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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적들 1 -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특별한 이야기
이타 핼버스탬, 주디스 레벤탈 지음, 김명렬 옮김 / 바움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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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등학교 때, 나의 관심은 온통 음악이었다. 어느 날, 수중의 용돈을 탈탈 털어서 새로 나온 팝 컴필레이션 음반을 사가지고 집에 왔다. 뿌듯한 마음에 언니한테 자랑을 했더니, 언니가 흠짓 놀랐다. 나는 당연히 최신 음반을 사와서 놀라나 보다 했더니, 언니가 음반 한장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내가 사온 음반이랑 똑같은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어이없어서 웃다가 음반살 때 나한테 말하지 그랬냐고 따지기도 했다. 지금도 언니집에 가면 그 음반이 있는데, 볼때마다 10년 전 그날 일이 떠오르곤 한다. 저자는 아버지에게 선물하기 위해 무리를 해서 책 한권을 사왔는데, 아버지도 딸에게 주기 위해 똑같은 선물을 사왔다는 이야기를 서문에서 밝혔다. 그 이야기를 읽고 보니 추억이 떠올랐던 것인데, 그런 일들이 우연으로만 치부해야 할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짧막한 글들과 여러 사람의 경험이 들어가 있는 사연들로 묶어진 <작은 기적들> 같은 책 말이다. 이 책에는 순간의 찰나로 인해 가족과 만나고, 목숨을 구하는 일들을 기록해 놓았는데 1권을 읽는 내내 힘이 들었다. 내가 관심을 갖지 않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득했고, 헤어졌거나, 어쩔 수 없이 떨어져 버린 가족들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기이한 방법으로 가족들을 만나는 이야기들은 내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런 애틋함을 느낄 일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기이한 일들을 다 끌어 모아 책으로 엮어 놓았다는 비난 까지 서슴없이 하며, 그들의 심정은 헤어리지도 못한 채, 오만한 시선으로 책 속의 사연들을 읽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누그러질 기세도 없이 만남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가족관에 이루어진 행운, 우연, 기적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았다. 식상하게 읽어 나가면서도 종종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연들을 만나곤 했었는데, 이내 잊어 버리고 말았다.

 

  1권을 읽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 2권을 읽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조문을 다녀온 일이 있었다. 지인의 일이었기 때문인지 2권에 좀 더 마음을 열고 읽었음은 물론, 그 사연들에 푹 빠져서 헤어나올 줄을 몰랐다. 순식간에 읽어 버려서 많은 사연들이 범벅이 되어, 구분할 수 없지만 세상 이야기를 모두 들은 느낌이었다. 결말을 대부분 예측할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서서히 그 이야기들을 믿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시큰둥 했던 처음과는 달리, 그러한 일들이 세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자잘한 에피소드부터, 세월이 많이 흐른 뒤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까지 다양했다. 그 이야기들은 쉽게 씌여진 것 같았지만, 그 사람들 마음 속에 담겨 있는 아픔, 추억, 회한, 사랑의 감정들은 글로 이끌어 내기에 부족했다. 저자는 그런 감동을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해 주려 애쓰고 있었지만, 그 상황에 푹 빠져 일원이 되어야만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저자는 입구까지만 독자들을 인도했고, 감정을 맛보는 일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였다.

 

  1권에서는 가족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가 펼쳐 졌다면, 2권에서는 여성의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는 놀라운 이야기라는 부제목이 붙여져 있다. 부제목을 보고 어떠한 이야기가 실려 있을지 의아했는데, 1권과 단락의 주제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가족에서 벗어나 좀 더 광범위한 행운과 우연의 일치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반세기가 지나서야 이루어진 사랑도 있었고, 가족의 이끔으로 목숨을 건진 이야기, 만남과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인정해야 비로소 인간의 감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나의 감정 상태가 조금은 달라진 후에 새롭게 다가오긴 했지만, 이 이야기들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했다. 어쩌면 현재의 나도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우연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자, 과거에 내가 맺었던 사람들과의 우연들을 되짚어 보기도 했고, 기억도 희미한 사람들과의 재회가 일어날 수 있을까란 생각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상이었다. 평생을 살면서 이런 추억쯤은 하나씩 가지고 있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온전히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잠시 스쳤던 인연에서부터, 낯선 이들과의 인연의 이야기는 각자가 갖고 있는 느낌들이 달랐다. 하지만 대부분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줬으며, 이끌었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나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서는 피로 맺어진 끈끈함 때문인지 놀라운 방법으로 만나곤 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평상시와는 조금 다른 나일지라도, 순간의 자신을 믿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언가가 마음을 자꾸 어떤 방향으로 이끌거나, 무엇을 해야 겠다라는 생각을 들 때 그런 기적들은 많이 일어났다. 그것을 기적이라고 말해야 할지, 신의 보살핌이라고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그런 일을 맛보았다는 것이다. 나처럼 똑같은 음반을 같은 날 사온다거나, 전쟁 때문에 잃어버린 가족을 아주 우연히 만난 것도 그 안에 포함되었다.

