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 시공 청소년 문학 11
마르야레나 렘브케 지음, 김영진 옮김 / 시공사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묵직한 문학만 좋아 한다고 젠체하던 내가 몇권의 성장소설을 만나면서 청소년 문학을 좋아하게 되었다. 청소년 문학을 읽고 있으면 나의 유년시절이 떠올라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였지만, 기억을 회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청소년 문학들을 읽게 되면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모습을 발판 삼아 나의 유년 시절을 재조명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통해 스스로 조금씩 성숙해 가는 느낌. 마치 나의 유년시절을 다시 사는 기분이 들어 10대들의 고뇌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기 보다는 그들이 오히려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있었지만 그래서인지 자꾸만 이런 분위기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읽고 싶은 책이 잔뜩 쌓인 도서관에서 '청소년문학'이라는 타이틀만 보고 책을 집어 온 것은 그런 연유일 테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7년이 지났지만 이런 책을 읽다 보니 요즘 나의 꿈속 무대는 학교가 자주 등장한다. 그 전에도 준비물 안 챙겨 온 것, 스쿨버스 놓친 것, 시험공부 안한 꿈을 자주 꿨지만 아무리 나의 10대 시절을 위로하고 재조명 한다고 해도 이런 꿈들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어쩜 그때의 고뇌가 더 질기게 이어지는 탓도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나의 10대를 대리만족케 해주는 것은 청소년 문학이다. 이 책의 주인공 레나도 내게는 낯선 핀란드 소녀이지만 레나가 느끼는 많은 감정은 내가 거쳐왔던 과정이여서 인간적인 이질감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밝게 성장해 가는 것이 보기 좋았다. 그런 모습 속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었고 이해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레나 자신도 마찬가지고, 아빠 또한 마찬가지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레나와 아빠가 함메르페스트를 가지 못했던 것은 자동차의 고장 때문만도 아니고 의지가 부족해서도 아니지만 그들이 도착하지 못했다는 것은 실망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아빠가 레나와 여행을 하면서 소중한 것들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 더 의미 있었고 아빠의 또 다른 아들 페카와의 만남도 소원해져 가니, 함메르페스트는 더 의미있게 다가온게 아닌가 싶다.

 

  아빠도 가난했던 어린시절에 함메르페스트를 여행하는 것은 희망으로 삼을만큼 함메르페스트는 특별한 곳이지만 존재할 것 같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노르웨이의 끝, 바다가 한없이 펼쳐지고 지상의 낙원이라도 묘사되어 있지만, 존재 하지만 존재하지 않기에 열망을 품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레나의 아빠를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빠가 여름 휴가를 레나와 가려 했던건 레나가 아르바이트 때문에 우울해 해서 였지만 아빠의 비밀도 알려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아빠의 고향을 방문하고 아빠에게 듣게 된 아빠의 과거를 레나가 이해할 수 있고 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아빠의 솔직함 때문이였다. 어른이라고 해서 권위적으로 굴었던 것도 아니고 자신의 잘못을 그대로 드러내며 괴로워하는 모습은 내 아빠의 이야기여서 조금 놀랬던 것 뿐이지 실망했던 것은 아니다. 레나는 충격에 빠져 아빠를 거부했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또 다른 오빠 페카에게 편지를 쓰고 페카 오빠가 찾아 왔을 때 반갑게 맞이해 준다. 그런 페카 오빠의 방문으로 레나의 아빠는 또다시 함메르페스트로의 여행을 꿈꾸기 시작한다.

