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테리 트루먼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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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니 장 루이 푸르니에의 <아빠 어디 가?>가 생각났다. <아빠 어디 가?>는 장애인인 저자의 두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14살 소년 숀의 이야기와 안락사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두 책의 주제가 비슷하긴 하지만 결코 가벼운 내용은 아니다. 그나마 <아빠 어디 가?>는 저자 특유의 익살이 있었던 반면, 이 책은 좀 더 현실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숀의 내면을 다루고 있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숀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물론, 눈 깜박임 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다. 태어날 때 뇌 손상을 입어 식물인간이 된 숀은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 아이큐는 1.2, 정신연령은 3~4개월 밖에 안 되지만 이 책의 주된 서술자는 숀 자신이다. 숀은 아무도 알 수 없고,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내면을 기록해 간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살아있다고 해도 살아있다고 인정할 수 없는 소년의 모습이지만, 숀의 내면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이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숀은 특별한 아이다. 겉모습을 긍정적인 특별함으로 봐 줄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알 수 없더라도 내면에 쌓인 인격은 보통의 소년과 다르지 않았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했고, 자신에게 찾아오는 발작에 대한 독특한 견해도 돋보였다. 한 번 보고 들은 내용을 모조리 기억하는 특별한 재능은 잠시 서번트 신드롬(자폐증 등의 뇌기능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이와 대조되는 천재성을 동시에 갖게 되는 현상)을 생각나게 했다. 그러나 숀은 그것을 드러낼 수 없을 뿐더러 내면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에 기가 꺾이고 말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숀의 처지만을 생각하고 있을 수 없었다. 숀은 지금 위험에 처해 있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아빠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쌓여있다. 아빠는 숀을 사랑했지만 숀의 발작을 지켜보는 것이 힘겨워 남은 가족 곁을 떠났고, 숀이 고통에 쌓인 삶을 살고 있다 생각했다. 숀 또한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 죽고 싶지 않았다. 가족에게 짐이 될지언정, 내면에 펼쳐지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을 간직하며 키워가고 싶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아빠는 숀이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고통을 끝낼 수 있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가족을 떠난 이기적인 면이 있는 아빠는 숀의 이야기를 통해 시인이 되고, 상을 받고, 방송까지 하니 가족들 모두가 고운 시선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숀이 학교에 나가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가려면 아빠가 버는 '돈'이 필요하기도 했다. 숀 자체만으로 엄청난 돈이 들었으므로.

 

  그러다 아빠가 방송에 나와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일이 생긴다. 뇌 손상을 입은 두 살배기 아들을 살해한 남자의 이야기를 숀의 아빠는 전면에서 다룬다. 어떠한 것이 진정한 답인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얘기를 다루고, 숀에게도 그런 위기가 닥친다. 가족들이 모두 여행을 가고 없는 사이 보모에게 맡겨진 숀을 아빠가 찾아온다. 그리고 괴로운 듯 숀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늘어놓는 아빠의 독백이 이어지고,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어떠한 결말이 나던 간에 중립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긴장감을 잔뜩 안겨준 결말은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숀의 내면은 살고 싶다는 욕망과 천진난만하고 특별한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겉모습은 감정도 표현할 수 없고 움직일 수 없는 무기력한 모습이다. 그런 숀의 생명을 아빠라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해 비난과 긍정을 던질 수 있을까. 정말이지 답이 없는 이야기일 뿐더러 생명 존중과 도덕성이 따라오는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남 얘기하듯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존엄사 법이 통과했고, 첫 존엄사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존엄사 자체가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존엄사 판단 기준과 그에 부합되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문제점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그러나 그에 대한 어떠한 입장을 취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 상황이 내가 된다면 어떠한 결정을 내릴 지도 모르기에 그저 답답할 뿐이다. 생명은 소중하고, 인간의 법으로 생명을 논한다는 것이 순리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알지만 과연 내가 그런 상황에 닥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숀의 아빠처럼, 혹은 그런 가족을 둔 수 많은 사람들처럼 마음아파 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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