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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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남겨준 여운을 어쩌지 못할 때는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게 된다. 책 내용을 더듬어 보기도 하고, 그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해보기도 하면서 현실 세계의 나와 책 속의 나를 하나로 만들어 보려 애쓴다. 책을 통해 받은 감정들 하나하나가 내 몸안에 박혀, 책을 덮고 난 후에도 내 안을 떠도는 느낌. 오랜만에 신작을 발표한 가네시로 가즈키의 책을 읽을 때가 그랬다. 책을 읽고 나니 새벽 3시였지만, 피곤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로지 이 책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벅차고 뿌듯해 나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와 마주앉아 "왜 가네시로 가즈키 책은 나오지 않는 걸까"라고 푸념할 정도로 그의 책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막상 그의 작품이 나왔을 때는 아껴 읽고 싶어 구입을 늦췄지만,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을 골라 그의 책을 읽었다. 매일 가즈키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며 오도방정을 떨면서 꼭꼭 씹어 읽었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을 읽어 봤다면  이야기와 이야기가 이어지는 연결성을 매력을 알 것이다. <영화처럼>에서도 그런 연결이 약방에 감초 역할을 하듯 맛깔나게 버무려져 있었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연결의 끈을 놓고 있지 않다가 마지막 단편으로 인해 하나로 완성되어지는 묘미란. 이야기의 색깔은 제각각 달랐지만, 하나의 이야기에서 파생되어 나온 느낌은 그의 글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였다. 

 

  첫 단편 <태양은 가득히>를 읽었을 때 조금은 우울했다. 결코 밝지 않은 작가의 경험이 묻어나는 재일 일본인으로써 학창시절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민족학교를 같이 다니던 용일이라는 친구와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자꾸만 엇갈리는 그들의 운명이 부정적으로 끝날까봐 조마조마했다. 도피처의 일환으로 액션영화를 즐겨보고, 느낌을 나누며 존재하지 않던 시나리오를 만들어 갔던 그들. 암울했던 현실만큼이나 어두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들은 방황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기다려온 것은 아니라며 씁쓸함을 떨칠 수 없었던 찰나, 그 둘을 이어 주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니 바로 영화였다. 순식간에 우울함에서 감동의 물결에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저자는 이틀 동안 용일이의 이야기를 써내려 갔다고 고백했다. 책이 주는 여운으로 인해 어쩔 줄 몰라 깊은 밤에 생각에 빠졌던 나처럼 말이다.

 

  두번 째 단편 <정무문>도 밝지 않았다. 남편의 자살로 인해 고모토는 여러 달 동안 집안에서 지낸다. 그러다 비디오 대여점으로부터 남편이 자살하던 날 빌려간 테입을 반납해 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그로 인해 나루미라는 청년과 만나게 되고, 고모토는 그를 통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나루미로 인해 수 많은 영화를 접하게 되고, <태양은 가득히>에서 용일이가 삶의 전환을 갖기 전에 본 <로마의 휴일>을 두 사람도 보게 된다. 그러다 남편의 죽음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우연히 나루미가 가져오게 된다. 반전을 예감하듯, 다음 단편에서의 연결을 기대 시키듯, <정무문>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을 맺는다.

 

  세번 째, 네번 째 단편은 앞의 이야기와 분위기가 조금은 달랐다. 사랑과 복수가 뒤얽힌 내용이라는 점에서 조금은 비슷할지 몰라도, 아버지의 차와 돈을 훔친 <프랭키와 자니>는 소재가 조금은 자극적이지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하지 못한 돈, 아버지의 부정을 지켜봐 왔더라도 고등학생인 그들에게 긍정적인 시선을 던질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십대의 감성과 고민을 잘 엮어 내었고, 영화를 소재로 풀어냈음은 물론 <정무문>과의 연결도 잊지 않았다. 그들 역시 <로마의 휴일>을 보게 되고, <페일 라이더> 주인공들도 예외가 아니였다. 조직폭력배의 살해 현장을 우연히 보게 된 평범한 한 가족은 해를 입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남편과 아이를 잃은 여인은 복수를 하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하고, 우연히 엄마 아빠의 이혼으로 혼란을 맞이하게 된 소년과 만난다. 가족을 잃은 슬픔, 복수, 부모의 이혼이 뿜어내는 여운은 고통이었다. 끝까지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프랭키와 자니>처럼 무시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극적인 소재라 하더라도 피해갈 수 없는 상처를 맛봐야 했던 아픔 같은 것이었다.