 

  1권과 2권을 너무 다른 태도로 읽었기에 왜 그랬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1권을 읽을 때는 이 책을 순식간에 읽어 버리고 싶은 마음만 있었기에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태도로 억지로 읽어나갔다. 그러다 2권을 읽기 전 지인에게 조문을 다녀왔고, 마음이 조금은 착찹한 시점에서 읽었기에 책의 본질을 만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책을 읽는 태도만 보더라도 어떠한 마음으로 읽느냐에 따라서 내용이 확연하게 달라진 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변화를 맛본 사람들이다. 그 변화에는 사람들과의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그런 인연으로 인해 삶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많이 달라졌다. 팍팍했던 마음에 감동과 눈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상을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펼쳐질 미래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살 때에 그러한 기적들을 만나고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그런 상상만으로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설레임으로 하루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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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짧막한 이야기가 참 많이 들어 있는 책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해 놓았기에, 처음엔 무심했었습니다. 하지만 읽어나갈수록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 많은 이야기 중에서 나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 힐링 다이어리


•  서평 도서와 동일한 분야에서 강력 추천하는 도서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가족과의 소원한 관계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습니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마음을 담은 격려의 말 한 마디는 어느 순간 예언이 되기도 한다.(작은 기적들 2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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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의 죽음 ㅣ 그르니에 선집 3
장 그르니에 지음, 지현 옮김 / 민음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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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랜만에 서점을 갔다. 나의 주머니 사정은 얇팍했지만, 책을 구경한다는 그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책을 둘러보다 한 권의 책을 보자마자 뽑아 들었다. 장 그르니에의 <어느 개의 죽음>이었다. 예전에 그 서점에서 <섬>을 사간 적이 있었다. 이름도 많이 들어본 작가에다 그 작품에 대한 명성도 자자해서 무척 궁금했었는데, 서문을 읽다가 덮고 말았다.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알베르 카뮈의 찬사가 그득한 책이었지만, 정작 나는 한발짝도 다가가지 못했다. 지인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어느 개의 죽음>부터 읽어보라고 했다. 그 말을 잊고 있다가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한 순간 생각이 난 것이다. <섬>에 대한 추억 때문에 약간 긴장하고 책을 펼쳤는데, 쉼 없이 한 순간에 다 읽어 버리고 말았다.

 

  저자는 자신이 키우던 개, 타이오에 대한 회상을 하고 있었다. 안락사를 시켜야만 했던 아픈 기억과 타이오로 인해 행복했던 기억들이 맞물려 있다. 그리고 타이오의 빈자리에 대한 쓸쓸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짧게 써내려 간 글 속에는 타이오의 이야기가 그득하지만, 그 외의 성찰이 담겨 있다. 타이오를 통해 시각을 넓혀 인간의 삶과 연결 시킨다고나 할까. 타이오의 이야기와 동떨어진 느낌이 묻어나는 글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타이오의 죽음에서 비져 나오는 생각들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타이오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면서 그는 '대자연은 우리에게 세상에서의 첫날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날을 선사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맞이한 뒤 (중략)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을까?'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동물과 인간 구별없이 던지는 의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의 죽음을 맞이해 본 사람이라면, 저자의 이러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의문도, 타이오에게 던지는 안타까운 마음도 말이다.

