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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용재 오닐의 공감
리처드 용재 오닐 지음, 조정현 엮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인물에 대한 책은 조심스러워 진다. 읽기도 조심스럽고, 그 책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도 조심스러워 진다. 소설이나 실용서라면 거리낌 없이 책 내용이나 저자에 대해서 논하겠지만,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인물에 대한 책은 조심스러워 지는게 사실이다. 이러한 책은 주관적인 시각이 주류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는 책에서 풍겨지는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더라도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인물 소설에도 그 인물에 대해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생각에는 주관적인 시각 때문이기 마련인데, 자신이 쓴 자신의 이야기는 그런 느낌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편견을 두고 읽었는지는 몰라도 실제로 읽어 본 에세이들은 중심이 느껴지지 않은 책들이 많았다. 개인적인 것들을 쏟아 내려다 보니 그랬겠거니 이해하더라도 무언가가 늘 아쉬워서 인물에 대한 책은 그다지 즐겨 보지 않게 되었다. 처음 이 책을 마주했을 때도 그러한 편견들이 쏟아져 나와 책장을 여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러나 지금껏 내가 가지고있던 편견이 깨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으로 새롭게 다가온 책이 되어 갔다.
리처드 용재 오닐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인간극장을 통해 나왔다고 하지만, 티비에서도 보지 못했기에 그의 연주를 들어보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집어 들게 된 것은 뉴스에서 그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유명한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한다는 소식이었는데, 그제서야 용재 오닐이 누구일까? 라는 호기심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단 한컷의 뉴스로 그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이야기는 내가 지금껏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털어 버리기에 충분했고, 오히려 내가 용재 오닐 앞에서 숙연해 지는 기분이였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나는 그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여전히 알지 못했지만, 겸손한 자세로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추천한 영화감독 박찬욱은 자기를 과시 하지 않는 글은 처음 읽어 본다고 했다. 단순히 용재 오닐을 추겨 세워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박찬욱 감독의 말을 백번 공감하게 되었다. 온통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음악얘기 뿐인 그의 글은 고백의 글이 아니라 내면을 표현할 줄 아는, 자기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형상화 할 줄 아는 글이였다. 음악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면 이러한 글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명랑하게, 솔직하게 표현해 냈다. 그의 묘사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고 해도 믿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의 글 속에서 풍경을 그려낼 수 있었고, 그가 느꼈을 감정이 그대로 배어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풍족하지 않았지만 가족의 끈끈함 속에서 자라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어린시절은 결코 불우해 보이지 않았고, 마음이 저릿 하면서도 기쁨이 묻어 났다. 그에겐 음악만큼이나 가족이 소중한 존재였다.
그의 글은 자신은 낮추고 음악, 작곡가, 악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줄줄이 늘어 놓으면서 독자들이 자기가 가진 세계를 구석구석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자신의 고독을 숨기지 않았고, 자신의 성장과정,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어느 정도 위치에 선 자신에 대한 겸손을 잃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가 진솔하게 다가왔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단순히 악보를 보며 악기를 긁어대는 것이 아닌 진정 음악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잃지 않은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담이 되기에 충분했다.
외롭고 넉넉하지 못한 어린 시절에 그에게 음악이 있었기에 지금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음악이 없었다면 보통 사람의 삶을 살았을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음악을 할 뿐이지 대단한 삶을 살고 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를 비롯해서 가족들의 사랑과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랬기에 그에게 연주는 언제나 도전이 되는 일이고,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기에 연습에 연습을 더할 뿐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의 위치에 서서도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그를 보며 음악에 대한 생각을 다시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그의 아름다운 글 앞에서 그가 느꼈던 많은 것들을 공감할 수 있었다고 고백할 수 있었다. 그의 그러한 배려 덕분에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용재 오닐을 알아간 것이 아니라 음악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방대함과 아름다움을 알아갔다. 그것이 용재 오닐이 말하고자 했던 음악, 자신이 사랑했던 음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