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물리학 - 탁상 블랙홀에서 양자 텔레포테이션까지 상상 초월 물리학의 세계
다케우치 가오루 지음, 꿈꾸는과학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가끔은 내가 속해있지 않은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싶은 유혹이 생길 때가 있다. 대상이 어떠한 것이든 그 유혹은 호기심이냐, 갈망이냐에 따라서 이후의 행보는 판이하게 갈릴 것이다. 그랬다. 내가 궁금해 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던 물리학에 '한번 살펴 볼까'하고 호기심을 갖은 것은 객기였다. 문학만 읽다보면 머리가 살짝 이상하게 될 때도 있다. 머리 위에 상상의 세계를 하나 만들어 놓고, 책을 읽어 나가다 내 맘대로 만들어 가는 세계가 지겨울 때 가끔 객기를 부린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일쑤지만, 이번에 부린 객기는 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든다. 한치의 의심없이 '과학'에 '과' 자도 모른다고 자처하는 내가 이 책을 읽고 나면 좀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독서를 하다 보면, 관심만으로는 읽기가 벅찬 책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이 있어야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만날 때면 좌절하고 만다. 그래도 책들의 겉표지를 꽤 봐왔다 자신하는 나는(겉표지를 통해 책의 깊이의 농도를 짐작할 수 있다고 잘난체 했던 것이다.) 이 책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씌여져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하지만 너무 허물없이 다가간 나는 흠짓 놀라고 말았다. 분명, 재미나게 풀어내긴 했지만 배경지식도 없고, 물리학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빠져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나마 밤의 과학의 톡특함으로 접근해서 다행이였지, 낮의 과학으로 접근했다면 진즉에 책을 덮어 버렸을 것이다. 밤의 과학을 얕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인간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고나 할까. 생뚱맞긴 하지만, 밤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은 더 무한하고 광범위하다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하게 되었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낯선 세계에 발을 들여 놓고,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 내게 저자는 다루호의 <우주론 입문>을 설명하면서 그런 말을 했다. 환상적인 명저이지만, 이공계 전공생들이 읽기에는 너무 문학적이고, 문학 독자들은 우주론 같은 까다로운 주제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그 글귀를 읽는 순간, 우주론 뿐만이 아니라 과학 전체에 털끝만한 관심도 없다고 무릎을 '탁'치며 부담감을 확 떨쳐 버렸다. 어차피 집중 해서 읽는다고 해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는 한계가 있으므로, 아예 맘 놓고 편히 읽자는 어처구니 없는 동기부여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도대체 밤의 물리학이 무엇이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첫 번째 의미로 저자는 무대 뒤편에서 남몰래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나이트 사이언스라고 말하고 있다. 잠자리에서 주고 받은 대화가 대단한 과학 이론을 낳기도 하며, 술집에서 나누던 잡담이 시대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면서. 두번째는 문자 그대로 밤의 과학이라고 말했다. 천체 망원경으로 보는 밤하늘의 과학, 우주론을 말한다고. 세번째는 공상, 허구, 소설, 낭만이 얽히고설켜 있는 수상한 측면과 연관된다고. 저자의 설명이 있어서 조금은 수긍이 갔지만,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은 '밤의'까지 라고 생각했다. 아직 '물리학'의 감은 잡히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나의 이런 마음을 간파하고 물리학이 무엇인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 물질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물체와 물체 사이에는 어떤 힘이 작용하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담을 수학과 논리로 설명한다.(꼭! 방정식을 만들어 내야 한다.)' 와 같은 질문들에 답을 하는 학문이라고 했다. 무언가가 감이 잡힐듯말듯 하지만, 저자의 말을 빌려 적은 것들은 서문에 불과했다.