 

  그는 자신이 키우던 개의 죽음을 통해 일방적인 결과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개의 죽음으로 인해 슬프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글로 타이오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 뿐이다. 타이오의 이야기는 저자의 이야기가 되어 갔다. 타이오를 기르면서 품었던 자잘한 감정들과 불편, 행복등을 나열하는 그는 애처로워 보인다. 그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한 마리의 개가 떠남으로써 삶이 위축되어 보이기도 한다.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안락사를 시키면서 마음 아팠을 그의 내면은 곳곳에 드러난다. '개에 대해서 감상적으로 떠벌이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지만, '부드럽고, 바스라져 버릴 정도로 여린 돌조각들에, 단단한 칼날도 무뎌지는 것'의 행태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경험했다고 말하고 있다. 주워다 기른 개에게서 느끼는 애정이 이처럼 남달랐기에 죽음에 대한 그의 마음은 더 처연 했을 것이다.

 

  그가 타이오에 대한 애정과 죽음에 보내는 잔상들도 잔상이지만, 그 안에서 비져나오는 삶의 성찰도 남달랐다. 타이오가 원하는 것을 뿌리칠 수 없음에 선행에 대한 욕구를 말하고, 개가 자신에게 갖는 애착을 통해 인간의 평등한 처우를 보려고도 했다. 오로지 죽음에 대한 슬픔이 가득했다면, 청승맞았을 글이 담담하게 비춘 이유이다. 누구나 한번쯤 자신이 기르던 동물들의 죽음을 경험해 봤을 것이다. 나도 어렸을 적 길렀던 개의 얼굴이 아직도 떠오르며 종종 그리워 할 때가 있다. 나에게는 특별했기에,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니 팔려 버린 개 때문에 무척 슬퍼했었다.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떠나 버린 개에 대한 슬픔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정과 애착으로 범벅이 된 그리움 뿐이었다. 저자처럼 많은 것을 끌어 당겨 엮으며 생각할 겨를도 없었거니와, 그런 밑거름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나이였다. 이제서야 조금씩 함께 한 시간이 행복했다고 고백할 수 있지만, 역시 헤어짐 앞에서는 처연해 질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오직 사랑이란 행위를 통해서만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한 마리의 개의 죽음을 통해 저자는 타이오를 사랑했고, 그 사랑으로 인해 진정한 자신을 만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통해 드러나는 타이오에 대한 추억은 철처한 타인의 기억이지만, 그 추억이 아름다운 건 사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랑 때문에 저자는 타이오와 함께 한 시간이 즐거웠고, 타이오가 없는 생활 속에서도 타이오를 추억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 주변의 사라짐에 대해서 이렇게 처연해 질 수 있다면. 저자의 슬픔까지도 부러워지는 아직도 철이 덜든 나 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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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침개 전도 이야기 - 행복한 안내자로 살아가는 순복음노원교회 전도자들의 증언
유재필 지음 / 두란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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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연말이 되어서 그런지 마음이 헛헛한 요즘이다. 모든 것이 다 시들하고, 어떠한 것도 나의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하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새해가 와 있다는 두려움이 일기도 하다. 그렇게 시간을 허무하게 보내 버리기는 싫다고 하면서도,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헷갈린다. 특히나 최근들어 나의 신앙에도 기복이 심해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나를 내려놓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돌볼 겨를도 없이, 나의 신앙을 추스리기 바쁜 요즘 <부침개 전도이야기>라는 책을 만났다. 책 제목만을도나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올해도 여김없이 한 명도 전도를 못했고, 한 영혼을 신경쓰기 보다는 내가 먼저 바로 서야 했다.
 

  그래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읽었다. 전도의 불이 일어난 교회의 이야기일지라도, 나의 상황과는 멀다고 치부해 버렸다. 노원구에 위치한 교회로 10만 성도를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순복음노원교회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기적인 신앙을 가지고, 나 하나 살기 바쁜 요즘에 그런 비전을 품는 다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강팍한 마음에서 책을 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초반부터 나의 마음은 턱턱 막히기 시작했다. 현재 내가 갖고 있는 병폐를 콕콕 찔러 주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생의 문제가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어갈 해법의 열쇠를 구하는 지혜이다'라는 목사님의 말씀 앞에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연말을 핑계대고, 나의 신앙이 주춤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해법을 구하기 보다 회피해 버리기 바빳던 나의 모습이었다. 그랬으니 전도의 사명을 가진 순복음노원교회가 은혜롭게 다가왔겠는가. 찔림을 받으면서도,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딴청만 부리고 있었다.

