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블루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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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할 때, 그 기간 동안 읽을 책을 고르는 손길은 섬세할 수밖에 없다. 기차 안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동하는 탓에 소음이 잦기 때문에 쉽게 집중할 수 있는 책을 고르는 것이 현명하다. 읽기 힘든 책을 긴 여행 동안 읽으려고 가져갔다 소음 때문에 낭패를 본 적이 많기에 이제는 재미있는 책들을 주로 들고 간다. 소음을 잊어버릴 정도로 빠져들 수 있는 책. 그 책이 무엇일까 고민할 틈도 없이 미야베 미유키의 <퍼펙트 블루>를 꺼내 들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브레이브 스토리(4권)>를 만난 것이 전부였지만, 유명한 작가인 만큼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브레이브 스토리>가 큰 어필을 주지 못한 탓에 눈에 띌 만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지 못한 때에 <퍼펙트 블루>는 제 때에 찾아온 작품이나 다름없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첫 장편 소설이라고 하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미 유명한 작품이 있는데 그런 작품도 아닌 초기작을 만난다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그녀의 필력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터라 약간의 거리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으로 인해 미야베 미유키를 재조명하기 시작했고, 이제야 그녀의 히트작이 궁금해 못 견딜 지경에 다다랐다.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전작하는 작가가 많았기에 놀랄 일도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에 빠져 들 동안 굉장한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등한시 하고 있었다. 그러다 <퍼펙트 블루>를 만났고, 이제야 그녀의 이름을 인지하기 바빴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반하게 되는 작품은 높은 완성도를 드러냈을 때다. 그런 작품을 만나는 기회가 그리 흔하다고 할 수 없는데, <퍼펙트 블루>는 잔잔하면서도 치밀하게 추적해 가며 완성도를 높이고 있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독자를 속도감 있는 호기심에 빠뜨리는 것도 하나의 매력으로 볼 수 있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단서를 던져주며 이끌어가는 구도가 돋보였다. 거기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들도 독특했다. 전 경찰견인 마사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다른 인물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기도 한다. 처음 이야기를 이끌었던 마사가 역시나 이야기를 마무리하긴 해도, 개(犬)라는 신분을 때때로 드러낼 때야 인식할 정도로 흐름은 매끄러웠다.

 

  마사는 경찰견이었지만, 부상을 입어 치료를 받고 지금은 하스미 탐정사무실에서 몸을 담고 있다. 마사는 하스미 탐정사무실에 의뢰 들어 온 가출한 소년을 데려와 달라는 일부터, 본격적인 수사를 하게 되는 과정까지 마사의 역할이 컸다. 중간 중간 개로써의 역할도 해야 했고, 독자에게 내용도 전달해줘야 하니 마치 사람인양 능청스럽게 해대는 말과 행동에 듬직할 정도였다. 처음에 하스미 탐정사무실에서 의뢰받은 일은 모로오카 신야라는 소년을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신야는 마쓰다 학원 고등학교의 에이스인 모로오카 가쓰히코의 동생이었다. 천재 투수로 불릴 정도로 실력을 겸비하고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런 형에게 가출하는 동생은 골칫거리 일 것이다. 부모는 가쓰히코에게 그런 누(累)가 갈까 탐정 사무실에 의뢰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촉망받던 가쓰히코는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된다. 그 현장을 탐정사무실에 나온 하스미 가요코와 신야가 발견하게 되고 사건은 더 복잡하게 미궁으로 빠진다. 최고의 에이스로 여겨지던 가쓰히코의 죽음은 가족 뿐 아니라 수많은 야구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더군다나 가쓰히코를 죽인 사람이 한 때 같은 야구부였던 히로시 마쓰다야라는 것이 그의 자살과 유서로 드러났으므로 안타까움을 더해갔다. 그렇게 마사의 입으로 통해지던 가쓰히코의 죽음에서 잠시 시선은 기하라라는 남자로 옮겨간다. 다이도제약의 총무부 책임자라는 한직에 머물고 있었지만, 아내의 죽음으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남자였다. 기하라는 다이도제약이 비밀리에 실험했던 '넘버 에이트'의 부작용을 들어 협박하는 남자와의 거래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맡고 있었다. 5년 전에 죽은 한 소년의 죽음이 '넘버 에이트' 때문이었다는 협박범과 다이도제약에 숨겨있는 비밀은 가쓰히코의 죽음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다시 마사의 시선으로 돌아온 이야기는 또 다른 쟁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마쓰다의 질투와 분노로 가쓰히코가 죽었다는 사실로 묻힌 듯 했으나 하스미 탐정사무실과 신야의 신변에 작은 문제점들이 일고 있었다. 누군가 추적하고 있었고, 그들을 잡고 보니 마쓰다 학원이 '고시엔' 흙을 밟지 못하도록 손을 쓴 다른 고등학교의 부원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가쓰히코는 같은 야구를 하고, 같은 청춘을 보내는 학생들의 질투와 집단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점 가운데 일어난 피해자였다. 얽히고설키는 가쓰히코의 죽음의 배후는 또 그렇게 드러난 듯 했지만, '넘버 에이트'가 수면에 떠 오른 만큼 더 복잡 미묘한 문제점이 야기될 분위기가 농후했다.

