신이 경험한 것, 타인에게 들은 얘기들을 통해 저자는 여전히 삶을 향해 도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익숙한 단란함을 떨치고 도전에 응하도록 우리를 충동질하는 힘때문에 삶의 의미를 좇게 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지상에서의 삶이 덧없다 할지라도 삶의 의미를 좇고 독자들에게도 일깨워주는 저자. 아주 오랜만에 만난 저자의 세계에 푹 빠진 느낌이었다. 저자와 나 사이에 긴 공백기가 있었지만, 그 세계는 여전히 <연금술사>처럼 신비로웠다고 말하고 싶다. 현실적인 이야기, 삶의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이 더 많았지만, 그 가운데서 신비로움을 좇아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나의 욕망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