 

   이 책에는 많은 사연이 있었다. 어떻게 한 영혼을 구하게 되었는지,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고, 수 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도자의 마음 밑바탕에 깔려 있는 첫 번째 마음은 사랑이었다. 사랑이 없이는 생면부지의 타인을 전도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사랑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랑은 어떠한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으며, 그 사랑을 닮아가기 위한 마음이야말로 하나님 사랑에 가까이 다가가는 행위이다. 그런 마음을 품고 타인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는 것. 역시나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나눠 주겠노라는 마음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의 제목인 <부침개 전도>도 이웃을 향한 사랑 안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고, 꾸준한 전도를 통해서 결실을 거둘 수가 있었다. 목사님은 '전도용품을 가지고 현장으로 나가는 교인들의 뒷모습이 십자가 군병들처럼 듬직하지만, 때로는 세상 속에 들어가는 양들처럼 애처로워 보인다'고 하셨다. 그들에게 사명감과 사랑이 없었다면, 그 일을 해 낼 수 있었을까. 전도를 해 본 사람만이 전도를 한다라는 말처럼, 전도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 많은 성도들 마음 속에 있었다. 많은 교인들의 간증을 들어 보면 어찌나 사연들이 기구하고, 애처로운지 그런 삶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이었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을 찾았고, 매달렸다. 그 가운데 각 구역에서는 그들을 위해서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뜨거운 기도를 끊임없이 해주었다.

 

  또한 전도 안에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비전이 있었다. 노원구의 특징을 파악하며, 외국인 노동자과 장애인 영혼 구원에 힘썼다. 하나님의 자녀를 허물없이 사랑하는 교인들의 모습에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 주변의 복음화를 외치면서도, 그런 복음을 전해본 적이 없었다. 또한 사람을 골라가며 전도해 보려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각자가 받은 성령을 타인에게 서슴없이 나눠주는 교인들을 보면서, 그런 모습이야말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모습이다라고 느꼈다. 간증을 한다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일인데, 간증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도 희망을 나누어 주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 졌다.

 

  간증만 실려 있다면 지루했을 내용에, 목사님의 적절한 설명과 객관적인 입장에서 씌여진 글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하나님을 드러내려는 목사님이 있었기에 아름다운 마음을 품은 성도들이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랬기에 이 책은 순복음노원교회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였다.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자, 나와 동떨어진 세계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큰 비전을 세울 수 없더라도, 내 자신이 먼저 바로 서고 서슴없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신앙 생활을 하라고 했으면, 지쳐 쓰러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나의 어려움을 알고 득달같이 달려 들어 기도해주는 교인들과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했다. 하나님을 붙들고 매달릴 때, 신비한 일이 일어난다는 얄팍한 믿음을 보지 말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길 원한다. 순복음노원교회의 이야기는 그런 간증과 하나님의 사랑, 비전이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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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의 푸른독서노트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무엇 때문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미셸 투르니에의 책을 검색하다 신간이 나온 소식을 접한 것이다. 거기다 저자의 독서 노트라고 하기에 구미가 당겼다. 책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면서, 어떠한 책을 선택해서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작가 들은 과연 어떤 책을 읽을까가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셸 투르니에고 예외는 아니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책들이 무조건 좋을 거라는 받아 들임보다, 책에서 느꼈던 잔상들을 들춰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들뜨게 했다. 글을 쓰는 작가의 책에 관한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가 생기기에 충분한 얘깃거리였다.

