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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LALO Vol.1 New Zealand ㅣ 라로 LALO 1
김천용 사진, 라로코리아 편집 / 라로코리아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혼자 외출하기 힘든 주말임에도, 이런저런 일들을 잔뜩 해서 피곤했고, 마침 밖이었고, 가방 안에 책이 있어서 곧장 카페로 향했다. 한 시간 반만 놀다 들어가겠다고 남편에게 일러놓고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책을 봤다. 주말이라 카페는 사람들도 가득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느릿느릿 책장을 넘기며 아메리카노를 홀짝였다. 괜히 커피 한 잔에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고, 마침 보고 있던 이 사진집이 머릿속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 같았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이제 어렵지 않다. 스마트폰을 꺼내 어렵지 않게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고 타인에게도 쉽게 보여줄 수 있다. 그 안에는 일상이 있고, 잘 나온 사진보다는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는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종종 길을 가다 내가 보고 있는 풍경과 찰나가 마음에 들어서 찍어보아도 생각했던 것처럼 나오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풍경 속으로 온전히 들어갈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잠깐이라도 그 안에 나를 녹여낼 여유가 많이 부족한 것이다.
잡지 같기도 하고 책 같기도 한 이 책은 뉴질랜드 감성 사진집이다. 라로. 지구의 위도와 경도를 나타내는 앞 두 글자를 따서 만든 합성어라도 한다. O를 자세히 보면 기울어져 있는데 지구를 의미한다는 설명을 듣고 나자 잘 찍힌 사진들이 가득한 이 책을 좀 더 진중하게 들여다보았다. 가보지 않는 땅의, 자연을, 사람들을, 일상과 풍경이 가득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진집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감동이 컸던 이유는 아마 뉴질랜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출발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그 낯섦이, 흔한 여행서 한 줄 읽고 가지 않았던 결과가 감동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 감동을 과연 나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에 허투루 보지 않고 저자가 보았을 그 낯섦을 내 안에 가득 담아보려 했다.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자연에 대해서는 조금 들어봤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특히 산과 호수, 구릉지를 보고 있으면 자연의 위대함 앞에 자연스레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그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평안했다. 자연 앞에서는 존재를 드러낼 때보다 보다는 순응하며, 어울리며 살아가는 게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내려 형성된 호수의 물빛을 보고 있으면 내가 굉장히 작아 보이지만 겸손함을 배운다. 빽빽하게 요트가 정박해 있고 도시가 세워진 바다 근처를 보고 있으면 사람 사는 냄새도 나고 그냥 아름다운 도시라고 느낀다.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존재가 바로 나무’라고 하던 저자의 말처럼 나무를 보고 있으면 그냥 고맙고, 가지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햇살이 별 거 아닌 일상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쉼이란 거창한 수식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 놔두고 바라보는 것이다. 바라에 흔들리고 햇볕을 맞으면서도 깊이 나를 받아들이고, 깊숙이 나를 간직하고, 나와 소통하는 시간들을 나누는 것, 이것이 쉼이다. 118쪽
낯설어서 더 경이로웠던 풍경들이 점점 눈에 익어가는 것도 아쉽지 않았다.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스스로를 내려놓는 것만큼 자연스럽고 평안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평소에 만나지 못한 풍경 속에서도, 매일 보는 풍경이라 아무 느낌이 없는 풍경도 같은 맥락이 될 수 있다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뉴질랜드의 풍경은 여러 의미의 평안함을 선물해 준 것 같다.