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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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새 내린 비 탓인지 안개가 온 도시를 휘감고 있었다. 안개 때문에 가시거리가 좁아 출근시간 내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엇엔가 둘러싸여 있는 기분은 하루 종일 나를 지배했고, 여전히 넓어지지 않은 가시거리 때문에 마음까지 답답해졌다. 이런 날이면 으레 뜨뜻한 방바닥에 누워 재미난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어, 사무실에서 종일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퇴근 후 안개를 뚫고 종종걸음 치며 집으로 돌아가 나의 바람대로 뜨뜻한 곳에 누워 한 권의 책을 펼쳤다. 하루 종일 안개에 갇힌 마음을 걷어내고자 펼친 책이었건만, 내가 마주한 안개처럼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소설을 만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너는 모른다>의 절반은 서울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읽었다. 다섯 시간을 버스 안에서 보내야 했기에 올라가는 길에 모두 읽어 버렸는데, 책을 덮으니 강남터미널에 거의 도착해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왜 이 버스를 타고 있는지, 내가 향하고 있는 곳은 어디인지, 어느 곳에도 동화될 수 없는 상황에 몸서리 처지는 이질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막상 서울에 도착하고 보니, 이 소설 속의 한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이 강남터미널에서 걸어서 2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구절이 생각이 났다. 유지가 집을 나와 제일 먼저 도착했던 곳. 내가 도착한 곳이 그 터미널이었고, 그곳에서 유지는 지하철을 타고 사라졌다. 잠시 나의 목적지에서 발을 돌려 20분만 걸어간다면, 유지네 가족이 살고 있는 그 집으로 당도할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안개를 보며 이 소설을 떠올렸고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드나들었던 곳을 다녀와서 그런지,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이 끈적끈적하게 내 몸에 달라붙어 있는 기분이 든다. 정이현 작가의 작품은 <달콤한 나의 도시>밖에 읽지 않았는데, 도시의 삭막함을 그대로 드러낸 것 같아 그다지 유쾌한 소설로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시큰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기도 했는데, 띠지에 적힌 '눈부신 비상'이라는 단어가 책을 읽고 나니 그제야 나를 뚫고 들어왔다. 만약 나의 선입견으로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한 작가는 한 작품으로 평가된 채 나의 주목을 못 끌었을 거란 생각이 들자 등이 서늘해졌다. 이렇게 묻혀버린 작가와 작품이 얼마나 많으며, 그것을 알면서도 온 힘을 다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11살 소녀 유지가 사라져 버리고, 남겨진 가족들에게 닿았을 절망감이 내게는 그런 식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의자를 들썩이고 싶은 간질거림, 책의 뒷부분을 열어 결말을 읽고 싶은 조바심이 나를 지배해도 꿋꿋이 책을 읽어 나갔다. 글자 하나가 나의 몸을 훑고 지나가도록 훈련을 시키듯, 꼼짝없이 소설을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속독이 붙지 않아 페이지를 술렁술렁 넘기지 못해 정독할 수밖에 없었고, 모든 상황을 내가 처한 상황이라고 착각하며 읽어 나갔다. 이 이야기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자, 하나로 융화될 수 없는 제각각인 다섯 명의 이야기였다. 가족 중에 가장 어린 유지가 사라지는 사건으로 인해 가족의 고통과 내면은 복식구조로 어지럽게 드러났고, 그런 서술방식 때문에 결말을 쉽게 짐작할 수 없어 지난했다. 한없는 답답함에 종종 숨을 쉬어주지 않으면 내가 견디지 못할 정도로 드러나는 가족의 내면은 낱낱 했으면서도, 속 시원히 보여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지를 찾는 것이 가족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사안이긴 했지만, 각각 살아가던 한 가족이 서로의 존재에 대해 어떠한 몸짓을 해야 하는지 방법이 숨어 있는 소설이기도 했다.