 

  한편 하스미 일행과 신야, 그리고 신야의 주변 인물들은 끈끈한 신뢰로 사건에 접근해 간다. 그런 접근방식은 독자를 차분하면서도 의문을 가질 수 있게 만들며 사건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마련해 주었다. '넘버 에이트'의 전말이 밝혀지고, 생각했던 것보다 가쓰히코의 죽음에는 더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하기까지 했다. 책이 끝날 때까지 촘촘히 조여 오는 사건의 내막은 책장을 모두 덮을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가쓰히코의 죽음에는 야구를 뛰어 넘어 인간의 잘못된 욕망과 사건 은폐, 집안 문제까지 드러나 먼 길을 돌아온 기분이었다. 기하라가 부인의 죽음을 보고 인간이 '데이터'로 용납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며 하스미 일행에게 도움을 주었던 것만큼 가쓰히코와 마쓰다처럼 드러난 피해자가 아니라 숨겨진 데이터들이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죽음 앞에서 오로지 안타깝다는 생각만 했던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침체해 지려는 나의 기분과는 다르게 저자는 어둡게 사건을 다루지 않았다. 잃은 것이 있고 밝혀진 것이 있다면, 얻은 것이 있고 진실을 위해 감춰야 할 것들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치명적이었던 퍼펙트 블루의 역효과는 잠시 잊은 채, 모든 일을 함께 겪은 그들이 있기에 희망을 얻어 보려 한다. 세상은 아직도 정의가 살아 있다는 조금은 진부한 결론을 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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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킹 던 - 나의 뱀파이어 연인 완결 트와일라잇 4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윤정숙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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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완결을 기다려 왔는지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것은 행복함과 기대감, 아쉬움 감정이 섞인 기다림이었다. 번역본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까지 합치자면 꽤 오랜 시간이었음에도 책이 출간되고 나서도 바로 만날 수 없어 애를 태우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완결 <브레이킹 던>은 만감이 교차한, 그야말로 모든 감정의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커다란 만남이 되어갔다.
 

  800페이지가 넘는 완결의 내용을 정리한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한 때 나를 사로잡았던 이야기였다.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이라는 식상한 주제를 저자만의 색다른 색깔로 버무려 냈기에 후유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였다. 한 권씩 읽어 나갈 때마다 느낌보다 개인적인 감정들로 채워졌던 리뷰를 떠 올려 보면, <브레이킹 던>을 어떤 식으로 남겨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봉 될 영화가 남아 있긴 하지만, 시리즈의 마지막이라는 타이틀은 한 가지의 감정으로 독자를 끌고 가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시리즈를 감정에 치우쳐 통찰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면 이 책은 철저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봤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감정의 이입보다 지켜보는 입장이었고, 내면에 흐르는 감정들이 낯설 정도였다.