 

  네 편의 이야기속 인물들은 동일한 장소에서 상영하는 <로마의 휴일>을 보게 된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각자의 색깔을 내뿜으며 연결의 고리를 끊지 않던 이야기의 종착역은 마지막 단편 <사랑의 샘>이었다. 모든 단편에 나오는 <로마의 휴일>이 어떻게 해서 상영이 되었는가에 대한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었다. 앞의 단편들을 아우르고 있었기에 궁금증 해소와 함께 최고의 감동을 선사하고 있었다. 우정, 사랑, 복수 등 인생의 여러가지 맛을 느끼며 책을 읽었다면, <사랑의 샘>에서는 가족간의 정이 끈끈히 배어나는 분위기라고 말하고 싶다. 할머니의 건강 악화로 인해 네명의 손주들이 할머니가 좋아할 만한 일들을 찾으며 드러나는 에피소드는 웃음과 사랑, 정이 있었다. 새벽까지 읽어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게 한 작품이기도 했고, 영화로 인해 맺어진 사연들 중에서 가장 따뜻한 사연이었다. 혼자서 킥킥 대기도 했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으며, 뿌듯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심호흡을 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로마의 휴일>이 상영되던 날, 앞서 만난 단편의 주인공들이 하나하나 등장할 때의 만족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영화처럼>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모두 영화같은 내용이었다. 영화를 소재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작가에 대한 기대감이 충족되어 기다린 보람을 느꼈다. 또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삶의 애환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어 더 끈끈함을 느꼈다. 그 감정을 주제하지 못해 책을 읽자마자 <로마의 휴일> DVD를 주문했고, 도착한지 한참이 지난 지금 아직도 그 영화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시작된 나의 이야기가 <로마의 휴일>을 보고 나면 끝나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랄까.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로마의 휴일>을 필두로 한 수 많은 영화가 떠다니는데, 그 영화를 접하고 나면 이 이야기가 잊혀져 버릴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느꼈던 이 벅찬 감정들이 희미해 질 때쯤 DVD를 꺼내 보려고 한다. 그때쯤이면 새벽녁의 주체할 수 없었던 기분도, 책 속의 사연들도 또렷하게 되살아 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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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진화론 2 - 대변혁의 시대, 새로운 삶의 방식이 태어난다
우메다 모치오 지음, 이우광 옮김 / 재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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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한 몸이 두 삶을 사는 것과 같고, 한 사람에게 두 개의 육신이 있는 것과 같다." 19세기의 계몽사상가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문명론의 계락>에서 바쿠후 말기에서 메이지시대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그의 말은 웹 진화에 따른 또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현대에도 딱 드러맞는 표현이다. 웹이 나의 삶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점으로부터 웹 진화론을 과소평가하고 앞쪽 생에 집착할 경우, 나머지 반생에서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라는 건전한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며 저자는 웹의 또 다른 세계의 포문을 열었다.
 

  인터넷이 많은 역효과를 낳고 있지만, 편리하다는 사실 또한 누구나 느끼는 바다. 그러나 편리함을 넘어서 인터넷이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생각해보면 한번쯤은 색다른 경험을 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웹의 진화를 통해 불특정 다수와 교류를 나눈 경험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기록해왔던 독후감을 개인 블로그에 올리면서 수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온라인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이 많다. 저자는 인터넷이 없었다면 표현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무수한 사람들의 지혜가 집적되어 나타난 현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내 독후감의 드러냄이 지혜라고 까진 생각하지 않지만, 표현할 기회를 가지 못했던 사실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바다.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십여년 동안 기록해 왔던 개인 독서록을 인터넷이 아니였다면 어디에다 표현했을까. 아마도 나의 책장에 차곡차곡 먼지와 함께 쌓여갔을 것이다.