 

  이 책은 서문을 제외하고 <우주론 여행>, <현대 물리학 여행>, <과학자도 인간일걸> 의 3장으로 나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정설이 아닌 다양한 준정설, 이단적 가설도 담고 있어 각 절 시작 부분에는 분류기호를 붙였다는 설명에 따라 구분하며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같은 문외한에게는 거기서 거기였지만. 하지만 말로만 들어오던 상대성이론, 우주의 폭발 등을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분류기호에 따라서 이것이 정설인지, 준성절인지, 가설인지를 구분만 해도 재미났다. 내가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한 의미의 이해일지라도, 저자가 물리학을 재미있어하고 물리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도 열정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딱딱할 수 밖에 없는 과학책을 읽는 나에게 어느 정도의 벽을 허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나 <과학자도 인간인걸>에서는 과학자들의 일상과 연구에 얽힌 에피소드는 흥미로웠다. 나와는 판이하게 다른 사람으로 분류하던 과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저자의 열정이 물리학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게 만들어 준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도망쳐야 한다. 이 책을 정리하고 설명하는 것은 내게 벅찬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몇몇 가지를 두서없이 읊어대는 것 밖엔 할 것이 없다. 책의 겉핥기도 하지 못하는 나이기에 무엇을 얻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더욱더 버겁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여전히 나의 관심 밖이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밖(우주)의 세계에 눈길을 줄 수는 있었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 눈길은 우주에서 인간이 먼지처럼 여겨지는 작은 존재인 것 처럼, 아주 미미한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언젠가는 관심을 좀 더 키워, 이 책을 통해 얻은 것들을 싹틔울 날을 기다려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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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적들] 서평단 설문 & 리뷰를 올려주세요
작은 기적들 1 -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특별한 이야기
이타 핼버스탬, 주디스 레벤탈 지음, 김명렬 옮김 / 바움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고등학교 때, 나의 관심은 온통 음악이었다. 어느 날, 수중의 용돈을 탈탈 털어서 새로 나온 팝 컴필레이션 음반을 사가지고 집에 왔다. 뿌듯한 마음에 언니한테 자랑을 했더니, 언니가 흠짓 놀랐다. 나는 당연히 최신 음반을 사와서 놀라나 보다 했더니, 언니가 음반 한장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내가 사온 음반이랑 똑같은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어이없어서 웃다가 음반살 때 나한테 말하지 그랬냐고 따지기도 했다. 지금도 언니집에 가면 그 음반이 있는데, 볼때마다 10년 전 그날 일이 떠오르곤 한다. 저자는 아버지에게 선물하기 위해 무리를 해서 책 한권을 사왔는데, 아버지도 딸에게 주기 위해 똑같은 선물을 사왔다는 이야기를 서문에서 밝혔다. 그 이야기를 읽고 보니 추억이 떠올랐던 것인데, 그런 일들이 우연으로만 치부해야 할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짧막한 글들과 여러 사람의 경험이 들어가 있는 사연들로 묶어진 <작은 기적들> 같은 책 말이다. 이 책에는 순간의 찰나로 인해 가족과 만나고, 목숨을 구하는 일들을 기록해 놓았는데 1권을 읽는 내내 힘이 들었다. 내가 관심을 갖지 않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득했고, 헤어졌거나, 어쩔 수 없이 떨어져 버린 가족들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기이한 방법으로 가족들을 만나는 이야기들은 내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런 애틋함을 느낄 일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기이한 일들을 다 끌어 모아 책으로 엮어 놓았다는 비난 까지 서슴없이 하며, 그들의 심정은 헤어리지도 못한 채, 오만한 시선으로 책 속의 사연들을 읽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누그러질 기세도 없이 만남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가족관에 이루어진 행운, 우연, 기적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았다. 식상하게 읽어 나가면서도 종종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연들을 만나곤 했었는데, 이내 잊어 버리고 말았다.

 

  1권을 읽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 2권을 읽게 되었는데, 그 사이에 조문을 다녀온 일이 있었다. 지인의 일이었기 때문인지 2권에 좀 더 마음을 열고 읽었음은 물론, 그 사연들에 푹 빠져서 헤어나올 줄을 몰랐다. 순식간에 읽어 버려서 많은 사연들이 범벅이 되어, 구분할 수 없지만 세상 이야기를 모두 들은 느낌이었다. 결말을 대부분 예측할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서서히 그 이야기들을 믿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시큰둥 했던 처음과는 달리, 그러한 일들이 세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자잘한 에피소드부터, 세월이 많이 흐른 뒤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까지 다양했다. 그 이야기들은 쉽게 씌여진 것 같았지만, 그 사람들 마음 속에 담겨 있는 아픔, 추억, 회한, 사랑의 감정들은 글로 이끌어 내기에 부족했다. 저자는 그런 감동을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해 주려 애쓰고 있었지만, 그 상황에 푹 빠져 일원이 되어야만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저자는 입구까지만 독자들을 인도했고, 감정을 맛보는 일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였다.