 

  함메르페스트의 정체(?)는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레나 아빠가 어렸을 적부터 희망을 꿈꾸며 견디었던 것처럼 아빠에게는 언제나 함메르페스트가 희망이 될 것 같다. 함메르페스느로 가는 길을 여행한 레나와 아빠가 그랬듯이 그런 움직임 자체만으로도 벅찼을 것이다. 꿈꾸던 곳을 가지 못한 아쉬움도 있겠지만 과정의 추억도 무시하지 못할만큼 소중했기 때문이다. 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도 충분히 아름다웠기에 책을 읽으려는 레나를 아빠가 말렸던 것처럼, 우리가 시선을 돌려 버림으로써 놓쳐 버리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레나처럼 책이 좋아서 바깥의 풍경보다 책에 몰두했던 적도 많았고,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편견을 뒤집어 쓴 채 보아온 것들이 나 또한 많았다. 레나도 분명, 자신의 우울함, 민감한 청소년 시기의 복잡함을 아빠와의 여행을 통해 많이 떨쳐 버렸을 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런 과정이였고 그런 과정속에 가족이 있었기에 더 평안해 보인게 아닌가 싶다. 그런 레나와 아빠를 보고 있으면 내가 다 행복해 지듯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자유와 인간적인 삶 - 김우창

 

2. 플라이 인 더 시티 - 신윤동욱

 

 

 

- 어제 집에 오니 택배가 도착해 있었다.

생각의 나무에서 온 책이다.

책이 온다는 말을 듣지 않고 받은 책이라 반가움이 일었다.

막상 책을 열어보니 책은 더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의 나무 세번째 책인데...

지금껏 온 책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 것 같다.

'자유와 인간적인 삶'은 읽기가 녹록치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마음에 든다.

 

그나저나 디카는 맨날 어디로 도망을 가는 것일까.

오늘도 핸드폰으로 찍었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아 옮김, 오나리 유코 그림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비가 오는 날이면 두가지의 기분이 나를 지배한다. 우울함과 뽀송뽀송한 이불 속으로 파고 들고 싶은 나른함. 지금 나는 뽀송뽀송한 이불 속을 뒹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늘 우울함이 짓누르던 비오는 날의 기분을 한권이 책이 뿌듯하게 바꿔준 탓이다. 이런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따뜻함이 배어 나오는 책의 분위기는 전염성이 강했다. 세상이 온통 활기차 보이고 내 주위의 작은 것들까지 일상의 행복으로 다가오는 기분 때문이다. 사키와 엄마의 일상이 잔잔하면서도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현재의 내가 메말라 있다는 뜻도 되고 유년시절의 나와 비교할 수 있어서 일 것이다. 왠지 현재의 나보다 과거의 나를 떠올려 보는 것. 그런 기억의 회귀가 포근하게 다가온다.
 

  사키는 엄마와 둘이 살고 있다.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때로는 마음 아프게 다가 올때도 있지만 엄마와 사키의 일상은 어둠이 짙지 않다. 오히려 그런 사실들을 차분히 받아 들이며 하루하루를 일궈가는 모녀의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용기를 얻게 된다.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를 떠나, 엄마의 직업이 작가라는 것도 떠나 순수하게 엄마와 사키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생각이 깊어진다. 말도 아끼게 되고 남을 배려하게 되고 자잘한 것들을 소중하게 대하게 된다. 그것은 사키와 엄마의 모습이였기에 내가 느끼는 마음이였다고 생각된다.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모습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은 그 모든것에 순수함이 깃들어 있어서가 아니였을까. 그렇지만 순수함만 들어 있다고 해서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들의 모습을 나타내어 주는 건 늘 대화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가 빠질 수는 없겠지만 그런 대화 보다는 친구로써, 조언자로써, 서로 다른 위치에서 나누는 대화가 많았다. 그랬기에 서로간의 공백을 절충해 가면서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을 쌓아 갈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꼭 특별했던 것은 아니였다. 얼마든지 그런 소재는 주변에 널려 있었고 사키와 엄마는 일상 속에서 그것들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었다. 고등어 한마리로 엄마의 어렸을 때 추억을 끄집어 내고, 비가 오는 날로 인해 예전에 지나쳤던 사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자잘하면서도 평범한 이야기는 일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 주었다.