 

  저자는 1장에서 구글의 사상을 바탕으로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웹의 세계를 표현했다. 세계의 모든 정보를 정리 정돈하겠다는 비전을 품은 구글은 '또 하나의 지구'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웹 진화의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다고 한다. 어찌보면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비전을 품은 구글의 진보가 식을줄 모르고 내달리는 것을 보면 웹의 시대, 웹의 진화를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과 정보의 게임에서 발빠르게 행동한 것이 구글이고 정보 유통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추구하려는 뜻이 통한 사실만 보더라도 구글의 성장을 무시할 수 없다. 오픈소스를 통해 구글 못지 않게 성장하고 있는 '위키피디아(Wikipedia)'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상에서 누구라도 자유롭게 편집에 참여할 수 있는 백과사전'이라는 명목하에 거대한 가능성을 창조해 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들을 소개하긴 했지만, 책 속의 수많은 사례들이나 우리 주변의 경험들을 비추어 보더라도 웹의 진화에 따른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웹이 어떠한 세상인지, 그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들과 흐름을 간파했다면 저자는 그 안에서 어떻게 자신을 가꾸어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웹에 대한 설명들로 이루어진 책이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책을 읽어나가면 나갈수록 자기계발을 유도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웹을 통해서 자신에게 감춰졌던 능력을 발휘하고 표현할 수 없지만, 웹을 통한 경험적 가치와 정보의 창출,이용이 증가할 것이므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고 열성적으로 해나간다면 웹을 통해서 얼마든지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더불어 그런 일을 통해서 어떻게 끼니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숨김없이 드러내기에 개인 창출을 꿈꾸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을 점검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웹의 세상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능력에 따라 뻗어 나갈 수 있기 때문에(저자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으로 비유했다.)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것 부터 고속도로 끝의 정체현상을 만날 때까지(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프로로 진입하는 과정을 정체현상이라고 했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완성된 인간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어쩌면 현실 세계보다 더 팍팍할 수도 있지만, 풍부한 가능성을 담고 있기에 저자는 웹에서의 희망을 긍정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이 책에서의 주류는 웹에 관한 것이지만, 주목해야 할 대상은 개인이다. 기존의 많은 사람들이 구조에 적응을 했다면, 개인의 창의력을 발휘해서 더 큰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웹이다. 저자는 개인에게 자조 정신만 있다면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과 그 방향에 대해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고 끝을 맺고 있다. 웹의 진화를 살펴보고 느끼며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웹을 통해 추구해 보는 것. 그것이 저자가 많은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세대에 웹의 진화는 불가피 하므로 저자가 서문에서 말했던 '건전한 위기감을 갖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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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크리스마스 - 세상에서 가장 기쁜 날
해리 데이비스 지음, 타샤 튜더 그림, 제이 폴 사진,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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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샤 할머니의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벌써부터 걱정 되는 것이 있다. 타샤 할머니에 관한 읽을 거리가 줄어드는 것.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꺼내 언제든지 만나면 되지만, 새로운 책을 만날 때마다 갖게 되는 설레임이 끊긴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서운함이 든다. 네 번째로 만나는 <타샤의 크리스마스>를 마주하고 나니 드는 고민이었다. 하지만 타샤 할머니는 이런 쓰잘떼기 없는 걱정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내가 이런 걱정에 빠져 있을 즈음 타샤할머니는 늘 분주하게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계셨겠구나 생각하니 순식간에 즐거워졌다.

