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인형 - 가브리엘 뱅상의 그림 이야기
가브리엘 벵상 지음 / 열린책들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내 품에 안긴 것은 순전히 끌림 때문이었다. 서점에 갔다 내가 좋아하는 열린책들 진열대 앞에서 서성 거렸고, 이 책을 발견했다. 비닐로 쌓여 있는 책이어서 궁금증이 일기도 했지만, 겉표지의 소년이 꼭 나 같았다. 진열상 속의 인형을 바라보는 눈빛이 이 책을 갈망하는 나의 눈빛과 닮아 있었다. 너무나 많은 책이 집에 쌓여 있기에 선뜻 집어들 수 없어 같이 간 지인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 책 궁금하지 않냐고. 지인은 내 질문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구입한 책을 계산할 때 이 책을 슬쩍 끼워 주었다. 이런 식으로 책을 뺏은(?)게 꽤 많지만, 그래도 강한 끌림을 거부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책을 펼쳤지만, 5분도 안되어서 다 읽어 버렸다. 이 책은 읽었다기 보다 보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겉표지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연필로 쓱쓱 그린 그림이 대부분이었고, 짧막한 설명이 곁들어 있었다. 그림을 보고 처음에는 당황했었다. 데생이라고 하지만, 정성스레 그렸다기 보다는 두꺼운 4B연필로 순간포착을 한 것 같았다. 거침없이 그려진 세계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웠고,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지우개로 지워버린다면 지워질 것 같은 생생함과 다듬어지지 않은 거침이 나를 더 이끌었다. 짧은 글은 여러 페이지가 지나야 나왔지만, 그림 곁의 공백에 수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었다. 내 머릿속에 벵상의 그림의 이미지는 순식간에 들어왔고, 어느새 그 곳에 머물러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 소박한 데생이었지만 너무 많은 것이 나의 내면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잠시 그림 속의 아이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아이는 상점 속의 인형을 발견한다. 조그만 인형이었는데 둘은 수줍게 서로를 쳐다보며 미소를 나눈다. 인형이 움직이는 모습에 웃기도 하며, 서로를 즐겁게 관찰하다 아이는 문득 그 인형과 놀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상점의 주인 할아버지에게 혼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선뜻 꼬마인형에게 말을 건네지 못한다. 그러나 꼬마인형은 자꾸 숨으려고 한다. 무엇 때문일까. 아이가 놀러 나가자고 해서일까? 꼬마인형은 다른 곳에 걸려있는 늑대인형을 무서워 하고 있었다. 아이는 꼬마인형이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꼬마인형을 지켜주려 한다. 아이는 꼬마인형을 꼭 껴안아 늑대로부터 보호해준다. 꼬마인형을 보호해주는 아이를 지켜보던 주인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말을 걸려고 하지만, 아이는 꼬마인형을 안고 도망친다. 할아버지가 자신을 혼내려 하는 줄 알고 착각한 것이다. 아이는 도망가고, 할아버지는 뒤쫓다 대화를 통해 오해를 푼다. 인형을 돌려주려던 아이에게 할아버지는 다시 인형을 주고, 둘은 친구가 된다. 둘은 인형을 잡고 춤을 추기도 하고 거리를 걷기도 한다. 또 오라는 할아버지의 인사에 아이는 '그럴게요' 라고 대답한다.

 

  생명이 없는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 아이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런 따뜻함은 말로 설명하기 보다 직접 보는 것이 충만함을 훨씬 더 준다. 할아버지와 꼬마의 대화가 무척 짧지만, 데생에서 느껴지는 사연은 무궁무진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섬세한 배경, 상황과 분위기 이입을 통해 더 풍부하게 채워 나갈 수 있었다. 아이와 인형의 표정만 달랑 그려진 데생만 보아도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든 감정이 다 내게 쏟아지는 것 같아 마음이 벅찼다. 간단하면서도 별 내용이 없는 것 같은 데생으로 벵상은 독자의 연령층, 성별에 상관없이 광할한 상상의 바다를 선물해 주었다. 그것이야말로 벵상의 탁월한 능력이 아닐까. 지우개로 지워버릴 수 있는 생생함, 깊은 감정 표현을 너무나 간단하게 드러냈기에 그의 데생을 덮지 못하고 계속 서성이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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