 

  그들이 뱉어내는 대화 또한 결코 어렵거나 동떨어진 것이 아니였다. 서로의 생각을 드러내더라도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말 한마디 한마디를 소중하게 했다. 그들에게는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행복하고 그 시간이 영원하지 않는 이상 함부로 흘려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아직은 깨닫지 못했다고 해도 하루를 대충 보내고 생각없이 뱉어 버리는 말들 속에서 상처받고 상처 주는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메말라 있는가. 물론 사키와 엄마도 실수 할 때도 있고 자신만을 내세우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서로에게 깊은 배려심과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였으니 나의 마음이 훈훈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그들의 삶 속에는 끊임없는 연결이 있었다. 오늘 일어났던 일에 의구심이 들고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언제든지 다음날 이어갈 수 있는 연결성. 그것은 공감대 형성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사키와 엄마의 특별함으로 보아도 될 터였다. 우스겟소리 하나를 하더라도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며 걱정하는 모습에서는 마음이 아파 왔지만 대부분은 씩씩하게 생활해 주어서 고마웠다. 자신들에게 이어져 있는 수 많은 것들을 겸허히 받아 들이며 잊지 않으려는 노력, 그것이 연결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그런 사키와 엄마를 보고 있어도 마음이 따뜻해 지는데 그런 마음을 더 푸근하게 해주는게 있었다. 그건 바로 삽화였다. 사키와 엄마의 마음을 읽어내듯 간단하면서도 소박한 삽화는 책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 주고 있었다. 내가 다음에 엄마가 되면 저런 모습이면 좋겠다, 딸을 낳게 되면 저런 모습이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잔뜩 빠져 있을 때 삽화는 더 구체적인 상상력을 부각시켜 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키와 사키 엄마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었고 잠시 멈춰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으니까. 한편의 조화 치고는 너무나 분위기가 잘 드러 맞는 것 같다. 그런 조화 속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 나의 핏줄과 함께 살아 간다는 것이 참 행복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사랑하는 남편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엄마와 사키처럼 그 마음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라는 틀보다는 다른이에게도 퍼졌으면 하는 마음은 무리일까. 지금 나의 심정은 사키와 사키 엄마가 나누었던 마음들을 느끼는 것 만으로도 벅차다. 그 마음을 온전히 나누고 싶은 것, 많은 사람들이 따듯한 마음을 나눠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그득하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 만으로도 하루가 벅차오르는 느낌. 사키와 사키 엄마는 충분히 그 느낌을 보여 주었다. 그 느낌은 내게로 정확히 전이 되어 오늘 하루를 감사해 하고 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에 에드거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 이라는 책을 읽었다. 고딕소설 총체라는 시리즈로 나온 책이였는데 나에겐 낯선 장르여서 애를 먹은 기억이 난다. 독서를 즐긴 후 편독을 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장르를 구분짓지 않는 편인데 고딕,호러,추리는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호기심이 일어 접근을 해도 결국은 책에 뒤집히는 나를 보며서 드는 안타까움이라고 해도 되겠다. 이 책에 실린 10편의 단편을 보면서 그런 과정을 고스란히 거쳐 왔다고 생각되어 진다. 첫부분의 단편들을 대하며 낯설긴 해도 괜찮다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도저히 동화될 수 없는 이질감이 나를 지배했다. 나의 위치가 관찰자의 입장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수긍도 할 수 없기에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붉은 죽음의 가면'이 고전적인 호러라면 'ZOO'는 현대판 호러였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는 세계였다. 세상에는 분명 기이한 일이 많다. 믿지 않으면 안되는 일과 믿겨지지 않는 일들이 넘쳐나는 세계에 살면서도 피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한 것 같다. 사회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여 쉬쉬하는 이야기가 많겠지만 그 어두운 면을 이 책을 통해서 경험해 버린 느낌이다. 허구라는 사실을 떠나 어둡고 우울함이 내게 몽땅 전이된 느낌, 이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분명, 이 책 속의 세계를 현실의 세계라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부정도 자신 없지만 비현실 적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소설이 풍기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 알 수 없는 곳에 끌려와서 토막 살인을 당하고, 자신이 말하는 대로 타인을 불행에 빠트리며, 자신이 살해한 사람들로 집을 짓는 책 속의 인물들을 가깝게 대할 수는 없다. 아무리 비현실적인 소설속의 이야기지만 이런식의 전개는 나에게 색다른 감흥을 준 것이 아니라 인상을 찡그리게 했다. 소설이다라는 설정을 벗어난 과민반응 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나에겐 작품의 완성도를 논할 여력도 낯선 장르를 즐길 여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목적이 분명한 것도, 불분명 한 것도 있었지만 그것을 헤아리기 전에 나는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것 같다. 보여지는 것들에 현혹되어 낯을 찡그려 버렸으니 그 이면의 것들을 보지 못함은 당연하리라.