 

  장기 밀매 업을 하는 가장 김상호, 화교출신의 부인 진옥영, 전처 아이인 아들 김혜성, 딸 김은성, 그리고 재혼 후 태어난 김유지가 가족의 구성원이었다. 유지가 사라져버리기 전까지, 평범하다면 평범하달 수 있는 가족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정작 그 안에 들어가 보면 아빠와 첫 부인의 아이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고, 나머지 구성원들도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는 평행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는 삶이었다. 은성만 유난히 되바라지고 삐뚤어져가는 모습을 드러냈을 뿐, 모두의 내면에 감추어진 상처나 분노, 고통은 철저히 숨겨져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유지가 사라진 것이 어떻게 다가올지 가늠할 수 없었다. 가출인지, 유괴인지, 사고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한 달의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가족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은 독자에게도 고통 그 자체였다. 

 

  그동안 무심했던 가족들 모두가 그 아이의 부재로 인해 느끼는 죄책감과 상실감이 뒤범벅되어 가는 모습은, 당해본 자만이 알거라고 치부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당면하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아이 하나를 찾는데 만 온 힘을 쏟아도 소설의 무게가 가중될 법 한데,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의 모습은 처절하고 가엾었다. 유지가 한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던 데는 김상호의 직업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어느 누구도 김상호가 장기 밀매를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기에, 일단 경찰에 신고하면 그의 사업은 소상이 밝혀지고 만다. 그런 사연 때문에 김상호는 탐정을 고용했고, 사설탐정이 이 가족을 조사해가는 과정 속에 얽혀 들어가는 가족 개개인의 모습은 녹록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심정을 다 드러낸다고 생각했지만, 퍼내고 퍼내도 밑이 보이지 않는 미궁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을 떨쳐 낼 수 없었다.

 

  그 모든 것을 말하는 저자의 문체는 낭랑했다. 유추하며 넘어갈 수밖에 없는 뜻 모를 단어의 나열은, 오히려 한 가족이 처한 상황을 빗겨가듯 신선하고 명랑했다. 그 언어 가운데 유지는 사라졌다 나타났고, 가족이라 부를 수 없는 구성원들이 모습을 되찾아가고, 조금씩 가족이라는 형태를 만들어갔다. 그 가운데서도 가족과 독자를 괴롭혔던 것은 유지의 생사확인이었다. 사건의 발단을 만들었듯이 유지가 어떠한 모습으로라도 드러나야 그들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 동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지가 사라진 날, 그 아이의 일정이 하나씩 베일을 벗겨 갈 때마다 숨죽였고, 그 끝이 드러났을 때 허망하고, 안타깝고, 부질없음을 느꼈다. 유지가 살아 돌아온 것에 무조건 감사를 던질 수 없었던 것은, 그 아이의 본래의 모습의 잃어버림으로 인해 비로소 가족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 같은 희생이 느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옥영의 말대로 ''가족'의 문제라는 것을.(271쪽)' 깨닫는 순간이었다.

 

  한 가족의 이야기였지만, 어느 누구와도 상관없다고 부정할 수 없는 무게가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치밀한 구성과 혼신을 다해 쓴 티가 역력한 이 소설로 인해 저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내의 말 못할 사연이 어느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족 구성원의 부재가 얼마나 큰 상실감을 안겨주는지, 하나로 융화되지 못한 삶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힘든 과정을 겪어왔고 앞으로 얼마나 큰 시련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있지만, 그들에게 희망의 빛이 보였다는 것에 안심하게 되었다. 처음 보였던 그들의 모습보다 훨씬 상처 입은 모습일지라도, 그때보다 더 진솔한 모습을 서로에게 보여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서로가 마주 내민 손을 다시는 놓지 않길 바라며, 어찌 되었건 그들이 속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모든 것을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것이 일부러 연을 끊는다고 끊어지지 않는 끈끈함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본능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본능에 충실한 채 서로를 보듬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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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스케치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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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뻬를 좋아하기 전에 <뉴욕 스케치>를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읽으려고 책을 구입한 것이 아니라, 선물하려고 구입해놓곤 잠깐 본다는 것이 끝까지 보고 말았다. 선물하는 사람에겐 좀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때 상뻬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마 지금처럼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본 책이라서 다시 구입할 필요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상뻬의 다른 작품을 통해 깊은 애정을 느끼고 있는 터라 무조건 다 모으고 싶었다. 막상 다시 구입해서 <뉴욕 스케치>를 읽어 보니, 재구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 첫 번째 이유는 이미 본 책임에도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은 망각이었다. 짧은 글과 데생으로 구성된 책이다 보니, 오래 기억에 남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더라도 전혀 생소하게 다가왔다. 당시에 쓴 내 리뷰를 찾아서 읽어보아도, 기억의 끌어냄을 만나지 못해 그냥 현실의 감정에 충실하기로 했다.