 

  <이클립스>에서 벨라가 에드워드와 제이콥 사이에서 방황하긴 했어도 에드워드를 선택한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상기시키듯 벨라와 에드워드의 약혼, 결혼식이 초반에 등장한다. 벨라의 선택으로 인해 제이콥이 괴로워하며 잠시 벨라 곁을 떠나지만, 결혼식 날 제이콥이 돌아오고 벨라는 완벽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에드워드와의 신혼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신혼여행지에서 벨라는 임신을 한다. 뱀파이어와 인간의 육체관계가 흔치 않기 때문에 임신할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벨라와 에드워드 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독자도 마찬가지였다. 벨라의 임신이 가능한가 여부를 따지기도 전에 뱃속의 아이는 '괴물'이라 불릴 정도로 빠른 성장과 함께 벨라를 고통스럽게 했다. 벨라를 괴롭히는 아이를 달가워하지 않은 것은 에드워드였다. 아이를 얻기 위한 희생은 벨라가 죽어갈 정도로 너무 컸기 때문이다.

 

  벨라의 임신 때문에 다른 것들은 생각할 수 없었다. 벨라가 뱀파이어가 되는 시점을 시작으로 부모님과 주변의 친구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리고 인간일 때의 권리를 누리는 것 등, <이클립스>에서 괴롭혔던 문제들은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벨라가 임신한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뱃속의 아이는 빠르게 성장했고 벨라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로인해 이야기의 흐름의 감각은 사라졌고, 에드워드가 옆에 있다는 사실조차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다. 아이의 욕구를 채워주고, 벨라도 어느 정도 안정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을 의외의 곳에서 찾아내지만 그 방법이란 피를 섭취하는 것이었다. 아이의 식성은 뱀파이어에 더 가까웠고, 피를 섭취하자 조금 나아지긴 했어도 벨라의 목숨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벨라의 임신은 지금껏 일례를 찾아 볼 수 없기에 모두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출산이 가장 큰 난관이었고, 아이가 세상에 나올 때 벨라의 생명이 위급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벨라의 뼈를 부러뜨리고, 배를 찢고 나온 아이(르네즈미) 때문에 벨라는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그 순간 뱀파이어가 된다. 벨라와 에드워드를 그렇게 괴롭혔던 뱀파이어가 되는 시점은 그렇게 자연스럽고도 어쩔 수 없는 대목에서 착지한다. 벨라가 뱀파이어가 되는 시점이 궁금했을 뿐, 벨라가 뱀파이어가 되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것이 에드워드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기에 인간으로 남겨지는 벨라의 가족과 친구들, 못 견뎌 하는 제이콥이 걱정될 정도였다. 그러나 막상 벨라가 뱀파이어가 되니, 그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나를 덮치며 이질적이고 낯선 상대로 벨라를 만들어 버렸다. 충분히 동조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뱀파이어가 됐음에도 벨라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당연히 뱀파이어는 죽은 존재이므로). 그것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나를 괴롭혔는데, 뱀파이어가 됨으로써 벨라가 전혀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음을 깨닫자 어느 정도 감정이 다스려졌다.

 

  그러나 벨라를 괴롭히는 것은 여전히 많았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르네즈미의 존재를 지켜보는 것도 그랬고, 자신을 노리고 있는 볼투리 가와의 대면, 뱀파이어로써의 생활들이 그랬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르네즈미의 존재였다. 벨라의 가족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었지만, 볼투리 가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르네즈미를 빌미로 컬렌 가를 찾아오는 모습을 앨리스가 미래를 통해 보게 되고, 그때부터 긴박감이 흐르기 시작한다. 볼투리 가는 르네즈미가 벨라와 에드워드의 사이에서 난 아이가 아닌, 아이의 모습일 때 뱀파이어로 만든 일명 '불명의 아이'로 오해하고 있었다. '불멸의 아이'의 전적을 알고 있는 터라 볼투리 가는 없애려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능력 있는 뱀파이어들을 흡수하고 싶어 했다. 앨리스를 가장 노렸고, 막상 마주하고 보니 벨라와 르네즈미 또한 탐이 났다.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컬렌 가가 넘어갈 리 없었다.