 

  1권에서는 가족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가 펼쳐 졌다면, 2권에서는 여성의 영혼을 따뜻하게 해주는 놀라운 이야기라는 부제목이 붙여져 있다. 부제목을 보고 어떠한 이야기가 실려 있을지 의아했는데, 1권과 단락의 주제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가족에서 벗어나 좀 더 광범위한 행운과 우연의 일치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반세기가 지나서야 이루어진 사랑도 있었고, 가족의 이끔으로 목숨을 건진 이야기, 만남과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인정해야 비로소 인간의 감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나의 감정 상태가 조금은 달라진 후에 새롭게 다가오긴 했지만, 이 이야기들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했다. 어쩌면 현재의 나도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우연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자, 과거에 내가 맺었던 사람들과의 우연들을 되짚어 보기도 했고, 기억도 희미한 사람들과의 재회가 일어날 수 있을까란 생각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상이었다. 평생을 살면서 이런 추억쯤은 하나씩 가지고 있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온전히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잠시 스쳤던 인연에서부터, 낯선 이들과의 인연의 이야기는 각자가 갖고 있는 느낌들이 달랐다. 하지만 대부분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줬으며, 이끌었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나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서는 피로 맺어진 끈끈함 때문인지 놀라운 방법으로 만나곤 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평상시와는 조금 다른 나일지라도, 순간의 자신을 믿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언가가 마음을 자꾸 어떤 방향으로 이끌거나, 무엇을 해야 겠다라는 생각을 들 때 그런 기적들은 많이 일어났다. 그것을 기적이라고 말해야 할지, 신의 보살핌이라고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그런 일을 맛보았다는 것이다. 나처럼 똑같은 음반을 같은 날 사온다거나, 전쟁 때문에 잃어버린 가족을 아주 우연히 만난 것도 그 안에 포함되었다.

 

  1권과 2권을 너무 다른 태도로 읽었기에 왜 그랬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1권을 읽을 때는 이 책을 순식간에 읽어 버리고 싶은 마음만 있었기에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태도로 억지로 읽어나갔다. 그러다 2권을 읽기 전 지인에게 조문을 다녀왔고, 마음이 조금은 착찹한 시점에서 읽었기에 책의 본질을 만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책을 읽는 태도만 보더라도 어떠한 마음으로 읽느냐에 따라서 내용이 확연하게 달라진 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변화를 맛본 사람들이다. 그 변화에는 사람들과의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그런 인연으로 인해 삶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많이 달라졌다. 팍팍했던 마음에 감동과 눈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상을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펼쳐질 미래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살 때에 그러한 기적들을 만나고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그런 상상만으로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설레임으로 하루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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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적들] 서평단 설문 & 리뷰를 올려주세요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짧막한 이야기가 참 많이 들어 있는 책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해 놓았기에, 처음엔 무심했었습니다. 하지만 읽어나갈수록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 많은 이야기 중에서 나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 힐링 다이어리


•  서평 도서와 동일한 분야에서 강력 추천하는 도서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가족과의 소원한 관계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습니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마음을 담은 격려의 말 한 마디는 어느 순간 예언이 되기도 한다.(작은 기적들 2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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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의 죽음 그르니에 선집 3
장 그르니에 지음, 지현 옮김 / 민음사 / 199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서점을 갔다. 나의 주머니 사정은 얇팍했지만, 책을 구경한다는 그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책을 둘러보다 한 권의 책을 보자마자 뽑아 들었다. 장 그르니에의 <어느 개의 죽음>이었다. 예전에 그 서점에서 <섬>을 사간 적이 있었다. 이름도 많이 들어본 작가에다 그 작품에 대한 명성도 자자해서 무척 궁금했었는데, 서문을 읽다가 덮고 말았다.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알베르 카뮈의 찬사가 그득한 책이었지만, 정작 나는 한발짝도 다가가지 못했다. 지인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어느 개의 죽음>부터 읽어보라고 했다. 그 말을 잊고 있다가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한 순간 생각이 난 것이다. <섬>에 대한 추억 때문에 약간 긴장하고 책을 펼쳤는데, 쉼 없이 한 순간에 다 읽어 버리고 말았다.