 

  상뻬의 데생 집은 느낌을 남긴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그의 책을 볼 때마다 말하게 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데생과 짧은 글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내는 것은 힘이 들기 때문이다. 통일되는 느낌의 데생집도 있지만, 대부분 도시 속의 사람들을 익살과 유머, 풍자로 비유하기 때문에 그 안에 온전히 들어가는 것은 늘 벅차다. 그럼에도 가벼운 필치와 능수능란하게 그려진 데생의 매력 때문에 자꾸 그의 작품을 찾게 되는 것이리라. 비슷한 듯 하지만 늘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상뻬의 작품은 <뉴욕 스케치>에서 좀 색다른 맛을 드러냈다. 프랑스의 모습과 그곳의 사람들, 사람들 삶 속에 퍼져있는 생각과 생활방식에 익숙해 있던 내게 뉴욕은 생경하게 다가왔다. 내가 곧장 뉴욕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인으로 뉴욕을 경험한 느낌을 만나서인지도 모르겠다.

 

  장 폴 마르티노는 뉴욕으로 떠나기 전에 르네에게 편지를 한 통 남긴다. 그리고 폴은 자신이 겪은 뉴욕의 모습을 르네에게 세세히 알려준다. 그렇기에 프랑스인인 폴의 시선에서 보이는 뉴욕, 르네에게 전해지는 뉴욕, 그 모습을 직접 봐야 하는 독자의 시선은 얽힐 수밖에 없었다. 그 얽힘이 초반에는 혼란을 주었지만, 프랑스인이 보는 뉴욕이라는 생각보다 뉴욕 그 자체,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다고 생각하니 좀 더 친근하게 뉴욕이 다가왔다. 폴은 르네에게 이곳 사람들은 늘 연락을 끊임없이 하고 지낸다는 말을 자주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늘 끝은 '연락을 하고 지낸다.'로 끝날 정도로 뉴욕 사람들은 인연을 이어가는 것에 끈질김을 보이는 것 같을 정도로, 과분한 정이 넘쳐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폴은 그런 뉴욕사람들을 프랑스 사람들의 정서와 비교하면서 그들의 다양한 면을 드러낸다. 자기네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색다른 사람들로 표현하기보다, 그들 안에 들어가서 그들을 이해하고자 했다. 폴은 르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 식으로 남에게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나는 깨닫게 되었네.' 라고 말한다. 내가 미국인을 보았을 때도 연신 감탄사를 터트리며, 상황을 무척 크게 만들어서 대화하는 것에 대한 낯섦이 여기에서도 드러났다. 누군가가 전화만 해도 그것은 굉장한 일이라고 말해주며, 결재를 받으러 갈 때도 연신 응원을 던져주는가 하면, 칭찬을 먼저 해준 다음에 의견을 조율하는 모습들이 그랬다. 그러나 그 안에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과장이 들어있거나, 다른 마음을 품고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어색한 그들의 모습에서 따뜻함을 느껴갔다. 다른 문화권에서 무조건 낯설다고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보다, 느낀 것을 그대로 드러내며 조금씩 동화되어 가는 것이 느껴져 입가에 웃음이 피어났다.