 

  벨라가 르네즈미를 지키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자신의 생명과 바꾼 르네즈미의 존재가 두렵기도 했지만(아이 또한 비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보단 에드워드를 닮아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쉽지 않은 선택으로 이뤄낸 가족의 울타리를 볼투리 가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르네즈미를 통한 볼투리 가와의 또 다른 마찰 때문에 주변의 것들은 묻혀가는 것이 아쉬웠다. 벨라의 존재를 가족이나 주변 인물들이 흔쾌히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벨라가 인간에서 뱀파이어가 되는 과정이 충분함에도 인간세계에서 너무 빨리 벗어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을 읽는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뱀파이어가 된 벨라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벨라는 다른 세계로 편입해 버렸다. 에드워드와의 사랑이 기초가 되어 있었지만, 사랑을 쟁취하고 뱀파이어가 되자 그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또 다른 문제들을 따라 가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언제까지고 벨라와 에드워드의 사랑타령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들의 사랑이 간단히 묻혀 지는 것 같아 서운했다.

 

  그들이 영원한 사랑을 하게 되고 르네즈미를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는 것, 르네즈미를 지키기 위해 컬렌 가는 물론 다른 뱀파이어들까지 힘을 합치고 심지어 늑대인간들까지 힘을 보탰다는 것은 놀랄 만한 사건이다. 그만큼 볼투리 가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고 많은 뱀파이어들의 도움이 있어도 승산에 확신은 없었다. 볼투리 가의 방문이 한 달 뒤로 다가온 것을 안 시점에서 모든 것을 대응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다른 뱀파이어를 설득하고 힘을 보태게 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벨라의 특별한 능력이 드러나고, 예기치 못한 구원 군과 르네즈미를 확실히 지킬 수 있는 증인들이 나타난다. 큰 싸움 없이 르네즈미를 비롯한 다른 뱀파이어들의 목숨도 지켜졌을 뿐 아니라 벨라와 에드워드는 새로운 세대에게 밀려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됐다. 르네즈미 또한 영원히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짧은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는 르네즈미의 미래가 어렴풋이 보이기도 했다. 자신과 같은 존재로 나타난 남미의 뱀파이어, 르네즈미에게 각인된 제이콥. 이 셋의 관계만 생각해도 충분히 여운을 주는 결말이었고, 후속편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독자는 한낱 구경꾼에 불과하다는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어서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모든 인물들의 존재를 다 끌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사건의 변화에 따라 주인공의 변화와 주변의 상황들이 충분히 변할 수 있다는 것도. 벨라와 에드워드는 이 시리즈의 변함없는 주인공이며, 영원히 함께해야 할 존재라는 것을 한 시도 잊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둘의 존재감은 서서히 와해되고(특히 에드워드가 그랬고, 펼쳐놓은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어쩔 수 없는 흐름임에도), 전체적인 맥락의 틀이 많이 벗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초반의 벨라와 에드워드의 관계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자연스런 흐름을 인지하지 못한 나의 무지함일 수도 있다. 그러나 벨라의 존재가 변한 시점부터 급격하게 밀려오는 낯섦은 독자인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많은 이야기를 꼼꼼하게 마무리해야 하는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와 아빠에 대한 존재감이 너무 가볍게 정리된 것이나 르네즈미의 존재가 새롭게 부각된 것을 인지하기에 사건의 흐름이 너무 빠를 정도였다. 충분히 정독하며 비교적 긴 시간동안 읽어나간 완결임에도 이질적인 느낌, 편입되지 못하고 철저히 독자로 남겨진 고독감을 끝끝내 채워주지 못했다.