 

  몇년 전부터 크리마스를 늘 교회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크리스마스는 분주하고 준비할 것이 많은 날들로 기억되고 말았다. 정작 크리스마스의 의미도 모른채 흘러가는 날들을 보고 있으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특히나 타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를 지켜보니 내가 크리마스를 맞이하는 태도부터가 빈약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타샤의 크리스마스>는 타샤 할머니가 크리마스를 어떻게 준비하며,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해 나와 있다. 타샤 할머니가 지은 <베키의 크리스마스>, <인형들의 크리스마스>의 내용과 삽화들이 함께 어우러진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환상 그 자체였다. 책 속의 크리스마스니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동화 속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타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를 그대로 살려낸 것이었다. 동화속의 내용과 현실이 하나가 되는 시간. 타샤 할머니이기에 가능한 세계였다.

 

  타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준비는 유별나다. 보통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분주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타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준비는 오래 전부터 시작된다. 크리스마스를 오래 전부터 준비할게 뭐가 있겠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타샤의 크리스마스는 전설적인 축하 의식이다. 타샤 할머니는 크리스마스 자체에만 의의를 두지 않는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동시에 가족들과 친지 지인들, 심지어 집안의 동물들까지 즐거워하는 날이 크리스마스라고 생각 하기 때문이다. 타샤 할머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선물 주는 것을 좋아하고, 직접 만드는 것을 당연시 한다(어렸을 적 부모님에게 직접 만든 선물을 받은 영향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동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과 파티를 열어주기 위해서 타샤 할머니가 오래전부터 준비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타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에는 특별한 행사가 있다. 예수님이 탄생한 기쁨을 인위적으로 느끼지 않고 직접 느낄 수 있는 '구유 속의 아기 예수' 행사다. 비스크 도자기 인형으로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를 표현하고 직접 깍아 만든 온갖 동물들과 함께 예수님의 탄생을 재현한다. 자녀들이 연출할 수 있도록 계속 되어온 행사가 이제는 손녀, 손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 행사는 대충 이뤄지지 않는다. 타샤의 숲에서 경건하면서도 소박하게 진행된다. 크리스마스를 즐거운 파티의 날로 인식되어 지지 않게 행해지는 의식이다. 그 행사가 끝나면 크리스마스 만찬과 트리 공개가 이어진다. 타샤의 크리스마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양철 구이통에 하루 종일 칠면조를 굽고, 트리 장식을 하고, 만찬 준비를 하는 타샤 할머니는 눈코뜰새 없이 바쁘지만 그 모든 일을 솜씨 좋게 처리하는 것 또한 타샤 할머니의 능력이다. 많은 사람들이 감탄할만한 크리스마스 만찬을 준비하는 손길이야 말로 타샤 할머니의 진정한 마법이지만.

 

  코기 코티지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곳이 타샤의 집이라고 지은이는 말하고 있다. 타샤의 크리스마스를 체험하기 전에는 공감할 수 없었지만, 일상에서도 예술 감각을 발휘하는 타샤 할머니와 꿈과 현실을 맛깔나게 버무려주는 솜씨를 구경하고 나면 지은이의 말을 인정하게 된다. 지금껏 구경한 크리스마스 중에 최고의 크리스마스라고 아낌없이 칭찬할 수 밖에 없는 타샤의 크리스마스. 늘 닥쳐야 준비하고, 물질로 모든 것을 떼우려고 했던 진부한 크리스마스가 아닌 의미도 잃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보낼 수 있는 타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새롭게 정리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기회에 나만의 크리스마스를 미리 준비해 보는 건 어떨까. 재주를 빌어 직접 선물을 만들어 지인에게 선물해 보라는 것이 아니다. 고마운 분들을 생각하며 미리 선물을 준비하는 기쁨, 직접 줄 때 느끼는 즐거움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타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는 흉내낼 엄두도 못내니 기쁨이 가득한 마음이라도 닮아보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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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김호영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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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뻬 책을 읽고 있으면 어린시절 생각이 많이 난다. 지금은 사람들이 잘 믿지 않지만, 어릴 적 나는 무척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말도 못 붙였고, 누가 말이라도 걸라치면 얼굴이 빨개져서 부끄러움을 많이 탔었다. 그런 어린시절이 떠올라서인지 이 책 제목만으로도 왠지 친근했다.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랄까. 그런 설렘과 호기심이 제목을 대한 순간부터 나를 지배했다.

