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코, 네 이름 - 조금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너에게
구스티 지음, 서애경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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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는 일과, 그림을 그리는 일에는 비슷한 데가 있어요. 둘 다 맘먹은 대로 되지 않거든요. (…) 하지만 아이는, 되돌릴 수가 없어요. (…) 말코는 예고 없이 너무 일찍 세상으로 나왔어요.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예고 없이 다운증후군으로 세상에 너무 일찍 나온 아이 말코. 아빠는 말코를 처음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온갖 감정들이 휩쓸고 간 뒤 ‘그대로 괜찮다는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라고 하는데 눈물이 났다. 문득 둘째가 태어났을 때가 생각이 났다. 둘째는 36주 5일에 태동이 없어 응급 수술을 했고, 호흡에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뇌손상을 입었다. 아이를 입원시켜 놓고 집에서 뇌손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참담함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남편과 멍하니 앉아서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무슨 말도 할 수 없어서 ‘어떻게 할까?’ 혼잣말을 하듯 질문을 했다. 무뚝뚝한 남편은 ‘뭘 어떡해?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키워야 할지나 생각해.’ 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용기를 얻었고 그렇게 둘째는 건강해졌다.

 

아빠와는 달리 엄마는 말코를 받아들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 아내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고 했다. 임신 중 양수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상이 있거나, 아니면 없거나.’ 두 가지밖에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두 아이 모두 양수 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과연 내가 말코의 엄마였다면 받아들이는 데 문제가 없었을까 감히 추측해 봐도 가늠이 되질 않는다. 그저 사랑으로 아이를 대하는 엄마가 위대했다.


 

당신이 말코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죄책감이 컸어. 하지만 맘속으로는 이 아이에겐 “그렇게” 나올 권리가 있다고 느꼈어. 그리고 이 일이 우리에게 교훈이자 경험이 될 거라고 믿었어.

 

말코의 형도 동생을 받아들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동생의 모습이 어떻든 ‘늘 사랑스러운 내 동생’이라고 했다. 가족들이 말코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아빠도 말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아이가 될 수 있는 게 한정적이라 해도 말코와 할 수 있는 것들과 시간은 소중했다. 그 모습이 고스란히 책에 드러나는데 말코에게 맞춰져 있는 시선이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찡해진다. 말코와 함께 하는 시간은 때론 인내심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말코 자체가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지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책에서 절절하게 느껴졌다.

 

대체의학이 말코에게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자 기존의 편견을 깨기도 하고, 놀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누구든지 어울릴 수 있게 도와준다. 다운증후군은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말코를 받아들이고 도와주는 수밖에 없다는 걸, 오히려 그 과정에서 아이에게 많은 걸 배우고 느끼고 있다는 걸 생생하게 보여준다. 말코를 표현하는, 말코와 함께 그리는 그림에서도 그 모든 게 묻어났다.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오래 살지 못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받아들인다”는 것은 주어진 걸 기꺼이 받는다는 뜻이지요.

 

어쩌면 우리는 많은 걸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삶의 어려움이 많다고 느끼는지도 모른다. 사랑스런 말코를 통해, 말코를 키우면서 함께 성장하는 아빠의 시선을 통해 나 역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새롭게 배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사랑이 가득한 책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사랑을 하고 살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 이전에 읽는 내내, 이 글을 쓰고 있는 내내, 내 눈에 눈물이 맺혀 있는 건 이 책 속의 사랑 때문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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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LALO Vol.1 New Zealand 라로 LALO 1
김천용 사진, 라로코리아 편집 / 라로코리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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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혼자 외출하기 힘든 주말임에도, 이런저런 일들을 잔뜩 해서 피곤했고, 마침 밖이었고, 가방 안에 책이 있어서 곧장 카페로 향했다. 한 시간 반만 놀다 들어가겠다고 남편에게 일러놓고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책을 봤다. 주말이라 카페는 사람들도 가득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느릿느릿 책장을 넘기며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괜히 커피 한 잔에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고, 마침 보고 있던 이 사진집이 머릿속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 같았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이제 어렵지 않다. 스마트폰을 꺼내 어렵지 않게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고 타인에게도 쉽게 보여줄 수 있다. 그 안에는 일상이 있고, 잘 나온 사진보다는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는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종종 길을 가다 내가 보고 있는 풍경과 찰나가 마음에 들어서 찍어보아도 생각했던 것처럼 나오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풍경 속으로 온전히 들어갈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잠깐이라도 그 안에 나를 녹여낼 여유가 많이 부족한 것이다.