 

  책을 읽기 전 '충격적인 결말이다'라는 몇몇 독자들의 말에 내내 긴장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말의 압박감에 편하게 읽지 못했다는 것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드러났고, 나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에 맥이 풀릴 정도였다. 그만큼 나를 사로잡았던 시리즈인 만큼 결말에 관심이 집중되었으며, 온 마음을 다해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벨라와 에드워드의 사랑을 더 이상 지켜보지 못함에, 에드워드와 '나'와의 환상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에 치중해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헤어짐이 아쉬워 그들이 영원한 사랑을 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아 이렇게 이야기를 놓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말에 와서야 맞닥뜨리는 되살아난 현실감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영원히 행복할 거라는 스스로에 대한 주문도 하지 못한 채 이렇게 쓸쓸하게 책을 덮을 줄 몰랐기에 여전히 결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엄습했던 외로움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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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언제나 네 편이야
하코자키 유키에 지음, 고향옥 옮김, 세키 아야코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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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얇고,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 쉽게 손이 가질 않았다. 손이 닿으면 금방 읽을 것 같고 여운이 오래 가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라고나 할까. 그런 핑계를 대며 책 읽기를 미뤄 두다 정말 기분이 최악일 때 꺼내 들었다. 그제야 책 제목도 내 마음에 들어오고, 과연 이 책이 나의 기분을 어떻게 바꿔줄지 궁금했다. 띠지에 적힌 '두려움은 없애고, 자신감은 키운다!'라는 문구가 내게도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책에 대한 장르 구분과 연령대에 꽤 선을 긋는 편이었다. 그러다 서서히 그런 경계를 무너뜨리니 더 다양한 책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관심이 있으면 무조건 보는 식이다. 이 책도 그런 호기심으로 보게 된 책인데, 기분이 최악일 때 꺼내서인지 조금 어리둥절했다. 내 감정에 대해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이 책을 대한 나의 감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낯섦'이었다. 지금껏 이런 책을 만나보지 못했다는 낯섦이 책 속에 펼쳐지는 감정의 나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게 했다. 아이들이라면 어떻게 읽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른인 내가 참고할 수 있는 일례가 없어 당황스러웠다.

 