 

  저자는 자신이 키우던 개, 타이오에 대한 회상을 하고 있었다. 안락사를 시켜야만 했던 아픈 기억과 타이오로 인해 행복했던 기억들이 맞물려 있다. 그리고 타이오의 빈자리에 대한 쓸쓸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짧게 써내려 간 글 속에는 타이오의 이야기가 그득하지만, 그 외의 성찰이 담겨 있다. 타이오를 통해 시각을 넓혀 인간의 삶과 연결 시킨다고나 할까. 타이오의 이야기와 동떨어진 느낌이 묻어나는 글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타이오의 죽음에서 비져 나오는 생각들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타이오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면서 그는 '대자연은 우리에게 세상에서의 첫날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날을 선사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맞이한 뒤 (중략)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을까?'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동물과 인간 구별없이 던지는 의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의 죽음을 맞이해 본 사람이라면, 저자의 이러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의문도, 타이오에게 던지는 안타까운 마음도 말이다.

 

  그는 자신이 키우던 개의 죽음을 통해 일방적인 결과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개의 죽음으로 인해 슬프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글로 타이오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 뿐이다. 타이오의 이야기는 저자의 이야기가 되어 갔다. 타이오를 기르면서 품었던 자잘한 감정들과 불편, 행복등을 나열하는 그는 애처로워 보인다. 그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한 마리의 개가 떠남으로써 삶이 위축되어 보이기도 한다.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안락사를 시키면서 마음 아팠을 그의 내면은 곳곳에 드러난다. '개에 대해서 감상적으로 떠벌이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지만, '부드럽고, 바스라져 버릴 정도로 여린 돌조각들에, 단단한 칼날도 무뎌지는 것'의 행태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경험했다고 말하고 있다. 주워다 기른 개에게서 느끼는 애정이 이처럼 남달랐기에 죽음에 대한 그의 마음은 더 처연 했을 것이다.

 

  그가 타이오에 대한 애정과 죽음에 보내는 잔상들도 잔상이지만, 그 안에서 비져나오는 삶의 성찰도 남달랐다. 타이오가 원하는 것을 뿌리칠 수 없음에 선행에 대한 욕구를 말하고, 개가 자신에게 갖는 애착을 통해 인간의 평등한 처우를 보려고도 했다. 오로지 죽음에 대한 슬픔이 가득했다면, 청승맞았을 글이 담담하게 비춘 이유이다. 누구나 한번쯤 자신이 기르던 동물들의 죽음을 경험해 봤을 것이다. 나도 어렸을 적 길렀던 개의 얼굴이 아직도 떠오르며 종종 그리워 할 때가 있다. 나에게는 특별했기에,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니 팔려 버린 개 때문에 무척 슬퍼했었다.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떠나 버린 개에 대한 슬픔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정과 애착으로 범벅이 된 그리움 뿐이었다. 저자처럼 많은 것을 끌어 당겨 엮으며 생각할 겨를도 없었거니와, 그런 밑거름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나이였다. 이제서야 조금씩 함께 한 시간이 행복했다고 고백할 수 있지만, 역시 헤어짐 앞에서는 처연해 질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오직 사랑이란 행위를 통해서만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한 마리의 개의 죽음을 통해 저자는 타이오를 사랑했고, 그 사랑으로 인해 진정한 자신을 만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통해 드러나는 타이오에 대한 추억은 철처한 타인의 기억이지만, 그 추억이 아름다운 건 사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랑 때문에 저자는 타이오와 함께 한 시간이 즐거웠고, 타이오가 없는 생활 속에서도 타이오를 추억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 주변의 사라짐에 대해서 이렇게 처연해 질 수 있다면. 저자의 슬픔까지도 부러워지는 아직도 철이 덜든 나 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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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침개 전도 이야기 - 행복한 안내자로 살아가는 순복음노원교회 전도자들의 증언
유재필 지음 / 두란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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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연말이 되어서 그런지 마음이 헛헛한 요즘이다. 모든 것이 다 시들하고, 어떠한 것도 나의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하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새해가 와 있다는 두려움이 일기도 하다. 그렇게 시간을 허무하게 보내 버리기는 싫다고 하면서도,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헷갈린다. 특히나 최근들어 나의 신앙에도 기복이 심해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나를 내려놓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돌볼 겨를도 없이, 나의 신앙을 추스리기 바쁜 요즘 <부침개 전도이야기>라는 책을 만났다. 책 제목만을도나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했다. 올해도 여김없이 한 명도 전도를 못했고, 한 영혼을 신경쓰기 보다는 내가 먼저 바로 서야 했다.
 

