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인형 - 가브리엘 뱅상의 그림 이야기
가브리엘 벵상 지음 / 열린책들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내 품에 안긴 것은 순전히 끌림 때문이었다. 서점에 갔다 내가 좋아하는 열린책들 진열대 앞에서 서성 거렸고, 이 책을 발견했다. 비닐로 쌓여 있는 책이어서 궁금증이 일기도 했지만, 겉표지의 소년이 꼭 나 같았다. 진열상 속의 인형을 바라보는 눈빛이 이 책을 갈망하는 나의 눈빛과 닮아 있었다. 너무나 많은 책이 집에 쌓여 있기에 선뜻 집어들 수 없어 같이 간 지인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 책 궁금하지 않냐고. 지인은 내 질문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구입한 책을 계산할 때 이 책을 슬쩍 끼워 주었다. 이런 식으로 책을 뺏은(?)게 꽤 많지만, 그래도 강한 끌림을 거부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책을 펼쳤지만, 5분도 안되어서 다 읽어 버렸다. 이 책은 읽었다기 보다 보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겉표지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연필로 쓱쓱 그린 그림이 대부분이었고, 짧막한 설명이 곁들어 있었다. 그림을 보고 처음에는 당황했었다. 데생이라고 하지만, 정성스레 그렸다기 보다는 두꺼운 4B연필로 순간포착을 한 것 같았다. 거침없이 그려진 세계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웠고,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지우개로 지워버린다면 지워질 것 같은 생생함과 다듬어지지 않은 거침이 나를 더 이끌었다. 짧은 글은 여러 페이지가 지나야 나왔지만, 그림 곁의 공백에 수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었다. 내 머릿속에 벵상의 그림의 이미지는 순식간에 들어왔고, 어느새 그 곳에 머물러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 소박한 데생이었지만 너무 많은 것이 나의 내면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잠시 그림 속의 아이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아이는 상점 속의 인형을 발견한다. 조그만 인형이었는데 둘은 수줍게 서로를 쳐다보며 미소를 나눈다. 인형이 움직이는 모습에 웃기도 하며, 서로를 즐겁게 관찰하다 아이는 문득 그 인형과 놀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상점의 주인 할아버지에게 혼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선뜻 꼬마인형에게 말을 건네지 못한다. 그러나 꼬마인형은 자꾸 숨으려고 한다. 무엇 때문일까. 아이가 놀러 나가자고 해서일까? 꼬마인형은 다른 곳에 걸려있는 늑대인형을 무서워 하고 있었다. 아이는 꼬마인형이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꼬마인형을 지켜주려 한다. 아이는 꼬마인형을 꼭 껴안아 늑대로부터 보호해준다. 꼬마인형을 보호해주는 아이를 지켜보던 주인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말을 걸려고 하지만, 아이는 꼬마인형을 안고 도망친다. 할아버지가 자신을 혼내려 하는 줄 알고 착각한 것이다. 아이는 도망가고, 할아버지는 뒤쫓다 대화를 통해 오해를 푼다. 인형을 돌려주려던 아이에게 할아버지는 다시 인형을 주고, 둘은 친구가 된다. 둘은 인형을 잡고 춤을 추기도 하고 거리를 걷기도 한다. 또 오라는 할아버지의 인사에 아이는 '그럴게요' 라고 대답한다.

 

  생명이 없는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 아이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런 따뜻함은 말로 설명하기 보다 직접 보는 것이 충만함을 훨씬 더 준다. 할아버지와 꼬마의 대화가 무척 짧지만, 데생에서 느껴지는 사연은 무궁무진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섬세한 배경, 상황과 분위기 이입을 통해 더 풍부하게 채워 나갈 수 있었다. 아이와 인형의 표정만 달랑 그려진 데생만 보아도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든 감정이 다 내게 쏟아지는 것 같아 마음이 벅찼다. 간단하면서도 별 내용이 없는 것 같은 데생으로 벵상은 독자의 연령층, 성별에 상관없이 광할한 상상의 바다를 선물해 주었다. 그것이야말로 벵상의 탁월한 능력이 아닐까. 지우개로 지워버릴 수 있는 생생함, 깊은 감정 표현을 너무나 간단하게 드러냈기에 그의 데생을 덮지 못하고 계속 서성이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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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독자서평단 활동 종료 설문

