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아 옮김, 오나리 유코 그림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비가 오는 날이면 두가지의 기분이 나를 지배한다. 우울함과 뽀송뽀송한 이불 속으로 파고 들고 싶은 나른함. 지금 나는 뽀송뽀송한 이불 속을 뒹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늘 우울함이 짓누르던 비오는 날의 기분을 한권이 책이 뿌듯하게 바꿔준 탓이다. 이런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따뜻함이 배어 나오는 책의 분위기는 전염성이 강했다. 세상이 온통 활기차 보이고 내 주위의 작은 것들까지 일상의 행복으로 다가오는 기분 때문이다. 사키와 엄마의 일상이 잔잔하면서도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현재의 내가 메말라 있다는 뜻도 되고 유년시절의 나와 비교할 수 있어서 일 것이다. 왠지 현재의 나보다 과거의 나를 떠올려 보는 것. 그런 기억의 회귀가 포근하게 다가온다.
 

  사키는 엄마와 둘이 살고 있다. 아빠가 없다는 사실이 때로는 마음 아프게 다가 올때도 있지만 엄마와 사키의 일상은 어둠이 짙지 않다. 오히려 그런 사실들을 차분히 받아 들이며 하루하루를 일궈가는 모녀의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용기를 얻게 된다.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를 떠나, 엄마의 직업이 작가라는 것도 떠나 순수하게 엄마와 사키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생각이 깊어진다. 말도 아끼게 되고 남을 배려하게 되고 자잘한 것들을 소중하게 대하게 된다. 그것은 사키와 엄마의 모습이였기에 내가 느끼는 마음이였다고 생각된다.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모습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은 그 모든것에 순수함이 깃들어 있어서가 아니였을까. 그렇지만 순수함만 들어 있다고 해서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들의 모습을 나타내어 주는 건 늘 대화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가 빠질 수는 없겠지만 그런 대화 보다는 친구로써, 조언자로써, 서로 다른 위치에서 나누는 대화가 많았다. 그랬기에 서로간의 공백을 절충해 가면서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을 쌓아 갈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꼭 특별했던 것은 아니였다. 얼마든지 그런 소재는 주변에 널려 있었고 사키와 엄마는 일상 속에서 그것들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었다. 고등어 한마리로 엄마의 어렸을 때 추억을 끄집어 내고, 비가 오는 날로 인해 예전에 지나쳤던 사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자잘하면서도 평범한 이야기는 일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 주었다.

 

  그들이 뱉어내는 대화 또한 결코 어렵거나 동떨어진 것이 아니였다. 서로의 생각을 드러내더라도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말 한마디 한마디를 소중하게 했다. 그들에게는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행복하고 그 시간이 영원하지 않는 이상 함부로 흘려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아직은 깨닫지 못했다고 해도 하루를 대충 보내고 생각없이 뱉어 버리는 말들 속에서 상처받고 상처 주는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메말라 있는가. 물론 사키와 엄마도 실수 할 때도 있고 자신만을 내세우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서로에게 깊은 배려심과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였으니 나의 마음이 훈훈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그들의 삶 속에는 끊임없는 연결이 있었다. 오늘 일어났던 일에 의구심이 들고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언제든지 다음날 이어갈 수 있는 연결성. 그것은 공감대 형성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사키와 엄마의 특별함으로 보아도 될 터였다. 우스겟소리 하나를 하더라도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며 걱정하는 모습에서는 마음이 아파 왔지만 대부분은 씩씩하게 생활해 주어서 고마웠다. 자신들에게 이어져 있는 수 많은 것들을 겸허히 받아 들이며 잊지 않으려는 노력, 그것이 연결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그런 사키와 엄마를 보고 있어도 마음이 따뜻해 지는데 그런 마음을 더 푸근하게 해주는게 있었다. 그건 바로 삽화였다. 사키와 엄마의 마음을 읽어내듯 간단하면서도 소박한 삽화는 책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 주고 있었다. 내가 다음에 엄마가 되면 저런 모습이면 좋겠다, 딸을 낳게 되면 저런 모습이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잔뜩 빠져 있을 때 삽화는 더 구체적인 상상력을 부각시켜 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키와 사키 엄마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었고 잠시 멈춰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으니까. 한편의 조화 치고는 너무나 분위기가 잘 드러 맞는 것 같다. 그런 조화 속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 나의 핏줄과 함께 살아 간다는 것이 참 행복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사랑하는 남편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엄마와 사키처럼 그 마음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라는 틀보다는 다른이에게도 퍼졌으면 하는 마음은 무리일까. 지금 나의 심정은 사키와 사키 엄마가 나누었던 마음들을 느끼는 것 만으로도 벅차다. 그 마음을 온전히 나누고 싶은 것, 많은 사람들이 따듯한 마음을 나눠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그득하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 만으로도 하루가 벅차오르는 느낌. 사키와 사키 엄마는 충분히 그 느낌을 보여 주었다. 그 느낌은 내게로 정확히 전이 되어 오늘 하루를 감사해 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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