 

  그 이외에도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뉴욕 거리를 걸으면서 느끼는 감상들이 데생과 함께 펼쳐졌다. 그동안 내가 봐왔던 상뻬의 데생과는 조금 색다른 터치로 그려진 것도 인상 깊었다. 좀 더 섬세하면서도 흐느적거리는 느낌을 살린 데생이어서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되었지만, 글 속에 녹아 있는 뉴욕사람들을 생각하며 살펴보니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었다. 장황하게 상황을 알리는 글에서 종종 헤매기도 하고, 프랑스와 미국의 정서가 같이 녹아들 때는 적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상뻬의 데생집이 주는 기본적인 편안함에서 뉴욕 체험기를 맛볼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었다. 상뻬가 세계 곳곳을 데생으로 표현하면 어떠한 모습이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좀 더 다양한 도시의 모습을 독자에게 전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의 다른 작품을 손꼽아 기다려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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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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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랭 드 보통의 작품은 나오는 족족 구입하면서도, 읽은 책보다는 읽으려고 대기 중인 책이 더 많다. 책장에 거의 전 작품이 꽂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에도 읽지도 않고 신간을 무조건 모으고 있다. 이번에도 신간이 나왔다는 광고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구입해 놓고, 도대체 언제 읽을 것인지 나조차도 알 수 없다며 책장에 쌓아 놓는 찰나, 묘한 끌림으로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저자의 다른 책들에 비해 책이 좀 얇다는 것도 있었고, '공항'이라는 소재로 글을 쓴 것이 독특했다. 거기다 공항 소유주로부터 초대를 받아, 히드로 공항에서 일주일을 보낸 기록을 책으로 남겼다는 사실도 흥미를 자극했다. 공항이 나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낯설다고 할 수 없는 공간을 그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펼친 책을 그야말로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저자는 '2009년 여름, 공항을 소유한 회사에서 일을 하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아 히드로 공항의 '터미널 5에 작가 한 명을 일주일 동안 초대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에 수락을 한다. 그 회사가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 출발 대합실 구역에서 책을 쓰기 위한 자료를 모으게 될 것이라는 제안을 들었다. 거기다 어떠한 조건도 없이 '공항의 여러 사업에 관하여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해도 좋다고 분명하게 확인까지 해 주었'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저자는 일주일동안 특별히 마련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글을 써나가고, 특별히 공항의 직원들을 비롯해 공항의 여러 구역을 돌아볼 수 있는 권한까지 주어졌다. 그가 이용할 식당 쿠폰까지도.

 

  공항을 자주 이용하지 않다 보니, 공항에서 일주일을 지내며 어떠한 이야기를 풀어낼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얼핏 생각나는 것은 공항을 이용하는 승객들과 비행기 연착에 대한 우울한 상념들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접근>, <출발>, <게이트 너머>, <도착>이라는 네 개의 주제로 공항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냈다. 저자의 눈으로 비춰진 공항의 모습만을 그려냈다면, 여전히 공항의 속내를 들여다보지 못한 채 겉핥기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공항이라는 유기적인 공간 안에서 저자가 곳곳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것들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솔직함과 능청스러움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거대한 공항 한가운데를 작가 한 명이 소소한 몸짓을 놀려 둘러보고 그에 대한 느낌을 남긴다는 느낌이 들다가도, 전체를 아우르는 성찰이 돋보여 다양한 시각을 맛보았다. 룸서비스 메뉴에서 하이쿠를 빗댄 시구를 찾아내는 익살, 공항 CEO를 만나고 나서 출판계와 비교하며 '둘 다 순이익이 아니라 영혼을 흔드는 능력으로 인류의 눈앞에서 자신을 정당화활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현실 인정이 그랬다. 작가로서의 위트와 이면을 볼 줄 아는 시선, 한정된 장소에서 익힌 생각들을 성찰하듯 드러내는 능력이 알랭 드 보통에게는 내제해 있었다.