 

  꼬마 마르슬랭은 얼굴이 빨개지는 병에 걸렸다. 모든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겁을 먹을때 자주 얼굴을 붉힌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마르슬랭은 아무 이유 없이 얼굴이 빨개졌다. 정작 얼굴이 빨개져야 할 상황에서는 빨개지지 않았고, 친구들이 자신의 붉은 얼굴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점점 외톨이가 되어 갔다. 자신의 얼굴이 왜 빨개 지는지 마르슬랭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마르슬랭은 자신이 불행하다 생각하지 않았고, 단지 왜 자신의 얼굴이 빨개지는지 궁금해 할 뿐이었다. 어느 날, 얼굴이 빨개져서 집으로 돌아오다 계단에서 재채기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한 꼬마 남자 아이를 발견했다. 소년의 이름은 르네 라토였고 감기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재채기를 하는 아이였다.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르네에게도 희한한 병이 있었으니, 쉴새없이 재채기를 해대는 병이었다. 둘이 친해질 수 밖에 없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둘은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어딜 가든 서로를 찾았고,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그들에겐 얼굴이 빨개지는 것과 재채기를 해대는 것이 서로를 좀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는 신호가 될 정도로 특별한 우정을 나눠 갔다. 말 없이 한참을 앉아 있어도 푸근한 사이가 되었고, 외톨이로 보냈던 시간들을 메꿔나가듯 둘은 신나게 지냈다. 그러나 마르슬랭이 할아버지 댁에서 일주일 정도 방학을 보낸 후, 르네 집을 찾아가니 그 사이 르네는 이사를 가버리고 없었다. 마르슬랭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고 마음이 많이 상했다. 르네가 주소를 남겼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고 시간이 흐른 뒤 마르슬랭은 다른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마르슬랭은 르네를 잊지 않았다. 나이가 먹어 어엿한 어른이 된 후에도 말이다.

 

  마르슬랭은 바쁜 나날을 보냈다. 여전히 얼굴을 붉혔고, 많은 일을 하며 복잡한 대도시에서 생활했다. 어느 날 마르슬랭은 비를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어떤 남자가 계속 재채기를 해 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바로 르네 라토였다. 그 둘이 만난 순간을 저자는 능청을 떨며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들은 자주 만났고, 어린시절에 그랬던 것 처럼 짖궂은 장난을 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들은 오랫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함께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들의 아들들이 얼굴이 빨개지고 재채기를 해대며 주변을 뛰어 다닐 때 조차도.

 

  처음에 마르슬랭의 사연이 펼쳐질때만 해도 다소 우울한 결말을 예상했었다. 분명 보통 사람과 다른 아이였기에 사람들의 차별 속에서 살아갈 거라고 속단했었다. 그러나 자신과 조금은 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는 르네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반전을 거듭한다. 중간에 헤어지기도 했지만,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만난 그들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너무 뿌듯했다. 서로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예전의 우정을 되찾을 수 있었고, 더 깊어갔다. 늘 그렇듯 달랑 글만 있었다면 감동이 적었을 이야기에 데셍을 집어 넣으니 감동은 배가 되었다. 조금은 독특한 두 사람이 만나면서 우정을 나누고 다시 만나기까지 상뻬의 데셍이 없었다면, 단지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렸을 거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데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의 감동이 깔려 있었기에 훌륭한 조화를 이뤄낸다고 상뻬를 칭찬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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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집 - 손으로 만드는 따뜻한 세상
타샤 튜더.토바 마틴 지음, 공경희 옮김, 리처드 브라운 사진 / 윌북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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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엄마다"라고 외친 CF가 생각난다. 그런 집에 살고 싶다라는 생각보다 꼬마 모델이 외친 그 한 마디가 참 푸근하게 다가왔다. 나도 어렸을 적 엄마가 집에 없으면, 풀이 죽었다가 엄마가 오면 집의 모습이 다르게 살아났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엄마가 없는 집은 왠지 낯설고, 허전하다. 타샤튜더의 세 번째 책을 마주하면서 집 얘기를 꺼냈던 건 <타샤의 집> 이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워낙 꼼꼼하고 부지런한 타샤 할머니 덕에 <타샤의 집>은 구경만 해도 벅찼다. 타샤 할머니의 집은 푸근함 보다는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현대의 삶과는 사뭇 다른 타샤 할머니의 라이프 스타일 때문일 것이다.
 