•  서평단 도서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엄마를 부탁해> 

- 단순히 엄마에 관한 책이겠거니 했는데, 너무 많이 울어 버렸던 책이었습니다. 엄마가 계시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고, 엄마가 내 곁에 있어주는게 너무나도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  서평단 도서의 문장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구절 

- 엄마라는 말에는 친근감만이 아니라 나 좀 돌봐줘,라는 호소가 배어 있다. 혼만 내지 말고 머리를 쓰다듬어줘, 옳고 그름을 떠나 내 편이 되어줘,라는. -27쪽

•  서평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1.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2. 바다의 기별 - 김훈

3. 미트포트 이야기 - 잰 캐론

4. 작은 기적들 - 이타 핼버스탬, 주디스 레벤탈

5. 혼자놀기 - 강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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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문 - 나의 뱀파이어 연인 트와일라잇 2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변용란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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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생활이 말이 아니다. 조금씩 삶의 기운을 잃어가는 가운데, 트와일라잇을 만나 생기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가 되고 있다. 트와일라잇을 읽었을 때의 흥분과 영화를 봤을 때의 실망감이 뒤섞여서 혼란스러웠지만, 도저히 에드워드의 매력에 빠져 나올 수 없었다. 부랴부랴 2,3부를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지만, 1부에서의 에드워드를 기대했기에 2부를 읽다 지쳐버리고 말았다. 에드워드는 갑자기 떠나버리고, 홀로 남겨진 벨라의 생활이 썩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읽어버리려 했던 나의 마음은 사라졌고, 100페이정도 읽다가 책을 덮어 버렸다. 그런 멈춤이 에드워드에 대한 환상을 깨어줄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책의 내용에 따라 나의 감정기복이 심해지고,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해 기분이 씁쓸해지고 말았다.
 

  뉴문을 읽는동안 에드워드가 나오지 않아서 기분이 쳐지는 것도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괴롭혔던 것 같다. 완벽한 에드워드를 상상속에 띄워놓다보니 정상적인 생활을 할수 없을 정도로 신세타령이 늘어 버렸다. 외로움에 사무쳐, 최소한 사랑을 할때 서로를 알아 볼 수 있지 않냐는 푸념아닌 푸념을 해대고 있다. 에드워드와 벨라처럼 강렬하고 운명적인 만남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만남을 갈망하게 되는 헛바람은 도무지 사그라들 줄을 모른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존재 때문에 벨라가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살 것이라는 것이 괴로워 이별을 한다. 1권에서 그렇게 달콤했던 에드워드가 갑작스럽게 이별을 고함으로써 남녀 사이의 빤한 스토리가 전개 되지만, 그런 단계를 밟아 가는 것이 싫었다. 둘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을 해야 했다. 그런 바람이 내게 허영을 부풀려주는 계기가 되더라도 무조건 그들은 함께 해야 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자신의 가족과 함께 할때마다 사소한 일에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고, 벨라의 두고 훌쩍 떠나 버린다. 그들은 이별을 감당할 수 있을까. 벨라는 산 시체가 되어가지만, 몇 달이 흘러도 에드워드에게 아무런 연락조차 없다. 그런 벨라를 위로해 주었던 건, 아버지 친구 아들 제이콥이었다. 에드워드가 벨라 곁을 떠난 사실을 주변 사람들도 모두 알지만, 벨라가 마음을 열지 않는 이상 어느 누구도 위로해 줄 수 없는 아픔이자 슬픔이었다.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벨라의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데 어떻게 정상적으로 살아갈 것인가. 학교와 집, 잠을 잘때조차 벨라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벨라가 제이콥에게 다가가게 된 계기는 에드워드 때문이었다. 그를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다. 벨라는 자신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들린다 믿고,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제이콥을 찾아가는 계기를 만든다.