  그래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읽었다. 전도의 불이 일어난 교회의 이야기일지라도, 나의 상황과는 멀다고 치부해 버렸다. 노원구에 위치한 교회로 10만 성도를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순복음노원교회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기적인 신앙을 가지고, 나 하나 살기 바쁜 요즘에 그런 비전을 품는 다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강팍한 마음에서 책을 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초반부터 나의 마음은 턱턱 막히기 시작했다. 현재 내가 갖고 있는 병폐를 콕콕 찔러 주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생의 문제가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어갈 해법의 열쇠를 구하는 지혜이다'라는 목사님의 말씀 앞에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연말을 핑계대고, 나의 신앙이 주춤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해법을 구하기 보다 회피해 버리기 바빳던 나의 모습이었다. 그랬으니 전도의 사명을 가진 순복음노원교회가 은혜롭게 다가왔겠는가. 찔림을 받으면서도,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딴청만 부리고 있었다.

 

   이 책에는 많은 사연이 있었다. 어떻게 한 영혼을 구하게 되었는지,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고, 수 많은 사람들의 기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도자의 마음 밑바탕에 깔려 있는 첫 번째 마음은 사랑이었다. 사랑이 없이는 생면부지의 타인을 전도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사랑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랑은 어떠한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으며, 그 사랑을 닮아가기 위한 마음이야말로 하나님 사랑에 가까이 다가가는 행위이다. 그런 마음을 품고 타인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는 것. 역시나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나눠 주겠노라는 마음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의 제목인 <부침개 전도>도 이웃을 향한 사랑 안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고, 꾸준한 전도를 통해서 결실을 거둘 수가 있었다. 목사님은 '전도용품을 가지고 현장으로 나가는 교인들의 뒷모습이 십자가 군병들처럼 듬직하지만, 때로는 세상 속에 들어가는 양들처럼 애처로워 보인다'고 하셨다. 그들에게 사명감과 사랑이 없었다면, 그 일을 해 낼 수 있었을까. 전도를 해 본 사람만이 전도를 한다라는 말처럼, 전도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 많은 성도들 마음 속에 있었다. 많은 교인들의 간증을 들어 보면 어찌나 사연들이 기구하고, 애처로운지 그런 삶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이었다.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을 찾았고, 매달렸다. 그 가운데 각 구역에서는 그들을 위해서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뜨거운 기도를 끊임없이 해주었다.

 

  또한 전도 안에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비전이 있었다. 노원구의 특징을 파악하며, 외국인 노동자과 장애인 영혼 구원에 힘썼다. 하나님의 자녀를 허물없이 사랑하는 교인들의 모습에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 주변의 복음화를 외치면서도, 그런 복음을 전해본 적이 없었다. 또한 사람을 골라가며 전도해 보려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각자가 받은 성령을 타인에게 서슴없이 나눠주는 교인들을 보면서, 그런 모습이야말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모습이다라고 느꼈다. 간증을 한다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일인데, 간증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도 희망을 나누어 주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 졌다.

 

  간증만 실려 있다면 지루했을 내용에, 목사님의 적절한 설명과 객관적인 입장에서 씌여진 글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하나님을 드러내려는 목사님이 있었기에 아름다운 마음을 품은 성도들이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랬기에 이 책은 순복음노원교회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였다.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자, 나와 동떨어진 세계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큰 비전을 세울 수 없더라도, 내 자신이 먼저 바로 서고 서슴없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신앙 생활을 하라고 했으면, 지쳐 쓰러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나의 어려움을 알고 득달같이 달려 들어 기도해주는 교인들과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했다. 하나님을 붙들고 매달릴 때, 신비한 일이 일어난다는 얄팍한 믿음을 보지 말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길 원한다. 순복음노원교회의 이야기는 그런 간증과 하나님의 사랑, 비전이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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