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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내 안에는 수많은 비밀이 있다. 그리고 그걸 감추며 살아가는 게 일상이라 여기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비밀을 타인에게 털어놓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럴 용기도 없고 그럴 마음도 전혀 없지만 그런 비밀이 이상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걸 목격했다. 한 권의 책을 읽었음에도, 이 소설의 배경이 그러하듯, 스탠딩업 코미디를 관람한 것 같은 착각이 일어 목격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아비샤이는 어린 시절 함께 과외를 받으며 잠시 우정을 나눴던 도발레를 사십 년이 넘게 완전히 잊고 살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으니, 어느 날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와 그저 때가 됐다며 “나를 보러 오면 좋겠어.” 라고 하는데 적잖이 당황할 만하다. 결국 그의 부탁대로 아비샤이는 스탠딩업 코미디 쇼를 관람하러 가고, 그곳에서 도발레가 어떻게 자신의 고통을 끌어내는지를 목도한다. 그리고 왜 그곳에 아비샤이가 있어야 하는지도 말이다.
생일은 당신들도 알다시피 결산을 하는 날, 영혼을 탐색하는 날이야. 적어도 영혼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이야. (…)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영혼은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정비해줄 것을 요구하잖아. 안 그래? 54쪽
쉰일곱번째 생일을 맞은 도발레는 아비샤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영혼을 탐색하고 결산을 하기로 작정한 듯 했다. 처음엔 신랄하고, 날카로우면서도 영특하고 능숙한 유머가 가득했다. 그 안에는 온갖 이야기와 함께 이스라엘의 아픈 역사와 풍자도 섞여있다. 그 모든 이야기를 혼자서 이끌어 간다는 게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할 뿐, 시답잖은 농담을 듣고 있으면 자리를 피하고 싶다가도, 어느새 그의 얘기에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당황스러웠다. 아비샤이처럼 계획 없이 도발레의 스탠딩업 코미디를 관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 역시 의문을 품는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왜 도발레의 코미디 쇼를 보러 온 것인지 말이다.
그는 자신을 부추겨 광기의 상태로 들어가고, 그럼으로써 사람들도 부추긴다. 그는 자신을 불태워 사람들에게도 불을 붙인다. 어떻게 그것이 먹히는지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어쨌든 먹힌다. 112쪽
도발레의 쇼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서서히 그 매력에 도취되어 갈 때쯤, 어릴 적 도발레를 알고 있던 관객이 나타나면서 방향은 예기치 않게 흐른다.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우리를 이용’하는 ‘스토리텔링 서클’이라며 화를 내고 나가버리는 관객이 생길 정도였다. 도발레는 개의치 않고 지금껏 왜 이렇게 고통에 찬 채 살아왔는지를 장황하게 얘기한다. 그리고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아비샤이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려 한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자신은 광대가 되어 사람들을 온갖 방법으로 웃기지만 어느 순간 회개가 되고, 슬픔이 올라오고, 그럼에도 살아 있음을 끊임없이 간구하는 그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의 온갖 말들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슬픔과 상실감이 짙었고 삶의 끄트머리에 곧 닿을 사람처럼 모든 순간을 훑고 되짚어 끌어내는 그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도발레는 열네 살 때 군사 캠프 중 장례식에 가야했던 순간이 고통의 시작이고 근원이 되었다. 그는 스탠딩업 코미디언답게 관객을 다를 줄 알았다. 물론 이야기가 끝날 때쯤엔 몇 명의 관중밖에 남지 않았지만(나도 그들 중 한명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고아’만 언급할 뿐, 끝까지 누구의 장례식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거기 도착할 때까지는 형 집행 정지’라고 말한 것처럼, 안달하던 궁금증이 서서히 도발레와 함께 동화되었다. 그리고 그의 고통이 적나라하게 흘러나올 때마다 그가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그의 물구나무가 얼마나 슬픈 행동이었는지, 도발레가 잃어버렸던 것을 나도 그 나이에 잃어버렸다면, 나 역시 영원한 고통에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 눈물이 맺혔다.
군사 캠프 이후로 그를 완전히 잊어버렸던 아비샤이는 그의 고백에 훨씬 많은 고통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공백을 어떤 식으로든 메울 수 없지만, 오히려 도발레를 통해 아비샤이만의 아픔이 회복해 가는 걸 알 수 있다. 아비샤이의 그녀와 함께 사랑했던 페르난두 페소아의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얼마든지 완전해질 수 있다.’는 말처럼 어쩌면 도발레를 비롯한 우리 모두에게 말해주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아비샤이는 도발레에게 지금껏 잘 버텼다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함께 하는 거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존재하기 때문에 당면하는 수많은 고통들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모순을, 이 긴 코미디 쇼를 통해서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