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물리학 - 탁상 블랙홀에서 양자 텔레포테이션까지 상상 초월 물리학의 세계
다케우치 가오루 지음, 꿈꾸는과학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가끔은 내가 속해있지 않은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싶은 유혹이 생길 때가 있다. 대상이 어떠한 것이든 그 유혹은 호기심이냐, 갈망이냐에 따라서 이후의 행보는 판이하게 갈릴 것이다. 그랬다. 내가 궁금해 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던 물리학에 '한번 살펴 볼까'하고 호기심을 갖은 것은 객기였다. 문학만 읽다보면 머리가 살짝 이상하게 될 때도 있다. 머리 위에 상상의 세계를 하나 만들어 놓고, 책을 읽어 나가다 내 맘대로 만들어 가는 세계가 지겨울 때 가끔 객기를 부린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일쑤지만, 이번에 부린 객기는 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든다. 한치의 의심없이 '과학'에 '과' 자도 모른다고 자처하는 내가 이 책을 읽고 나면 좀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독서를 하다 보면, 관심만으로는 읽기가 벅찬 책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이 있어야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만날 때면 좌절하고 만다. 그래도 책들의 겉표지를 꽤 봐왔다 자신하는 나는(겉표지를 통해 책의 깊이의 농도를 짐작할 수 있다고 잘난체 했던 것이다.) 이 책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씌여져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하지만 너무 허물없이 다가간 나는 흠짓 놀라고 말았다. 분명, 재미나게 풀어내긴 했지만 배경지식도 없고, 물리학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빠져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나마 밤의 과학의 톡특함으로 접근해서 다행이였지, 낮의 과학으로 접근했다면 진즉에 책을 덮어 버렸을 것이다. 밤의 과학을 얕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인간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고나 할까. 생뚱맞긴 하지만, 밤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은 더 무한하고 광범위하다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하게 되었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낯선 세계에 발을 들여 놓고,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 내게 저자는 다루호의 <우주론 입문>을 설명하면서 그런 말을 했다. 환상적인 명저이지만, 이공계 전공생들이 읽기에는 너무 문학적이고, 문학 독자들은 우주론 같은 까다로운 주제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그 글귀를 읽는 순간, 우주론 뿐만이 아니라 과학 전체에 털끝만한 관심도 없다고 무릎을 '탁'치며 부담감을 확 떨쳐 버렸다. 어차피 집중 해서 읽는다고 해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는 한계가 있으므로, 아예 맘 놓고 편히 읽자는 어처구니 없는 동기부여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도대체 밤의 물리학이 무엇이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첫 번째 의미로 저자는 무대 뒤편에서 남몰래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나이트 사이언스라고 말하고 있다. 잠자리에서 주고 받은 대화가 대단한 과학 이론을 낳기도 하며, 술집에서 나누던 잡담이 시대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면서. 두번째는 문자 그대로 밤의 과학이라고 말했다. 천체 망원경으로 보는 밤하늘의 과학, 우주론을 말한다고. 세번째는 공상, 허구, 소설, 낭만이 얽히고설켜 있는 수상한 측면과 연관된다고. 저자의 설명이 있어서 조금은 수긍이 갔지만,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은 '밤의'까지 라고 생각했다. 아직 '물리학'의 감은 잡히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나의 이런 마음을 간파하고 물리학이 무엇인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 물질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물체와 물체 사이에는 어떤 힘이 작용하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담을 수학과 논리로 설명한다.(꼭! 방정식을 만들어 내야 한다.)' 와 같은 질문들에 답을 하는 학문이라고 했다. 무언가가 감이 잡힐듯말듯 하지만, 저자의 말을 빌려 적은 것들은 서문에 불과했다.

 

  이 책은 서문을 제외하고 <우주론 여행>, <현대 물리학 여행>, <과학자도 인간일걸> 의 3장으로 나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정설이 아닌 다양한 준정설, 이단적 가설도 담고 있어 각 절 시작 부분에는 분류기호를 붙였다는 설명에 따라 구분하며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같은 문외한에게는 거기서 거기였지만. 하지만 말로만 들어오던 상대성이론, 우주의 폭발 등을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분류기호에 따라서 이것이 정설인지, 준성절인지, 가설인지를 구분만 해도 재미났다. 내가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한 의미의 이해일지라도, 저자가 물리학을 재미있어하고 물리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도 열정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딱딱할 수 밖에 없는 과학책을 읽는 나에게 어느 정도의 벽을 허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나 <과학자도 인간인걸>에서는 과학자들의 일상과 연구에 얽힌 에피소드는 흥미로웠다. 나와는 판이하게 다른 사람으로 분류하던 과학자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저자의 열정이 물리학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게 만들어 준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도망쳐야 한다. 이 책을 정리하고 설명하는 것은 내게 벅찬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몇몇 가지를 두서없이 읊어대는 것 밖엔 할 것이 없다. 책의 겉핥기도 하지 못하는 나이기에 무엇을 얻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더욱더 버겁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여전히 나의 관심 밖이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밖(우주)의 세계에 눈길을 줄 수는 있었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 눈길은 우주에서 인간이 먼지처럼 여겨지는 작은 존재인 것 처럼, 아주 미미한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언젠가는 관심을 좀 더 키워, 이 책을 통해 얻은 것들을 싹틔울 날을 기다려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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