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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 ㅣ 시공 청소년 문학 11
마르야레나 렘브케 지음, 김영진 옮김 / 시공사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묵직한 문학만 좋아 한다고 젠체하던 내가 몇권의 성장소설을 만나면서 청소년 문학을 좋아하게 되었다. 청소년 문학을 읽고 있으면 나의 유년시절이 떠올라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였지만, 기억을 회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청소년 문학들을 읽게 되면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모습을 발판 삼아 나의 유년 시절을 재조명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통해 스스로 조금씩 성숙해 가는 느낌. 마치 나의 유년시절을 다시 사는 기분이 들어 10대들의 고뇌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인다기 보다는 그들이 오히려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있었지만 그래서인지 자꾸만 이런 분위기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읽고 싶은 책이 잔뜩 쌓인 도서관에서 '청소년문학'이라는 타이틀만 보고 책을 집어 온 것은 그런 연유일 테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7년이 지났지만 이런 책을 읽다 보니 요즘 나의 꿈속 무대는 학교가 자주 등장한다. 그 전에도 준비물 안 챙겨 온 것, 스쿨버스 놓친 것, 시험공부 안한 꿈을 자주 꿨지만 아무리 나의 10대 시절을 위로하고 재조명 한다고 해도 이런 꿈들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어쩜 그때의 고뇌가 더 질기게 이어지는 탓도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나의 10대를 대리만족케 해주는 것은 청소년 문학이다. 이 책의 주인공 레나도 내게는 낯선 핀란드 소녀이지만 레나가 느끼는 많은 감정은 내가 거쳐왔던 과정이여서 인간적인 이질감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밝게 성장해 가는 것이 보기 좋았다. 그런 모습 속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었고 이해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레나 자신도 마찬가지고, 아빠 또한 마찬가지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레나와 아빠가 함메르페스트를 가지 못했던 것은 자동차의 고장 때문만도 아니고 의지가 부족해서도 아니지만 그들이 도착하지 못했다는 것은 실망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아빠가 레나와 여행을 하면서 소중한 것들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 더 의미 있었고 아빠의 또 다른 아들 페카와의 만남도 소원해져 가니, 함메르페스트는 더 의미있게 다가온게 아닌가 싶다.
아빠도 가난했던 어린시절에 함메르페스트를 여행하는 것은 희망으로 삼을만큼 함메르페스트는 특별한 곳이지만 존재할 것 같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노르웨이의 끝, 바다가 한없이 펼쳐지고 지상의 낙원이라도 묘사되어 있지만, 존재 하지만 존재하지 않기에 열망을 품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레나의 아빠를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빠가 여름 휴가를 레나와 가려 했던건 레나가 아르바이트 때문에 우울해 해서 였지만 아빠의 비밀도 알려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아빠의 고향을 방문하고 아빠에게 듣게 된 아빠의 과거를 레나가 이해할 수 있고 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아빠의 솔직함 때문이였다. 어른이라고 해서 권위적으로 굴었던 것도 아니고 자신의 잘못을 그대로 드러내며 괴로워하는 모습은 내 아빠의 이야기여서 조금 놀랬던 것 뿐이지 실망했던 것은 아니다. 레나는 충격에 빠져 아빠를 거부했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또 다른 오빠 페카에게 편지를 쓰고 페카 오빠가 찾아 왔을 때 반갑게 맞이해 준다. 그런 페카 오빠의 방문으로 레나의 아빠는 또다시 함메르페스트로의 여행을 꿈꾸기 시작한다.
함메르페스트의 정체(?)는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레나 아빠가 어렸을 적부터 희망을 꿈꾸며 견디었던 것처럼 아빠에게는 언제나 함메르페스트가 희망이 될 것 같다. 함메르페스느로 가는 길을 여행한 레나와 아빠가 그랬듯이 그런 움직임 자체만으로도 벅찼을 것이다. 꿈꾸던 곳을 가지 못한 아쉬움도 있겠지만 과정의 추억도 무시하지 못할만큼 소중했기 때문이다. 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도 충분히 아름다웠기에 책을 읽으려는 레나를 아빠가 말렸던 것처럼, 우리가 시선을 돌려 버림으로써 놓쳐 버리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레나처럼 책이 좋아서 바깥의 풍경보다 책에 몰두했던 적도 많았고,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편견을 뒤집어 쓴 채 보아온 것들이 나 또한 많았다. 레나도 분명, 자신의 우울함, 민감한 청소년 시기의 복잡함을 아빠와의 여행을 통해 많이 떨쳐 버렸을 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런 과정이였고 그런 과정속에 가족이 있었기에 더 평안해 보인게 아닌가 싶다. 그런 레나와 아빠를 보고 있으면 내가 다 행복해 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