  책에는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많은 감정들이 드러나 있었다.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의외로 많은 기분들이 들어있어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감정은 일상의 경험에 따라 달라져 갔다. 좋아하는 사람의 말에 힘을 얻기도 하고, 사랑하는 강아지가 죽어 슬퍼하기도 하는 감정의 변화는 우리가 흔히 '퍼스나콘'이라고 불리는 동그란 물감 안에 표정들이 살아 있었다. 기쁨 감정들도 많았지만, 그와 비슷하게 안 좋은 감정들도 많이 드러났다. 그런 감정을 으레 피하기 마련인데, 책 속의 '나'도 그런 기분들을 한 구석에 몰아넣고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 그 기분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감정의 굴곡을 경험한 후에 '느껴서는 안 되는 기분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비로소 갇혀 놓았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가둬 둬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그 감정대로 자신을 표현해도 좋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된다. 나의 감정을 받아 줄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불안감까지 드러내도 좋다는 것을. 그 모든 감정과 경험은 짧은 글을 통해, 형태의 유무를 통한 그림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추상화 같기도 한 그림들과 사람의 얼굴을 드러나는 동그란 표정은 글과 함께 어우러지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음을 들여다보고, 감정에 충실하면서 느낀 깨달음인 '내가 나인 것이 좋아'를 인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초반의 '나'처럼 안 좋은 감정들은 마음속에 묻어두고 문을 닫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감정들이 내 일상에 쏟아져 들어온다면 분명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경험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그런 감정들까지 그대로 느끼라는 것이다. 나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으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위로해준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지 못하기에 겉도는 아이들이 많고, 힘들어한다는 설명이 수긍이 가면서도 역시 나에게 대입시켜 보기란 쉽지 않다. 이런 형태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깨달음을 얻는 것도 익숙지 않았기에 두려움이 나를 더 마음의 문을 닫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른인 내가 바라보기에도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해 감정의 변화에 휘둘리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나의 감정에 얽매이는 것은 나와 더 멀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도 나의 마음을 숨기고 있고,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이 있기에 부끄럽기도 하고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언제쯤 그 마음들을 편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언제쯤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두려운 감정을 햇볕에 내다 바삭하게 말릴 수 있을까. 어두운 마음이라고 해서 마음을 문을 닫아버리지 않도록 언제쯤 내 마음에 솔직해 질 수 있을까. 여러 감정이 생길 때마다 이 책을 꺼내 마음과의 대화를 시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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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테리 트루먼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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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니 장 루이 푸르니에의 <아빠 어디 가?>가 생각났다. <아빠 어디 가?>는 장애인인 저자의 두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14살 소년 숀의 이야기와 안락사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두 책의 주제가 비슷하긴 하지만 결코 가벼운 내용은 아니다. 그나마 <아빠 어디 가?>는 저자 특유의 익살이 있었던 반면, 이 책은 좀 더 현실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숀의 내면을 다루고 있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숀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물론, 눈 깜박임 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다. 태어날 때 뇌 손상을 입어 식물인간이 된 숀은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 아이큐는 1.2, 정신연령은 3~4개월 밖에 안 되지만 이 책의 주된 서술자는 숀 자신이다. 숀은 아무도 알 수 없고,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내면을 기록해 간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살아있다고 해도 살아있다고 인정할 수 없는 소년의 모습이지만, 숀의 내면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이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숀은 특별한 아이다. 겉모습을 긍정적인 특별함으로 봐 줄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알 수 없더라도 내면에 쌓인 인격은 보통의 소년과 다르지 않았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했고, 자신에게 찾아오는 발작에 대한 독특한 견해도 돋보였다. 한 번 보고 들은 내용을 모조리 기억하는 특별한 재능은 잠시 서번트 신드롬(자폐증 등의 뇌기능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이와 대조되는 천재성을 동시에 갖게 되는 현상)을 생각나게 했다. 그러나 숀은 그것을 드러낼 수 없을 뿐더러 내면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에 기가 꺾이고 말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숀의 처지만을 생각하고 있을 수 없었다. 숀은 지금 위험에 처해 있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아빠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쌓여있다. 아빠는 숀을 사랑했지만 숀의 발작을 지켜보는 것이 힘겨워 남은 가족 곁을 떠났고, 숀이 고통에 쌓인 삶을 살고 있다 생각했다. 숀 또한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 죽고 싶지 않았다. 가족에게 짐이 될지언정, 내면에 펼쳐지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을 간직하며 키워가고 싶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아빠는 숀이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고통을 끝낼 수 있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가족을 떠난 이기적인 면이 있는 아빠는 숀의 이야기를 통해 시인이 되고, 상을 받고, 방송까지 하니 가족들 모두가 고운 시선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숀이 학교에 나가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가려면 아빠가 버는 '돈'이 필요하기도 했다. 숀 자체만으로 엄청난 돈이 들었으므로.

 

  그러다 아빠가 방송에 나와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일이 생긴다. 뇌 손상을 입은 두 살배기 아들을 살해한 남자의 이야기를 숀의 아빠는 전면에서 다룬다. 어떠한 것이 진정한 답인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얘기를 다루고, 숀에게도 그런 위기가 닥친다. 가족들이 모두 여행을 가고 없는 사이 보모에게 맡겨진 숀을 아빠가 찾아온다. 그리고 괴로운 듯 숀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늘어놓는 아빠의 독백이 이어지고,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어떠한 결말이 나던 간에 중립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긴장감을 잔뜩 안겨준 결말은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숀의 내면은 살고 싶다는 욕망과 천진난만하고 특별한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겉모습은 감정도 표현할 수 없고 움직일 수 없는 무기력한 모습이다. 그런 숀의 생명을 아빠라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해 비난과 긍정을 던질 수 있을까. 정말이지 답이 없는 이야기일 뿐더러 생명 존중과 도덕성이 따라오는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남 얘기하듯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존엄사 법이 통과했고, 첫 존엄사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존엄사 자체가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존엄사 판단 기준과 그에 부합되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문제점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그러나 그에 대한 어떠한 입장을 취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 상황이 내가 된다면 어떠한 결정을 내릴 지도 모르기에 그저 답답할 뿐이다. 생명은 소중하고, 인간의 법으로 생명을 논한다는 것이 순리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알지만 과연 내가 그런 상황에 닥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숀의 아빠처럼, 혹은 그런 가족을 둔 수 많은 사람들처럼 마음아파 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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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6
돌프 페르로엔 지음, 이옥용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책 제목만 본다면 내용이 심상치 않을 것 같은데, 겉표지를 보면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겉표지의 소녀는 악녀로 보이지 않을 뿐더러 고뇌에 차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추천사를 보니 불편한 내용이라고 한다. 흑인 노예가 물건처럼 거래되던 19세기 네덜란드 소녀의 이야기인데, 인물들만 저자가 꾸며냈을 뿐 수리남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사람들은 불편하다고 하고, 악녀라고 불리는 걸까. 두껍지 않은 책을 탐욕스럽게 바라보는 내 눈길이 잠시 혼란스러웠다.
 