  타샤 할머니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한 권씩 책을 모으고 있지만 비슷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걱정과는 달리 다른 책들과 조금씩 중복되는 부분은 있었지만, <타샤의 집>을 통해 말로만 전해들었던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7개의 소제목으로 타샤 할머니의 생활을 구분해 놓았다. 타샤 할머니의 생활이 집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에 집은 타샤할머니 그 자체였다. 타샤 할머니는 19세기 생활을 좋아해서 집도 생활방식도 모두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꾸려 나간다. 될 수 있으면 많은 것을 자급자족하려는 방식으로 힘들고 까다로운 일도 즐거운 마음으로 해 나간다. 집 안에서 벌여 놓는 일을 보면 그 만한 전문가가 타샤 할머니 외에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할머니를 도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먼 거리도 개의치 않고 타샤 할머니와 일을 하는 모습은 단순한 노동이 아닌, 장인정신이 빛날 정도였다. 거기다 그분들이 만드는 것들을 살펴보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손재주가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바구니를 비롯해 비누,양초, 염색, 실 잣기, 베틀 짜기 등등 요즘이라면 직접 하지 않을 일들을 손수 하고 있었다.

 

  거기다 대부분의 재료들을 정원에서 구하고 있었다. 타샤 할머니가 정원에서 얻어 내는 것들은 요즘 시대에서 상상하기 힘든 것들이다. 염색을 위한 식물, 실을 얻기 위한 식물, 바구니의 재료 등 일부러 타샤 할머니는 그것들을 길러내고 있었다. 기르는 것보다 최종 단계의 재료가 되는 과정이 더 복잡했지만 될 수 있는한 자급자족 하려는 태도가 우리네 시골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세계 어딘가에서는 아직도 그런 생활을 영위해가는 사람들이 있을 테지만 스스로 좋아서 그런 삶을 살아가는 분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너무나 즐거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대하기에 지켜만 보고 있어도 행복해지는 그런 사람 말이다.

 

  타샤 할머니의 부지런함과 근면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타샤 할머니와 이 책을 같이 지은 토마 마틴은 양키(미국 동부 뉴잉글랜드 지방 사람들을 뜻함) 문화를 배경으로 성장한 데서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삶의 매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양키 문화 속에서 타샤 할머니도 그런 성향을 키웠을거라고 했다. 그런 배경이 있더라도 타샤 할머니의 일상을 보면 도저히 좇을 수 없는 활력이 느껴진다. 스스로 원해서 일을 하는 타샤 할머니를 무슨 수로 따라갈 수 있겠는가. 타샤 할머니의 발치조차 따라갈 수 없는 게으름이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을. 하지만 자책감으로 타샤 할머니를 대하라는 뜻은 아니다. 타샤 할머니의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을 만끽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므로 전혀 기죽을 필요 없이 <타샤의 집>을 맘껏 구경하면 된다.

 

  타샤 할머니의 일상을 느끼다 보면 집이 주는 포근함은 물론 다른 책에서와는 다른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토마 마틴이 타샤의 친구가 되어, 관찰자가 되어 기록한 글 때문이다. 타샤 할머니의 생활이 소재가 되었지만,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며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따스했다. 타샤 할머니 삶 자체가 인위적인 것이 아닌 놀라움 그 자체지만, 조금 더 공들여진 글로 인해 아름답게 탄생할 수 있어 좋았다. 타샤 할머니의 삶을 차분하게 드러냈던 시간. 독자들이 미쳐 닿지 못한 세계로의 이끌어 주어 타샤 할머니의 매력이 더 돋보였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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