 

  그러나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분위기가 아니였다는 점이다. 번역자도 말했듯이 이 책의 분위기를 퓨어(감동과 눈물을 자아내는)계열과 다크(으스스하고 오싹한 느낌을 주는)계열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는데 내가 지금껏 말했던 것은 다크한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것들이였다. 으스스하고 오싹하다는 느낌보다는 인간의 본성중 악랄함을 긁어내는 분위기에 너무 치중해 버렸지만 너무나 섬세한 상상을 하게 한 작가의 문체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다크한 느낌 속에서 허우적 거릴 때 어느정도 분위기를 중립시켜 주는 퓨어적인 느낌의 단편들이 있었기에 무사히(?)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비슷한 문체로 상반되는 분위기를 나타낼 수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의 작품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양지의 시>라는 단편은 돋보였던 작품이였다. 서정적인 문체와 반전을 가미한 전형적인 퓨어 분위기가 물씬 풍겨 높이 평가하고 싶은 작품이다.

 

  이렇게 하나하나를 따져 보자면 비슷한 분위기의 단편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극적인 묘사와 그들의 의도를 하나의 소설로 간과하고 넘어 가기에 꺼림직해서 불만을 토로한 것이지 각자 나름 대로의 특징을 지닌 작품들이였다. 관찰이 뛰어나거나, 추리력이 뛰어났고, 인간무상을 보여 주기도 했고, 자아 혼란을 빚어 내는 등 각자의 매력은 충분 했다고 본다. 단지, 내가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과 감흥을 이끌어 낼 수 없다는게 안타까울 분,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할 정도로 상반된 느낌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각자 다른 분위기의 단편을 대하다보니 이런 느낌이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마음에 온전히 내키지 않는 실망감. 이 모든 것이 나의 머릿속을 온통 헤집은 느낌이다. 그 과정 속에는 책에 몰두하다 보니 책 속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져 와 현실과 나는 동떨어지게 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마치 비현실적인 영화를 보고 나오니 밖은 너무나 환해 우울함이 깃든 투동이 오는 듯한 느낌처럼.

더위를 쫓기 위해,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한 책으로 읽을 수는 있겠지만 너무 어두운 마음이 들때는 피했으면 좋겠다. 책 속으로 말려 갈지도 모르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잔소리 없는 날 동화 보물창고 3
A. 노르덴 지음, 정진희 그림, 배정희 옮김 / 보물창고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루에 수십번씩 잔소리를 듣고 잔소리를 하는 반복적인 생활 속에서 살아가지만 듣는 것보단 하는게 더 쉽다. 내게 들리는 잔소리를 늘 무시하듯, 내가 하는 잔소리를 상대방이 흘려 버리더라도 말이다. 그래도 잔소리를 하는 입장이든 듣는 입장이든 잔소리를 피할 수만 있다면 그 방법을 원할 것이다.
그런 잔소리에서 해방되고 싶은 아이가 있다. 단 하루만이라도 잔소리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하며 잔소리 없는 날을 만들어 달라고 푸셀은 엄마 아빠에게 조른다. 그래서 아침부터 자정까지 잔소리 없는 날을 맞이한 푸셀은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한다. 그래서 눈을 뜨자마자 세수도 하지 않고 양치질도 건너뛴 채 자두잼으로 아침을 떼운다. 그런 모습을 보고 부모님이 잔소리를 할라 치면 오늘은 잔소리가 없는 날이라고 오금을 박는다.