 

  네 가지의 주제로 분류해 놓았지만, 그 안에 보통이 드러내는 생각은 주제에 내포된 사람들, 건물, 이동하는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었다. <접근>에서는 저자가 공항에서 머무는 것에 대한 초대와 생각이 담겨 있었다면, 그 이외의 주제에 대한 글에서는 위에서 나열한 모습이 다양하게 펼쳐졌다. 공항 자체가 주는 단정적인 느낌을 나열할거라 단정 지었던 나의 선입견을 깨뜨리듯, 있는 그대로를 말하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주었다.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인터뷰 하고, 공항의 곳곳에 머무르는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공항의 숨겨진 모습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거기다 공항에서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소소한 공간과 사물에 드러내는 생각들로, 내 주변의 것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저자는 공항에서 마련해 준 사람들이 자신을 모두 볼 수 있는 책상에서 글을 쓰기도 했지만 구석구석을 살펴보기도 했는데, 그 뒤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리처드 베이커가 따르고 있었다. 그가 찍은 사진은 단조로운 공항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사진으로 보여준다는 착각이 일 정도였다. 사진과 글이 일치되는 느낌은 쉽게 찾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멋을 낸다거나 과장하는 사진, 진부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사진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글과 무척 잘 어울렸고, 사실적이면서도 공항의 모습을 돋보이는 사진이 많아 구석구석을 살펴본 것 같았다. 오로지 글로만 저자가 머물렀던 곳, 저자가 만난 사람들과 지켜본 광경들이 담겨있는 공항을 상상하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다. 글이 보여주지 못하는 것, 사진이 말할 수 없는 것을 잘 조화시킨 책이 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잠시 내가 속해있는 공간을 떠나 낯선 곳에서 일주일을 머무르면, 어떤 느낌일까란 생각을 끊임없이 들게 만들었던 책이었다. 공항의 첫 상주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았다고 하지만, 그곳에서 저자처럼 소소한 눈길로, 날카로운 필치로 글을 써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부담감이 더 크게 다가와 평소에 느꼈던 것들을 소상하게 밝히지 못했을 터인데, 저자는 그 기회를 맘껏 누렸고 한껏 써내려갔다. 또한 공항이라는 공간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소재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 놀라웠다. 저자는 공항을 통해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끌어내며 사고를 덧붙였다. 그랬기에 중심무대가 공항이 되기는 했지만, 오로지 공항에서 보이는 모습만 펼쳐질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공항이라는 공간을 통해 우리의 삶에 뻗어있는 유기적인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공항에서의 일주일간의 기록이 삶의 많은 부분을 드러내 보여 줄 것이므로, 잠시 여행을 떠난다 생각하고 저자가 머물렀던 공항을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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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랭 드 보통이 공항에서 일주일을 보낸 까닭은?
    from 미도리의 온라인 브랜딩 2010-01-23 00:24 
    누군가 일주일간 어딘가를 여행하거나 머무르면서 한 권의 책을 써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공간을 선택할 것 같은가? 알랭 드 보통은 바로 이별과 만남의 공간, 그리고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공항'을 선택했다. 그가 집필한 장소인 히드로 공한 5번 터미널 알랭 드 보통이라는 걸출한 작가와 그의 후원자이기도 한 영국의 히드로 공항의 소유주인 BAA사의 최고경영자의 부탁으로 아무런 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저 일주일만 공항의 터미널 5에서 머물면서 책을 써..
 
 
 
