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스케치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1998년 12월
평점 :
품절


  상뻬를 좋아하기 전에 <뉴욕 스케치>를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읽으려고 책을 구입한 것이 아니라, 선물하려고 구입해놓곤 잠깐 본다는 것이 끝까지 보고 말았다. 선물하는 사람에겐 좀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때 상뻬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마 지금처럼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본 책이라서 다시 구입할 필요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상뻬의 다른 작품을 통해 깊은 애정을 느끼고 있는 터라 무조건 다 모으고 싶었다. 막상 다시 구입해서 <뉴욕 스케치>를 읽어 보니, 재구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 첫 번째 이유는 이미 본 책임에도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은 망각이었다. 짧은 글과 데생으로 구성된 책이다 보니, 오래 기억에 남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더라도 전혀 생소하게 다가왔다. 당시에 쓴 내 리뷰를 찾아서 읽어보아도, 기억의 끌어냄을 만나지 못해 그냥 현실의 감정에 충실하기로 했다.

 

  상뻬의 데생 집은 느낌을 남긴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그의 책을 볼 때마다 말하게 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데생과 짧은 글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내는 것은 힘이 들기 때문이다. 통일되는 느낌의 데생집도 있지만, 대부분 도시 속의 사람들을 익살과 유머, 풍자로 비유하기 때문에 그 안에 온전히 들어가는 것은 늘 벅차다. 그럼에도 가벼운 필치와 능수능란하게 그려진 데생의 매력 때문에 자꾸 그의 작품을 찾게 되는 것이리라. 비슷한 듯 하지만 늘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상뻬의 작품은 <뉴욕 스케치>에서 좀 색다른 맛을 드러냈다. 프랑스의 모습과 그곳의 사람들, 사람들 삶 속에 퍼져있는 생각과 생활방식에 익숙해 있던 내게 뉴욕은 생경하게 다가왔다. 내가 곧장 뉴욕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인으로 뉴욕을 경험한 느낌을 만나서인지도 모르겠다.

 

  장 폴 마르티노는 뉴욕으로 떠나기 전에 르네에게 편지를 한 통 남긴다. 그리고 폴은 자신이 겪은 뉴욕의 모습을 르네에게 세세히 알려준다. 그렇기에 프랑스인인 폴의 시선에서 보이는 뉴욕, 르네에게 전해지는 뉴욕, 그 모습을 직접 봐야 하는 독자의 시선은 얽힐 수밖에 없었다. 그 얽힘이 초반에는 혼란을 주었지만, 프랑스인이 보는 뉴욕이라는 생각보다 뉴욕 그 자체,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본다고 생각하니 좀 더 친근하게 뉴욕이 다가왔다. 폴은 르네에게 이곳 사람들은 늘 연락을 끊임없이 하고 지낸다는 말을 자주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늘 끝은 '연락을 하고 지낸다.'로 끝날 정도로 뉴욕 사람들은 인연을 이어가는 것에 끈질김을 보이는 것 같을 정도로, 과분한 정이 넘쳐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폴은 그런 뉴욕사람들을 프랑스 사람들의 정서와 비교하면서 그들의 다양한 면을 드러낸다. 자기네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색다른 사람들로 표현하기보다, 그들 안에 들어가서 그들을 이해하고자 했다. 폴은 르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 식으로 남에게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나는 깨닫게 되었네.' 라고 말한다. 내가 미국인을 보았을 때도 연신 감탄사를 터트리며, 상황을 무척 크게 만들어서 대화하는 것에 대한 낯섦이 여기에서도 드러났다. 누군가가 전화만 해도 그것은 굉장한 일이라고 말해주며, 결재를 받으러 갈 때도 연신 응원을 던져주는가 하면, 칭찬을 먼저 해준 다음에 의견을 조율하는 모습들이 그랬다. 그러나 그 안에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과장이 들어있거나, 다른 마음을 품고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어색한 그들의 모습에서 따뜻함을 느껴갔다. 다른 문화권에서 무조건 낯설다고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보다, 느낀 것을 그대로 드러내며 조금씩 동화되어 가는 것이 느껴져 입가에 웃음이 피어났다.

 

  그 이외에도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뉴욕 거리를 걸으면서 느끼는 감상들이 데생과 함께 펼쳐졌다. 그동안 내가 봐왔던 상뻬의 데생과는 조금 색다른 터치로 그려진 것도 인상 깊었다. 좀 더 섬세하면서도 흐느적거리는 느낌을 살린 데생이어서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되었지만, 글 속에 녹아 있는 뉴욕사람들을 생각하며 살펴보니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었다. 장황하게 상황을 알리는 글에서 종종 헤매기도 하고, 프랑스와 미국의 정서가 같이 녹아들 때는 적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상뻬의 데생집이 주는 기본적인 편안함에서 뉴욕 체험기를 맛볼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었다. 상뻬가 세계 곳곳을 데생으로 표현하면 어떠한 모습이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좀 더 다양한 도시의 모습을 독자에게 전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의 다른 작품을 손꼽아 기다려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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