  글은 짤막한 단락으로 채워져 있었다. 산문 같기도 하고, 일기 같기도 한 글 속에는 천진난만 한 14살 소녀가 등장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며 원하는 것이 있으면 서슴없이 말한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10대 소녀지만 그녀의 글을 보면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녀는 14살생일 선물로 아빠에게 노예 꼬마를 선물 받는다. 그것도 쟁반 안에 리본을 단 채 웅크리고 있는 노예 소년 꼬꼬. 다른 아주머니는 노예에게 쓸 채찍을 선물로 주었다. 14살 소녀에게 흑인 노예를 선물로 주는 시대. 그 시대의 14살 소녀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갔던 것일까.

 

  소녀의 내면은 아무 거리낌 없이 드러난다. 노예 소년을 받은 기쁨도, 그 소년을 괴롭히는 것도,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이 노예들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모든 것이 소녀를 통해 전해진다. 우리가 일상을 얘기하듯 흘러가는 소녀의 고백은 충격적이다. 부족한 것 없이 사는 소녀와 노예를 물건 다루듯이 다루는 어른들. 그 안에서 소녀가 저지르는 행위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세속 된 행위였다. 노예에게 심하게 굴어도 나무라는 어른이 없고, 맘에 안 들면 팔아버린다는 생각을 지지해 준 것도 어른이었으니 나름 순수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뻔했다.

 

  소녀는 부모님이 교환한 노예를 임신시킨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친척 오빠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녀는 충격을 받지만 곧 자신에게 펼쳐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 바쁘다. 소녀에게 흑인 노예는 그냥 물건일 뿐이고, 거리낌 없이 팔 수 있는 존재 이상의 것이 되지 못했다. 엄마가 아빠와 함께 사는 흑인 노예에게 흉터를 만들어 주어도, 자신이 좋아한 오빠가 흑인 노예와 애를 낳고 여행을 가도 일상의 한 부분일 뿐, 그 안에 내포된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그러기엔 소녀가 어리기도 했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옳게 가르쳐줘야 할지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책을 읽고 보니 추천사에서 언급되었던 '불편하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것을 알았다. 과연 이 이야기를 19세기에만 국한 시킬 수 있을까. 저자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인 수리남을 1970년대에 여행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이 광경을 보고 책으로 써 낸 것이다. 저자가 수리남을 여행한 시기가 현재와 결코 가깝다 말할 수 없지만,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금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여전히 인종차별은 현 시대에도 팽배해 있고, 대 놓고 거래할 때보다 더 치욕스러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14살 소녀는 자신의 행동이 악한 행위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지만, 소녀의 글을 통해 드러난 사실은 역사의 치부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현재에도 비일비재한 인종차별과 그로 인한 유색인종의 고충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긴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행위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독자에게 커다란 짐을 남겨준 이 책의 이야기는 여전히 해결 방법이 없다. 당장 내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을 따라가다 보면 다른 인간에게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뿐이다. 나와 우리의 책임도 아니며 역사의 한 자락일 뿐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없음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만 정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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