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투르니에의 푸른독서노트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무엇 때문인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미셸 투르니에의 책을 검색하다 신간이 나온 소식을 접한 것이다. 거기다 저자의 독서 노트라고 하기에 구미가 당겼다. 책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면서, 어떠한 책을 선택해서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작가 들은 과연 어떤 책을 읽을까가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셸 투르니에고 예외는 아니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책들이 무조건 좋을 거라는 받아 들임보다, 책에서 느꼈던 잔상들을 들춰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들뜨게 했다. 글을 쓰는 작가의 책에 관한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가 생기기에 충분한 얘깃거리였다.

 

  도대체 미셸 투르니에가 좋아했던 책은 무엇이고, 이 책에 실려 있는 책들은 어떤 책들일까. 궁금증에 목차를 훑어 보면서 약간은 의아해 진다. 몇몇 작가는 익숙하지만, 대부분이 낯선 작가들이었고 생소했다. 그리고 그나마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은 청소년들이 주로 읽는 작품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성인의 눈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을(굳이 연령대로 구분할 필요도 없지만) 실어 놨을 거라는 추측이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거기다 저자는 서문으로 '이야기 하나 해주세요'로 시작하고 있었다. 보통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듣고 판단해 가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서문으로 파악할 수 있지만, 미셸 투르니에 답게 방대하면서도 흥미롭다. 말의 습득에서 낭독과 구술문학까지 연결해 간다. 그러면서 낭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텍스트 해석이 독자나 낭독자인 자신을 의미하므로, 더 맛깔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시의 경우에 그러한데, 아직까지도 시를 묵독하며, 읽기에 여념이 없으니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저자는 작품을 설명해 나가면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듯이, 또한 아이들의 반응을 관찰한 경험까지 덧붙이고 있다. 쥘 베른에서부터 루이스 캐럴, 키플링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지만, 책을 읽으면서 한 작가의 작품을 알아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미셸 투르니에에 의해서,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고 있으므로 소단원이 끝날 때마다 새로운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기분이었다. 그러곤 다시 세로운 세계로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옮긴이도 말했지만, 대부분의 책들이 청소년을 위한 책들인데 반해 문학적, 철학적 배경이 없으면 투르니에의 해석을 혼자서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투르니에는 그 부분을 자신의 글쓰기 재주가 부족하다고 안타까워 했다. 나 또한 투르니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충분한 흥미가 갔지만, 직접 읽은 책들이 아니였기에 해석의 난해한 부분을 많이 만났었다. 이러한 해석도 존재하는 구나라고 느끼기에는 생소한 작품이 많았고, 작품들의 특성상 이미 커버린 뒤에는 잘 읽지 않은 분야였다(요즘에서야 어린시절에 얇은 동화책으로 읽었던 책들을 성인판(?)으로 읽기는 하지만).

 

  하지만, 그가 제시한 몇가지 해석들은 수긍이 갔다. 쥘 베른을 접하기 전에 청소년 책으로 치부해 버리고 말았는데, 두툼한 해저 2만리를 읽고 나니 과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벅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투르니에는 위대한 작가 겸 지리학자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쥘 베른 컬렉션에 관심을 갖고 있는 터라 이번 기회에 쥘 베른 작품을 탐독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투르니에의 해석을 보니 궁금증을 더 생기고 말았다. 그가 수학교수였다는 사실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옥스퍼드 대학교 학장의 딸인 앨리스에서 뱃놀이 중 들려준 이야기를 엮은 것이라는 사실부터가 흥미로웠다. 나에게 그 책은 조카들에게 읽어주던 동화책 속에서밖에 존재하지 않았는데, 작가의 그런 배경과 투르니에의 색다른 해석이라니. 루이스 캐럴은 계집아이들에게 이상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여자가 되어 가면서 너무나 다른 존재로 변해 버려서 어렸을때 갖었던 우정이 예의를 차리게 되는 정도 밖에 안된다고. 투르니에는 거기에 '앨리스가 겪는 시련들을 섹스라는 암흑세계로의 추락으로 해석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라고 했다. 가끔 성장소설들을 읽다가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된 모습을 보면 낯선 감정을 느끼곤 했는데, 투르니에의 이런 해석 앞에 입이 떡 벌어진다. 어쩜 나도 그런 유혹 때문에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꼭 저자의 해석에 따라가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무니 이해가 가면 가는 대로, 그 책이 흥미로우면 흥미로운대로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는 소소한 다짐을 해도 상관없다. 단지 저자 해석을 다른 사람의 견해로 받아들이면 생소한 이야기도 훨씬 가깝게 다가올거라 생각한다. 그 작품을 쓴 작가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작품만큼이나 흥미진진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어쩔 때는 지식을 총동원해야 할 때도 있지만, 일상 속에서도 쓸 수 있다는 미미한 의미를 받기도 했다. 투르니에는 '소설을 출간하는 것은 독자에게 소설의 반을 제공하고, 독자가 책을 읽어 나가면서 머릿속에서 나머지 반을 써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저자의 소설이 아니지만, 기존 작품에 저자의 견해를 붙이고, 원 작품의 이야기를 탐독 하는 것. 그런 일련의 연결이야말로 독자들이 머릿속에서 채워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의 대상 연령대나, 아니면 나같은 어른이나 모두다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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