잡지 같기도 하고 책 같기도 한 이 책은 뉴질랜드 감성 사진집이다. 라로. 지구의 위도와 경도를 나타내는 앞 두 글자를 따서 만든 합성어라도 한다. O를 자세히 보면 기울어져 있는데 지구를 의미한다는 설명을 듣고 나자 잘 찍힌 사진들이 가득한 이 책을 좀 더 진중하게 들여다보았다. 가보지 않는 땅의, 자연을, 사람들을, 일상과 풍경이 가득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진집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감동이 컸던 이유는 아마 뉴질랜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출발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그 낯섦이, 흔한 여행서 한 줄 읽고 가지 않았던 결과가 감동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 감동을 과연 나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에 허투루 보지 않고 저자가 보았을 그 낯섦을 내 안에 가득 담아보려 했다.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자연에 대해서는 조금 들어봤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특히 산과 호수, 구릉지를 보고 있으면 자연의 위대함 앞에 자연스레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그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평안했다. 자연 앞에서는 존재를 드러낼 때보다 보다는 순응하며, 어울리며 살아가는 게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내려 형성된 호수의 물빛을 보고 있으면 내가 굉장히 작아 보이지만 겸손함을 배운다. 빽빽하게 요트가 정박해 있고 도시가 세워진 바다 근처를 보고 있으면 사람 사는 냄새도 나고 그냥 아름다운 도시라고 느낀다.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존재가 바로 나무’라고 하던 저자의 말처럼 나무를 보고 있으면 그냥 고맙고, 가지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햇살이 별 거 아닌 일상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쉼이란 거창한 수식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 놔두고 바라보는 것이다. 바라에 흔들리고 햇볕을 맞으면서도 깊이 나를 받아들이고, 깊숙이 나를 간직하고, 나와 소통하는 시간들을 나누는 것, 이것이 쉼이다. 118쪽

낯설어서 더 경이로웠던 풍경들이 점점 눈에 익어가는 것도 아쉽지 않았다.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스스로를 내려놓는 것만큼 자연스럽고 평안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평소에 만나지 못한 풍경 속에서도, 매일 보는 풍경이라 아무 느낌이 없는 풍경도 같은 맥락이 될 수 있다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뉴질랜드의 풍경은 여러 의미의 평안함을 선물해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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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아껴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눈물이 조금 났다.
그림과 글 속에 사랑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이런 사랑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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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북유럽 Nordic day 어느 날 문득
방지연 지음 / 북노마드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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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아파트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본다. 이제 4살인 둘째는 비행기를 보면 신기해하고, 6살인 첫째는 늘 비행기를 타고 싶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국내선을 타봤는데도 기억이 잘 안나보다. 가끔, 그런 비행기를 보면서 나도 훌쩍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그렇다손 쳐도 아이들이 눈에 밟혀 혼자서 여행은 맘 편히 하지 못하겠지만, 조건 없이 어딘가로 갈 수 있다면 나 역시 북유럽을 가보고 싶다. 예전에는 아를, 프라하, 크레타 섬 등이 가고 싶었지만 요즘엔 북유럽을 궁금하다. 그래서인지 책장에 꽤 오랫동안 꽂혀 있었음에도 며칠 전 우연히 발견해 단숨에 읽어버렸다.

 

저자 또한 언젠가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 북유럽이라고 했다. 약 보름동안의 헬싱키, 스톡홀름, 코펜하겐의 여행기를 담겨 있다. 이 책에는 저자의 여행 취향이 확고하게 드러나 있다. 어떤 도시를 가면 관광지 위주로 다닌다던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기 마련인데 저자는 후자에 더 강하다. 저자는 천, 그릇, 공예, 예술, 디자인 등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얽혀 있는 숍과 공장, 박물관을 주로 견학한다. 북유럽 국가라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느낌들이 비슷했는데 한참 우리나라에 북유럽 열풍이 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디자인이 깔끔하면서도 유연하고, 일상생활에서 쓰는 물건들이 단순하면서도 기하학적이고 시원시원한 느낌이 있었다. 여름이 짧아 갈망하듯 그릇에 초록색 나뭇잎을 넣는가 하면, 큼지막한 꽃 모양이 이렇게 예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거기다 시장이나 벼룩시장 같은, 도시의 활력을 볼 수 있는 곳도 자주 들렀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먹는 음식들이 대부분 신선한 야채로 채워진 샐러드, 샌드위치라서 보고만 있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주식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 싶지만 신선한 야채와 커피를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걸 보면 입맛에도 잘 맞고 역시 건강함을 느낄 수 있으리라 짐작했다. 저자가 경험한 것들에 대한 정보 전달도 많지만 좋아하는 디자인을 보고, 소소하게 기념품도 사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그 도시를 만끽하는 일.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여행이 아닌가 싶다.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를 보는 것도 좋지만 언젠가부터 그 도시의 색깔을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여행에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것들을 보고, 느끼고, 만져보는 것이 삶에 큰 활력을 줄 것 같다. 살아가면서 이러한 경험도 할 수 있다는 만족감이 나를 더 풍요롭게 할 것 같은 기분. 이 책을 읽는 내내 특별하진 않더라도, 소박하고 개인적이더라도 대리만족으로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면서 역시나 당장 떠날 수 없다면, 내 주변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보는 것. 보지 못했던 것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게 당장의 만족감을 채워줄 수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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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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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는 수많은 비밀이 있다. 그리고 그걸 감추며 살아가는 게 일상이라 여기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비밀을 타인에게 털어놓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럴 용기도 없고 그럴 마음도 전혀 없지만 그런 비밀이 이상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걸 목격했다. 한 권의 책을 읽었음에도, 이 소설의 배경이 그러하듯, 스탠딩업 코미디를 관람한 것 같은 착각이 일어 목격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아비샤이는 어린 시절 함께 과외를 받으며 잠시 우정을 나눴던 도발레를 사십 년이 넘게 완전히 잊고 살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으니, 어느 날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와 그저 때가 됐다며 “나를 보러 오면 좋겠어.” 라고 하는데 적잖이 당황할 만하다. 결국 그의 부탁대로 아비샤이는 스탠딩업 코미디 쇼를 관람하러 가고, 그곳에서 도발레가 어떻게 자신의 고통을 끌어내는지를 목도한다. 그리고 왜 그곳에 아비샤이가 있어야 하는지도 말이다.