 

  나 역시 에드워드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벨라처럼 자연스럽게 받아 들였듯, 사랑 앞에서 그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이콥의 변화를 받아들이여 하는 것은 좀 혼란스러웠다. 제이콥으로 인해 희망의 빗줄기를 엿보았던 벨라에게는 제이콥과 에드워드가 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더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자신을 향한 마음 때문이라기 보다, 제이콥을 곁에 두고 하면서도 마음은 에드워드를 향했던 벨라. 그 사실을 알면서도 벨라를 사랑하는 제이콥은 자신의 부족의 전설에 자리한 뱀파이어와 적대적인 관계로 변신하고 만다. 제이콥의 변신으로 1편에서 벨라를 죽이려 했던 제임스의 연인 빅토리아로부터 벨라를 지켜주지만, 에드워드가 비워버린 자리는 결코 벨라에게 이롭지 않았다. 제이콥의 변신도 마음 아프고, 자신을 노리는 뱀파이어, 거기다 에드워드를 그리워 하는 마음은 너무도 처절해서 벨라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 기특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 놓인 벨라를 에드워드는 도대체 알고 있는 것일까. 벨라의 마음을 읽어가다보니 나조차도 그가 못견디게 그리워 세상에 시련을 다 짊어진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책의 80%이상은 벨라가 에드워드를 그리워하는 일, 제이콥과의 우정과 그의 변신으로 채워지지만 벨라가 한 행동 때문에 상황은 급격히 변한다. 지금껏 에드워드가 나오지 않아 실망하고, 큰 사건없이 흘러가는(제이콥의 변신등 사건이 많았지만) 책의 흐름을 견딘 과정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에드워드가 등장한다.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에드워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절벽에서 다이빙을 한 모습을 에드워드의 누나 앨리스가 내면으로 보게 되고, 에드워드에게도 소식이 전해진다. 오해를 해 벨라가 죽었다고 생각한 에드워드는 죽을 일이 아니면 찾아가지 않는다는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뱀파이어 가문 '볼투리' 일가를 찾아간다. 그런 에드워드를 막아야 했기에 앨리스와 벨라는 이탈리아로 날아가고 상황은 급변하며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그런 상황이었음에도 벨라처럼 에드워드를 마주하게 될 현실에 가슴이 떨려왔다.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그동안 벨라가 그리워한 마음이 철저히 내면에 박혀 있었으므로 에드워드와 조우를 무척 기다리게 되었다.

 



  에드워드와 벨라는 다시 만났다. 에드워드가 위험에 노출된 그 순간에.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마치 내가 벨라인 것처럼 에드워드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안심 되었다. 무사히 위험에서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이고, 재회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서 단순하게 상황이 끝나는 것이 아닌 더 많은 복잡미묘한 문제들이 남아 있다고 해도 말이다. 에드워드의 등장만으로도 충분히 달콤했고, 다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제이콥과의 관계, 벨라가 에드워드와 같은 존재가 되는 여부, 앞으로의 진로들이 얽혀있지만 조금씩 풀어가면 될 것이다. 볼투리 일가와의 약속도 고민거리를 남겨 주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벨라 곁에는 에드워드가 있고, 에드워드는 벨라를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고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충분히 알게 되었으므로. 잠시 안정된 상황에 내가 다 진이 빠져 약간의 공황상태지만, 당분간은 현실을 직시하려는 노력만 하면 될 것 같다. 에드워드 같은 남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 나는 절대 벨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조금 허무하긴 하지만, 책으로만 즐겨야지 절대 현실로 끌어오면 안 될 것 같다. 나의 현실을 더이상 망가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씁쓸함이 밀려온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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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일라잇 특별판 트와일라잇 1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변용란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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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날 밤은 몹시 지쳐 있었다. 몸도 피로했고, 정신도 흐트러져 나약한 생각들이 나를 파고 드는 밤이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늦은 밤. 그런 나를 잊고 싶을 정도로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날 내게 도착한 10권의 책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이 책에 눈길이 꽂혔다. 10권의 책 중에서 가장 두꺼워 읽기가 싫었는데, '최강 로멘스'라 칭찬했던 몇몇 지인들의 말이 떠올라 꺼내 들었다. 그런 책이라면 분명 빠져들 수 있을테고, 요즘같이 마음이 헛헛할 때는 로멘스도 괜찮다 싶었다. 그런 깨달음이 좀 빨리 오면 좋으련만. 꼭 잠들기 전인 깊은 밤에 행동을 취하게 된다. 그러다 흡인력 있는 책을 만나게 되면, 늦게 자고, 다음 날 피곤해 할꺼 뻔하면서. 역시나 이런 후회는 새벽이 되어서야, 졸려서 책을 덮지 않을 수 없을 때야 뒤늦게 하게 된다.