 

  도대체 미셸 투르니에가 좋아했던 책은 무엇이고, 이 책에 실려 있는 책들은 어떤 책들일까. 궁금증에 목차를 훑어 보면서 약간은 의아해 진다. 몇몇 작가는 익숙하지만, 대부분이 낯선 작가들이었고 생소했다. 그리고 그나마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은 청소년들이 주로 읽는 작품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성인의 눈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을(굳이 연령대로 구분할 필요도 없지만) 실어 놨을 거라는 추측이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거기다 저자는 서문으로 '이야기 하나 해주세요'로 시작하고 있었다. 보통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듣고 판단해 가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서문으로 파악할 수 있지만, 미셸 투르니에 답게 방대하면서도 흥미롭다. 말의 습득에서 낭독과 구술문학까지 연결해 간다. 그러면서 낭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텍스트 해석이 독자나 낭독자인 자신을 의미하므로, 더 맛깔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시의 경우에 그러한데, 아직까지도 시를 묵독하며, 읽기에 여념이 없으니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저자는 작품을 설명해 나가면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듯이, 또한 아이들의 반응을 관찰한 경험까지 덧붙이고 있다. 쥘 베른에서부터 루이스 캐럴, 키플링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지만, 책을 읽으면서 한 작가의 작품을 알아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미셸 투르니에에 의해서,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고 있으므로 소단원이 끝날 때마다 새로운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기분이었다. 그러곤 다시 세로운 세계로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옮긴이도 말했지만, 대부분의 책들이 청소년을 위한 책들인데 반해 문학적, 철학적 배경이 없으면 투르니에의 해석을 혼자서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투르니에는 그 부분을 자신의 글쓰기 재주가 부족하다고 안타까워 했다. 나 또한 투르니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충분한 흥미가 갔지만, 직접 읽은 책들이 아니였기에 해석의 난해한 부분을 많이 만났었다. 이러한 해석도 존재하는 구나라고 느끼기에는 생소한 작품이 많았고, 작품들의 특성상 이미 커버린 뒤에는 잘 읽지 않은 분야였다(요즘에서야 어린시절에 얇은 동화책으로 읽었던 책들을 성인판(?)으로 읽기는 하지만).

 

  하지만, 그가 제시한 몇가지 해석들은 수긍이 갔다. 쥘 베른을 접하기 전에 청소년 책으로 치부해 버리고 말았는데, 두툼한 해저 2만리를 읽고 나니 과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벅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투르니에는 위대한 작가 겸 지리학자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쥘 베른 컬렉션에 관심을 갖고 있는 터라 이번 기회에 쥘 베른 작품을 탐독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투르니에의 해석을 보니 궁금증을 더 생기고 말았다. 그가 수학교수였다는 사실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옥스퍼드 대학교 학장의 딸인 앨리스에서 뱃놀이 중 들려준 이야기를 엮은 것이라는 사실부터가 흥미로웠다. 나에게 그 책은 조카들에게 읽어주던 동화책 속에서밖에 존재하지 않았는데, 작가의 그런 배경과 투르니에의 색다른 해석이라니. 루이스 캐럴은 계집아이들에게 이상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여자가 되어 가면서 너무나 다른 존재로 변해 버려서 어렸을때 갖었던 우정이 예의를 차리게 되는 정도 밖에 안된다고. 투르니에는 거기에 '앨리스가 겪는 시련들을 섹스라는 암흑세계로의 추락으로 해석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라고 했다. 가끔 성장소설들을 읽다가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된 모습을 보면 낯선 감정을 느끼곤 했는데, 투르니에의 이런 해석 앞에 입이 떡 벌어진다. 어쩜 나도 그런 유혹 때문에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꼭 저자의 해석에 따라가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무니 이해가 가면 가는 대로, 그 책이 흥미로우면 흥미로운대로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는 소소한 다짐을 해도 상관없다. 단지 저자 해석을 다른 사람의 견해로 받아들이면 생소한 이야기도 훨씬 가깝게 다가올거라 생각한다. 그 작품을 쓴 작가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작품만큼이나 흥미진진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어쩔 때는 지식을 총동원해야 할 때도 있지만, 일상 속에서도 쓸 수 있다는 미미한 의미를 받기도 했다. 투르니에는 '소설을 출간하는 것은 독자에게 소설의 반을 제공하고, 독자가 책을 읽어 나가면서 머릿속에서 나머지 반을 써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저자의 소설이 아니지만, 기존 작품에 저자의 견해를 붙이고, 원 작품의 이야기를 탐독 하는 것. 그런 일련의 연결이야말로 독자들이 머릿속에서 채워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의 대상 연령대나, 아니면 나같은 어른이나 모두다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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