 

생일은 당신들도 알다시피 결산을 하는 날, 영혼을 탐색하는 날이야. 적어도 영혼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이야. (…)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영혼은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정비해줄 것을 요구하잖아. 안 그래? 54쪽

 

쉰일곱번째 생일을 맞은 도발레는 아비샤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영혼을 탐색하고 결산을 하기로 작정한 듯 했다. 처음엔 신랄하고, 날카로우면서도 영특하고 능숙한 유머가 가득했다. 그 안에는 온갖 이야기와 함께 이스라엘의 아픈 역사와 풍자도 섞여있다. 그 모든 이야기를 혼자서 이끌어 간다는 게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할 뿐, 시답잖은 농담을 듣고 있으면 자리를 피하고 싶다가도, 어느새 그의 얘기에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당황스러웠다. 아비샤이처럼 계획 없이 도발레의 스탠딩업 코미디를 관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 역시 의문을 품는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왜 도발레의 코미디 쇼를 보러 온 것인지 말이다.

 

그는 자신을 부추겨 광기의 상태로 들어가고, 그럼으로써 사람들도 부추긴다. 그는 자신을 불태워 사람들에게도 불을 붙인다. 어떻게 그것이 먹히는지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먹힌다. 112쪽

 

도발레의 쇼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서서히 그 매력에 도취되어 갈 때쯤, 어릴 적 도발레를 알고 있던 관객이 나타나면서 방향은 예기치 않게 흐른다.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우리를 이용’하는 ‘스토리텔링 서클’이라며 화를 내고 나가버리는 관객이 생길 정도였다. 도발레는 개의치 않고 지금껏 왜 이렇게 고통에 찬 채 살아왔는지를 장황하게 얘기한다. 그리고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아비샤이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려 한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자신은 광대가 되어 사람들을 온갖 방법으로 웃기지만 어느 순간 회개가 되고, 슬픔이 올라오고, 그럼에도 살아 있음을 끊임없이 간구하는 그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의 온갖 말들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슬픔과 상실감이 짙었고 삶의 끄트머리에 곧 닿을 사람처럼 모든 순간을 훑고 되짚어 끌어내는 그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도발레는 열네 살 때 군사 캠프 중 장례식에 가야했던 순간이 고통의 시작이고 근원이 되었다. 그는 스탠딩업 코미디언답게 관객을 다를 줄 알았다. 물론 이야기가 끝날 때쯤엔 몇 명의 관중밖에 남지 않았지만(나도 그들 중 한명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고아’만 언급할 뿐, 끝까지 누구의 장례식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거기 도착할 때까지는 형 집행 정지’라고 말한 것처럼, 안달하던 궁금증이 서서히 도발레와 함께 동화되었다. 그리고 그의 고통이 적나라하게 흘러나올 때마다 그가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그의 물구나무가 얼마나 슬픈 행동이었는지, 도발레가 잃어버렸던 것을 나도 그 나이에 잃어버렸다면, 나 역시 영원한 고통에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 눈물이 맺혔다.

 

군사 캠프 이후로 그를 완전히 잊어버렸던 아비샤이는 그의 고백에 훨씬 많은 고통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공백을 어떤 식으로든 메울 수 없지만, 오히려 도발레를 통해 아비샤이만의 아픔이 회복해 가는 걸 알 수 있다. 아비샤이의 그녀와 함께 사랑했던 페르난두 페소아의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얼마든지 완전해질 수 있다.’는 말처럼 어쩌면 도발레를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말해주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아비샤이는 도발레에게 지금껏 잘 버텼다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함께 하는 거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존재하기 때문에 당면하는 수많은 고통들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모순을, 이 긴 코미디 쇼를 통해서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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