 

  그렇게 학교에 간 푸셀은 짝궁 올레에게 오늘은 잔소리 없는 날이라고 자랑을 한다. 올레는 부러워 하면서 이것 저것 제안을 한다. 그리고 돈 없이 오디오 사는 법을 알려주며 해보라고 한다. 푸셀은 잔소리 없는 날을 내 맘대로 해도 되는 날로 착각하고 수업도 빼먹은 채 오디오를 사러간다. 그러나 오디오 사는데 실패한 푸셀은 집으로 돌아간다.

 평상시보다 일찍 도착한 푸셀을 보고 엄마는 잔소리르 하려고 하지만 오늘은 잔소리르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만다. 그런 엄마한테 푸셀은 즉흥적으로 파티를 열겠다고 음식을 준비해 달라고 하고 길거리고 나가 파티에 초대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러다 동네에서 소문난 술주정뱅이 아우구스트 아저씨를 데리고 와서는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만다. 잠이 들어버린 아우구스트 아저씨를 뒤로한 채 그 많은 음식을 두고 결국 엄마와 단둘이 파티를 하게 된다.

 

  아무리 잔소리를 하지 않는 날로 정했다고 해도 그런 푸셀을 보며 엄마와 아빠는 끝까지 인내심을 보여 주었다. 나라면 진즉 한대 쥐어박고 푸셀의 행위를 전부 무마시켜 버렸을 텐데 부모라는 이유로, 약속을 했다는 이유로 끝까지 인내를 보여준 것이다. 그런 마음을 푸셀은 알지 못한채 올레와 함께 텐트를 가지고 공원에서 자겠다고 끝까지 말썽을 피운다. 아직 자정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어쩔 수 없이 푸셀의 말을 들어주는 부모님은 걱정이 태산이다. 공원의 밤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런 걱정을 무시한 채 푸셀은 공원에서 잔다는 생각에 신나게 준비를 하고 올레와 텐트를 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우연히 밖을 나가게 된 올레는 텐트 근처에 귀신이 있다는 소동을 벌인다. 어쩔 수 없이 푸셀은 밖을 살펴보다 그 사람이 다름아닌 아빠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기뻐한다. 걱정이 되어서 뒤를 쫓아온 아빠와 푸셀, 올레는 텐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귀가를 하고, 땡땡이를 친 푸셀은 선생님게 편지를 쓰고 잔소리 없는 날을 마무리 한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푸셀의 하루를 보고나니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잔소리 꾼이다라는 생각을 떠나서 푸셀 부모의 인내가 놀라웠고, 공원까지 따라간 아빠를 보고 있자니 내가 더 든든했다. 푸셀이 엉뚱하긴 했지만 밖고 명랑한 것은 부모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들은 잔소리에 있어서 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인데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 또한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 잘 되라고 하는 마음이 때론 지나친 포용력과 일탈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런 자식을 이해하고 지켜 보고자 하는 마음은 드넓다는 생각을 했다. 푸셀의 부모에게 그런 마음이 없었따면 '잔소리 없는 날'은 생길 수 없었을 것이다. 푸셀이 경험함으로써 얻어지는 지혜 속에는 부모의 이해가 있었다. 푸셀도 부모님을 이해해주고 직접 경험한 것들을 소홀히 하지 않았기에 잔소리 없는 날은 그나마 평탄할 수 있었다.

 

  가끔은 서로의 입장을 뒤바꿔서 생각할 수 있는 역지사지의 마음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런 마음은 상대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벽을 쌓는 일을 번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끔은 그 벽이 왜 생겼는지를 생각하고 높이가 어느 정도인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럴 때에 푸셀의 가족처럼 잔소리 없는 날이 가능할 것이다. 서로간의 벽이 높거나 골이 깊을 때는 이해로 이루어지는 인내와 사랑이 멈춰버릴 것이다.

물론 생각하지 않고 바로 실행을 옮겨도 좋은 것이다. 자유와 방종은 어느 정도 구분시켜 줄 수 있다면. 그럴때에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사랑으로 넘쳐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