 

  미친듯이 책을 읽었지만, 절반 밖에 못 읽었는데도 시간은 새벽 3시를 넘기고 있었다. 중요한 사건도 어느 정도 지나가고, 로멘스도 넉넉히 즐긴 터라 책을 덮었다. 퇴근 후 고요한 시간에 방구석에 틀어 박혀 읽고 싶었지만, 아침에 출근준비를 하면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가방에 넣고 말았다. 사무실에서 이 책을 펼치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결국은 펼쳤고 빠져 들어 버렸다. 이런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어 다음 시리즈를 주문해 놓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지금 당장 다음 책을 읽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으니 꼼짝없이 내일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현실이 공허하게 다가왔다. 이 책에 마음을 뺏긴 내가 한심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잠시나마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게 여겨지기도 했다. 어차피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니 상상속에서라도 실컷 꿈꿔 보고 싶었다. 여자 주인공은 잠시 밀쳐내고, 남자 주인공의 눈빛을 내게로 돌려놓는 말도 안되는 설정을 해 놓은채로 말이다.

 

  이 책의 저자가 여자라는 사실이 책 속에 속속들이 드러났지만, 그 사실이 무척 감사했다. 많은 여성들이 어떤 로멘스를 꿈꾸는지, 어떤 상황을 좋아하는지 안다는 사실 때문일까. 섬세한 묘사를 뒷받침 해주는 세세함이 허영을 몽땅 불어 넣어 주었지만, 여심을 휘어잡는 매력을 거부할 수 없었다. 설령 그가 뱀파이어라도 해도 장생긴 외모,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미소, 정신을 혼란하게 하는 눈빛이라면 어떤 사람이 거부할 수 있겠는가. 거기다 온통 자신에게 빠져 있는 남자라면 더할나위 없는 헛된 상상에 온 몸과 마음을 맡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이렇게 감칠맛 나게 써 내려가다니. 설레임에 몸부림 치며, 나의 예상대로 흘러가주는 뻔한 스토리에서 도무지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1901년 태생인 에드워드 컬렌과 17살 소녀 벨라.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면서도 빠져듬을 멈출 수 없었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정체를 들통나지 않기 위해 독특한 가족 구성원들과 포크스에 정착했고, 벨라는 재혼한 엄마를 떠나 아빠가 살고 있는 포크스에 오게 되었다. 어린 나이로 보여야만 한 곳에 오래 정착할 수 있다던 에드워드는 고등학교에 재학중이었고, 벨라는 전학을 온 터라 그들의 첫 만남은 학교였다. 그러나 그들의 만남은 순탄치 않았다. 외모만으로도 충분히 빠져들 수 밖에 없는데, 에드워드는 벨라를 벌레보듯 한다. 그러다 벨라가 차에 깔릴뻔 한 일이 생겼고, 에드워드는 순식간에 나타나 벨라를 구해준다. 그런 일들이 조금씩 쌓여 가는 가운데, 그들은 서로에 대한 수 많은 궁금증을 안고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힘에 빨려들고 만다. 