노 맨스 랜드 - 청춘이 머무는 곳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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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단 체임버스는 <네 무덤 위에서 춤을 추어라>로 내게 각인된 작가였다. 작품도 괜찮았고 성장소설을 좋아하는 터라 새로운 작품이 나오면 읽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던 저자였는데, 신간이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에 망설임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꽤 두툼한 책이었음에도 순식간에 읽어버릴 정도로 흡인력이 강한 소설이었다. 시간이 넉넉한 시기에 읽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음이 힘들 때 읽어서 책을 읽다 괜히 울기도 하고, 내게 처한 현실과 비교하며 망연자실하기도 해서 특히나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인식되어 있다. 책 속의 모든 내용이 강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러 갈래로 나뉜 이야기 속의 연결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안네의 일기>를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한 일이었다. 할머니의 부탁으로 잠시 암스테르담에 머무르게 된 제이콥은 <안네의 일기>의 안네를 무척 좋아하고 그녀를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다. 소설을 통해 안네가 숨어 지낸 곳이 암스테르담이라는 사실을 알 정도로 안네에 관한 것이 무지한 나였지만, 안네가 한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강렬한 일기를 썼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만큼 많이 언급되었기에 궁금하기도 했고 제이콥의 행보와 <안네의 일기>를 보는 듯(읽어보지 않았지만), 다르게 펼쳐지는 또 다른 단락이(헤르트라위 이야기) 안네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현재 영국에서 살고 있는 17세의 제이콥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헤르트라위 할머니의 이야기가 병행구조로 펼쳐졌다. 두 이야기가 분명 어떠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하더라도 처음엔 흐름을 잡는 것도, 하나의 흐름으로 만나게 될 두 이야기의 쟁점을 추측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제이콥은 할머니 대신 할아버지가 참전한 전쟁에 관련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에 왔다. 그러나 첫 날부터 이상한 소년을 만나고, 소매치기를 당하고, 한 할머니의 도움으로 친척집에 당도하게 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제이콥이 네덜란드에서 겪고 듣게 될 일은 낯선 외국에서 펼쳐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로 치부해 버릴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 제이콥의 이야기와 제이콥의 할머니를 네덜란드로 초대한 헤르트라위 할머니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동시에 펼쳐지면서 끝을 향해 갈수록 둘의 관계, 시대를 뛰어넘는 교감, 가슴 아픈 사연과 함께 한 사람의 인생의 뜨거웠던 시기가 묘하게 연결되어 간다.

 

  제이콥은 네덜란드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로 인해 자아의 정체성과 현재의 자신을 꿰뚫어보는 시간을 갖고 있었고, 헤르트라위 할머니의 이야기는 풋풋한 젊음을 이야기하지만 인간이 절망하기에 모든 조건을 갖춘 시기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제이콥에서는 머나먼 과거면서 존재 유무에 대한 뿌리를 찾아가는 계기가 되었고, 죽음을 앞둔 헤르트라위 할머니에게는 용서를 비는 고백이자 삶을 마무리하는 과정이었다. 헤르트라위 할머니가 겪었던 전쟁의 한가운데에는 죽음, 공포, 비극, 굶주림 등이 두려움의 한가운데로 몰아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제이콥'이라는 영국 군인과의 사랑을 통해 그 위험한 시기를 넘기고 있었다. 당시의 생생했던 모습을 증언과 동시에 내면에 쌓여 있는 기억들을 쏟아내고 있었고, '제이콥'이라는 사람과의 짧지만 깊은 추억을 꺼내고 있었다. 비교적 책의 초반에 '제이콥'과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또 다른 제이콥을 초대한 것에서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헤르트라위와 '제이콥'의 사랑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헤르트라위와 '제이콥'의 이름을 딴 손자 제이콥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여전히 궁금증을 자아냈다.

 

  십대의 정점에 있는 제이콥이 자신의 할아버지가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또한 헤르트라위 할머니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는 사실로 50년도 넘은 전쟁을 추적해 나가는 것은 현재의 상황과 동떨어져 보였다. 제이콥은 당시의 전쟁을 흔적을 좇았다기보다, 할아버지의 흔적과 헤르트라위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특별한 인연을 상기해 본다는 의미가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전쟁 당시 헤르트라위 할머니네 집에서 신세를 졌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해도, 직접 할아버지의 묘를 직접 보는 것과 헤르트라위 할머니 입을 통해서 듣는 것은 상당히 달랐다. 병행 구조로 펼쳐진 헤르트라위 할머니의 자서전은 나중에 제이콥이 직접 노트를 전달 받아 읽게 되는 내용이었기에, 독자는 제이콥보다 더 생생하게 헤르트라위 할머니의 자서전을 만나게 된 셈이다. 전쟁의 참상과 한 여인의 깊은 내면으로 먼저 들어가게 되었고, 제이콥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게 되었다. 자서전으로 헤르트라위 할머니와 '제이콥'의 사랑이 어떻게 이어졌다 끝나는 가를 알게 되었고, 제이콥과 헤르트라위 할머니와의 관계, 친척인 줄 알았던 단과 판 리트 부인의 실제 관계에 대해도 모두 밝혀졌다.

