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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언제나 네 편이야
하코자키 유키에 지음, 고향옥 옮김, 세키 아야코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도 얇고,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 쉽게 손이 가질 않았다. 손이 닿으면 금방 읽을 것 같고 여운이 오래 가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라고나 할까. 그런 핑계를 대며 책 읽기를 미뤄 두다 정말 기분이 최악일 때 꺼내 들었다. 그제야 책 제목도 내 마음에 들어오고, 과연 이 책이 나의 기분을 어떻게 바꿔줄지 궁금했다. 띠지에 적힌 '두려움은 없애고, 자신감은 키운다!'라는 문구가 내게도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책에 대한 장르 구분과 연령대에 꽤 선을 긋는 편이었다. 그러다 서서히 그런 경계를 무너뜨리니 더 다양한 책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관심이 있으면 무조건 보는 식이다. 이 책도 그런 호기심으로 보게 된 책인데, 기분이 최악일 때 꺼내서인지 조금 어리둥절했다. 내 감정에 대해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이 책을 대한 나의 감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낯섦'이었다. 지금껏 이런 책을 만나보지 못했다는 낯섦이 책 속에 펼쳐지는 감정의 나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게 했다. 아이들이라면 어떻게 읽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른인 내가 참고할 수 있는 일례가 없어 당황스러웠다.
책에는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많은 감정들이 드러나 있었다.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의외로 많은 기분들이 들어있어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감정은 일상의 경험에 따라 달라져 갔다. 좋아하는 사람의 말에 힘을 얻기도 하고, 사랑하는 강아지가 죽어 슬퍼하기도 하는 감정의 변화는 우리가 흔히 '퍼스나콘'이라고 불리는 동그란 물감 안에 표정들이 살아 있었다. 기쁨 감정들도 많았지만, 그와 비슷하게 안 좋은 감정들도 많이 드러났다. 그런 감정을 으레 피하기 마련인데, 책 속의 '나'도 그런 기분들을 한 구석에 몰아넣고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 그 기분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감정의 굴곡을 경험한 후에 '느껴서는 안 되는 기분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비로소 갇혀 놓았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가둬 둬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그 감정대로 자신을 표현해도 좋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된다. 나의 감정을 받아 줄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불안감까지 드러내도 좋다는 것을. 그 모든 감정과 경험은 짧은 글을 통해, 형태의 유무를 통한 그림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추상화 같기도 한 그림들과 사람의 얼굴을 드러나는 동그란 표정은 글과 함께 어우러지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음을 들여다보고, 감정에 충실하면서 느낀 깨달음인 '내가 나인 것이 좋아'를 인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초반의 '나'처럼 안 좋은 감정들은 마음속에 묻어두고 문을 닫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감정들이 내 일상에 쏟아져 들어온다면 분명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경험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그런 감정들까지 그대로 느끼라는 것이다. 나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으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위로해준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지 못하기에 겉도는 아이들이 많고, 힘들어한다는 설명이 수긍이 가면서도 역시 나에게 대입시켜 보기란 쉽지 않다. 이런 형태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깨달음을 얻는 것도 익숙지 않았기에 두려움이 나를 더 마음의 문을 닫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른인 내가 바라보기에도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해 감정의 변화에 휘둘리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나의 감정에 얽매이는 것은 나와 더 멀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도 나의 마음을 숨기고 있고,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이 있기에 부끄럽기도 하고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언제쯤 그 마음들을 편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언제쯤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두려운 감정을 햇볕에 내다 바삭하게 말릴 수 있을까. 어두운 마음이라고 해서 마음을 문을 닫아버리지 않도록 언제쯤 내 마음에 솔직해 질 수 있을까. 여러 감정이 생길 때마다 이 책을 꺼내 마음과의 대화를 시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