 

  위험할 때마다 자신을 구해주고 한없이 감미롭게 헌신을 다하는 에드워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지만, 벨라는 그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에게 드러나는 이상한 능력, 들려오는 소문을 간추리고 직접 물어 알게 되었지만, 이미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기에 벨라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착한(?) 뱀파이어였고, 그녀의 피를 너무도 원하지만 벨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욕망을 절재해 간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흘러가는 둘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에드워드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조차 무기력하게 다가왔다. 그로인해 벨라의 가족과 에드워드 가족을 잃을 뻔하고, 벨라의 목숨까지 위험해 지기도 했다. 하지만 운명처럼 다가온 에드워드를 벨라는 거부할 수 없었다. 90년만에 첫 사랑을 하게 된 에드워드는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생명이라는 고백과 함께 벨라를 깊이 사랑하고 지켜준다. 벨라는 에드워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와 같은 존재가 되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둘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을 에드워드는 너무도 간단히 대답해 주었다. 벨라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 이 세상 모든 걸 다 합친 겁보다 사랑하니 그걸로 충분하지 않냐는 에드워드의 말에 벨라도 동조할 수 밖에 없었다.

 

  둘의 사랑놀음에 깊은 대리만족을 하면서도 약간은 진부하기도 했지만, 풋풋한 마음을 찾아 나서는 시간이 싫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빠져드는지, 이런 상황에서 여자는 무엇을 원하는지를 훤하게 꿰고 있는 저자와 곧바로 행동을 취하는 에드워드 덕분이었다. 에드워드가 뱀파이어라서 위험하고, 고통스럽고, 불행한 것이 아닌 순수하고 세상에 존재 이유를 드러낼 수 있는 사랑을 보여 주었다. 앞으로 그들에게 닥칠 시련과 위험이 어느정도일지 상상할 수 없지만, 1권에서는 모든 위험요소를 덮어 버릴 만큼 둘의 사랑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스토리의 흐름과 결말도 중요하지만, 철저히 과정을 즐긴 책이었다. 책의 곳곳에 나의 감정을 흩부려 놓아 자꾸 떠들러 보고 싶을 정도로 내가 만들어 놓은 달콤한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사랑에 목말라 있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이런 환상을 키워가느라 사랑을 못하는 것일까. 어떠한 질문도 대답이 되어 주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하나된 마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행복해 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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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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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을 처음 마주한 것은 10년 전이다. 당시에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인기가 지금처럼 높지 않아서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고, 하필 리뷰를 남기지 않은 기간에 '키친'을 읽어서 책 내용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 뒤로 세 권의 책을 더 읽었지만, 바나나 책을 직접 구입해서 읽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미묘한 감정이 벽을 만들고 있는 부족함. 누군가 내게 바나나 책을 선물해 준다면 열심히 읽어보겠다는 속물근성만 드러내고 있던 찰나, 드디어 내 손에 두툼한 바나나 책이 쥐어졌다.

 

  지금껏 얇은 책만 읽어서인지 500페이지에 달하는 바나나 책을 보고 있자니 읽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두껍긴 했지만,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부담없이 펼쳐 들었다. 나의 예상대로 책장은 편안히 넘어갔고, 이런 느낌의 책은 두께와 상관없이 평이하게 만끽할 수 있었다. 바나나 특유의 흡인력과 함께 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너무 빨리 읽어서), 굉장히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책 속의 인물들과 함께 한 기억 때문이지만, '암리타'는 줄거리보다 소소한 감정의 나열이 더 많았던 책이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감정속에 파묻히다 보니, 나의 단면을 보는 듯한 착각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책의 줄거리는 딱히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었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던 주인공 사쿠의 가족과 주변인물들이, 뒤로 갈수록 독특함에 날개를 단 듯 더 가관이 되어간다고나 할까. 애매모호한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는지, 낯선 느낌들이 나를 훑고 있을 뿐이었다.