 

  그 모든 사실이 제이콥에게 혼란을 가중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끔 만드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단, 단의 친구 톤, 할아버지의 무덤에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힐레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것도 사실이다. 커밍아웃을 선언한 톤이나 양성애자인 단, '안네'라는 공통된 주제가 아니더라도 깊이 끌리게 된 힐레와 만나면서 제이콥은 현재의 자신을 거부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고 있었다. 제이콥은 암스테르담에서 자신의 뿌리를 타고 올라가 할아버지의 행보를 들을 수 있었다면, 현재 자신과 연결된 뿌리를 만나고 발견하러 그곳에 온 느낌이 들었다. 암스테르담은 제이콥에게 외국의 도시이기에 언어가 원활하게 소통되지 않고, 문화와 생활방식이 다른 낯섦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영어와 네덜란드 언어의 유희를 오가는 저자의 능력은, 국적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며 치부해 버린 소통의 어려움을 타파하고 있었다. 전쟁 당시 제이콥의 할아버지가 헤르트라위 할머니 집에서 머무르게 되고, 그 머무름이 사랑으로 이어져 현재의 제이콥과 연결되는 것에 국적과 언어가 장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하는 듯 했다.

 

  헤르트라위 할머니와 '제이콥'이 사랑의 열병을 앓을 때, 전쟁이 쟁점에 치달아 고통 받는 사람들이 늘어갈 때, 희망의 불빛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나의 힘든 마음과 겹쳐 많이 마음 아파했었다. 그러면서도 제이콥이 암스테르담에서 당면하는 젊음의 에너지에 풋풋함과 또 다른 젊은이들의 정체성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시대의 차이를 느끼고 세상의 변화를 깨달아 간다기보다, 인간군상의 흐름을 엿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들이 제2차 세계대전을 기억하고, 헤르트라위와 제이콥의 사랑을 상기하는 것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자신의 존재를 다른 가능성의 여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큰 변화를 기대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을 기대하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많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고난의 역경을 당면한 시대,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을 변화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현재를 죽 훑어보는 것이 이 책의 전반적인 흐름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상반된 두 개의 이야기와 시점이 낯설면서도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고, 과거의 이야기이면서도 현재의 이야기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일까? 어찌되었건 그것은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그들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이어갈 것이며, 그 중심에 나 또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 채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에 대한 상실, 미래를 향한 다짐, 일상의 평화가 깨어질 것 같아 조금 두려움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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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상처가 나에게 말한다 - 나하고 얘기 좀 할래?
울리케 담 지음, 문은숙 옮김 / 펼침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책 제목도 나를 사로잡긴 했지만, 부제목이 이 책을 더 읽게 들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 상처가 나에게 말한다'란 문구에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유년시절을 떠올려 보게 될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 갖게 되는 내면의 어려움이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자리 잡은 상처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종종 우울함으로 빠질 때면 나 또한 갖게 되는 생각이라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내 자신과 이야기를 한다고 하지만, 진솔한 대화를 이어간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책을 빌어 나와 대화하고,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상처를 꺼내볼 수 있다면 그것만큼 큰 수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었기에 어린 시절이 단순히 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와 이어주는 또 다른 나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고, 잔잔한 감동을 줄 수도 있으며, 나와 전혀 상관없는 세계로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내가 만나는 책들은 나를 스쳐가는 책들이 더 많았다. 나의 첫 기대와는 달리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 책에 대해서도 그렇게 치부해 버렸다. 내가 관심을 덜 기울인 탓인지, 나의 내면을 온전히 보지 못한 탓인지 이 책이 내게 끼친 영향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나를 대입해 보지 않은 채 비교적 큰 감흥 없이 그렇게 읽기를 마쳤다. 그러나 책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내면을 송두리째 흩트려 놓는 일이 발생했고, 나는 내 안으로 칩거해 버렸다.