 

  큰 사건들이 드러나지 않을 때는 사쿠의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어느정도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나와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세계에서 충분히 마주할 수 있는 인생이라 착각하면서.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을 거라는 생각에 특별한 흐트러짐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타나는 사쿠의 동생과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거라는 맹목적인 상상보다 말도 안된다는 현실감이 더 밀려왔다. 소설을 소설로 보지 못한 이유는 사쿠의 내면을 통해 전달된 일상과 생각들이 친근했기 때문이었다. 타인의 삶에서 느껴지는 지극한 현실감에 빠져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현실적인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 만나게 되는 거부감인지도 몰랐다.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대했음에도, 급격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평행적인 흐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쿠는 엄마와 배다른 남동생, 사촌 여동생, 집을 나온 엄마의 친구와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아빠가 같은 여동생 마유는 자살했고, 여동생의 남자친구였던 류이치로와 미묘한 관계속에 있다. 책은 마유와 류이치로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간단하게나마 사쿠의 현재를 정리해놓고 보면, 특별할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굉장히 특별할 수도 있는 상황을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게, 소소한 감정을 다 쏟아부으며 얘기하고 있어서였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줄거리라고 할 수 있는 전개는 더뎠다. 사쿠의 머리속에 꽉 차 있는 수 많은 상념들을 쏟아내느라 줄거리를 추려 내기가 어색할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쿠의 주변은 평범함을 넘어 비현실적인 세계로 노선을 갈아타고 만다.

 

  첫 낌새는 초등학생인 동생 요시오의 변화에서 찾아온다. 평범하기만 한 요시오는 어느날부터 소설을 쓴다고 방에 틀어박히더니, 급기야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말한다. 사쿠가 동생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을 직접 보여준 일화 때문이었다. 어떤 현상을 미리 보고,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초등학생인 동생에게 나타난 것이다. 살짝 판타지적으로 흐를 수 있었던 분위기를 어느정도 잡아주었던 것은 사쿠였다. 책의 곳곳에서 중재자 역할을 감당했던 사쿠는 동생의 상태에 대해 흥분하거나 좌절하지 않았고, 멘토의 입장에서 담담하게 최선을 다해갔다. 자신이 머리를 다치고 부분부분 기억을 잃어버린 후에도, 동생의 능력을 알아보며 진솔하게 대해주는 사람들 앞에서도 담백하게 동생을 대해 주었다. 그런 사쿠가 있었기에 요시오의 광활한 내면이 많은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엄마나 주변사람이 보기에 걱정스러울 행동을 하긴 했지만, 동생의 내면에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에 묵묵히 도와줄 수 밖에 없었다.

 

  동생과 류이치로를 통해 알게 된, 혼을 알아보는 사람과 독특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서도 사쿠는 묵묵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끌어 들이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쿠의 주변에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런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과 지극히 평범한 자신과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 틈에서 사쿠는 잘 어울렸다. 많은 일을 겪고, 여러가지 변화를 거치면서도 그녀가 그렇게 느껴졌던 것은 끊임없는 자신과의 대화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여행 속에서도,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가운데서도, 집안의 변화에 대해서도 사쿠는 자신을 늘 마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없이 쏟아내는 감정들이 그것이었고, 특별한 일들 가운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냈다. 수없이 얽혀있는 사람과 사람, 혼과 넋,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은 그렇게 또다른 조용함을 간직한 채 흘러갔다.

 

  시간이 흐르면 변화가 찾아오는 것처럼, 사쿠의 주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결말이 무척 궁금했었는데, 처음 예상했던 것처럼 똑부러진 결말이 아닌 흐르는 그대로 마무리 지어졌다. 어느 순간 그 뒤를 이어 글을 써 내려간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흐름. 사쿠와 류이치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고, 혼란을 거듭하고 어떤 것이 최선인지 모를 요시오의 문제는 의외로 싱겁게 흘러갔다. 신비한 능력이 쇠퇴해 갔고, 중학교에 다닌 뒤 탁구에 빠져 과거의 요시오를 떠올릴 수 없게 만들 정도였다. 무엇보다 기억이 되살아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쿠의 모습이 담담했다.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너무 서정적이라고, 혹은 너무 주관적이라고 생각했던 얘기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사쿠가 기억을 잃어버린 뒤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갔던 것처럼, 인생은 앞서서 전진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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