 

  한참을 칩거하다 보니 문득 이 책이 떠올랐다.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기보다, 책 제목이 나의 마음을 훑고 지나갔다. 고난이 닥치자 감정에 치우쳐 그것에 지배받는 데만 몰두하다 보니, 그 안에서 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틈이 없었다. 조금씩 정신을 차리자 그제야 내가 팽개쳐버렸던 내 자신이 느껴졌고, 나와의 대화를 힘겹게 시작해 볼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하면서 행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실천 방법이 있었는데, 막상 그 상황이 현실에 부딪히자 생각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단 한 가지, 내면의 '아이(내 자신)'과 대화를 해 보라는 방법이 생각이 났고, 내 안에 한 아이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내 안에 한 아이가 있다는 말로 시작해 그 아이가 왜 지금 힘이 드는지,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는지, 왜 이런 사태까지 와 버렸는지 내가 알 수 있는 내용을 내 자신에게 모두 말했다.

 

  책으로 읽었을 때는 저자가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가 참 쉽게 다가왔는데, 막상 내가 그 자리에 있고 보니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자꾸 말을 머뭇거렸고, 내 안의 아이에게 현재의 상황을 인식시키고, 인정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말을 걸고 있는 아이가 정말 내 자신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힘겹게 대화를 하고 보니,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이 느껴졌고, 거울을 보면서 진지하게 내 자신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내 눈을 내 자신이 그렇게 똑바로 쳐다보고 이야기 한 적이 마치 처음인 듯, 진지했고 진솔한 대화였다. 그 대화 이후로 나에게 좀 더 다가간 기분이 들었고, 많이 차분해져서 현재의 나를 피하지 않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 가는 중이다.

 

  책 속의 사연들을 마주할 때만 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렸다.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가 내게 없다는 생각도 안 들었지만, 내 상처는 이 사람들과 다른 색깔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안의 모든 것은 배제한 채 다른 사람의 사연을 읽어나가기 바빴고, 저자의 충고는 그냥 흘려들어 버렸다. 그랬으니 종종 공감하는 부분을 발견했음에도, 다음에 기회가 되면(내가 이 책을 필요로 할 때가 오면)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자신의 내면의 아이와 대면하길 두려워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내 안의 아이를 인정하기 싫었기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은 과거를 저장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대비하게 해준다.'라는 의견에 동조하기도 버거웠다. 나를 괴롭히는 상처가 있다면 피하고 잊어버리고 싶지, 그것을 미래로까지 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내 안에 감추어진 내면의 아이는 더 꽁꽁 숨기를 바랐고, 실제로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아이가 드러나지 못하도록 철저한 방어를 했다.

 

  저자는 어린 시절의 모습을 통해서 현재 어른의 모습을 빗대어보고, 그 안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자 했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과 자신이 치료한 환자들을 토대로 독자들에게 보이지 않은 위로와 치유를 건네고 있었다. 때론 그 위로가 피부에 와 닿지 않고, 저자 자신의 깊은 사유를 드러낼 때가 많아 공감을 갖기 힘든 적도 많았다. 거기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치유에 도움이 되고자 실어놓은 여러 가지 방법제시도 실행해 볼 수 있는 조건제시가 부족했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조건이 아니라 띄엄띄엄 내게 맞는 방법들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자 또한 그 방법을 모두 실행해 보라고, 그 조건에 부합한 사람만을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처럼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이 책을 들춰 볼 수도 있고, 이 책을 읽은 순간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내면의 아이를 부인한 채 살아가다 어느 날 문득 대화를 걸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자 했을 것이다.

 

  독자가 내면의 아이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이 책을 읽는 순간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이 책은 한 번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내면에 다가갈 때 순간순간 펼쳐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잊고 있었던 내면의 아이를 갑자기 만나는 것 보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진정한 자신에게 다가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읽는 책이 아니라 느끼는 책이며, 독자가 마음을 열었을 때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내면의 자신과의 조우를 끊임없이 시도해야 하고, 혼자만의 조우가 힘이 들 때 이 책을 꺼내보고 도움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그냥 흘려버릴 수 있는 책을 경험이 이어졌을 때 새롭게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 내 자신과의 만남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자신과의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진정한 내면의 아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은 나를 향해 갈 수 있는 발판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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